아벨의 피로부터 그리스도의 피에 이르는 의에 의한 믿음
마태복음 23:32-39.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7-39절에서 노아의 때를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강림하실 때의 사람들이 어떤 상황의 상태에 있을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던 그 상황이 예수님의 재림 시까지도 그대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이르러 사람들이 보인 악한 죄는 노아의 때 사람들이 보인 부패보다 더 무겁고 큽니다. 왜냐하면 이때는 본문의 말씀에 이르기까지 마태복음 23장에서 보게 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드러내놓고서 행동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화를 당할 악한 부패의 외식에 있어왔으며, 이는 “우리는 조상들이 저지른 행동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조상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밟아 가고 조상들이 있어온 악에 자신들의 몫을 마저 다 채우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예수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죄악은 멈추지 않고서 그들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악행에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구원 얻는 회개의 복음을 외치게 하기 위해서 보낼 선지자(사도)와 지혜 있는 자들(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집사들), 서기관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의미를 바르게 교육하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으며 매질하며, 잡으러 다님으로써 의로운 사람 아벨의 피부터 성전의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죽임 당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1)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신앙인들의 피값을 그들 또한 그대로 이어 받고 있기에 그들에게 미칠 화는 참으로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그들은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아래 모으듯이 하신 보호 아래 두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자비에 응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집이 버림을 받아 황폐해질 것이라며, 그들은 주님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니 예수님이 그들에 의해서 죽임 당한 후에 부활 승천하실 것이며, 재림하셔서는 주님과 함께 했던 많은 자들의 환영을 받아 그들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것이나, 그들은 결코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지 못할 것이며 어두운 데서 슬픔으로 곡하며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참조. 마 8:12; 22:13; 25:30; 계 1:7).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에 있는 우리에게는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도 성령의 권능에 의해 세워나가시는 교회를 통해 하늘에서 영광의 보좌에 계신 주님과 함께 하여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위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재림하시면 영접하여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여 하나님을 경배함에 영원히 복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현재의 지상에서부터 장차의 천상에 이르기까지 주님과 함께 복 있게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두시고서 그분의 지휘를 따라 살아가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우리가 믿음으로 지혜 있고 힘 있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교회를 통해 매주 증거 됨이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한지 알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어두운 가운데서 빛나는 등불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잠 6:23).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과 함께 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함에서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 언약의 복이 실현됩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과 함께 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없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사는 날이 끝남을 통해 그들의 마지막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저주에 영원히 있게 되는 화를 당함에 있는 것이 됩니다. 그 사실을 눈에 보듯이 훤히 알면서 그들이 살 듯이 따라서 사는 모습에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아벨이 흘린 피로부터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흘린 피에 이르기까지 그 피 흘림을 따름에 있습니다. 그 피흘림으로 우리 믿음이 증거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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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의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손자요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이다. (1)그는 유다 왕 요아스 때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예언하는 일도 하였다.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하였으나(대하 24:2), 여호야다가 죽은 후의 요아스 왕은 거짓된 신하들에게 속기 시작하므로 유다 백성들도 여호와의 성전에 가서 조상들의 하나님에게 경배하는 일을 그만 두고 음행을 조장하는 아세라 목상과 바알의 신상들을 다시 섬겼다. 유다 백성이 이렇게 주님 앞에서 죄를 저지르자,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하셨다(대하 24:17-18). 이에 스가랴가 요아스 왕에게 의로운 직언을 하였으나, 요아스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그를 성전 뜰 안에서 죽였다(대하 24:20, 22). 그 일로 하나님께서 요아스를 심판하시는 것으로 아람군의 침공을 받고 전쟁에서 중상을 당한 후 그가 스가랴를 죽인 일로 인해 요아스를 미워한 신하들에 의해서 피살되었다(대하 24:23-25) 이처럼 요아스왕에게 죽임 당한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손자요 바라갸의 아들이지만, 여호야다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족보는 3대 이상의 할아버지를 아버지의 위치로 기록하기도 하는데 따른 것이다. 이는 손자는 아들이 낳은 자식이기도 하지만, 계대의 족보에 의해서 할아버지의 아들로 여기는 까닭이다. 따라서 아들의 자식은 할아버지의 자식이다. 그러한 것에서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는 대상 24장 20-22절에서는 ‘여호야다의 아들’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는 사가랴의 부친이 바라갸가 사가랴의 조부인 여호야다 만큼 유명한 제사장이 아닌 평범한 인물인 까닭에 유대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조부 여호야다로 부친인 바라갸를 대신하였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