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포드tetrapod*
봄날을 행진하는 비정규직 깃발들
삼삼오오 스크럼 짜고 밀려와 부딪친다
저만치 꿈쩍도 않는
항구의 붉은 불빛
* 파도나 해일을 막기 위해 방파제에 사용하는 콘크리트 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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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에 관한 기억
고흐가 선물해 준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
타히티역 출구에 후두둑 비가 내린다
떠나온 아를의 방에 해바라기 피겠다
손을 떠난 우산은 사이프러스의 별이 되거나
거울 속 자화상으로 선명히 남아있다
원시의 타히티섬엔 해가 반짝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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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
90℃ 커피가 자꾸 화를 돋우더니
서서히 식고 있다 온몸이 축축하다
늦도록 불 밝힌 사무실 만년 대리 책상 위
새벽을 들이켜는 손가락이 희고 길다
복사기의 거친 숨결 보고서를 씹고 있다
한순간 사정없이 구겨져 던져지는 24시
간벌한 숲 사이로 울리는 브라보 소리
두 손으로 감싸는 체온은 남았는데
찰나가 지나간 거리 칼바람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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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국밥집 노할매의 목소리가 굵어진다
‘그래도 내한테는 금쪽같은 자식인 기라’
창문을 두드리는 비
삿대질이 한창이다
다섯 살 언저리의 마흔다섯 칠봉 아재
그 많던 손님 곁을 사슴처럼 뛰는 날
문 닫고 뜨겁게 말아낸
붉은 국밥 두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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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
눈 밝은 별 하나가
지상에 내려와서
울다 지친 초록 바다
두고 간 햇살 조각
기도실
수녀님 이마
흰 베일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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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호떡
남포동 고소한 줄 운촌시장 건너왔다
마흔 둘 이력 적힌 노총각의 종이컵
차지게 늘어진 오늘 따뜻하게 담겼다
몇 번을 주물러서 숙성된 햇살 덩이
고시원 전전하다 발길이 멈춰있다
씨앗을 가슴에 품어 발아하는 내일처럼
구름이 모여 사는 운촌시장 그 처마 끝
뜨거운 프라이팬 버터기름 흥건해도
씨앗은 손길을 따라 한 송이 꽃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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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국
밤마다 산을 넘는
달들이 모여 핀다
기차가 흔들리는
절개지 언덕빼기
두고 온 딸아이 얼굴
창문마다 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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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大暑
몸 빨간 소쿠리에 푸른 사과 너덧 알
운촌시장 한길가 뙤약볕에 나앉았다
온종일 누렇게 뜬 얼굴 기다림이 흐릿하다
단내 쫓던 초파리들 초점이 흐려진다
물기도 말라가고 아삭함도 지워지고
푸석한 몸뚱어리들 날이 함께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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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
쌓이는 시간 위로 마른 쑥을 놓는다
닳아진 관절에도 늘어난 힘줄에도
바쁘게 달려온 오늘 뜸 들이는 중이다
속속들이 뜸이 들어 익어가는 쉰 고갯길
잃었던 초록 들판 쑥 향이 묻어온다
주름진 내일의 날씨 탱탱하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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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
널 만난 순간순간 불덩이는 꽃이 된다
잡았다가 놓았다가 긴 거리를 당기면
절정에 나는 녹는다
붉은 포옹 후끈한
손마디 지문들은 다 닳아 꽃이 핀다
꽃잎들 흩어지고 증언할 길 없다 해도
절정에 나는 녹는다
내 어머니 어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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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경로당
재건축 아파트가 씨방처럼 부푸는 길
옹기종기 모여 핀다, 운촌의 노란 대문 집
꽃잎은 날려 보내고 지팡이만 남았다
화투 패로 점쳐보는 꽃씨들의 늦은 안부
바람에 흔들리다 지팡이는 여위는데
아파트 창가에 걸려 저녁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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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와 센텀시티 5
-적조
쇠오리 자맥질이 바람 따라 더디다
수영강에 가라앉은 빌딩 숲 그림자들
왜가리 붉은 발목이 센텀 벽에 젖는다
저녁 등 밝아오면 눈물도 붉게 번져
창문을 두드리는 물결 속 작은 부리
숭어는 뛰지 않는다, 말문 닫은 수영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