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 자 회 견 문 >
조선일보의 반민족 친일행위를 규탄한다
조선일보는 어느 나라 신문인가, 한국의 신문이 맞는가?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면서 묻고 있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수출규제문제를 둘러싼 한일관계에 대한 보도에서 노골적인 친일행태를 드러내면서 이 신문의 민족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드러내 보여주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신문은 7월 4일자 일본어판 기사에서 “일본의 한국투자 1년 새 -40%,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를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로 제목을 바꾸고,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기사 제목을 “한국인은 얼마나 편협한가”로 바꾸어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신문의 일본어판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고통을 당한 우리 ‘강제징용피해자’를 일본의 가해와 착취에 대한 나쁜 어감을 줄이기 위해 “징용공”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란 말을 ‘일본 통치시대’로 바꾼 것은 일제의 국권 약탈이 합법적인 것이었으며, 우리가 강점의 시대를 산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통치의 시대를 산 것이라는 뜻으로 읽히게 했다. 이런 기사는 일본 포털의 상단에 노출되어 한국을 업신여기면서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본 극우세력의 혐한여론 조성에 잘 이용되고 있다. 이는 일본 내의 혐한 여론을 확대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일본 우익세력이 한국여론을 오판케 할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기사를 한국의 여론이라고 보았는지 일본의 한 방송은 한국의 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일관계가 풀릴 것이라는 모욕적인 망언까지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조선일보는 애초에 문제를 일으킨 것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과 이를 방치한 정부에 있다면서 거듭 같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말이 ‘비판’이지 ‘비난’에 가까우며 그 책임을 전적으로 우리 쪽으로 돌리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런 일방적인 친일 논조는 나라에 큰 피해를 주는, ‘조국’에 대한 배신행위로서 이 신문의 국적이 어디인지 거듭 묻게 한다.
조선일보는 우리 대법원이 왜 이런 판결을 내렸는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검토해본 적이 있는가?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조약에 다른 식민지배가 합법적이고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자국 국민을 전시에 동원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강제징용피해배상을 거부해왔다. 그리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양국 및 국민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이 협정에 따라, 청구권협정 당시 한국에 제공한 물자도 ’배상금‘이 아니라 ’경제협력 자금‘이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65년의 한일협정이 잘못된 협정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밀실에서 주고받은 이른바 ‘김(종필) -오히라(大平) 메모가 얼마나 오랜 동안 문제가 되었던가를 우리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당시 한일회담 반대운동은 수많은 학생들과 국민들이 궐기하여 박정희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건이었다. 우리 대법원은 이런 잘못된 협정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 65년의 한일협정과는 별개로 강제징용배상판결을 내린 것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65년에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징용피해배상을 거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기업에 대한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협정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살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에서 강제징용피해배상 소송을 맡았던 일본의 자이마 히데카즈 변호사는 “한일청구권협정과 별개로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유효하다”고 단언하고, “국제 인권법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국가 간의 협정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경위가 이러한데도 조선일보는 우리 대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면서 강제징용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했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국가 간에 맺은 협정이기 때문에 다툼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일본정부의 대변인인가?
지금 한일 양국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통해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가하고 있고, 2차로 그 범위를 더 크게 확대할 것으로 보여 사실상 경제전쟁 상태에 들어가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일본은 우리에 대한 수출규제를 경제적 보복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있으며, 한국경제가 더 이상 발전하는 것을 좌절시켜 동아시아에서의 경제패권을 유지 확장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 전쟁상태나 다름없는데도 조선일보는 ‘전쟁’이라는 말을 쓴 당국자를 비판하면서 “안보협력국인 일본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를 노골적으로 ‘적대시’ 하는 것은 일본인데도 우리 국민들의 반일 감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냉정하게 국익을 따져야 한다면서 “정부차원의 반일공세로 일본에서 반한 감정이 더욱 확산되면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런 태도는 지금 국민들이 분노를 품고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3・1 만세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일제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애국심을 비웃는 것이다. 들불처럼 번져가는 이 운동의 열의와 정성이 눈물겨울 지경인데도 말이다.
조선일보의 이런 행태를 지켜본 국민들은 일제에 부역하면서 우리 민족을 고난 속으로 몰아넣었던 과거 식민치하의 친일 매국 언론을 떠올리고, 그 반민족적 언론의 적폐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조선일보의 이런 행태야말로 나라를 해치는 배신행위로 보고 규탄한다. 조선일보가 조금의 양심이라도 갖고 있다면 작금의 이런 비열한 친일 행위에 대해 사죄해야 하며, 국민들은 그 책임을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언론이 ‘언론’이란 말을 들으려면 조금이라도 균형과 공정성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조선일보 지면에서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이 왜 나왔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진지하게 다룬 기사를 본적이 없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가 불법이 아니고 ‘합법적인 지배’였다는 주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고,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한일문제를 다룬 글을 볼 수 없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언론과 정부관리들 마저 일본의 수출규제를 비판하고 나서는데도 조선일보는 일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국정부만을 비판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공정성을 잃은 극단적인 편향보도는 한일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주요 지면엔 악의를 담아 사실과 진실을 비튼, 편향된 기사들이 끊임없이 실리고 있다. 21세기 대명천지를 살아가고 있는데도, 우리나라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멀리 전진해왔는데도, 이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50여 년 전 냉전시대의 어둡고 음산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모든 것을 좌와 우로 가르고, ‘진보’에 대해서는 빨간 색을 칠해 음해하고 공격하며 적대감과 증오를 조장하고 있다.
언론은 ‘자유로운 정신’과 이성을 가지고 진실과 정의를 ‘신앙의 대상’처럼 섬겨야 한다. 올바른 시대정신을 찾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언론이 이런 사명을 저버리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는 데 빠져 있다면 그런 언론은 언론이 아니라 프로파간다이다. 사람들은 그런 신문을 신문이 아니라 전단지, 이른바 ‘삐라’ 같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일제의 잔재와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역사에 정의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를 조장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 되어 되풀이되고 있다.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이 한 번도 반성하지 않은 채 계속 살아남아 언론을 지배했고, 군사독재에 부역했던 자들이 조금의 죄의식도 없이 언론계에 그대로 남아 거짓되고 악한 언론을 만들어내 왔다. 언론의 생명이라 할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언론 현장에서 몰아내고 독재 권력에 편입되어 언론 암흑시대를 만들었던 자들이 한 마디의 사죄도 없이 걸핏하면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부정했던 똑같은 펜으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장해서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사죄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바로 그 증인들이다. 언론이 그 생명이라 할 자유를 잃고 죽어갈 때 언론사 사주는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싸우는 기자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도리다. 그것이 어렵다면 투쟁하는 기자들을 독재 권력으로부터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사 사주의 최소한의 의무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주는 기자들과 함께 싸우지도 보호해주지도 않은 채, 오히려 거꾸로 기자들의 목을 잘라 언론 현장에서 추방해 버렸다. 그러고서도 그들은 너무나 자주 언론의 자유를 입에 담는다.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우리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내년으로 발족 45주년을 맞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조선일보로부터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혼란은 거의 모두가 거짓되고 사악한 언론으로부터 온 것이다. 선동에 가까운 온갖 가짜 뉴스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다.
언론은 어둠 속을 달리는 자동차의 전조등과 같다. 전조등이 빛을 잃거나 꺼져 있다면, 그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은 파멸이다. 지금 한국의 이른바 ‘주류언론’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스스로를 ‘주류언론’이라고 자처하는 이 언론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나라와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언론’이라고 부르며 ‘쓰레기 언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지금 이 언론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는 더 심각한 혼란과 위기를 맞을 것이다. 언론이 스스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국민들이 나서 바로잡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거짓된 언론을 부정하고 추방함으로써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2019년 8월 1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연대단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KNCC언론위원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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