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으로 이승으로,
그러나 다시 저승으로
먼저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에우리디케는 물(담수)의 님프였습니다. 수금의 명수이자 절창인 오르페우스와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했지요. 행복한 신혼을 보내던 어느날, 초원에 나가 있던 에우리디케는 누군가 자신을 뒤쫓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범하려는 사람인가 싶어 부리나케 도망쳤어요. 그러다가 독사를 밟아버렸고, 독사에 물린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몸이 마비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넋이 나갈 정도로 울부짓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지요. 어떻게 해서든 아내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그는 지하 세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은 자들의 신 하데스를 만나 자신의 아내를 돌려달라고 간청했어요. 그러나 하데스는 죽은 자를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라며 이를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오르페우스는 수금을 뜯으며 노래를 불렀고, 마침내 그의 음악에 감동받은 하데스는 에우리디케의 이승행을 허락했어요.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지상으로 나가기 전까지 오르페우스가 그의 뒤를 따르는 에우리디케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프랑스 화가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의 <지하 세계로부터 에우리디케를 이끄는 오르페우스>는 그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내를 데리고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오르페우스가 수금을 흔들며 앞장서 걸어갑니다. 그리고 에우리디케는 남편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 뒤를 따릅니다. 아련하고 아득한 분위기로 충만한 풍경은 이곳이 아직 지하 세계임을 선명히 드러내 보입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지상으로 향하는 입구가 보였습니다. 지상의 빛이 지하 세계로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어요. 오르페우스는 그 빛으로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거의 다 도착했다는 생각에 입구를 코앞에 두고 방심한 것이에요.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차 할 새도 없이 에우리디케가 안개처럼 저승으로 사라져갔습니다. 놀란 오르페우스는 뒤쫓아 가려 했으나 저승으로 가는 길이 순식간에 막혔습니다. 좌절한 그는 그 자리에서 통곡하며 주저앉아버렸지요.
프랑스 화가 미셸 마르탱 드롤링의 <오르 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한스러운 이별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에우리디케는 잠에 빠진 듯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 헤르메스가 그녀를 부축하듯 품에 안고 있어요. 오르페우스가 급히 손을 뻗지만 손끝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의 좌절감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수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얼굴에는 공포에 가까운 슬픔이 진하게 번져갑니다. 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맡은 헤르메스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오르페우스를 보며 에우리디케를 저승으로 데려갑니다. 이렇게 둘의 사랑은 다시 비극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중에서
이주헌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