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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크르와(Eugene Delacroix)
자화상
1837
■낭만주의의
거장이자 색채의 해방가라고 일컬어지는 들라크르와 만큼 서양미술사에서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도
드물 것이다.
그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주제면과 양식적인 면에서 본다면 주제면에서는,〈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1822년 살롱전에서 성공을
거두고,1823년
제리코가 사망하면서부터 프랑스 낭만주의의 새로운 거장이 되는 들라크르와는 문학·음악·종교
등에서 주제를 취하면서 이후
10년 동안〈키오스
대학살〉(1824),〈미솔롱기의
폐허 위에 서 있는 그리스도〉,〈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등
격렬한 성격의 작품들을 주로 제작했다.
이러한 그의 낭만주의적 주제는
모로·퓌비
드 샤반느에 이어 르동의 상징주의로 이어져 근대미술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양식적인
면을 살펴보면
1832년 모로코 여행 이후
그는 이전의 작품들에 보이는 전통적인 기법,즉
명암의 대비와 화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유약의 덧칠 등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창적 기법을 선보인다.
색채를 분할하고 붓질을 거침없이
함으로써 화면에 거칠고 표현적인 특성을 남기는데,
이로 인해 색채가 회화의 구조
속에 들어가게 되고 붓 터치가 하나의 독립적 모티프가 되는 것이다.〈알제리의
여인들〉,〈유대인
결혼식〉,〈탕헤르의
광신도들〉등의
작품에서 이러한 특징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양식적 특징은 선이
아닌 색채에 기초를 두는 쿠르베나 바르비종파,그리고
인상주의라는
19세기
미술사의 또 다른 중대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들라크르와는
하나의 고정된 화파 안에 집어 넣기에는 너무 포괄적인 작가다.
그의 회화적 특질은 단순한
낭만주의를 넘어선다.
작품 세계가 장식적이며
바로크적인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고전주의의 단순성과 웅대함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대 미술의 규범과 그것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변화된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데,
그런 연유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를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생
술피스 성당의 작품〈야곱과
천사의 싸움〉(1849~64)을
제외하고 들라크르와의 종교화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사실 그의 초기 종교화 작품들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디드로의 무신론·볼테르의
반교권주의·루소의
검신론에 빠져있던 들라크르와는 오랫동안 불가지론을 주장했다.
1850년 이후 나이가 들면서
그의 이러한 불가지론은 형이상학적 고뇌로 대치되고 있다.
이 정신적 추구는 신약성서의
유명한 장면들을 휴머니스트 합리주의자의 시각으로 끊임없이 다루기 시작한 계기가 된다.
우선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통·고뇌에
밀착,그리스도의
육체 위에 쏟아지는 수많은 비탄의 장면을 고뇌·슬픔·혼란으로
표현하고 있다.〈갈릴리
호수 위의 그리스도〉는
광포한 자연 앞의 인간에 관한 극적 주제를 바다의 정경과 연결시키고자 했는데,
이 종교화의 풍경 장면은 성서
개념에 충실한 완벽한 상상화인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상상력을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들라크르와는
단 한번도 살롱전에 순수한 풍경화를 출품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후기에 자연을 소재로
그린 작품들은 역사화 작품들보다 훨씬 더 미학적 감수성을 보여준다.1840년부터
그는 자연현상에 관해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실험에 몰두했다.이러한
연구의 기본적 동기는 모든 종류의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들라크르와의 열망이라고 하겠다.
그의 계속된 색채 분할은 그의
자연과의 교감을 잘 나타내 주며 풍경화가로서의 재능을 부각시켰다.
파이톤을 물리치는 아폴로
신고전주의는 다비드가 나폴레옹 황제의 퇴각과
아울러 국외로 추방되면서 행보가 다소 주춤거려졌다. 전통적인 낡은 틀을 거부하고
풍부한 인간의 감정을 열자는 움직임은 이미 화가들 사이에서 동요를 일으키고
있었고, 이 같은 기회는 낭만주의가 일어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사르다나팔르의
죽음
그렇다면 이 같은 들라크르와의 작품 세계는 과연
어떻게 형성되어 온 것일까. 1798년 파리의 근교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비교적 유복했다. 들라크르와는 8살 때부터 고전에 심취하며 모범적인 학생으로
성장해 나갔다. 이는 후에 화가가 된 그에게 격조 높은 지성과 인격 형성,
심지어는 상상력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 주었던 경험의 원천이었다.
The
Barque of Dante 1822
Pieta
1850
Andromeda 1852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1840
알제리 여인
1834
Fanatics of Tangier 1837-38
낭만주의와 그들의 표현기법
낭만주의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전유럽에 탄생한 예술적 경향이다. 개성과 자아 해방을 주장했던 이들은 상상과
무한을 향한 동경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낭만주의의 주요 특징은 형식보다
자유로운 내면 세계의 표출이었다는 점, 현실을 초월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했다는 점, 그리고 이성이 지배하는 공간을 부정하고 공상과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는 세계를 존중했다는 점이다. 고전주의의 차가운 형식 존중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프랑스 낭만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들라크르와의 경쟁자이자 다비드의 뒤를
이은 고전주의자 앵그로에게서 일찌감치 그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
제리코를 거쳐 들라크로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자유분방한 색채, 유동적인 필치,
힘 있는 동세에 찬 구성 등 기법 면에서도 주목을 끌었다. 특히 들라크르와의
이국적 취향이 만들어 낸 작품들은 낭만주의의 전형적인 특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낭만주의의 표현기법은 선명한 색채와 강한 움직임, 그리고 이성보다는 인간의
감성적인 측면에 호소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낭만주의 회화의 감상법은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그림이 아니라,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
The
Abduction of Rebecca 1858
Arab Horses Fighting in a
Stable 1860
Still Life with Labsters
1826-1827
Cleopatra and the Peasant
Orphan Girl at the Cemetery
1824
Lion Hunt 1854
Arab Saddling His Horse 1855
Apasia 1824
앵무새와 여인
Greece on the Ruins of
Missolonghi 1826
Louis d`Orleans Showing his
Mistress 1825-1826
The Sultan of Morocco and his
Entourage 1854
Lion with a Rabbit
흰 스타킹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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