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마음이 교차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사랑이 방황한다. 사사기 10장은 하나님의 사랑이 갈등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역한 백성들을 살리시고 더 이상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구절마다 나타난다. 아비멜렉 이후 이스라엘은 적어도 돌라와 야일 사사시대, 사십오 년 동안은 평온한 시대를 보냈다. 하지만 그 평온한 시간이 이스라엘에는 다시 올무가 되고 죄악으로 미끄러지는 타락의 시간이었다.
(삿 1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이 표현은 이스라엘의 전방위적인 타락과 배도를 나타낸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 주변의 모든 신들을 닥치는 대로 섬겼다. 참으로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요 수치였다. 하나님이 이방 세계에 이스라엘로 인해 수치를 당하셨다.
그 결과 다시 이스라엘은 주변 블레셋과 암몬에게 팔 년 동안 공격받게 되었다. 고난은 죄악으로 타락한 백성들을 정신 차리게 만드는 하나님의 사자인가? 그제야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삿 10: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저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간구에도 하나님은 냉정하게 거절하셨다.
(삿 10: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삿 10: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너희가 잘도 섬기는 그 신들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해 봐라! 블레셋과 암몬과 아람과 모압 신들이 너희를 잘 구원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고 계셨지만 이것은 흔히 부모들이 말 안 듣는 자식들에게 던지는 마음에도 없는 반어법의 표현이었다. 애원하는 그들의 간구에 하나님의 마음을 쪼그라들고 있었다.
(삿 10: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삿 10: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여기서 “근심”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그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는 것은, 차마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아픔이셨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그 못된 놈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이것이 하나님의 근심이셨다.
사랑은 언제나 마음을 방황하게 만든다. 버릇을 고쳐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와 자식의 아픔을 쳐다보기 쉽지 않은 자비가 뒤섞여서 갈등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곧바로 십자가로 연결된다.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부르짖을 때 고개를 돌리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이 여기 사사기 10장에서도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악과 패륜이 얼마나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런 패륜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슴 졸이며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 사랑을 이 새벽 다시 만납니다. 방황하시는 사랑, 흔들리는 그 사랑이 얼마나 견고한 사랑인지 우리의 삶에 새겨진 죄악의 흔적들마다 흘리신 아버지의 눈물을 봅니다. 주님 이제는 아버지의 근심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섬기며 주님만 따르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