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
“여기 인간들 가운데에서 누구든
다른 생명을 해치는 자
그 사람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이 둘로부터 떨어진다.*
그러나 자애의 마음으로
모든 생명들을 연민하는 자
그러한 인간은 참으로
많은 공덕을 생기게 한다.
[비구는] 좋은 말씀[金言]을 공부지어야 하고**
사문의 법도를 [공부지어야 하며]§
한적한 곳에 홀로 앉음을 [공부지어야 하고]
마음의 고요함을 [공부지어야 한다.]§§” (S2:1)
yodha koci manussesu, parapāṇāni hiṃsati.
asmā lokā paramhā ca, ubhayā dhaṃsate naro.
yo ca mettena cittena, sabbapāṇānukampati.
bahuñhi so pasavati, puññaṃ tādisako naro.
subhāsitassa sikkhetha, samaṇūpāsanassa ca.
ekāsanassa ca raho, cittavūpasamassa cā.
[행장] “와라나 장로(Vāraṇa thera)는 꼬살라 지역에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 그는 적당한 나이가 되어 숲에 사는 어떤 장로의 곁에서 법을 듣고 청정한 믿음을 얻어 출가한 뒤 사문의 법을 행하였다. 어느 날 그는 부처님을 시봉하기 위해서 길을 가는 도중에 뱀과 몽구스(ahi-nakulā)가 서로 싸워서 죽는 것을 보고 ‘이 중생들은 서로 반목(virodha)하여 생명을 버리게 되었구나.’라고 절박한 마음(saṁvigga-mānaso)이 되어서 세존께로 다가갔다. 세존께서는 그의 마음의 움직임(cittācāra)을 아시고 거기에 어울리는 교계를 주시면서 본 게송 세 개를 읊으셨다. …
게송이 끝나자 그는 위빳사나를 증장시켜 아라한됨을 얻었다. 장로의 일화는 『아빠다나』에도 나타나고 있다.” (ThagA.ii.94-95)
* “’이 둘로부터 떨어진다(ubhayā dhaṁsate).’고 하신 것은 두 세상에 포함된 이익과 행복(hita-sukha)으로부터 쇠퇴하게 된다(parihāyati)는 뜻이다. 여기서 ‘사람(nara)’은 중생(satta)을 뜻한다.” (ThagA.ii.94)
** “여기서 ‘[비구는] 좋은 말씀[金言]을 공부지어야 하고(subhāsitassa sikkhetha)’라는 것은 바라는 것이 적음[小慾]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구분되는(appiccha-kathādi-bheda) 좋은 말씀[金言, subhāsita]인 교학으로서의 법(pariyatti-dhamma)을 듣고 호지하는 질문하는 등(savana-dhāraṇa-paripucchādi)을 통해서 공부지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ThagA.ii.95)
『맛지마니까야』「공(空)에 대한 긴 경」(M122)에는 10가지 ‘오염원을 지워 없애고 마음을 활짝 여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kathā abhisallekhikā ceto-vivaraṇa-sappāyā)’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맛지마니까야』「역마차 교대 경」(M24)와 『앙굿따라니까야』「유학 경2」(A5:90)과 「메기야 경」(A9:3)과 「꼬살라 경2」(A10:30) 등에도 나타난다. 이 10가지 이야기는 본 게송에서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말씀[金言, subhāsita]’의 보기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소욕(小慾)에 대한 이야기, 지족(知足)에 대한 이야기, 한거(閑居)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이다.” (M122)
§ “’사문의 법도를 [공부지어야 하며] (samaṇūpāsanassa ca)’라고 하셨다. 사악함이 가라앉은(samita-pāpā) 사문들은 재가자들에게(upāsakānaṁ) 선우(kalyāṇa-mittā)이니 그들에게 시시때때로 다가가서 섬기고(payirupāsana) 도닦음(paṭi-patti)으로 그들을 가까이하는 것(samīpa-cariya)을 공부지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ThagA.ii.95)
§§ “’한적한 곳에 홀로 앉음을 [공부지어야 하고] / 마음의 고요함을 [공부지어야 한다.] (ekāsanassa ca raho citta-vūpasamassa ca)’는 것은 혼자 동료가 없이(asahāya) 몸으로 떨처버림(kāya-viveka)을 증가시키는 자는 홀로 명상주제에 몰두함(kammaṭṭhāna-anuyoga)을 통해서 앉음(āsana), 즉 자리함(nisajja)을 공부지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명상주제에 몰두하여(anuyuñjanto) 수행의 정수리(matthaka)를 얻으면서 뿌리 뽑음(samuccheda)을 통해서 오염원들로부터 마음을 고요하게 하며 공부지어야 한다. 높은 계를 공부지음 등(adhisīla-sikkhādī)을 통해서 오염원들을 지극히 고요하게 하여 제거하는(pahīnā) 그 도와 과의 공부지음은(magga-phala-sikkhā) 공부짓는 자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함(accantameva cittaṁ vūpasantaṁ)이라 한다는 말씀이다.” (ThagA.ii.95)
본 게송은 『쌍윳따니까야』「깟사빠 경1」(S2:1)에도 나타난다. 『쌍윳따니까야 주석서』는 본 게송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좋은 말씀[金言]대로 공부짓고(subhāsitassa sikkhetha)’라는 것은 사성제와 열 가지 대화의 주제(dasa-kathā-vatthu)와 37보리분(sattatiṁsa-bodhipakkhiya)에 대해 네 가지 말로 하는 좋은 행위(vacī-sucarita, 「금언 경」(S8:5)과 「살레야까 경」(M41) 참조)를 공부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문의 법도(samaṇūpāsana)’란 사문들이 의지해야 하는 것인데 38가지 명상주제(kammaṭṭhāna)를 말한다. 그리고 많이 배운(bahussuta) 비구들을 섬기는 것(upāsana)도 사문의 법도이다. 그에게 ‘존자시여, 어떤 것이 유익함입니까?’라는 등으로 질문을 하면서 공부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citta-vūpasama)’이란 여덟 가지 [삼매의] 증득[八等至, aṭṭha-samāpatti,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을 얻어 마음을 고요히 하는 공부를 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신의 아들은 삼학(三學, tisso sikkhā)을 말했다. 첫 번째는 증상계학(增上戒學, adhisīla-sikkhā)을 두 번째는 증상혜학(增上慧學, adhipaññā-sikkhā)을, 세 번째는 증상심학(增上心學, adhicitta-sikkhā)을 언급한 것이니 이처럼 이 게송으로 전체 교법(sāsana)을 드러낸 것이다.” (SA.i.104)
- 초기불전연구원 번역,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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