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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게서 온 꿈은 이루어진다!
10월 긴급구호비가 1,500만원을 넘어섰다.
1원의 예산도 없이 순전히 모금을 통해서 20일도 안 되는 짧은 사이에 1,500만원을 구호비로 송금한
사실에 나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악재로 뒤숭숭한 한국사회에서 너무도 평범한 내가 너무도 평범한 방법으로 모금을 하여
인도 미조람주 싸이하로 피신 온 미얀마 친족 난민들과 동북인도 마니푸르주 폭동으로 정글과 난민 캠프로 들어간 사람들에게 사랑의 쌀과 사랑의 밥을 보내고 지금은 난민들에게 보낼 수백 벌의 겨울옷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이 일은 나의 능력으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을 써서 손수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나는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가 아니다.
힘이 있는 정치인도 아니고 그런 백 그라운드로 일하는 사람도 아니다.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고 친인척 중에 부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명한 목회자도, 신학자도, 부흥강사도 아니다.
단체의 장으로서 조직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볼 때 내세워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주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자를 불러서 몸 된 교회와 자녀들과 종들을 초청하시고 감동 감화시켜서 함께 쓰시는 것이다.
세상에 쓸모가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써주시는 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증언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살아계심을 증언하라는 뜻이다.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인도와 네팔, 미얀마에서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 구호를 하였다.
특별히 2015년에는 네팔에서 일어난 지진 구호에 참여하였다. 어쨌든 기후로 인한 구호는 반복되어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한 때 심혈을 기울이고 나면 곧 진정이 되므로 그리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2020년부터는 구호의 차원이 달라져 버렸다.
지구차원의 코로나팬데믹으로 인하여 시작된 구호이다.
네팔과 인도 여러 곳에서 코로나 구호를 요청을 받아서 동시에 진행하게 되었다.
인도의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되면서 20년 가을에 네팔의 거리 배식에 참여하게 되였다.
요는 록다운으로 직장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스트릿 피플에게 날마다 하루 한 끼 식사를 주는 것이었다.
그런 네팔 거리배식을 하는 중에 미얀마 지인의 강청으로 21년 12월부터 미얀마 난민 구호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21년 12월부터 23년 1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네팔 거리 배식과 미얀마 난민 구호를 겸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감동감화로 시작한 일이지만 한 달에 천만 원이 훌쩍 넘는 사랑의 쌀과 거리 배식 구호비 모금이 힘들어서 네팔을 정리하려는 생각을 수차례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스트릿 피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부어 주셔서 중단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는데, 올 2월에 스트릿 피플를 위한 배식이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지한 현지목회자가 스스로 중단을 선언하였다. 중단의 소식을 듣는 순간 즐거울 줄 알았는데 스트릿 피플에 대한 아픔과 안타까움이 한동안 나를 따라 다녔다.
덕분에 홀가분하게 미얀마 난민 구호에 집중하였지만
5월에 일어난 동북인도 마니푸르 폭동으로 발생한 난민 구호 요청이 협력하고 있는 신학교에서 들어왔다.
폭동으로 하루아침에 집과 재산을 다 잃어버린, 여리고 길에서 강도를 만난 난민들 50여 명이 신학교에서 머물고 있는데
어린이들과 노인들의 건강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노인들의 영양실조라는 말에 마음이 아파서 후 지불을 약속하고 그들로 하여금 돈을 빌려서 배식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어서 후 지불을 약속하고 먼저 배식하거나 식량 구호를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므로 나도 모르게 아무런 예산도, 계획도 없이 마니푸르난민 구호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어린이들과 노약자에 대한 연민과 정글에 들어간 난민들의 힘겨운 생활 소식 때문에 긴급구호를 시작하였으나
교회나 사회에 대대적인 공개를 해서 모금을 한다거나 인터넷으로 하소연하지 않고
일일이 편지를 써서 모금하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니, 시간이 모자라고, 시간이 모자라니 잠을 줄이게 되어 몸이 많이 부대꼈다. 그러나 시작한 긴급구호를 그만 둘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나의 기도가 코미디 수준이 되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사 미얀마 내전을 속히 끝내주십시오. 내전이 끝나야 모금도 끝납니다.
미얀마 내전이 끝나지 않으면 저는 계속 모금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제 주변의 친구와 후원자들도 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하나님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미얀마 내전을 속히 종식시켜주십시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사 마니푸르폭동이 빨리 끝나게 해주십시오. 폭동이 끝나야 모금도 끝납니다.
폭동이 계속 되는 한 저는 모금 부담으로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모금으로 주변 사람들과 후원자들에게도 끊임없이 부담을 주고 있어요.
하나님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 모두를 위해 폭동이 속히 끝나게 해주십시오. ”
미얀마 형제들의 평화와 건강을 위하여,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속히 내전이 종식되길 기도하다가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아이처럼 억지를 부리면서 나를 불쌍히 여겨서라도 미얀마 내전을 속히 끝내주시라고 엉뚱한 방향으로 기도한다.
마니푸르 형제들의 평화와 생명의 안전을 위하여 폭동이 종식되길 기도하면서도, 스트레스에 눌려 버리면 아이처럼 나를 위해서 폭동을 속히 끝내주시라고 땡깡을 부리는 기도를 하기도 한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런 나의 유치하고 코미디 같은 기도를 꾸짖지 않고 어루만지시며 일이 잘 되도록 사람들을 보내주시며 일이 진척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미얀마와 인도에서 바쳐지는 난민들의 기도 소리,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뿐만 아니라 난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 교회와 교우들, 후원자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천군천사를 통하여 일이 진행되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8, 9월을 지나 10월에는 더 많은 구호를 하게 하시고 겨울옷을 요청하는 난민들의 요구도 어버이의 따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셨다. 난민들의 문제에 바로 바로 응답하게 만드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의 역사에 감동을 해서 오늘 종일 감사와 찬미를 바쳤다. 그리고 십여 년 전에 꾸었던 꿈을 회상하며 하나님에게서 온 꿈임을 확신하였다.
2010년 첸나이에 “희망발전소”라고 불리는 건물을 짓고 순회를 멈추고 사람들을 불러서 센터 안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였다. 유목민처럼 떠도는 사역을 그만 두고 농경민처럼 한 자리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떠돌이를 청산하고 청소년, 청년 그리고 노년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직업훈련과 제자교육을 하며 정착의 기쁨을 맛보았다. “희망발전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한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편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오는 답답함 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계속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화사한 가을, 꿈속에서 나는 고향의 논길을 걷고 있었다.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들판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하늘 문이 열린 것처럼 쏟아졌다.
온 들판이 순식간에 물에 잠기고 나 또한 물속에 빠졌다. 그 때 폭이 좁고 길쭉한 배가 나타나서 나를 구해주었다.
그러나 배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배는 나를 태우고 물바다가 된 세상을 이리저리 다 돌았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 우뚝 멈추었다. 배가 멈추자 놀랍게도 그 많던 물들이 다 땅 속으로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황금들판, 내가 처음 배를 탔던 그 자리였다. 하늘은 푸르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나는 산책나온 사람처럼 논길을 계속 걸었다. 큰 논길을 걷다가 논과 논 사이의 작은 길로 들어가서 한참 걸어갔다.
그런데 논 한 가운데 움막집 한 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집은 벼의 키와 비슷한 높이 여서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호기심과 의구심으로 벼를 헤치고 그쪽으로 가까이 갔다. 잘 익은 구수한 밥 냄새가 풍겼다.
움막집 거적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부엌이었다.
부엌에는 동서남북에 부뚜막이 있고 각 방향마다 3개씩 솥단지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12개 솥이 보통 솥이 아니라 수백 명 분의 밥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는 대형 가마솥들이었다.
12개의 아궁이마다 장작 끄트머리가 하얗게 타고 있었다.
‘거참! 이상하다“ 하면서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하면서 두리번거리는데
5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반색하면서 나를 반겼다.
그러나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이므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그에게 ”저를 아세요?” 라고 물었다.
그가 빙긋 웃으며 “선생님을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나를 기다렸다는 그 분의 대답에 적이 놀라
“그런데 이 밥솥들은 무어요?”라고 물었다.
그의 입에서 “선생님이 나누어 주어야 하는 밥입니다.” 라는 말이 나왔다.
너무 엉뚱한 그의 대답에 “내가요? 왜 제가 나누어요?”라고 반문하였다. 그가
“그것이 선생님의 몫입니다.”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며 나를 기다렸다고 하였다.
가마솥 12개를 보았고 내 몫이라고 했으니 참으로 거창한 꿈이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며 준비했다고 하니 참으로 좋은 꿈이었다.
꿈이 너무 신기해서 일지에 꿈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꿈은 꿈이고 나의 현실은 꿈과 달랐으므로 꿈으로 고민하지는 않았다. 지금에야 깨달았지만 꿈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으로 장차에 나를 어디에서 쓸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었다. 배가 나를 태운 자리로 돌아왔으므로 나는 처음 자리로 돌아와야 하였다. 미련없이 용감하게 돌아와서 12개의 솥단지에서 익은 밥을 퍼서 나르기만 하면 되었다. 꿈은 계시였다. 이미 하나님께서 물질과 함께 협력할 사람들까지도 다 예비해놓은 여호와 이레! 의 상황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그 꿈을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 너무도 분명한 꿈이었지만 희망발전소가 너무 좋아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상태였으므로 꿈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아니 설혹 해석을 잘했다 하더라도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볍게 하나님께서 ‘희망발전소’에 안주하지 말고 다시 순회를 하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였다.
그러나 결국 나는 한국으로 나왔고 그 배를 타고 물위를 돈 것처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돌았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인도의 형제들은 나의 슬픈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한국에 있는 나에게 예전과 다름없이 도움을 호소하였다. 나는 인도에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송한 마음에 최선을 다하여 그들의 호소에 응답하였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은 2015년 네팔 지진을 기점으로 해서 오늘에 이르도록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많은 긴급구호를 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아주 작은 꽃송이들을 맡기셨는데 그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네팔의 빈민들, 인도의 달릿과 아디바시. 그리고 미얀마의 소수부족민들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어려운 형편을 말하면 사람들이 신문에도 안 나오고 뉴스에도, 유튜브에도 안 나오는 그런 일이 있어요? 라고 반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정도로 미약하고 존재감이 없는 당신의 자녀들을 믿고 맡기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나는 여전히 논 속에 숨겨진 초라한 움막과 같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내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내 재주나 인간관계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내 의지나 열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내 희생이나 헌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보여주신 대로 친히 필요한 물질을 다 공급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교회와 목회자를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친구들을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후원자들을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여신도들을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겸허한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함께 섬기도록 사모하는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움막처럼 초라한 나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공급해주시는 물질로 일꾼들과 함께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라고 하신다. 가끔 한번 씩 하나님께 땡깡을 부리지만 하나님을 나를 어여쁘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써주시는 축복,
후원자들과 함께 섬기는 축복,
현지의 고난받는 형제들과 난민들의 기도와 축복이 나를 감싼다. 나를 울린다.
정말 하나님에게서 온 꿈은 이루어진다!
2023년 10월 20일. 금. 인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