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28]
전덕기(全德基, 1876-1914)②
전덕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은 물론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 있어서 본을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해서 김구, 이동녕, 안창호 등과 같은 지도자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교회와 민족을 위해 상동 엡윗청년회를 이끌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정 먼저 설립된 기독교 청년단체였고, 1903년부터 1905년까지 회장을 맡았습니다. 이 기간에 상동교회 내에 ‘상동청년학원’이라는 학교를 설립해서(1904년) 민족과 교회를 위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1905년 11월에는 1주일 동안 을사늑약 체결을 반대하는 구국기도회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도회에 수천 명이 참석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긴 했지만, 역부족임을 알고 을사늑약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더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곧바로 도끼를 들고 반대 운동을 벌였는데, “역적의 목을 치든지, 내 목을 치라”고 외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왕에게 바친다며 반대 운동을 앞장서서 전개했습니다. 1907년에는 고종의 친서를 받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이준, 이상설, 이위종)를 파견하는 일에 있어서 주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1907년에 창립된 신민회도 그를 비롯한 상동교회 출신들이 조직 구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덕기는 창립 발기인 7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1911년 협성신학교(감리교신학대학교 전신)을 졸업한 직후 105인 사건이 터지면서 신민회는 해체되었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징역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덕기도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고문 후유증과 질병으로 2년 후 사망했습니다.
참고: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