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43/191201]‘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를 모두 기억하시리라. 2004년 아테테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여자핸드볼 국가대표들의 감동실화.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이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영화는 400만명을 돌파해 화제가 되었다. 그 영화를 만든 분이 임순례 감독. 내가 본 영화로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남쪽으로 튀어’가 있다.
그가 2018년 선보인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를 오늘 OCN에서 세 번째 보았다. 볼 때마다 감동적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일본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고 한다. 요리영화라거나 ‘슬로 라이프slow life’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에는 ‘김태리‧류준열의 행복레시피’라는 부제가 눈에 띄었다. ‘행복 레시피recipe’라니? 그런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행복하려면 ‘생활life’이라는 요리에 무슨 무슨 양념들(seasons)을 넣어야 할까, 생각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그런 레시피가 있기나 하면 좋겠다. 고대로만 하면 웃음이 활짝 꽃피는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족이 된다니 황홀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튼, 아직도 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찾아서 같이 보시면 좋겠다. 우리 띠동갑 후배의 어부인인 문소리씨가 고향집에 ‘돌아온’ 혜원(김태리역)의 엄마역이다. 딸이 서울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왔건만, 엄마는 어떤 연유인지 집을 비웠다. 발신지도 없는 편지에 일언반구 안부도 묻지 않고 ‘감자빵 레시피’만을 적어 보내다니? 그렇게 쿨한 모녀, 통하는 게 있긴 있나보다. 갑질하는 상사의 등쌀에 사표를 내고 ‘돌아와’ 농사를 짓는 류준열, 그리고 지역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절친 여자동창들이 펼치는, 수채화같은 영화, 누군들 깊은 인상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뜽금맞게 ‘리틀 포레스트’ 영화 이야기를 왜 하느냐, 궁금한 분들이 많겠다. 이유는, 고향집 리모델링공사를 하는데, 이 영화에서 벤치마킹한 게 많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안방과 마루를 터 거실로 만들고, 지붕 밑 상량과 써가래(연자)를 노출로 한 것이다. 솔직히 이 영화를 두 번 같이 본 아내의 ‘강력한 의지’의 소산. 주방도 마찬가지. 노출 써가래로 해놓으니 참말로 환골탈태가 되었을뿐 아니라 ‘오래된 미래’의 고향집이 완전히 새로 보이게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재탄생한 고향집을 보시러 온 구순의 아버지, 문화충격 때문인지 밤새 소변 한번 보지 못하며, 연신 “이렇게 고칠 수도 있구나”를 연발하셨다. 하기야 요즘 한옥 리모델링의 트렌드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또한 전면 벽을 하얗게 회칠한 것도 마음에 쏙 들어 그렇게 했다. 감독이, 주연배우들이, 촬영세트가 고맙기까지 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이듯, 모방模倣도 창조創造의 어머니일 듯하다. 영화에서 더 나아가, 툇마루를 놓자는 것도 아내의 아이디어였는데, 리모델링의 빛나는 키포인트가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것은 돈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본채의 편액 ‘애일당’과 사랑채의 편액 ‘구경재’는 순전히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한 것이다. 그 뜻을 모르면 그거라도 배우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혹자는 사당이나 되냐, 무슨 기관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길가(도로변) 집은 짓거나 고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에서 아예 ‘이렇게 해야 한다’까지 천차만별로 자기 의견들을 말하거나 주장하는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종내에는 성가시기까지 했다. 물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누가 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궁글러간다 쪼개라, 간섭하는 것을 즐길 것인가.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실감났다. 이럴 때에는 건축주가 줏대가 있고, 건축상식이 있어야 하건만, 나로선 완전 손방(젬병)이니 속수무책, 헤맬 때가 너무 많았다. 다 되고나서도 마찬가지다. 집구경을 오신 분들의 의견이 또 분분하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리는 것도 많다. 어지간하면 집주인의 의견을 존중해 고개만 끄덕끄덕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지만, 경청하는 자세로 적어놓기도 하고, 실제로 몇 곳은 AS애프터서비스에 참조가 되기도 했다.
다시 영화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혼자인데도 요리料理에 정성을 다해(온갖 멋을 부려서) 먹는 예쁜 아가씨의 요리철학과 요리실력에 부러움과 함께 공감이 갔다. 이제 나도 어차피 당분간 혼자 살 것이므로, 그 아가씨의 요리를 흉내내볼 생각이다. 자연 속에서 요리와 더불어 살면서 ‘자기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야겠다는 주연배우의 혼잣말에서 영화제목을 따온 것같다. ‘나만의 작은 숲’은 우리 모두의 꿈일 것이다. 나만의 작은 숲은 언제나 만들어질 것인가. 아니, 우리 부부의 작은 숲은 언제나 만들어질 것인가. 같은 영화를 세 번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거린, 비 오는 12월 1일 일요일 오전. 내일은 나만의 작은 숲을 만들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