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작가의 말
애벌레 그림을 그리며
1. 천상의 색을 빚다 : 주홍박각시 애벌레
2. 영원한 대지 속으로 들어가다 : 대왕박각시 애벌레
3. 당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애벌레를 위한 헌사 : 매미나방 애벌레
4. 외계인 같은 나의 특별한 친구에게 :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5.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 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
6. 이토록 넓고 자애로운 나무의 품에서 : 반달누에나방 애벌레
7.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 거세미나방 애벌레
8. 그는 진짜 외계생명체였는지 몰라 : 현무잎벌 애벌레
9. 하늘을 나는 마법의 집, 설계자 : 차주머니나방 애벌레
10. 가만히 세상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다 :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11. 탱자나무에서 만난 애벌레와의 대화 : 큰빗줄가지나방 애벌레
12. 천상의 예술가, 비상하다 :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
저자 소개
글 : 이상권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나만의 옹달샘이 있었고, 나만의 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고, 나만의 동굴도 있었다.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불안증과 난독증으로 학교생활이 불가능해졌을 때 문학이 찾아왔다. 『창작과 비평』에 소설 〈눈물 한번 씻고 세상을 보니〉를 발표하면서 작가가 됐고, 소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됐다. 지은 책으로 『난 멍 때릴 때가 가장 행복해』, 『숲은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범생이가』,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서울 사는 외계인들』, 『대한 독립 만세』(공저), 『첫사랑 ing』,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다.
그림 : 이단후
도봉산이 한눈에 보이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수많은 풀꽃과 애벌레들을 그리고 놀면서 자랐다. 이 책에 나오는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에게 ‘통통이’와 ‘늦나돌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며, 그림도 그 시절의 감성을 떠올리면서 그리려고 했다. 사람들이 흔히 징그러워하는 애벌레를 최대한 색연필만을 사용해 따뜻하면서도 친근하게 담아내려 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애벌레들처럼 최선을 다해 삶의 과정에 충실하고자 한다.
책 속으로
새로운 애벌레가 집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풍요롭고 든든해진다. 두세 종 정도만 키우기 때문에 애벌레의 방은 복잡하지 않다.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나머지 공간은 일정하게 경계를 만들어서 애벌레가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지간해서는 애벌레를 가두지 않는다. 그래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애벌레를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니다.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고 할 뿐이다.
--- p.21
애벌레 방으로 들어온 지 5일째 되는 날, 그 푸른 애벌레는 줄기에 거꾸로 매달린 채 단식을 하였다. 입고 있는 옷이 작아져서 더 크고 넉넉한 치수로 갈아입을 때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새 옷을 갈아입는 행위가 애벌레들에게는 성인식이다. 은근히 기대되었다. 어떻게 달라질까. 애벌레는 그런 성인식을 통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변신한다.
--- p.22
밤이 깊어가자 바람이 심해졌다. 나는 걱정이 되어 한동안 애벌레를 지켜보았다. (…) 나무에서 살아가는 애벌레는 이럴 때가 가장 두렵다. 이럴 땐 그냥 흔들려야 한다. 그래야 편하다. 오로지 자기를 믿는 수밖에 없다.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저 바람의 일부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애벌레는 온몸이 찢겨질 것처럼 흔들려도 담담했다. 그러면서 바람이 잦아든 뒤에 찾아오는 깊은 고요, 그 평화를 떠올리면서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 p.40
매미나방 암컷들은 자기 몸보다 훨씬 크게 집을 짓습니다. 다른 일꾼도 필요하지 않고 하청도 주지 않습니다. 이윤을 남기지 않으니 부실 공사란 있을 수 없겠지요. 한 치의 불량도 허락하지 않아요. 당신들도 당신 자식들이 살 집이라면 기를 쓰고 잘 지으려고 하지 않겠어요?
--- p.72
철저하게 나무를 위해주는 것. 애벌레는 절대 나무를 죽이지 않는다. 나무가 사라지면 자신들의 미래도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p.139
출판사 리뷰
작고 낯선 애벌레들의 세계를 바라보며
써내려간 열두 편의 에세이
“애벌레처럼 살면 되겠구나.
삶을 회피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진실되게.”
소설가 이상권이 애벌레의 삶을 들여다보며 써내려간 열두 편의 에세이 『위로하는 애벌레』가 출간되었다. 폭우에 떠밀려가는 애벌레나 강남 한복판을 위태롭게 건너고 있는 애벌레를 구조해 집 안의 ‘애벌레 방’에 모시는 사람. 작가는 어떤 인연에서 가까이 보게 된 애벌레의 삶을 통해 이 작은 존재들에게서 묵직한 배움과 위로를 얻는다. 이들에게서 배운 것은 ‘애벌레처럼만 살면 되겠다’는 확신이었다. 과정과정 진실하게 생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애벌레들은 인간이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을 그려 보여주었다. 침묵의 언어였지만 온몸으로 보여준 성장이었기에 말보다 확실한 위로를 건네는 존재들. 『위로하는 애벌레』는 “환상적이면서도 수다스럽고, 영원과도 같은 애벌레의 침묵 속으로” 초대하는 이상권 작가의 에세이다.
청소년문학, 생태동화를 오랫동안 써온 이상권 작가의 세심하고 아름다운 글에, 어린 시절 애벌레 곁에서 이들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려온 이단후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애벌레들의 낯설지만 생동하는 우주가 색을 더했다. 이상권 작가는 1994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한 후, 풀꽃과 동물들의 삶과 생명의 힘을 문학에 담고 있으며 소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현재 고1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 『위로하는 애벌레』는 지난 30년간 작가로 살아오면서 품어온 고민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애벌레와 함께한 시간이 작가에게는 큰 배움과 행복, 깨달음으로 이끌어주었다.
애벌레의 시간을 함께하며
깨달은 것들
수많은 애벌레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살아간다. 인간의 눈에는 공중에 매달린 삶이 불안해 보이지만, 애벌레가 어른벌레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의례다. 애벌레는 성장하면서 껍질을 벗는 탈피 과정을 겪는데, 이 거꾸로 매달린 고독의 시간이 애벌레를 어른벌레로 만들어준다. 작가 이상권은 애벌레를 키우거나, 숲속이나 마당 앞의 애벌레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이 작은 존재들의 무한하고 동적인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방이나 벌 등의 어른벌레가 되기 전, 애벌레의 시간을 바라보면서 작가는 열두 종류의 애벌레와 그에 얽힌 일화, 고민, 성찰을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한 열두 편의 글로 꾹꾹 눌러 담아 썼다.
주홍박각시 애벌레, 대왕박각시 애벌레, 매미나방 애벌레,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맵시곱추밤나방 애벌레, 반달누에나방 애벌레, 거세미나방 애벌레, 현무잎벌 애벌레, 차주머니나방 애벌레, 참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큰빗줄가지나방 애벌레,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 책에는 모두 열두 종의 애벌레가 등장한다. 이 중에는 뱀처럼 생겨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애벌레도 있고, 해마다 봄이 되면 숲을 점령하여 사람들이 싫어하는 애벌레도 있고, 농부들의 골칫거리가 되는 애벌레도 있다.
작가 역시 애벌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작은 초록 애벌레를 친구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알아간다. 애벌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날마다 지켜보다 보니 믿을 수 없게도” 애벌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애벌레는 아이들이 다가오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주었다. 아이들의 말랑거리는 손이 다가와도 전혀 놀라지 않다가, 누군가 짓궂게 건드리면 ‘싫어, 하지 마!’ 하고는 머리를 옆으로 휘저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애벌레가 정확하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애벌레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때로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힘이 되고,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존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본문에서
생태 작가 이상권, 애벌레를 바라보며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다
나뭇잎과 바람, 애벌레가 보내는 침묵의 위로
작가는 특히 애벌레의 집과 인간의 집을 비교하며 ‘생가’라는 말을 잃어버린 인간의 건축 문명,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삶을 돌아본다. 애벌레들은 현재에 주목하고, 과정에 충실하다. 자기 몸에서 실을 뽑아 번데기로 살아갈 집을 짓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중력이 허락하는 만큼의 가벼운 집이다. 그래야 그들은 그다음 삶을 이어나갈 수 있고, 꿈꿀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애벌레와 인간의 삶을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써내려갔다.
나방이 날갯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재주라고는 꿈틀거리는 것밖에 없었던” 작은 존재가 만들어낸 경이다. 또한 이 작고 신비로운 존재들을 키우는 풀과 나무, 바람과 땅, 물과 햇볕… 그 모든 것이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렇게 작가의 세계는 넓어지고 겸손해진다.
아주 오래 이어져온 숲과 애벌레의 신화를 읽듯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글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 그리고 미래의 시간까지도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이 침묵의 위로를 보낸다. 일반독자는 물론 청소년들이 우리를 둘러싼 더 많은 존재들과 경계 없이 만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전한다.
“이 책은 애벌레에 대한 서사시입니다. 오감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애벌레의 운명을 노래했습니다. 애벌레는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와 미래의 시간까지도 다 안고서 살아갑니다. 그들의 역사 속에는 풀과 나무, 바람과 땅, 물과 햇볕 그 모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애벌레와 함께하며 그들의 낭만적인 건강함을 배웠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의 겸손함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다니, 그것만큼 고마운 해탈이 있을까요?”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