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티 건물이 무서워요
어린이들에게 햇빛을 돌려주자
요즘 어린이들은 햇빛이 부족하다. 햇빛에 쬐이면 피부에서 비타민D가 생합성되는데, 비타민D는 뼈 건강과 면역력 강화를 위한 필수 영양소다. 어린이의 비타민D 결핍은 구루병과 같은 골격계 질환은 물론 면역기능의 약화로 인한 각종 질병을 발생시킬 수 있다. 비타민D 보충을 위해선 야외활동을 늘려 햇볕을 쬐면 되지만,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어린이들은 햇빛 볼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해운대에서는 그나마 부족한 햇빛을 어린이들에게 뺏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 해운대초등학교 앞에 지상 36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2동과 15층 오피스텔 1동을 짓겠다고 부동산개발 시행사가 건축허가를 신청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일조권 피해와 학생들의 통학상 안전을 문제로 강력 반발했고, 마침내 부산지방법원의 판결을 거쳐 해당 건축허가 신청은 반려되었다.
지난 12월 말, 구청에 <해운대라이프> 신문을 배포하러 가던 중에 해운대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교장 선생님께서 “차 한 잔 마시러 가자”시길래 학교에 가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는 순간, 안타까운 광경을 보았다. 날씨는 춥고 낮의 길이마저 가장 짧은 12월 동짓달에 101층의 위용을 마침내 드러낸 엘씨티 건물이 500미터나 떨어진 학교 운동장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교장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아침에 엘시티 그림자가 교실과 운동장으로 다가오면 깜깜해서 무섭다고 하는 어린이들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체육시간에는 추운 날씨에 그늘까지 지니 어린이들이 춥다고 호소하는 바람에 체육시간을 급히 오후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을 지으면서 모든 학교를 다 살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햇빛을 쬐는 데 지장이 없는지 살펴보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 좋은 관광지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해운대를 찾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들이 따뜻한 햇빛 아래서 마음껏 뛰어 노는 일상이 소중하게 유지되어야 정말 가볼만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교장 선생님께 고마운 차 대접을 받고 학교를 나서는데, 방과후 축구부 어린이들 10여 명이 내게 달려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 “왜 그러냐”고 물으니 축구부 감독이 아이들에게 “너희들을 위해 오피스텔 건축에 반대하느라 애쓰신 고마운 분이니 인사를 하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해운대라이프>에 실린 오피스텔 건축 반대 기사를 본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른으로서 햇빛 한줌 마음껏 맞이할 수 없도록 한 것이 너무 미안했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밝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니 더 미안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무 미안하다.” 학교를 나서면서 유난히 무거워진 어깨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 신병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