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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지(樂志) 서문> 【정헌대부(正憲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집현전(集賢殿) 대제학(大提學) 지경연춘추관사(知經筵春秋館事) 겸(兼) 성균(成均) 대사성(大司成) 신(臣) 정인지(鄭麟趾) 봉(奉) 교수(敎修)】 대저 음악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순미(醇美)한> 풍속과 교화를 수립하고 <조종(祖宗)의> 공훈과 은덕을 형상하는 것이다. 고려(高麗)는 태조(太祖)가 대업(大業)을 초창하였고 성종(成宗)이 교사(郊社)를 세우고 체협()을 직접 거행하였다. 그 후부터 문물제도가 비로소 갖추어졌으나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전적이 보존되어 있지 않아서 <그 규모를> 알아볼 길이 없다. 예종조(睿宗朝)에 송(宋) 나라에서 신악(新樂)을 사(賜)하였고 또 대성악(大晟樂)을 사(賜)하였다. 공민왕(恭愍王) 때 <명(明) 나라의> 태조황제(太祖皇帝)가 특별히 아악(雅樂)을 사(賜)하여 마침내 그 아악(雅樂)을 조정과 종묘<의 행사>에 사용하였고 또 당악(唐樂) 및 삼국(三國)과 당시의 속악(俗樂)을 섞어 썼다. 그러나 병란(兵亂)으로 말미암아 종(鍾) 경(磬) <등 악기가> 흩어져 없어졌다. 속악(俗樂)인 즉 그 말이 대부분 비속하여서 그중 심한 것은 다만 그 노래의 이름과 노래를 지은 뜻을 기록하기로 한다. 아악(雅樂), 당악(唐樂), 속악(俗樂)으로 분류해서 악지(樂志)를 만든다. § <국왕이> 친히 제사할 때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歌) ○ 등가(登歌). 금종가(金鍾架) 하나를 동편에 두고 옥경가(玉磬架) 하나를 서쪽에 두는데 이 두 가지는 모두 북쪽을 향하게 한다. 축() 하나를 금종(金鍾)의 북쪽에서 조금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두고 어() 하나를 옥경(玉磬) 북쪽의 약간 동쪽에 둔다. 박부(搏)가 둘인데 하나는 축()의 북쪽에 두고 다른 하나는 어()의 북쪽에 두어 동서로 서로 마주보게 한다. 1현금(一絃琴), 3현금(三絃琴), 5현금(五絃琴), 7현금(七絃琴), 9현금(九絃琴)을 각각 하나씩 둔다. 슬(瑟) 2개를 금종(金鍾)의 남쪽 서상부에 두고 옥경(玉磬)의 남쪽 역시 그 동상부에 그렇게 있다. 또 단(壇) 아래 동남쪽에 태묘(太廟)에서일 때는 앞 기둥 계단 밑에 적(笛) 둘, 지() 하나, 소생(巢笙) 하나, 화생(和笙) 하나를 서상부에 한 줄로 설치하고 훈(塤) 하나는 축()의 남쪽에 두고 소(簫) 하나는 소생(巢笙) 남쪽에 있다. 또 단(壇) 아래 서남에는 적(笛) 둘, 지() 하나, 소생(巢笙) 하나, 화생(和笙) 하나를 동상부에 한 줄로 설치하고 훈(塤) 하나는 적(笛)의 남쪽에 두고 소(蕭) 하나는 소생(巢笙) 남쪽에 둔다. 종(鍾), 경(磬), 축(), 어(), 박부(搏), 금(琴), 슬(瑟)<을 연주하는> 악공(樂工)은 단(壇) 위에 앉고 태묘(太廟)에서일 경우 당(堂) 위 앞 기둥 사이에 앉는다. 훈(塤), 지(), 생(笙), 적(笛), 소(簫)<를 연주하는> 악공(樂工)은 단(壇) 아래에 서고 태묘(太廟)에서일 경우 앞 기둥 층계 밑에 선다. 악정(樂正) 한 사람이 종(鍾)과 경(磬) 사이에서 북향하여 서고 협률랑(協律郞) 1인이 악거(樂) 서쪽에서 동향하여 서고 가공(歌工) 4인이 축()과 어() 사이에서 모두 동쪽과 서쪽으로 서로 향하고 있다. ○ 헌가(軒架). 3방향(동쪽, 서쪽, 남쪽) 에 각각 편종(編鍾) 편경(編磬) 3, 편경(編磬) 3을 설치하는데 동쪽의 편경(編磬)은 북쪽 편종(編鍾) 사이의 동향에서 <배열을> 시작하고, 서쪽의 편종(編鍾)은 북쪽 편경(編磬) 사이의 서향에서 시작하고, 북쪽의 편경(編磬)은 서쪽 편종(編鍾) 사이의 북향에서 시작한다. 식립고(植立鼓) 2개 중 하나는 악현(樂懸) 동남에, 하나는 악현(樂懸) 서남쪽에 서 있다. 축()과 어()를 북쪽 가(架)에 설치하는데 축()은 동쪽에 두고 어()는 서쪽에 둔다. 슬(瑟) 14를 2줄로 하여 1줄은 축()의 동쪽에, 1줄은 어()의 서쪽에 둔다. 다음 일현금(一絃琴) 7은 왼쪽 4 오른쪽 3을 두고, 다음에 삼현금(三絃琴) 10, 오현금(五絃琴) 12, 칠현금(七絃琴) 14, 구현금(九絃琴) 14를 모두 좌우로 나누어 둔다. 다음 소생(巢笙) 14, 소(簫) 14, 우생(笙) 12, 지() 16, 훈(塤) 14, 적(笛) 14를 모두 좌우로 나누어 둔다. 진고(晋鼓) 하나가 소생(巢笙) 사이 약간 남쪽에서 북향하고 있다. 악정(樂正) 1명이 축()과 어() 앞에서 북향하고 있고 가공(歌工) 12명이 축()과 어() 다음에 동쪽과 서쪽으로 서로 마주보고 2줄로 열을 지우고 있는데 좌우에 각각 2줄씩이며 협률랑(協律郞) 1인이 악거(樂)의 서북쪽에서 동향하고 있다. 문무(文舞) <대원(隊員)> 48명이 약()과 적(翟)을 잡고 있고 무무(武舞) <대원(隊員)> 48명이 간(干)과 척(戚)을 잡고 있는데 모두 육일(六佾)을 이루고 있다. 문무(文舞)는 표(表)의 좌우에 각각 3일(佾)씩 나뉘어 서있고 문무(文舞)를 인도하는 자 2인이 독(纛)을 잡고 <문무대원(文舞隊員)> 앞에서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무무(武舞)를 인도하는 자는 정(旌)을 잡은 두 사람, 도()를 잡은 두 사람, 단탁(單鐸)을 잡은 두 사람, 쌍탁(雙鐸)을 잡은 두 사람, 금순(金錞)을 든 네 사람, 금순(金錞)을 치는 두 사람, 요()를 잡은 두 사람, 정(鉦)을 잡은 두 사람, 상(相)을 잡은 두 사람, 아(雅)를 잡은 두 사람이 헌가(軒架)의 동서에 나뉘어져 북향하여 북상부를 <보고> 서 있고 문무(文舞) <대원(隊員)>은 그 뒤에 있다. 유사(有司)가 일을 대행할 때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架) ○ 등가(登歌). 종가(鍾架) 하나가 동쪽에 있고 경가(磬架) 하나가 서쪽에 있다. 축() 하나가 종(鍾)의 북쪽에 약간 서편에 있고 어() 하나가 경(磬)의 북쪽 약간 동편에 있다. 박부(搏) 둘이 하나는 축() 북쪽에 있고 하나는 어() 북쪽에 있어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일현금(一絃琴), 삼현금(三絃琴), 오현금(五絃琴), 칠현금(七絃琴), 구현금(九絃琴) 각각 하나씩과 슬(瑟) 하나가 종가(鍾架)의 남쪽 서상부에 있고 경가(磬架)의 남쪽 역시 <금(琴)과 슬(瑟) 사이에> 그렇게 있는데 그 동상부에 있다. 또 단(壇) 아래 동남부에는 태묘(太廟)에서일 경우 태계(泰階) 서쪽에 적(笛) 1, 지() 1, 소생(巢笙) 1, 화생(和笙) 1을 그 서상부에 한 줄로 설치한다. 훈(塤) 하나는 적(笛)의 남쪽에 두고 소(簫) 하나는 소생(巢笙)의 남쪽에 둔다. 또 단(壇) 아래 서남쪽에는 적(笛) 1, 지() 1, 소생(巢笙) 1, 화생(和笙) 1을 그 동상부에 한 줄로 설치한다. 훈(塤) 하나는 적(笛)의 남쪽에 두고 소(簫) 하나는 소생(巢笙) 남쪽에 둔다. 종(鍾), 경(磬), 축(), 어(), 박(搏), 부(), 금(琴), 슬(瑟)을 연주하는 악공(樂工)은 각각 단(壇) 위에 앉고 훈(塤), 지(), 생(笙), 적(笛), 소(簫)<를 연주하는> 악공(樂工)은 모두 단(壇) 아래에 선다. 악정(樂正) 한 사람이 축()과 어() 앞에서 북향하고 있고 가공(歌工) 두 사람이 축()과 어() 사이에서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협률랑(協律郞) 하나가 악거(樂)의 서쪽에서 동향하고 있다. ○ 헌가(軒架). 삼방(三方)에 각각 편종(編鍾) 하나와 편경(編磬) 하나를 설치한다. 동방의 편종(編鍾)은 남쪽에서 시작하고 편경(編磬)이 그 다음에 오는데 동쪽을 향하고 서방의 편경(編磬)은 남쪽에서 시작하고 편종(編鍾)이 그 다음에 오는데 서쪽을 향하고 북쪽의 편종(編鍾)은 동쪽에서 시작하고 편경(編磬)은 그 다음에 오는데 북쪽을 향한다. 축()과 어()를 북가(北架) 안에 설치하는데 축()은 동쪽에 있고 어()는 서쪽에 있다. 슬(瑟) 4를 2줄로 세우는데 1줄은 축()의 동쪽에 두고 1줄은 어()의 서쪽에 둔다. 다음 일현금(一絃琴) 2, 삼현금(三絃琴) 2, 오현금(五絃琴) 2, 칠현금(七絃琴) 2, 구현금(九絃琴) 2를 모두 좌 ○ 예종(睿宗) 11년 6월 을축(乙丑)에 왕자지(王字之)가 송(宋)으로부터 돌아왔다. <그 때에 보낸> 송(宋) 휘종(徽宗)의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3대(代) 이후에 예법(禮法)이 폐기되고 음악(音樂)이 파괴되어 짐(朕)은 고제(古制)를 고구(考究)하여 그것을 조술(祖述)하여 밝혀 노경(老境)에 이르러 부흥(復興)하게 되어서 대성악(大晟樂)을 제작하였노라. 천년 후 <오늘날에> 선왕(先王)의 <순미(醇美)한 음악을> 추종(追從)해서 음률(音律)을 조정(調整)하여 마침내 우물(羽物)의 아정(雅正)한 성음(聲音)을 이룩하였으니 이에 온 땅에 보급시켜서 빈객(賓客)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먼 땅에서 온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게 하노라 멀리 떨어져 있는 너의 나라는 동해(東海)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하리(下吏)에게 청명(淸命)하느라 사신(使臣)을 조정(朝廷)에까지 보내왔으니 <이는> 옛날의 제후(諸侯)같이 교화(敎化)가 존엄(尊嚴)하고 덕(德)이 대단한 것이로다. 음악(音樂)을 상(賞)으로 내리기로 하여 헌거(軒)를 반급(頒給)해서 너의 복지(福祉)가 되게 하노라. 대저 풍속(風俗)을 <순미(醇美)한 것으로> 바꾸는 데는 이 음악(音樂)만한 게 없으니 가서 이 명(命)을 공경되이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면 비록 나라 땅이 <중국과> 동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이 <음악(音樂)이 가져오는> 위대한 조화(調和)를 같이 하게 될 것이니 아름답지 아니한가 지금 대성악(大晟樂)을 하사(下賜)하노라”라고 하였다. 등가(登歌)에 쓰이는 악기(樂器) ○ 편종(編鐘). 정성(正聲) 16개, 중성(中聲) 12개, 각개의 홍선도결(紅線結)이 완전하고 담상(擔床)이 완전함. ◎ <편종(編鐘)의> 악가(樂架)의 부분품(部分品). 탑뇌(搭腦) 1조(條), 협주(頰柱) 2조(條), 중정성천(中正聲串) 각 2조(條), 각광(脚) 2조(條), 각부(脚趺) 2척(隻), 요엽판(耀葉板) 5단(段), 오주류소(五株流蘇) 2건(件)은 오색선(五色線)으로 엮어 만들었으며 각 삽화(鈒花)는 도금(鍍金)하였고 놋쇠로 된 화월(華月) 1부(副), 유주(流珠) 30개, 반자(盤子) 7개, 홍선도(紅線)가 완전하고 패(牌) 1면(面), 각퇴(角槌) 1대(對)임. ○ 편경(編磬). 정성(正聲) 16매, 중성(中聲) 12매 각각 홍선도결(紅線結)이 완전하고 담상(擔床)이 완전함. ◎ <편경(編磬)의> 악가(樂架)의 부분품(部分品). 탑뇌(塔腦) 1조(條), 협주(頰柱) 2조(條), 중정성천(中正聲串) 각 2조(條), 각광(脚) 2조(條), 각부(脚趺) 2척(隻), 요엽판(耀葉板) 5단(段), 오주류소(五珠流蘇) 2건(件)은 오색선(五色線)으로 엮어 만들었으며 각 삽화(鈒花)는 도금(鍍金)하였고 놋쇠로 만든 화월(華月) 1부(副), 유주(流珠) 30개, 반자(盤子) 7개, 홍선(紅線)의 조결(結)이 완전하고 패(牌) 1면(面), 각퇴(角槌) 1대(對)이고 금(琴)은 일현(一絃)·삼현(三絃)·오현(五絃)·칠현(七絃)·구현(九絃)이 각각 2면(面)씩이고 슬(瑟)은 2면(面)인데 각각 전면(全面)이 보장(寶粧)되어 있는 현안주(絃柱)와 홍금친현(紅錦絃)에다 도금(鍍金)한 은탁자(銀鐸子) 4개씩이 홍선(紅線)으로 도결(結)되어 있다. ○ 지()도 중(中) 정성(正聲)의 것 각각 2관(管)씩인데 각각 은현찰전(銀絃札纏) 2줄씩과 홍현(紅絃) 10줄씩이 있다. ○ 저()는 중성(中聲)·정성(正聲) 각각 2관(管)씩인데 도금(鍍金)한 은현찰전(銀絃札纏) 2줄씩과 홍현(紅絃) 13줄씩이 있다. ○ 소(簫)는 중성(中聲)·정성(正聲) 각각 2면(面)씩인데 다채색(多彩色)으로 그린 나르는 봉(鳳)의 그림과 도금(鍍金)한 삽화(鈒花)에 탁자(鐸子) 4개씩, 화환굴월결자(花環鉞結子)가 있다. ○ 소생(巢笙)은 중성(中聲)·정성(正聲)의 것 각각 2찬(鑽)씩인데 각각 도금(鍍金)한 은삽화릉(銀鈒花稜)에 두정(頂)에 도금(鍍金)한 은속자(銀束子)가 있다. ○ 훈(壎)은 중성(中聲)·정성(正聲)의 것 각각 2매(枚)씩인데 각각 금(金)으로 새겨넣은 꽃과 봉새가 그려 있고 홍선(紅線)의 딴 것이 완전하다. ○ 축() 하나는 다섯 가지 채색에 금색(金色)이 섞인 받침이 완전하고 또 도금(鍍金)한 은삽화릉(銀鈒花稜)이 있다. ○ 추() 한 자루와 어() 하나는 다섯 가지 채색에 금색(金色)이 섞인 받침이 완전하고 비단으로 싼 자루를 한 알자(子)가 완전하다. 휘번(麾幡 기(旗) ) 하나는 금박을 뿌려 색을 낸 간자(竿子 기를 다는 대. )가 완전하다. § 헌가(軒架)의 악기(樂器) ○ 편종(編鐘)은 9가(架)로 매가(每架)에 정성(正聲) 16개와 중성(中聲) 12개가 각각 홍선도결(紅線結)이 완전하고 담상(擔床)이 완전하다. ◎ <편종(編鐘)> 악가의 부속품은 매가(每架)에 다음의 것을 쓴다. 탑뇌(搭腦) 1조(條), 협주(頰柱) 2조(條), 중·정성천(中正聲串) 각각 2조(條)씩, 각광(脚) 2조(條), 각부(脚趺) 2척(隻), 요엽판(耀葉板) 5단(段), 오주류소(五珠流蘇) 2건(件)은 오색선(五色線)으로 엮어 만들고 각각 놋쇠로 만든 화월(華月) 1부(副)씩이 달려 있는 것, 유주(流珠) 30개, 반자(盤子) 7개가 홍선(紅線) 땋은 것이 완전한 것, 패(牌) 1면(面), 각추(角槌) 1대(對), 자주도(紫紬) 2조(條), 철정궐(鐵釘) 4개, 흑칠교상(黑漆交床) 1척(隻)에 청색(靑色) 도결(結)이 되어 있음 ○ 편경(編磬)은 9가(架)로 매가(每架)에 정성(正聲) 16매(枚)와 중성(中聲) 12매(枚)가 각각 홍선도결(紅線結)이 완전하고 담상(擔床)이 완전하다. ◎ <편경(編磬)> 악가(樂歌)의 부속품은 매가(每架)에 다음의 것을 쓴다. 탑뇌(搭腦) 1조(條), 협주(頰柱) 2조(條), 중성(中聲)·정성천(正聲串) 각각 2조(條)씩, 각광(脚) 2조(條), 각부(脚趺) 2척(隻), 요엽판(耀葉板) 5단(段), 오주류소(五珠流蘇) 2건(件)이 오색선(五色線)으로부터 엮어 만들어졌으며 각각 놋쇠로 만든 화월(華月) 1부(副)씩이 있고, 유주(流珠) 30개, 반자(盤子) 7개에 홍선(紅線)으로 땋은 것이 완전하고 패(牌) 1면(面), 각추(角槌) 1대(對), 자주도(紫紬) 2조(條), 철정궐(鐵釘) 4개, 흑칠교상(黑漆交床) 1척(隻)에 청색(靑色) 도결(結)이 되어 있다. ○ 금(琴)은 일현금(一絃琴)이 5면(面), 삼현금(三絃琴)이 13면(面), 오현금(五絃琴)이 13면(面), 칠현금(七絃琴)이 16면(面), 구현금(九絃琴)이 16면(面)이고, 슬(瑟)은 42면(面)인데 각각 보장(寶粧)된 양두(兩頭)의 놋쇠로 만든 탁자(鐸子)가 홍선(紅線)으로 도결(結)되어 있고 현안주용(絃柱勇)과 홍금(紅錦)을 받친 현(絃)이 있다. ○ 지()는 중성(中聲)·정성(正聲)의 것 각각 24관(管)씩인데 각각 채색으로 구름에 나는 학이 그려져 있고 홍선(紅線)의 결자(結子)와 놋쇠로 만든 쇠고리[]가 있다. 소생(巢笙)은 중성(中聲)·정성(正聲)의 것 각각 21찬(鑽)씩이다. ○ 우생(笙)은 중성·정성의 것 각각 14매(枚)씩인데 각각 채색으로 구름에 나는 학이 그려져 있다. ○ 진고(晋鼓)는 1면(面)으로 다섯 가지 채색으로 구름에 나는 학을 장식해 그린 고좌(鼓座) 홍견욕(紅絹褥)과 고간(鼓竿) 2조(條), 그리고 추(槌)와 패(牌)가 완전하다. ○ 입고(立鼓)는 2좌(座)인데 매좌(每座)에 각각 십자사자좌(十字師子座)가 완전하다. 입고(立鼓) 1면(面), 비고(鼓) 1면(面), 응고(應鼓) 1면(面), 고승(鼓乘) 1, 고곡(鼓斛) 1, 방륜(方輪) 1, 원륜(圓輪) 1, 고간(鼓竿) 1, 액(額) 2도(道), 백로자(白鷺子) 1척(隻), 조목련화좌(彫木蓮花座)가 완전하다. 목추(木槌) 3병(柄), 칠주류소(七珠流蘇) 4건(件)이 5선(五線)으로 엮어 만들어졌고 각각 놋쇠로 만든 화월(華月) 1부(副), 결주(結珠) 42개, 반자(盤子) 7개씩에 간자도삭(竿子索)이 완전하다. ○ 자주도(紫紬) 4조(條), 철정궐(鐵釘) 4개, 패(牌) 1면(面), 축() 1척(隻)이 산수(山水)가 평평하게 그려져 있고 또 추(槌)가 완전하다. 어() 1척(隻)에 오채(五綵)로 장식해 그린 받침과 알자가 완전하다. ○ 휘번(麾幡) 1수(首)에 색깔 낸 것과 간자(竿子)가 완전하다. 말록제(抹碌梯) 1구(具), 말록고각(抹碌高脚) 1구(具), 철추(鐵槌) 2병(柄) 자견연등심석(紫絹緣燈心席) 60령(領) ○ 이상 4항(項)의 것은 다 악가(樂架)를 배설(排設)하는 데 쓰이는 <제구다>. 악(樂) 무(舞)에 통용하는 집경법물(執擎法物) 문무(文舞)를 인도하는 색장(色長)이 잡는 은두장자(銀頭杖子) 합 2조(條), 무무(武舞)에 통용하는 정(旌) 2조(條)에 대(袋)가 완전하다. ○ 문무(文舞)의 약()과 적(翟)은 각각 36건(件), 인무무(引武舞)의 독(纛) 2건, 그 위에 휘번(麾幡) 2수(首)와 대(袋)가 완전하다. 도고(鼓) 2면, 요령(鈴) 2병(柄), 쌍두탁(雙頭鐸) 2병(柄), 금순(金錞) 2척(隻)에 각각 가(架)와 좌(座)의 손잡이 그리고 매홍도(梅紅)가 완전하다. 상고(相鼓) 2면에 각각 매홍도(梅紅) 1조(條)씩, 금정(金鉦) 2면(面)에 권도추(圈槌)가 완전하다. ○ 아고(雅鼓) 2면(面), 무무(武舞)의 간과(干戈)가 각각 36건, 의관(衣冠) 무의(舞衣) 등속이 각각 1부(副)씩인데 <그 세목(細目)은 다음과 같다> 무색장(舞色長)<의 의관(衣冠)> 1부(副)는 자수(紫繡) 말액(抹額) 1조(條)와 자시수란포(紫繡鸞袍) 1령(領), 무무(武舞)를 인도하는 자<의 의관(衣冠)> 1부(副)는 무변관(武弁官) 1정(頂) 비수말액(緋繡抹額) 1조(條), 비시수란삼(緋繡鸞衫) 1령(領), 금비구(錦臂鉤) 1대(對), 백견말대(白絹抹帶) 1조(條), 동혁대(銅革帶) 1조(條), 오피리(烏皮履) 한 켤레, 문무(文舞)와 무무(武舞)에 잡는 정독(旌纛) 1부, 평면관(平冕冠) 1정(頂), 조시수란삼(繡鸞衫) 1령(領), 동혁대(銅革帶) 1조(條), 오피리(烏皮履) 한 켤레, 흑칠표간(黑漆表竿) 4조(條). § 등가(登歌)와 헌가(軒架)가 음악을 질주(迭奏)하는 절도(節度) ○ 원구 친사(丘親祀). ◎ 왕이 문을 들어와 뇌세(洗)에 갔다가 단(壇)에 올라갔다 내려와 요위(燎位)를 바라보고 대차(大次)로 돌아오는데 헌가(軒架)에서 정안지곡(正安之曲)을 연주한다. 왕이 음복(飮服)하면 등가(登歌)에서 희안지곡(禧安之曲)과 황종궁(皇鍾宮)을 연주한다. ◎ 영신(迎神)에는 헌가(軒架)에서 협종궁(夾鐘宮)의 경안지곡(景安之曲)을 세 차례, 황종각(黃鐘角) 태족치(太簇徵) 고세우(姑洗羽)를 각각 한 차례씩 연주하고 문무(文舞)를 여섯 차례 거행한다. ◎ 송신(送神)에도 협종궁(夾鐘宮)의 영안곡(永安曲)을 연주(演奏)하고 무무(武舞)를 한 차례 거행한다. 옥폐(玉幣)의 전(奠)을 올리고 상제(上帝)에 작헌(酌獻)하면 등가(登歌)에서 가안지곡(嘉安之曲)을 배위(配位)가 오제(五帝)에 미치면 인안지곡(仁安之曲)을 변두(豆)를 물리면 숙안지곡(肅安之曲)을 연주하는데 모두 대려궁(大呂宮)에 의한다. ◎ 진조(進俎)에는 헌가(軒架)에서 풍안지곡(豊安之曲)을 연주하고 문무(文舞)가 물러나고 무무(武舞)가 나오는데 숭안지곡(崇安之曲)을 연주하고 아종헌(亞終獻)에는 무안지곡(武安之曲)을 연주하는데 모두 황종궁(黃鐘宮)에 의한다. 유사(有司)가 대신 할 때에도 같으나 다만 문(門)을 들어오고 세위(洗位)에 나가고 단(壇)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요위(位)를 가서 바라보고 음복(飮福)하는 데는 모두 음악(音樂)을 연주하지 않는다. ○ 사직(社稷). ◎ 영(迎)·송신(送神)할 때 헌가(軒架)에서 임종궁(林鐘宮)의 영안지곡(寧安之曲)을 연주하고 영신(迎神)에는 문무(文舞)를 여덟 차례 송신(送神)에는 무무(武舞)를 한 차례 거행한다. ◎ 옥백(玉帛)의 전(奠)을 올리고 작헌(酌獻)할 때 등가(登歌)에서 응종궁(應鐘宮)의 가안지곡(嘉安之曲)을 연주한다. ◎ 진조(進俎)에는 헌가(軒架)에서 풍안지곡(豊安之曲)을 연주하고 문무(文舞)가 나가고 무무(武舞)를 들어오는 데는 모두 숭안지곡(崇安之曲)을 연주하고 아헌(亞獻)·종헌(終獻)에는 다 무안지곡(武安之曲)을 연주하는데 모두 대족궁(大簇宮)에 의한다. ○ 태묘(太廟)에서의 체협향(享)·시향(時享)·납향(臘享). ◎ 왕이 문을 들어와 관세위(洗位)에 나갔다가 계단(階段)을 올라갔다 내려와 태차(太次)로 돌아오는데 헌가(軒架)에서 정안지곡(正安之曲)을 연주(演奏)하고 진조(進俎)에는 풍안지곡(豊安之曲)을 연주(演奏)하고 문무(文舞)가 물러나고 무무(武舞)가 들어가는 데에 모두 숭안지곡(崇安之曲)을 연주(演奏)하고 작헌(酌獻)에는 제실(諸室)의 곡(曲)을 연주(演奏)하고 아헌(亞獻)·종헌(終獻)에는 다 무안지곡(武安之曲)을 연주(演奏)하는데 모두 무역궁(無射宮)에 의한다. ◎ 제실(諸室)의 곡(曲)은 이러하다. 태조(太祖)는 태정(太定), 혜종(惠宗)은 소성(紹聖), 현종(顯宗)은 흥경(興慶), 문종(文宗)은 대명(大明), 순종(順宗)은 익선(翼善), 선종(宣宗)은 청녕(淸寧), 숙종(肅宗)은 중광(重光), 예종(睿宗)은 미성(美成), 인종(仁宗)은 이안(理安)이다. ◎ 영신(迎神)에는 황종궁(黃鐘宮)의 흥안지곡(興安之曲)을 세 차례, 대려(大呂) 대정(大旌) 응종(應鐘)에 의한 것 각각 두 차례씩 연주(演奏)하고 문덕지무(文德之舞)를 아홉 차례 거행한다. 송신(送神)에는 황종궁(黃鐘宮)의 영안지곡(寧安之曲)을 연주(演奏)하고 무무(武舞)를 한 차례 거행(擧行)한다. ◎ 관창()에는 등가(登歌)에서 순안지곡(順安之曲)을 연주(演奏)하고 변두(豆)를 물리는 데는 공안지곡(恭安之曲)과 협종궁(夾鐘宮)을 음복(飮福)에는 희안지곡(禧安之曲)을 연주한다. 유사(有司)가 대신 할 때에도 같으나 다만 작헌(酌獻)에는 등가(登歌)에서 협종궁(夾鐘宮)을 연주(演奏)하고 문을 들어오고 ○ 선농(先農)을 친향(親享)할 때. ◎ 왕이 문을 들어와 뇌세(洗)에 나갔다가 단(壇)을 올라갔다 내려와 예위(位)를 가서 바라보고 경적위(耕籍位)에 나갔다가 대차(大次)에 돌아오는데 헌가(軒架)에서 정안지곡(正安之曲)을 연주(演奏)하고 진조(進俎)에는 풍안지곡(豊安之曲)을, 문무(文舞)가 물러가고 무무(武舞)가 들어가는 데는 모두 숭안지곡(崇安之曲)을 연주한다. ◎ 폐(幣)의 전(奠)을 드리는 데는 등가(登歌)에서 명안지곡(明安之曲)을 연주(演奏)하고 작헌(酌獻)에는 성안지곡(成安之曲)을 음복(飮福)에는 희안지곡(禧安之曲)을 변두(豆)를 물리는 데는 숙안지곡(肅安之曲)을 연주한다. ◎ 아헌(亞獻)·종헌(終獻)에는 헌가(軒歌)에서 무안지곡(武安之曲)을 연주한다. <이상 여러 곡은> 모두 대족궁(大簇宮)에 의한다. ◎ 영신(迎神)하고 송신(送神)할 때에는 고세궁(姑洗宮)의 응안지곡(凝安之曲)을 연주하고 영신(迎神)에는 문덕지무(文德之舞)를 세 차례 송신(送神)에는 무무(武舞)를 한 차례 거행(擧行)한다. 유사(有司)가 대신 할 때에도 같으나 다만 문을 들어와 뇌세위(洗位)에 나갔다가 단(壇)을 올라갔다 내려와 예위(位)를 가서 바라보고 음복(飮福)할 때에는 모두 음악(音樂)을 연주하지 않는다. ○ 선잠(先蠶). ◎ 영신(迎神)에는 헌가(軒架)에서 격안지곡(格安之曲)을 연주하고 문무(文舞)를 세 차례 거행한다. 송신(送神)에는 정안지곡(靖安之曲)을 연주하고 무무(武舞)를 한 차례 거행하는데 <두 곡은> 모두 고세궁(姑洗宮)에 의한다. ◎ 폐(幣)의 전(奠)을 드리는 데는 등가(登歌)에서 용안지곡(容安之曲)을 연주하고 작헌(酌獻)에는 화안지곡(和安之曲)을 연주한다. 진조(進俎)에는 헌가(軒架)에서 풍안지곡(豊安之曲)을 연주하고 문무(文舞)가 물러나고 무무(武舞)가 들어오는 데는 모두 환안지곡(桓安之曲)을 연주하고 아헌(亞獻)·종헌(終獻)에는 흠안지곡(歆安之曲)을 연주하는데 <이상 여러 곡은> 모두 남려궁(南呂宮)이다. ○ 문선왕묘(文宣王廟). ◎ 영신(迎神) 송신(送神)에는 헌가(軒架)에서 고세궁(姑洗宮)의 응안지곡(凝安之曲)을 연주하고 영신(迎神)에는 문무(文舞)를 세 차례 송신(送神)에는 무무(武舞)를 한 차례 거행한다. ◎ 폐(幣)의 전(奠)을 드릴 때에는 등가(登歌)에서 명안지곡(明安之曲)을 작헌(酌獻)에는 성안지곡(成安之曲)을 연주하는데 모두 협종궁(夾鐘宮)에 의한다. 진조(進俎)에는 헌가(軒架)에서 풍안지곡(豊安之曲)을 문무(文舞)가 나가고 무무(武舞)가 들어오는 데는 모두 숭안지곡(崇安之曲)을 아헌(亞獻)·종헌(終獻)에는 무안지곡(武安之曲)을 연주하는데 모두 무역궁(無射宮)에 의한다. § 헌가(軒架)의 음악(音樂)을 독주(獨奏)하는 절도(節度) ○ 조서(調書)와 사로(賜勞)를 영접하는데 왕과 여러 관원이 배례(拜禮)할 때. ○ 태후(太后)를 책봉(冊封)하는데 태후(太后)가 자리에 오르고 내릴 때, 책봉한 후 군신(群臣)을 향안(饗晏)할 때, 왕이 자리에 오르고 내릴 때, 군신(群臣)이 문을 들어와 술을 드릴 때. ○ 왕후(王后)와 왕태자(王太子)를 책봉하는데 왕이 자리에 오르고 내릴 때 책봉(冊封) 정사(正使)·부사(副使) 이하 행례관(行禮官)이 문을 들어오고 문을 나갈 때, 책(冊)을 받은 후 빈객(賓客)을 만날 때, 책봉(冊封) 정사(正使)·부사(副使) 권화사(勸花使) 연반(筵伴)이 술을 들어 올리고 식사를 드릴 때. ○ 왕태자(王太子)에게 원복(元服)을 가하는데 왕이 자리에 오르고 내릴 때, 빈(賓)·찬(贊)이 문을 들어오고 문을 나갈 때, 왕태자(王太子)가 층계를 오르고 내릴 때, 층계 동남의 위(位)에 갈 때, 수제위(受制位)에 나갈 때, 조계(階) 밑의 자리에 이르렀을 때, 빈객(賓客)이 문으로 들어오고 층계를 오르고 내릴 때, 태자(太子)가 예(醴)를 들어 올리고 가관(加冠)이 끝날 때, 빈객(賓客)을 만날 때, 빈(賓)·찬(贊)·권화사(勸花使)·연반(筵伴)이 술을 들어 올리고 식사를 드릴 때. ○ 왕자(王子)와 왕희(王姬)를 책봉(冊封)하는 데는 <헌가(軒架)는> 진설(陳設)하여 놓고 연주하지는 않고 책봉이 끝나 빈객(賓客)을 만날 때, 책봉(冊封) 정사(正使)와 부사(副使) 권화사(勸花使) 연반(筵伴)이 술을 들어 올리고 식사를 드릴 때. ○ 상국(上國)의 전(箋)을 드리는데 왕과 여러 관원이 배례(拜禮)할 때. ○ 원정(元正) 동지(冬至) 상국(上國)의 성수절(聖壽節) 망궐하(望闕賀)<의 의식>을 행하는데 왕이 배위(拜位)에 나가고 자리를 오르고 내리고 왕 및 여러 관원이 배례(拜禮)할 때. ○ 왕이 원정(元正)과 동지(冬至)의 절일(節日)의 하례(賀禮)를 받는데 왕이 자리를 오르고 내릴 때. ○ 원회(元會)에 왕이 자리를 오르고 내릴 때와 술을 들어 올릴 때와 태자(太子) 영공(令公) 재신(宰臣)이 문을 들어올 때. ○ 왕태자(王太子)가 원정(元正)과 동지(冬至)에 군신(群臣)의 하례(賀禮)를 받는데 태자(太子)가 자리를 오르고 내릴 때와 삼사(三師) 삼소(三少) 빈객(賓客) 이하 궁신(宮臣)이 문을 들어오고 나갈 때. ○ 왕태자(王太子)가 절일(節日)에 궁관(宮官)의 하례(賀禮)를 받고 또 빈객(賓客)을 만나는데 태자(太子)가 자리와 층계를 오르고 내릴 때와 술을 들어 올릴 때 삼사(三師) 삼소(三少) 빈객(賓客)이 문을 들고 날고 할 때와 층계를 오르고 내릴 때, 삼사(三師) 이하 궁관(宮官)이 술을 받을 때. ○ 군신(群臣)을 향연(饗宴)하는데 왕이 자리를 오르고 내릴 때와 주식(酒食)을 들어 올릴 때, 군신(群臣)이 주식(酒食)을 받을 때. ○ 의봉문(儀鳳門)의 선사(宣赦)에 왕이 자리를 오르고 내릴 때. <이상 여러 경우에는> 모두 헌가(軒架)의 음악(音樂)을 독주한다. ○ 예종(睿宗) 11년 6월 경인(庚寅)에 왕이 회경전(會慶殿)에 나와 재추(宰樞)와 사신(使臣)을 불러 가지고 대성신악(大晟新樂)을 관람하였다. 8월 기묘(己卯)에 제서(制書)를 내어 이르기를, “문무(文舞)의 도(道)는 어느 한 쪽을 폐(廢)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근대(近代)에 외적(外賊)의 <침범이> 점점 치열해져서 모신(謀臣)과 무장(武將)이 모두 갑옷을 수선하고 병졸(兵卒)을 조련시키는 것을 급무(急務)로 하고 있다. 옛날에 순(舜) 임금이 문덕(文德)을 크게 펴고 양계(兩階)에서 간우(干羽)로 춤추게 하였는데 칠순(七旬)이 지나자 유묘(有苗)가 귀순(歸順)해 왔다. 짐(朕)은 그 일을 심히 사모(思慕)하고 있다. 하물며 지금 대송황제(大宋皇帝)가 특히 대성악(大晟樂)과 문무무(文舞武)를 하사하였음에랴 마땅히 종묘(宗廟)에 먼저 천(薦)하고서 연향(宴享)에까지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0월 무진(戊辰)에 건덕전(乾德殿)에서 대성악(大晟樂)을 친열(親閱)하고 계유(癸酉)에 태묘(太廟)에 친협(親)을 드리고 대성악(大晟樂)을 천(薦)했다. ○ 인종(仁宗) 12년 정월(正月) 을해(乙亥)에 적전(籍田)의 제사에 처음으로 대성악(大晟樂)을 썼다. ○ 명종(明宗) ◎ 18년 2월 임신(壬申)에 제서(制書)를 내려 악공(樂工)으로 소속을 도피해서 함부로 다른 부서에 가 있는 자를 본업(本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 사신(史臣)이 이르기를, “음악(音樂)이 잔결(殘缺)되고 혼란(混亂)하여진 것이 심하다. 태상(太常)이 근자에 <시정해보겠다는> 뜻을 취해 전왕(前王)의 대(代)에 행하던 제도(制度)에 따르기를 청원(請願)하였으나 유사(有司)가 천연시키고 시행하려 들지 않아서 식자(識者)들이 한스럽게 여겼다. <그들이> 생각하기를 이 음악(音樂)은 송조(宋朝)가 그들의 신악(新樂)을 예묘(睿廟)에 하사(下賜)한 것이고 본래 송(宋) 태조(太祖)가 제작(制作)한 음악(音樂)이 아니다. 그 음악(音樂)이 시행(施行)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송조(宋朝)는 혼란(混亂)해졌다. 하물며 신사년(辛巳年)에 본조(本朝)의 유신(儒臣)과 광고(狂)가 멋대로 고쳐서 그 차서(次序)를 바꾸고 상하(上下)를 착란(錯亂)시킨 나머지 간척(干戚)과 약적(翟)에 불어났다 졸아 들었다 하여 같지 않게 되는 차이(差異)를 가져오게 하였음에랴 태상편제(太常編制)에 이런 말이 있다. 송조(宋朝)에서는 오직 의관(衣冠)과 악기(樂器)만을 부쳐와서 본조(本朝)에서는 연습(練習)할 길을 몰랐다. 승지(承旨) 서온(徐溫)이 송(宋)에 들어가 사사로이 무의(舞儀)를 익혀가지고서 그것을 전해 가르쳤으니 그 진퇴(進退)와 소수(數)의 절도(節度)는 근거(根據)가 없어서 다 믿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또 악공(樂工)이 처음 왔을 때 행하던 것에 따르기를 원했으나 지금까지 시행(施行)한 바가 없다. 비록 주사(主司)가 <고치겠다는> 뜻을 취한다 하더라도 구적(舊籍)이 고쳐지지 않아서 곧 또 처음 같아지고 만다. 8음(八音) 가운데 사(絲)와 토(土) 두 성음(聲音)은 없어졌다. 가사(歌師)는 단지 악보(樂譜)의 고저(高低)만을 외우고 그 말은 전연 이해하지 못하니 신인(神人)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 향악(鄕樂)은 토풍(土風)이다. 무릇 제사에는 처음 일부러 연주해서 끝에까지 가는 것인데 지금은 아헌(亞獻)·종헌(終獻)에 이르러야 연주(演奏)하니 치우쳐 거행(擧行)하는 실수임을 면하지 못한다. 등가(登歌)는 단지 박부(搏)로 음악(音樂)을 조절(調節)하고 거기에 겨를 채워서 소리가 나지 못하게 하였은즉 무(舞)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상정관(詳定官)이 멋대로 무(舞)를 허락하고서 진고(晋鼓)로 그것을 조절(調節)하게 하였으니 음악(音樂)은 앞에 있고 무(舞)는 뒤에 있어 존비(尊卑)의 <위차(位次)>가 어지러워져 하(下)의 성음(聲音)이 상(上)을 엄폐(掩蔽)하게 된 것이다.” 하였다. ◎ 3월 을유(乙酉)에 평장사(平章事) 최세보(崔世輔)를 보내서 일을 대행(代行)시켜 하체(夏)를 행했는데 대성악(大晟樂)을 썼고 작헌(酌獻)에는 약적(翟)을 쓰는 문무(文舞)를 쓰고 아헌(亞獻)·종헌(終獻)에는 모두 간척(干戚)<을 쓰는 무(舞)>를 썼고 거기다 향음(鄕音)과 향무(鄕舞)를 추가했다. ○ 공민왕(恭愍王) ◎ 8년 6월 신묘(辛卯)에 어사대(御史臺)에서 상언(上言)하기를, “국도(國都)를 옮긴 후부터 악공(樂工)이 흩어져 가버리고 성음(聲音)이 폐기되어 없어졌으니 마땅히 유사(有司)로 하여금 새로 악기(樂器)를 제작(製作)하게 해야하오.” 라고 하므로 상언(上言)에 따랐다. ◎ 19년 5월에 성준득(成准得)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왔는데 명(明)의 태조황제(太祖皇帝)가 다음의 악기(樂器)를 하사(下賜)했다. 편종(編鐘) 16가(架) 완전함, 편경(編磬) 16가(架) 완전함, 종가(鍾架)가 완전하고 경가(磬架)가 완전하다. 생(笙)·소(簫)·금(琴)·슬(瑟)·배소(排簫) 한 개씩. ◎ 7월에 강사찬(姜師贊)을 경사(京師)로 보내서 악공(樂工)으로 여러 음(音)에 정통(正統)하고 여러 기예(伎藝)를 겸비한 자를 보내서 그 기술(技術)을 전습(傳習)시켜 주기를 청하게 했다. ◎ 20년 5월 신미(辛未)에 강사찬(姜師贊)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왔다. 황제(皇帝)가 태상서(太常署)의 한 악공(樂工)에게 경사(京師)에 가서 기술(技術)을 배우라고 명했다. ◎ 20년 3월 갑인(甲寅)에 홍사범(洪師範)을 보내 중서성(中書省)에 이자(移咨)해서 이르기를, “근자에 병란(兵亂)을 겪은 후에 아악(雅樂)이 흩어져 없어졌고 조정(朝廷)에서 하사(下賜)한 악기(樂器)는 다만 종묘(宗廟)에서 사용할 뿐이고 그 나머지의 사직(社稷) 경적(耕籍) 및 육묘(六廟)에 쓰이는 아악(雅樂) 안에는 종(鐘)과 경(磬)이 다 빠져버렸다. 지금 값을 가지고 경사(京師)에 가서 종(鐘) 경(磬)을 수매(收買)하겠다.” 하였다. ◎ 9월 병자(丙子)에 구정(毬庭)에서 태묘악(太廟樂)을 연습했다. 무인(戊寅)에 구정(毬庭)에서 태묘악(太廟樂)을 연습했다. 10월 경진삭(庚辰朔)에 구정(毬庭)에서 태묘악(太廟樂)을 연습했다. ○ 공양왕(恭讓王) ◎ 원년(元年) 3월 을유(乙酉)에 예조(禮曹)에서 조회(朝會)에 음악(音樂)을 쓰기로 청했는데 그것에 따랐다. 태묘(太廟)의 악장(樂章) § 예종 11년에 제작한 9실의 등가 악장 예종(睿宗) 11년 10월에 구실(九室)의 등가 악장(登歌樂章)을 새로 제작했다. ○ 태조(太祖) 제1실(室) 정성(正聲) 태정지곡(太定之曲) 하늘의 영부(靈符) 받으사 여러 곳을 사랑하여 편안케 하시었도다 덕은 삼무(三無)<의 그것과> 같고 공은 백왕(百王)의 그것을 초과하시었도다 복조(福祚)가 후손(後孫)에게 까지 뻗어와 그 누적한 공덕(功德)을 받들게 되었도다 영세무궁토록 삼가 제사드리는 일에 나가리로다 중성(中聲) 천명(天命)에 응하시어 <나라의> 기초 세우셔 위대한 계획 훌륭하게 이룩하시었도다 성스러운 덕과 신령한 공 높고 크고 크도다 쌓여진 두터운 은덕 광휘(光輝) 드러내어 자손(子孫)이 천억(千億)으로 번성하였다 묘모(廟貌)에의 제사 영세무궁토록 끊어지지 않으리로다 ○ 혜종(惠宗) 제2실(室) 정성(正聲) 소성지곡(紹聖之曲) 진실로 저 선왕(先王)께서는 정녕 씩씩하시어 흉악(凶惡)하고 잔인(殘忍)한 무리 제거하시고 삼한(三韓)을 평정(平定)하시었도다 이룩한 덕 자손이 제향을 올려 망극한 은덕에 보답코자 하나이다 중성(中聲) 무용(武勇)과 지혜(智慧) 뛰어나 조종(祖宗)의 공(功) 도우셨나니 경건한 휘하(麾下)에 삼한(三韓)이 모두 다 모였도다 길이 그 상서 드러내어 역대의 성왕(聖王)에 비추었도다 제 때에 정결하고 근엄하게 제향 올리어 대를 잇는 후손의 복<을 가져오나이다> ○ 현종(顯宗) 제3실(室) 정성(正聲) 흥경지곡(興慶之曲) 크고 뚜렷하신 빛나는 조종(祖宗) 덕을 속에 지니고 하늘에 날아올라 험난함 두루 겪으시고 성현(聖賢)의 <덕을> 이어받아 일으키셨도다 용산(龍山)의 옥작(玉爵) 사수(泗水)의 부경(浮磬) 증손이 효경(孝敬)하여 복록(福祿)이 찾아들었도다 중성(中聲) 아름답다. 성스러운 조종(祖宗)은 숨어있다. 비약하여 원수(元帥)의 자리에 올라 혼란을 정리하여 바른 길로 돌리셨나니 신령한 무덕(武德)과 뛰어난 문덕(文德) 왕업(王業)을 중흥하여 후손에게 길을 열어 도와주시었도다. 제향(祭享)을 드리는 일 변함 없으리로다 자자손손 <무궁토록> ○ 덕종(德宗) 제4실(室) 정성(正聲) 엄안지곡(嚴安之曲) 타고 나신 큰 덕에 용맹함은 비길 이가 없도다 위엄을 떨치니 우뢰와 같으셔 이웃 나라들 크게 놀라 두려워 하네 나라땅 멀리 멀리 넓히셨으니 변경에서 순라 돌며 빈틈 없이 지키리라 중성(中聲) 덕을 닦으시어 잠복에서 벗어나 하늘을 용같이 날으시었네 그 위력 멀리까지 떨쳐 먼 나라도 위압하니 무예와 용기에 감히 맞서는 자가 없구나. 풍속을 달리하는 이방인들 풍문 듣고 궁정에 와서 예물을 바치는도다 이로써 국경을 넓히시니 대대로 그 복을 받으리 ○ 정종(靖宗) 제4실(室) 정성(正聲) 원화지곡(元和之曲) 공덕으로 잘 다듬어진 나라 이어 받으셔 더욱 창궐 하시니. 지극한 효성과 신령한 책모 두터우시고 훌륭하도다 다섯성 쌓으시어 변경을 평정하시니 그 은덕 길이길이 온 누리에 퍼져 아름다운 명성 영원히 계속되리라 중성(中聲) 진실로 공손하고 지극히 겸양하시어 뛰어난 인재 많이 얻으시었다 나라 땅 넓히시니 공덕이 만세에 <빛나도다> 이에 악장(樂章)을 늘어놓아 종묘에 고하옵나니 이에 받아들여 주옵소서 끝없는 흠모하는 효성을 ○ 문종(文宗) 제6실(室) 정성(正聲) 대명지곡(大明之曲) 진실로 문덕 높으신 문왕(文王) 참으로 총명하셨네 백성을 인자함으로 보살피시니 창고마다 풍요롭도다. 너그럽고 온화한 다스림으로 그 덕이 신명하시고 밝으시도다. 복이 아득한 후손에 까지 흘러 내려 하늘과 더불어 끝이 없도다 중성(中聲) 아름답도다 아아 맑고 맑은 <덕을 갖추신> 우리 조종(祖宗) 무덕(武德) 높으시고 문덕(文德) 높으사 그 공덕과 은덕이 온 누리에 넓게 퍼졌도다 묘정(廟庭)에 음악(音樂) 마련되었으니 숭아(崇牙)와 수우(樹羽) 우리에게 내려주신 거룩한 공덕으로 평화와 안녕을 주시는도다. ○ 순종(順宗) 제7실(室) 정성(正聲) 익선지곡(翼善之曲) 왕께선 천명(天命) 받들어 공순(恭順)함을 앞세우셨다 왕태자(王太子)로 군권(軍權)을 장악(帳幄)하고 국무(國務)를 감리(監理)하신 저 30여 년 빛나는 왕위(王位) 계승하여 흥성할 때 구름타고 멀리 가버리셨다 성덕의 형용(形容)이 음악(音樂)을 통해 흘러나오는도다 중성(中聲) 아름다운 선왕(先王) 그 덕은 왕태자(王太子) 때부터 드러났도다 온순(溫順) 문아(文雅)함 타고 난 성품 자비하고 은혜스러우심 나날이 빛을 더하시어 백성을 의약(醫藥)으로 구해주셨고 부왕(父王)을 효성(孝性)스럽게 받드시도다 철따라 제례(祭禮)를 올림에 묘모(廟貌)를 우르러시네. ○ 선종(宣宗) 제8실(室) 정성(正聖) 청녕지곡(淸寧之曲) 요(堯) 임금의 인(仁)과 순(舜) 임금의 효(孝)를 그대로 익히시니 그 도(道)에 감화하셨네 조정에 임하신 지 1기(紀) 하늘에 오르신 지 몇 해인가 여열(餘烈)과 유풍(遺風)은 천고(千古)에 넘쳐 흘러 궤연(筵)을 바라보니 어렴풋 뵈옵는 것 같도다 중성(中聲) 묘정(廟庭)에 음악(音樂) 마련되어 있어 그 음악(音樂) 소리 새롭기도 하다. 국가(國家)의 빛은 실로 이 신(神)에 힘입어 <드러나는도다> 이에 그 제사 차려 종묘(宗廟)에 고하옵나니 영원토록 이르시어 효도함을 흥향하소서 ○ 숙종(肅宗) 제9실(室) 정성(正聲) 중광지곡(重光之曲) 엄숙하신 황고(皇考) 의(義)와 인(仁)을 겸하셨나니 구가(謳歌)가 우리에게 돌아왔도다. 위령(威靈)이 신(神) 같으시어 복된 나라의 기틀 중흥(重興)시키고 영명(英明)한 자손 가지시어 종고(鍾鼓)를 늘어놓고 제향(祭享)을 드려 제 때에는 큰 도움을 맞이 하나이다 중성(中聲) 아름다운 <덕을 갖추신> 황고(皇考) 청명(淸明)하심은 하늘을 본받으셨고 도(道)를 행하심에 경건 건실하시네. 사려깊고 성실하신 마음가짐 영명(英明)하신 책모(策謀)와 신(神) 같은 결단(決斷) 바람처럼 빠르고 우뢰처럼 강하도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 이 복을 받으리 § 공민왕 12년에 찬제한 태묘 악장 공민왕(恭愍王) 12년(年) 5월 정해(丁亥)에 구실(九室)의 신주(神主)를 태묘(太廟)로 환안(還安)하고 새로 악장(樂章)을 찬제(撰製)하였다. ○ 태조(太祖) 제1실(室) 위대하신 태조(太祖) 크나큰 천명(天命)을 받으셨도다 삼한(三韓)을 전부 차지하시고 인정(仁政)을 널리 펴내셨도다 후사(後嗣)들 불초하여 간난(艱難)으로 어지러우니 <이 제사> 흠향하시고 편안함 오게 하사 영원토록 <나라를> 계승해 나가게 하옵소서 ○ 혜종(惠宗) 제2실(室) 하늘이 우리집 만들었는데 혹시라도 누가 궁정(宮庭)에 내복(來服)하지 않겠는가 태조(太祖)를 측근에서 도우사 궁시(弓矢)를 경영하시었으니 종묘(宗廟)에서 덕(德)을 보옵건대 영령(英靈) 늠렬(凜烈)하시도다 어려움 구제하시고 태평세월 열어주셨으니 영원히 황명(皇明)을 앙모(仰慕)하나이다 ○ 현종(顯宗) 제3실(室) 하늘이 크나큰 사업도우사 부새(否塞) 타개하여 번창(繁昌) 이룩하시었도다 삼한(三韓)을 재조(再造)하시어 온갖 절도(節度) 지극히 맑아졌도다 위대한 책모(策謀) 얼마나 거룩한지 지금도 더욱 빛나는도다 천만년을 두고두고 우리에게 끝없이 복을 주시는도다 ○ 원종(元宗) 제4실(室) 맑고 밝으신 우리 조종(祖宗) 덕(德)은 건곤(乾坤)과 합치(合致)하는도다 크고 뚜렷한 그 덕 후손(後孫)들에게 유복(裕福)함 내려주는도다 정결하게 제사지내니 서직(黍稷)이 향기롭도다 이 제사 흠향하시와 영원히 <나라의> 강녕(康寧)함 지켜주소서 ○ 충렬왕(忠烈王) 제5실(室) 저 원조(元朝)에 조근(朝覲)하시어 처음으로 공주(公主)를 얻으셨도다 왕희(王姬)의 수태 동토(東土)에 내려왔도다 자손(子孫) 대대로 뻗어나 하늘의 복 받는도다 천만년 두고두고 어머니 되시고 아버지 되시는도다 ○ 충선왕(忠宣王) 제6실(室) 이 선조(先祖)께서 묘정(廟庭) 오르내리심 생각하옵고 박의(薄儀)나마 진설(陳設)하여 앙모(仰慕)하고 존경(尊敬)하는 <뜻을 나타내옵나이다> 안주도 정결하고 술 또한 향기로우니 정성을 받아들이사 우리들 자손에게 은혜 베푸소서 ○ 충숙왕(忠肅王) 제7실(室) 위대하고 아름다우신 조종(祖宗) 그 덕이 아름답고 순수하도다 우리는 그것을 계승하여 좆아가 밤낮으로 공경하고 있나이다 아아 어찌하여 적을 만나서 묘모(廟貌)가 몽진(蒙塵)하게 되었나 <제사를 드려> 편안케 하여 드리고 권하여드려 하늘의 좋은 복이 이에 이르리로다 ○ 충혜왕(忠惠王) 제8실(室) 이 싸움 평정하니 침묘(寢廟)가 편안하여졌도다. 제향을 드려 제사하여 그 영(靈)을 편안하게 하여 드리니 아아 크게 우뚝 솟은 분이여 묘정(廟庭) 오르내리는도다 흠향하시어 돌보소서 서직(黍稷)이 향기로옵나이다 ○ 충목왕(忠穆王) 제9실(室) 영명(英明) 과단(果斷)하시어 그 광휘 찬란하는도다 아아 아름답도다 마음 속에 진실로 잊지 않으리 하물며 난리 평정하시어 종묘(宗廟)의 깨끗한 제사 되었음에랴 우리의 밝고 깨끗한 제사 돌보소서 오직 정성을 이어받겠나이다 § 공민왕 16년 휘의공주 혼전에 올린 악장 공민왕(恭愍王) 16년 정월(正月) 병오(丙午)에 휘의 공주(徽懿公主)의 혼전(魂殿)에 행행(行幸)하여 석명(錫命)을 고(告)하고 이어 대향(大享)을 차렸는데 교방(敎坊)에서는 새로 찬제(撰製)한 악장(樂章)을 연주하였다. ○ 초헌(初獻) 점잖고 사려깊어 공경받던 휘의 공주(徽懿公主)님은 문황제(文皇帝) 무황제(武皇帝)의 손녀(孫女)시오 위왕(魏王)의 따님이시며 국군(國君)의 비(妃)이시라 더없이 존귀(尊貴)하신 몸이시온데 조신하시면서 부드러우시니 정녕 왕자(王者)의 따님 다우시도다 이 고장에 오셔서 자리잡고 사시었으니 온갖 복록(福祿) 누려 마땅하도다 ○ 아헌(亞獻) 점잖고 사려깊어 공경받던 휘의 공주(徽懿公主)님 경건하신 그 덕성(德性) 우리 임금 지극히 사랑하시었나니 그 정성 진실로 극진하시었도다 영영 하늘에 올라 계시니 아아 잊지 못하겠도다 나 나아가 몸소 제향(祭享) 드려 온갖 예(禮)를 흡족하게 갖추어 영원토록 그 이룩하신 덕 살피리로다 ○ 삼헌(三獻) 아아 휘의 공주(徽懿公主)님 훌륭한 말씀 그치지 않으셨다 열성에 찬 우리 임금 제사의 절차 차리셨나니 음악 부드럽게 연주되어 편히 뫼셔 권해드리니 신(神)은 음식을 즐기신다 나날이 이곳을 살피시나니 어찌 꽃다운 내음 드리는 정성 제 때를 어기리오 ○ 사헌(四獻) 명철하신 휘의 공주(徽懿公主)님 진실로 공손하시고 진실로 명랑하시고 착하고 근실하심에 그 가르침 뚜렷이 드러난다 절주 맞추어 쇠불을 쳐서 정결하게 제사드리니 강림하여 흠향하시어 나에게 생각는 뜻 이룩함 내려주시라 아름답기도 하다. 그 소리는 ○ 오헌(五獻) 북을 둥둥 쳐 울리어 우리 휘의 공주(徽懿公主) 즐겁게 해드리나니 혹은 노래하고 혹은 북만을 치고 경(磬)과 관악기(管樂器)의 소리 간간히 섞는도다 뚜렷이 강림하심 늦지 않으심은 우리의 좋은 음악(音樂) 생각하심이라 큰 복(福)을 도우려 하시네 예의(禮儀)는 법도(法度)를 다하여 법칙(法則) 되지 아니함 거의 없도다 ○ 종헌(終獻) 그 예(禮) 어떠한가 후하고 아름답도다 혹은 제물(祭物)을 <제기(祭器)에> 올려놓고 혹은 가지고 <제단(祭壇)으로> 나가기도 하나니 와글대지도 아니하고 소리치지도 않는도다 경건한데다 조심스럽나니 제사지냄 공경스럽도다 훌륭하신 휘의 공주(徽懿公主)시여 천만년 두고두고 영원히 변하지 마소서 § <공민왕> 20년 태묘 친제시 올린 악장 20년 10월 을미(乙未)에 태묘(太廟)에 친히 제향(祭享)을 드리고 새로 악장(樂章)을 만들었다. ○ 왕이 문으로 들어가면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아아 아름답도다. 청묘(淸廟) 제향(祭享) 드리려 몸소 나아가나니 위의(威儀)는 신중하고 쇠북과 북은 우렁차도다 머물곳에 이르름 엄숙도하고 장엄한 품 밝은 빛 드러낸다 반드시 공경스럽나니 무궁한 복을 돋우리라 ○ 왕이 관세(洗)하면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궤천(軌泉)의 물 엄청 차거니와 진실로 무엇으로 기약할 수 있는가 깨끗이 씻고 물대주고 할 수 있나니 맑고 광명(光明)하도다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위의(威儀)로 돕는도다 서열(序列)에 따라 자리 차지하고 있나니 증손(曾孫)이 힘쓰는도다 ○ 왕이 전(殿)에 오르고 내리고 할 때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아아 아름답도다. 청묘(淸廟) 처음 군주(君主) 뵈오니 밝고 밝은 보불()<베푼 제복(祭服)> 엄숙한 자리 풍기는 향기 깨끗하고 오르내림 모두 좋도다 <우리 임금의> 만수무강이리라 ○ 왕이 소차(小次)에 들고 날 때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이토록 효경(孝敬)스러우신데 소차(小次)인들 감히 <경건하게 구름을> 잊으랴 들고남에 절도(節度) 있고 그 위의(威儀) 크게 빛나시도다. 정성들인 제물은 가지가지요 아악(雅樂)은 벅차게 울려난다 무엇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시려나 백가지 상서(祥瑞) 내려주시리라 ○ 신(神)을 맞이할 때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정하고 순결하게 <받드는 제사에> 차려입은 제복(祭服) 깨끗하도다 사무치게 느껴오는 떨쳐 울리는 음향(音響) 풍류 구성(九成)이 어렴풋 들려지나니 대단히 효성 신(神) 강림(降臨)하시어 즐거워하시고 편안하여지사이다 ○ 폐(幣)를 드릴 때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불변(不變)하는 도리(道理)를 세움에 있어 보답함이 아니라 오직 친함이로다 효성스러운 마음 끝이 없고 엄숙하고 맑고 순결하도다 오직 공경스럽게 폐(幣)를 드리나니 좋은 옥(玉) 늘어놓았도다 감응하여 이르심이 메아리 같고 좋은 상서(祥瑞) 있는 대로 다 나타나는도다 ○ 사도(司徒)가 조두(俎豆)를 받들 때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큰 소를 드리오매 변두(豆)와 대방(大房)을 쓰는도다 혹은 제물(祭物)을 올려놓고 혹은 가지고 나가기도 하여서 효성있게 올리고 제향(祭享)을 드리옵나니 그 누가 이 제사를 주관하는가 증손(曾孫)이 이를 받드는도다 이를 받으시어 복(福)을 주시니 우리를 사랑하심 그지없도다 ○ 궐(闕) 제1실(室)에서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아아 위대하신 임금님 천절(天節)을 받으시사 온고장 두루 와서 도와드렸도다 이 동떨어져 있는 대동(大東)의 나라 사방에서 그 분을 종주(宗主)로 받들었도다 후손들이 그 업을 이을 수 있게 하시어 그 조종의 위업(偉業) 이어받아 세워나갔도다 이같이 만년(萬年)토록 <우리 임금> 장수(長壽)하시고 복(福)을 내림 끝없을지니 ○ 궐(闕) 제2실(室)에서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아아 위대하신 무왕(武王)은 하늘의 뜻 받든 용(龍)이시로다 빛나는 공훈(功勳) 세운 부왕(父王)을 도우셨고 만년(晩年)에야 그 공업(功業) 정립(定立)하시었도다 작은 나라 큰 나라 모두 복종(服從)하는구나 <자손(子孫)들은 그 공업(功業)> 폐(廢)하지 말고 길이 이어나갈지니 복록(福祿)이 같이 따르리로다 ○ 궐(闕) 제3실(室)에서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그 덕(德)> 아름다우시도다. 위대하신 부왕(父王) <우리들 자손(子孫)> 그 광명(光明)한 은덕(恩德) 받게 되리라 진실로 문덕(文德) 있으시고 무덕(武德) 갖추시니 그 위령(威靈) 더욱 빛나시도다. 위무(威武) 갈치시어 <자손(子孫) 위해> 대업(大業)을 세우시어 <그 정책(政策)> 써서 성공(成功) 가져오기에 이르렀도다 만년(萬年)하고 또 천년(千年)토록 우리들 후생(後生)을 보우(保佑)하소서 ○ 궐(闕) 제4실(室)에서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정녕 임금 되시기에 마땅하시오니 <그 덕(德)> 아름답고 위대하도다 천명(天命) 그대로 지켜지어 온 백성 바라보는 바이시로다 언제나 경건하게 제사를 지냄이 정성스럽도다. 우리의 노인네를 편안케 하려 하늘로부터 강녕(康寧)함 내리도다 ○ 궐(闕) 제5실(室)에서 궐(闕)의 곡(曲)을 연주한다. 아아 위대하신 임금님 <그 덕(德)> 아름다워 온갖 복록(福祿) 모여드는도다 정녕 하늘의 아들이시라 대대로 덕(德)을 쌓아 좋은 끝 맺어 자손(子孫)들 천억(千億) 편안히 쉬는도다 영원토록 <쇠하지 않는> 효성스런 마음 ○ 궐(闕) 제6실(室) 궐지곡(闕之曲)을 연주한다. 부지런하신 우리 왕 그 덕(德)이 크고 뚜렷하도다 두루 밝혀 예의(禮義)로 물으시어 상제(上帝)의 법칙(法則)에 따르시었도다 이 큰 나라에 왕자(王者)로 군림(君臨)하사 아래 백성에 임하심 빛이 났도다 그 자손에 <좋은> 책모(策謀) 내려주사 큰 복을 받게 하시었도다 ○ 궐(闕) 제7실(室) 궐지곡(闕之曲)을 연주한다. 아아 황고(皇考)는 그 덕(德)이 극명(克明)하도다 영원토록 천명(天命)을 도와 그 복을 후히 내리게 하시는도다 나 효자(孝子)를 편안케 하여 주시고 복록(福祿)을 누리고 안락(安樂)하게 하시는도다 본가(本家)와 지파(支派)가 백대(百代)토록 영원히 그 이룩한 공 보게 되리라 ○ 왕이 음복(飮福)하면 이성지곡(釐成之曲)을 연주한다. 비문(門)은 정적(靜寂)한데 제사하는 일 대단히 명랑(明朗)하도다 신(神)은 음식을 즐기사 우리에게 이룩하신 공 생각하게 하여 주시는도다 저 강작(康爵)에 술부어 올리니 효손(孝孫)에 복이 있는도다 만년(萬年)토록 끝없이 복을 받으리로다 ○ 문무(文舞)가 물러나고 무무(武舞)가 나오면 숙녕지곡(肅寧之曲)을 연주한다. 아아 위열(威烈)이 뛰어나신 조상님들[祖宗] 그 성세(聲勢) 혁혁(赫赫)하도다 진실로 문덕(文德) 높으시고 무덕(武德) 높으사 우리 후손을 보호하여 주시는도다 노우(鷺羽) 세우고 간(干)과 과(戈)와 척양(戚揚) <잡고서> 만무(萬舞) 아름답거니 진실로 대성(大成)<을 상징한 것이로다> § 송(宋)에서 새로이 악기(樂器)를 내려줌 예종(睿宗) 9년 6월 갑진삭(甲辰朔)에 안직숭(安稷崇)이 송(宋) 나라에서 돌아왔다. 송(宋) 휘종(徽宗)의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음악(音樂)은 천지(天地)와 함께 흐르는 것으로 백년(百年) 이후에 일어나고 공(功)이 이룩된 이후에 생겨나노라. 선왕(先王)의 은택(恩澤)이 고갈하여 예(禮)가 폐기되고 음악이 파괴되어서부터는 주대(周代)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왕(先王)의 악(樂)을 조술(祖述)하지 못하였다. 짐(朕)이 역대(歷代) 성왕(聖王)의 기업(基業)을 계승하여 오래 오래 성덕(盛德)의 훌륭한 공훈을 생각하여 그 뜻을 계승하고 그 사업을 조술(祖述)하고 그 이룩한 공(功)을 고(告)하고자 하여 유사(有司)에서 조명(詔命)을 내려 몸으로 표준을 삼고 그 표준에 따라 정(鼎)을 주조(鑄造)하고 음악(音樂)을 제작하여 그것을 천지(天地)와 종묘(宗廟)에 올리게 하였던 바 우물(羽物)이 제 때에 맞게 나왔다. 대저 지금의 음악(音樂)은 옛날의 음악(音樂)이나 같으므로 짐(朕)이 없애지 않고 아정(雅正)한 악성(樂聲)을 지금의 음악(音樂)에 펴 넣어 새 음악(音樂)을 제작하여 처음으로 천하(天下)에 반포(頒布)하여서 백성의 심사(心思)를 부드럽게 해주었노라. 경(卿)은 바깥 땅을 보유(保有)하고 있으면서 의(義)를 사모하여 동화(同化)해 왔다. 사신(使臣)이 와서 신성(新聲)을 듣기를 원하니 그 성심(誠心)을 가상(嘉尙)하게 여겨서 하사품(下賜品)을 내리기로 하였노라. 지금 신사(信使) 안직숭(安稷崇)의 귀국(歸國) 편에 경(卿)에게 다음의 신악(新樂)을 하사(下賜)하노라. ◎ 철방향(鐵方響) 5가(架)와 아울러 탁자(卓子) 추자(槌子) 주칠루금가자(朱漆縷金架子) 금과책조(錦冊條) 금도은탁자(金鍍銀鐸子) 도결(結) 자라협파(紫羅夾) 및 자견단파(紫絹單)가 완전히 갖추어짐. ◎ 석방향(石方響) 5가(架)와 아울러 탁자(卓子) 추자(槌子) 주칠루금가자(朱漆縷金架子) 금과책조(錦冊條) 금도은탁자(金鍍銀鐸子) 도결(結) 자라협파(紫羅夾) 및 자견단파(紫絹單)가 완전히 갖추어짐. ◎ 비파(琵琶) 4면(面)에 금도유석봉구(金鍍鍮石鳳鉤) 주칠루금가자(朱漆縷金架子) 금도은탁자(金鍍銀鐸子) 도결(結)과 아울러 누금발자(縷金撥子) 및 자라협대(紫羅夾袋)가 완전히 갖추어짐. ◎ 오현금(五絃琴) 2면(面)에 금도유석봉구(金鍍鍮石鳳鉤) 주칠루금가자(朱漆縷金架子) 금도은탁자(金鍍銀鐸子) 도결(結)과 아울러 누금발자(縷金撥子) 및 자라협대(紫羅夾袋)가 완전히 갖추어짐. ◎ 쌍현금(雙絃琴) 4면(面)에 금도유석봉구(金鍍鍮石鳳鉤) 주칠루금가자(朱漆縷金架子) 쟁(箏) 4면(面)과 아울러 탁자(卓子)에 다 누금(縷金)되어 있고 각각의 금도은탁자(金鍍銀鐸子) 도결(結) 소금생색친현(銷金生色絃) 및 자라협대(紫羅夾袋)가 완전히 갖추어짐. ◎ 공후() 4좌(座)에 다 누금(縷金)되어 있음. 필율() 20관(官)과 <거기에 부속된> 금도은사찰전(金鍍銀絲札纏)을 각각 자라협대(紫羅夾袋) 1갑(匣)씩을 써서 담았고 홍라욕자(紅羅褥子)와 자라협복자(紫羅夾複子)가 완전히 갖추어짐. ◎ 적(笛) 20관(管), 지() 20관(管), 소(簫) 10면(面)이 주칠(朱漆) 누금(縷金)으로 장식(裝飾)되어 있고 금도은탁결자(金鍍銀鐸結子)가 있으며 각각 자라협대(紫羅夾袋) 1갑(匣)씩을 써서 담았고 홍라욕자(紅羅褥子)와 자라협복(紫羅夾複)이 완전히 갖추어짐. ◎ 포생(匏笙) 10찬()에 금도금속자(金鍍金束子)가 있으며 각각 자라협대(紫羅夾袋) 2갑(匣)씩을 써서 담았고 홍라욕자(紅羅褥子)와 자라협복(紫羅夾複)이 완전히 갖추어짐. ◎ 훈(壎) 40매(枚) 3갑(匣)에 담았음. 대고(大鼓) 1면(面), 동유편지화(桐油遍地花)로 <단장되어 있고> 아울러 자리 고추(鼓槌) 및 자견의(紫絹衣)가 완전히 갖추어짐. 장고(杖鼓) 20면(面)에 금도유석구(金鍍鍮石鉤)와 도삭(索)이 있고 아울러 장자(杖子)와 자단견파복(紫單絹複)이 완전히 갖추어짐. ◎ 박판(拍板) 2천(串)에 금도은탁결자(金鍍銀鐸結子)가 있는 것을 1갑(匣)에 담았고 홍라욕자(紅羅褥子)와 자라협복(紫羅夾複)이 완전히 갖추어짐. ◎ 곡보(曲譜) 10책(冊)에 황릉장치(黃綾裝)한 자라협파(紫羅夾)가 완전히 갖추어짐. 지결도(指訣圖) 10책(冊)에 황릉장치(黃綾裝)한 자라협파(紫羅夾)가 완전히 갖추어짐.”이라고 하였다. 이 해 10월 정묘(丁卯)에 태묘(太廟)에 친협(親)했는데 그 때 송(宋)의 신악(新樂)을 겸용(兼用)하였다. § 고취악(鼓吹樂)을 쓰는 절도(節度) 원구(丘)와 선농(先農)에 제사하고 태묘(太廟)에 제향(祭享)을 드리고 연등팔관회(燃燈八關會)<에 나가기 위해> 난가(鸞駕)가 출궁(出宮)할 때는 고취(鼓吹)는 진설(陳設)하여 놓고 연주하지 않고 돌아올 때에 가서 연주한다. 조서(詔書) 및 사로(賜勞)를 영접할 때 고취(鼓吹)를 국문(國門) 밖에 준비했다가 조서(詔書)가 오면 행렬(行列)을 인도하면서 연주하고 궁정(宮庭)에 이르러서 그친다. 옥려정궁(玉麗正宮)에서 태후(太后)를 책봉(冊封)하는데 사자(使者)를 보내 책(冊)을 인도할 때 연주하고 대관전(大觀殿)에 이르러서 그친다. 원자(元子)가 탄생(誕生)하여 왕이 조서(詔書)를 내릴 때 고취(鼓吹)를 별전문(別殿門) 밖에 준비했다가 조서(詔書)를 인도하며 연주하고 연덕궁(延德宮) 문에 이르러서 그친다. 왕태자(王太子)가 납비(納妃)하는데 왕이 조서(詔書)를 내릴 때 전문(殿門) 밖에서 준비했다가 조서(詔書)를 인도하며 연주하고 태정문(泰定門)을 나가서 여경문(麗景門)으로 들어가 여정문(麗正門)에 이르러서 그친다. 공주(公主)가 하가(下嫁)하는데 왕이 조서(詔書)를 내릴 때 전문(殿門) 밖에 진설(陳設)하 고 조서(詔書)를 인도하며 연주하고 공주(公主)의 궁문(宮門)에 이르러서 그친다. 상국(上國)의 표전(表箋)을 드릴 때 궁정(宮庭) 가운데 늘어서 표전(表箋)을 인도하며 연주하고 국문(國門) 밖에 이르러서 그친다. 노인사설(老人賜設)에는 대관전(大觀殿) 문(門) 밖에서 갈라서 왕이 각문(閣門)의 악차(幄次)까지 나올 때 의봉문(儀鳳門)의 악차(幄次)까지 돌아올 때 끝으로 좌우동락정(左右同樂亭)까지 올 때 모두 연주하고 인도자(引導者)와 수종자(隨從者)가 모두 오면 그치고 노인(老人)이 화주(花酒)를 받을 때 또 연주하고 받고 나면 그친다. 의봉문(儀鳳門)에서 사서(赦書)를 선포할 때 대관문(大觀門) 밖에 진설(陳設)하고 왕이 의봉문(儀鳳門) 상루(上樓)까지 나올 때 연주(演奏)하고 인도자(引導者)와 수종자(隨從者)가 돌아갈 때에도 역시 그렇게 한다. 장수를 파견해서 출정(出征)시켰다가 군대가 화정(畵亭)에 돌아오면 늘어세워 원수(元帥)를 인도하며 연주(演奏)하고 광화문(廣化門)까지 돌아오면 그친다. 당악(唐樂)은 고려(高麗)에서 섞어 썼기 때문에 모아서 부기(附記)한다. § 악기(樂器) 방향(方響)【철(鐵)이 열여섯 개】 , 통소(洞簫)【공(孔)이 여덟 개】 , 적(笛)【공(孔)이 여덟 개】 , 필률()【공(孔)이 아홉 개】 , 비파(琵琶)【현(絃)이 네 개】 , 아쟁(牙箏)【현(絃)이 일곱 개】 , 대쟁(大箏)【현(絃)이 열 다섯 개】 , 장고(杖鼓) 교방고(敎坊鼓) 박(拍)【여섯 매(枚)】 § 헌선도(獻仙桃) 무대(舞隊)가【검은 장삼(長衫)】 악관(樂官) 및 기(妓)【악관(樂官)은 흑색(黑色) 옷에 복두(頭)를 쓰고 기(妓)는 검은 장삼(長衫)에 붉은 띠를 띤다.】 를 거느리고 남쪽에 선다. 악관(樂官) 및 기(妓)는 두 줄을 짓고 앉는다. 기(妓) 한 사람이 왕모(王母)가 되고 그 좌우(左右)에 각각 한 사람씩이 두 협(挾)이 되어 한줄로 가로 늘어서고 봉개(奉蓋) 세 사람이 그 뒤에 서고 인인장(引人丈) 두 사람 봉선(鳳扇) 두 사람 작선(雀扇) 두 사람 미선(尾扇) 두 사람이 좌우(左右)로 갈라서고 봉정절(奉旌節) 여덟 사람이 1대(隊)마다의 사이에 선다. 악관(樂官)이 회팔선인자(會八仙引子)를 연주하면 봉죽간자(奉竹竿子) 두 사람이 먼저 무도(舞蹈)하면서 들어와 좌우(左右)로 갈라섰다가 음악이 멎으면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아득하게 먼 구대(龜臺)에 있다가 봉궐(鳳闕)에 내조(來朝)하여 천년(千年)의 아름다운 열매를 받들고 만복(萬福)의 좋은 상서를 바치려 감히 신안(宸顔)을 범하옵고 삼가 구호(口號)를 드리나이다. 끝나고는 좌우(左右)로 마주보고 선다. 악관(樂官)이 또 회팔선인자(會八仙引子)를 연주하면 봉위의(奉威儀) 18명의 사람이 앞서와 같이 무도(舞蹈)하면서 들어와 자리잡고 선다. 음악이 멎으면 악관(樂官) 한 사람이 선도반(仙桃盤)을 받들어 기(妓) 한 사람【연소자(年少者)를 택한다.】 에게 주고 기(妓)는 그것을 왕모(王母)에게 받들어 전해 준다. 왕모(王母)는 그 반(盤)을 받들고 다음과 같은 헌선도조(獻仙桃調)에 의한 원소가회사(元宵嘉會詞)를 창(唱)한다. 원소(元宵)의 좋은 연회(宴會)에 봄 경치 즐기니 성대한 행사 있던 당년 상양궁(上陽宮) 생각 납니다 요(堯) 임금 이마에 기쁨 띠고 하늘의 북극(北極) 바라보시고 순(舜) 임금 옷으로 깊이 궁전 중앙에 팔장 끼고 계신다 환성은 호탕하게 소곡(韶曲)에 뒤따르고 화기(和氣)는 향기롭게 어향(御香)의 내음 풍긴다. 장관이룬 태평에 어떻게 보답할 건가 반도(蟠桃) 한 떨기로 천(千)가지 상서 바치나이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헌천수만(獻天壽慢)을 연주하고 왕모(王母)와 <협(挾)> 세 사람은 다음과 같은 일난풍화사(日暖風和詞)를 창(唱)한다.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러워 봄날 더욱 느린데 이것이 바로 태평시절 우리는 봉래섬에서 용모 가다듬고 내려와서 단지(丹)에 하례(賀禮)드립니다 다행히 등석(燈夕)을 만나니 참으로 좋은 연회(宴會) 천위(天威)에 가까이 할 수있게 됨음 큰 기쁨입니다. 신선의 수명은 한정없이 먼 것이오니 임금님께 천년(千年) 만년(萬年)의 장수(長壽)를 바치나이다 끝나면 악관(樂官)은 그대로 헌천수령(獻天壽令)을 연주한다. 낭원(苑)은 인간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옵지마는 성덕(聖德)을 듣자옵기 더욱 높사와 서쪽에서 선경(仙境)을 떠난 구름 뜬 하늘 내려와 천년(千年)의 영도(靈桃)를 바치나이다 황령(皇齡)이 하늘과 같이 오래 되옵기를 축수드리고 또 무도(舞蹈)하여 성조(聖朝)에 하례(賀禮)드리옵니다 멀고 먼 나라의 사신 사방에서 번갈아 내조(來朝)하나니 단정히 팔장끼고 계시면서 영원토록 나라를 보존하시리로다 끝나면 악관(樂官)은 또 금잔자만(金盞子慢)를 연주하고 왕모(王母)는 대열(隊列)에서 벗어나지 않고 빙빙 돌며 춤을 춘다. 끝나면 음악이 멎고 왕모(王母)가 좀 앞으로 나가서 옷소매를 올려들고 다음과 같은 여일서장사(麗日舒長詞)를 창(唱)한다. 화려한 날 활짝하니 긴데 바로 싱싱한 서기(瑞氣)가 신경(神京)에 가득 차 있다 구중(九重) 천상(天上) 오색(五色) 구름 열린 곳에 단청한 누각 우뚝우뚝 치솟아 있는데 성대한 연회 막 시작되어 비단 휘장 수놓은 막이 서로 엇갈려 늘어져 있네 상원(上元) 가절(佳節)에 임금과 신하 같이 모여서 함께 태평 성대 즐기는구나. 넓은 뜰에 비단옷 <두른 미인(美人)> 이리저리 오가고 생가대(笙歌隊)에서 <울려나는> 곡조 모두다 새롭구나 봉래(蓬萊)의 궁전 신선의 경치로다. 호탕한 춘광(春光) 왕성(王城)에 감돌고 안개 걷고 비 그친 밤하늘은 깨끗함이 더하네 끝나면 물러나 선다. 악관(樂官)이 금자잔령(金子盞令)【최자(子)】 을 연주하고 두 협(挾)이 춤을 추는데 춤추며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났다 하고 자리에 돌아온다. 음악이 멎으면 두 협(挾)이 춤을 추면서 다음과 같은 동풍보난사(東風報暖詞)를 창(唱)한다. 동풍(東風)에 실려오는 따사로운 기운 도처에 가기(嘉氣) 부드럽고 흥겨워 높고높게 봉궐(鳳闕) 일어서 있어 오산(鼇山)은 만 길토록 다투어 구름 끝에 치솟아 있네 이원(梨園)의 제자(弟子)들 연주하는 새 가락 그 반은 훈(塤)과 지()인데 연석(宴席)에 가득차 있어 배불리 먹고 마셔 취흥이 도도해진 대관들 녹명시(鹿鳴詩)로 송가(頌歌)부른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서자고만(瑞慢)을 세차례 연주한다. 끝나면 왕모(王母)가 좀 앞으로 나가서 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를 창(唱)한다. 해동(海東) 오늘 태평한 날에 용운(龍雲)과 경회(慶會)의 잔치 기뻐서 바라보나니 미선(尾扇) 갓 펴지니 보좌(座) 밝아지고 그림 발 높이 말아올린데 상서로운 기운 어려있구나 먼 외국의 사신들 번갈아 서문(瑞門) 밖에 모여들어 옥백(玉帛)이 전폐(殿陛) 앞에 그득이 놓여 있다 첩(妾)이 천만세(千萬世)의 황령(皇齡)을 바치었으니 봉인(封人)이 무엇하러 또 장수(長壽)를 빌 것인가 끝나면 자기 위치에 돌아온다. 악관(樂官)이 서자고만(瑞慢)【최자(子)】 를 연주하고 두 협(挾)이 춤추며 나란히 가는데 춤추며 앞으로 나갔다가 춤추며 뒤로 물러나와 자기 위치에 돌아오고 두 협(挾)이 춤추며 북포동완사(北暴東頑詞)를 창(唱)한다. 북쪽의 포학(暴虐)한 종족과 동쪽의 완악(頑惡)한 족속 성심으로 복종하여 의(義)를 사모하고 다투어 찾아오거니와 나날이 새로워지는 임금의 덕(德) 더욱 밝아지나니 임금의 덕(德) 영가(詠歌)하는 소리 거리에 가득하다 태평세월 구가하니 나라 안은 평화로와 백성과 더불어 춘대(春臺)에서 연악(燕樂) 즐겨하시누나 한해에 한 번 상원(上元) 돌아오나니 만년배(萬年杯)에 취하기를 원하나이다 악관(樂官)이 천년만세인자(千年萬歲引子)를 연주하면 봉위의(奉威儀) 18 사람이 빙글빙글 돌면서 세 바퀴를 춤추고 물러나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음악이 멎으면 봉죽간자(奉竹竿子)가 좀 앞으로 나가서 치어(致語)하기를, 노을 색 옷자락 여미고서 잠시 물러나 구름 길 지향하여 돌아가려 하나이다 계전(階前)에 재배(再拜)하와 서로 이끌고 떠나가렵니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회팔선인자(會八仙引子)를 연주하고 죽간자(竹竿子)가 무도(舞蹈)하면서 물러나고 봉개(奉蓋)와 왕모(王母)<와 그 두 협(挾)> 각각 세 사람 역시 뒤따라서 무도(舞蹈)하면서 물러나고 봉위의(奉威儀) 18명 역시 그렇게 한다. § 수연장(壽延長) 무대(舞隊) 악관(樂官) 및 기(妓) 의관(衣冠)과 행차(行次)는 앞의 의례(儀例)와 같다. 악관(樂官)이 연대청인자(宴大淸引子)를 연주하면 기(妓) 두 사람과 봉죽간자(奉竹竿子)가 족도(足蹈)하면서 나가 앞에 서고 음악이 멎으면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무지개 어려 상스러이 궁전 둘렀네 서기(瑞氣) 띤 구름과 노을 성광(聖光) 비춥니다 만방(萬方)에서 귀순해 와서 손을 맞잡고 이원(梨園)의 악부(樂部)에선 중강(中腔)을 연주합니다 끝나면 좌우(左右)으로 갈라선다. 악관(樂官)은 또 연대청인자(宴大淸引子)를 연주하고 기(妓) 16 사람이 4대(隊)로 나누어 한 대(隊)가 네 사람씩 되어 <네 줄로> 나란히 줄지어 무도(舞蹈)하면서 앞으로 나가 자리잡고 서서 중강령(中腔令)의 다음과 같은 동운영채색사(雲暎彩色詞)를 창(唱)한다. 붉은 구름과 환하게 빛나는 빛깔 색채 서로 비추는데 어좌(御座) 중천(中天)에 솟아있고 잠영(簪纓) 빽빽이 모여 있다 만가지 꽃 비단같이 깔려있어 높은 뜰에 가득 차고 경사로 마련된 잔치에 환성소리 드높다. 천년(千年)의 기초다져 이룩된 공덕에 즐거워하고 한 마음으로 모여 상원(上元) 축하하며 규풍(珪豊)을 치켜든다. 보상(寶觴)은 자주 돌고 의기있는 무리 영걸하다. 만만년(萬萬年) 두고두고 승평(昇平)을 즐기리 악관(樂官)이 중강령(中腔令)을 연주하면 각 대(隊)가 빙글빙글 돌면서 세 바퀴를 춤춘다. 끝나면 각 대(隊)의 첫 한 사람씩이 대별(隊別)로 갈라 서서 네 사람이 되어 혹은 마주 보고 혹은 등지고 하며 춤을 추고 끝나면 물러나 앉아서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땅을 짚고 있는다. 각 대(隊)의 둘째 사람이 앞의 의례(儀例)와 같이 하고 끝나면 각 대(隊)의 셋째 사람 역시 그렇게 하고 각 대(隊)의 넷째 사람 역시 그렇게 하여 한 차례씩 다 하고나서 끝내고 앞의 의례(儀例)같이 북쪽을 향해서 선다. 악관(樂官)이 파자령(破字令)을 연주하면 각 대(隊)의 네 사람이 대열에서 나오지 않고 한번 마주보고 한 번 등지고 하며 춤추고 옷소매를 치켜들고 다음과 같은 파자령(破字令)의 청춘옥전사(靑春玉殿詞)를 창(唱)한다. 한창 봄 옥전(玉殿)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가늘게 연주하는 소소(簫韶)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진다 서기(瑞氣)에 둘러싸여 지나는 구름따라 흐르고 서기(瑞氣) 띤 해 단의(丹)에 밝게 비치고 인자한 은덕 널리 펴내는 궁궐 원근의 백성 노래소리와 춤추는 모양 듣기 원하옵나이다 만만년(萬萬年) 두고두고 이런 잔치 보오리다 악관(樂官)이 중강령(中腔令)을 연주하면 죽간자(竹竿子) 두 사람이 좀 앞으로 나가서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태평시절 좋은 풍광(風光) 옥전(玉殿)은 깊고 깊어 햇살도 길어져 꽃<내음> 수향(壽香)에 섞여 훈향(薰香) 풍기고 하늘은 좋은 복록(福祿)을 금상(金觴)에 채워줍니다 3변(邊)의 <백성들> 심신(心身)이 안정되매 창 내던지고 남극(南極)의 밝은 별 상서로운 조짐 이로다. 성조(聖朝)에 즐거운 일 오래도록 기리고저 이원(梨園)에선 새 가락으로 중강(中腔) 연주합니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또 중강령(中腔令)을 연주하고 앞의 의례(儀禮)와 같이 족도(足蹈)하면서 물러나고 각 대(隊)의 네 사람 역시 뒤따라서 무도(舞蹈)하면서 물러난다. § 오양선(五羊仙) 무대(舞隊)【검은 장삼(長衫)】 는 악관(樂官) 및 기(妓)【악관(樂官)은 주의(朱衣) 기(妓)는 단장(丹粧)】 를 데리고 남쪽에 서고 악관(樂官)은 두 줄을 지어서 앉는다. 기(妓) 1인이 왕모(王母)가 되고 그 좌우에 각각 2인이 4협(挾)이 되어 가지런히 횡렬(橫列)을 짓는다. 봉개(奉蓋) 5인이 그 뒤에 서고 인인장(引人丈) 2인 봉선(鳳扇) 2인 작선(雀扇) 2인 미선(尾扇) 2인이 좌우로 갈라서고 봉정절(奉旌節) 8인이 한 무대(舞隊)마다의 사이에 선다. 자리잡고 서면 무대(舞隊)에서 최박(催拍)을 울린다. 악관(樂官)이 오운개서조인자(五雲開瑞朝引子)를 연주하면 봉죽간자(奉竹竿子) 2인이 먼저 들어와 좌우로 갈라서서 음악이 멎으면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구름은 곡령(鵠嶺)에서 생겨나고 해는 오산(鼇山)에서 굴러갑니다. 양(羊)수레 탄 진선(眞仙)과 난참(鸞)을 맨 수레를 탄 상려(上侶)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아름다운 연주에 봉황이 날아 오르고 무희(舞姬)의 화려한 자태는 나르는 기러기보다 묘치(妙致)가 있습니다 관용을 베푸사 무대(舞隊)의 등장을 허락하여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끝나면 마주선다. ◎ 봉위의(奉威儀) 18인이 앞으로 나가 좌우으로 갈라서고 왕모(王母)<와 그 협> 5인과 봉개(奉蓋) 5인이 앞으로 나가 자리잡고 서면 왕모(王母)가 좀 앞으로 나가서 다음과 같은 치어(致語)를 한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 오직 송도(頌禱)하는 마음을 나타내고저 <이 장면과 같은> 융성함이 오래도록 이어져 <임금님께 내려진> 복의 영원함을 축수하고자 합니다. 첩(妾) 등의 감읍함이 다함이 없습니다. 끝나면 물러난다. ◎ 악관(樂官)이 또 오운개서조인자(五雲開瑞朝引子)를 연주하면 왕모<와 그 협> 5인이 손을 여미고 발을 구르며 앞으로 나와 선다. 악관이 만엽치요도(萬葉熾瑤圖)를 연주하면 왕모(王母)와 그 협(挾) 5인이 가지런히 횡렬로 서서 춤을 춘다. 왕모(王母)가 왼쪽을 향해서 춤을 추면 왼쪽의 협(挾) 2인은 그들과 마주보고 춤을 추고 오른쪽 협(挾) 2인은 뒤에서 춤을 춘다. 왕모(王母)가 오른쪽을 향해서 춤을 추면 오른쪽의 협(挾) 2인은 그들과 마주보고 춤을 추고 왼쪽 협(挾) 2인은 뒤에서 춤을 춘다. ◎ 춤이 끝나면 악관(樂官)이 최자령(子令)을 연주하고 왕모(王母)는 춤을 추면서 가운데에 서고 나머지 4인은 춤을 추면서 그 4 귀에 선다. 악관(樂官)이 중강령(中腔令)을 연주하면 왕모(王母)와 협(挾) 5인은 대열에서 나가지 않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다. 끝나면 다음과 같은 보허자령(步虛子令)의 벽연롱효사(碧烟籠曉詞)를 창(唱)한다. 푸른 안개 새벽 <하늘에> 자욱한데 바다물결 한가하고 강가의 두어개 산봉우리 차갑구나 패환(佩環) 소리속에서 기이한 향기 인간 세상에 나부껴 떨어지는데 강절(絳節) 멈춘다 오색(五色) 구름 끝에 잘 여문 벼 상서로움 가리키네 붉은 얼굴에는 가득한 웃음 구중(九重) 궁궐 바라보며 높은 하늘 향해 세 차례 축수하기를, 만만년(萬萬年) 두고두고 남산(南山) 맞보고 솟아 있을지어다 끝나면 급박악(急拍樂)이 뒤따른다. 끝나면 또 보허자령(步虛子令)【중강(中腔)】 을 연주하고 왕모(王母)가 앞 왼쪽의 협(挾)을 향해 춤추면 앞 왼쪽의 협(挾)은 빙글빙글 돌면서 <왕모(王母)와> 맞춤을 춘다. 왕모(王母)가 앞 오른쪽의 협(挾)을 향하면 역시 그렇게 하고 뒤 왼쪽의 협(挾)을 향하면 역시 그렇게 한다. 춤을 끝내고 자리로 가면 악관(樂官)은 그대로 중강령(中腔令)을 연주한다. ◎ 봉위의(奉威儀) 18인이 중강령(中腔令)의 동운영채색사(雲映彩色詞)를 노래하면서 무도(舞蹈)하며 세 바퀴 빙글빙글 돌고 창(唱)이 끝나면 자리로 물러간다. 악관(樂官)이 파자령(破字令)을 연주하면 왕모(王母) 등 5인이 춤을 추고 끝나면 옷소매를 치켜 들고 다음과 같은 파자령(破字令)의 표묘삼산사(三山詞)를 창(唱)한다. 아득히 먼 삼선도(三仙島) 십만년에 비로소 하루가 지나는구나 춘풍(春風)이 벽도화(碧桃花) 모두 피워 동군(東君)을 위해 한바탕 웃음 지운다 상서로운 회오리바람 향긋한 기운 끌어와 장수(長壽)를 비네 하늘에 뒤져 늙지 말라고 상서로운 안개 푸른 기운 흩어내고 한마디 긴 휘파람 소리 ◎ 끝나면 악관(樂官)이 중강령(中腔令)을 연주하고 죽간자(竹竿子)는 조금 앞으로 나가 서서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노래 맑고 또렷한데 학의 춤 묘미롭네 회란(回鸞)은 안개 속에 가라앉아 자꾸만 울려대고 붉은 해 저물어 저멀리 학의 울음 흰 구름 깊은 곳에서 들려옵니다 계전(階前)에서 재배(再拜)하옵고 서로 이끌고 떠나렵니다 끝나면 무도(舞蹈)하면서 물러난다. ◎ 18인이 마주보고 좀 앞으로 나왔다가 무도(舞蹈)하면서 물러난다. 왕모(王母) 등 5인이 가지런히 가로 늘어서서 왕모(王母)가 좀 앞으로 나가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온 나라의 티끌 깨끗이 사라지고 승평(昇平)의 교화(敎化)에 함께 감동합니다 요대(瑤臺)길 멀어 오래 놀기 어려워 급히 놀이를 거두려하오니 엎디어 지시를 기다리옵니다 <끝나면> 무도(舞蹈)하면서 물러나고 봉개(奉蓋) 5인이 역시 뒤따라 무도(舞蹈)하면서 물러난다. § 포구악(抛毬樂) ◎ 무대(舞隊)【검은 장삼(長衫)】 가 악관(樂官) 및 기(妓)【악관(樂官)은 주의(朱衣) 기(妓)는 단장(丹粧)】 를 이끌고 남동 뒤쪽에 서서 두 줄을 짓고 앉는다. 악관(樂官)이 절화령(折花令)을 연주하면 기(妓) 2인이 죽간자(竹竿子)를 치켜들고 앞에 섰다가 음악이 멎으면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아악(雅樂)이 미려(美麗)한 경치 속에 울려나는데 아리따운 기동(妓童)들 뜰에 떼지어 늘어서서 다투어 아름다운 자태로 함께 덩실거리는 춤을 바치옵니다 같이하여 즐거움 나누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끝나면 좌우로 갈라선다. ◎ 악관(樂官)이 또 절화령(折花令)을 연주하면 기(妓) 12인이 좌우 2대(隊)로 갈려 한 대(隊)에 6인씩으로 나누어 춤추며 죽간자(竹竿子) 뒤로 들어와 네 대(隊)로갈라섰다가 음악이 멎으면 다음과 같은 절화령(折花令)의 삼대사(三臺詞)를 창(唱)한다. 푸른 장막 화려한 잔치자리 서로 같이 하니 그 즐거움이 지극하구나 옷소매 치켜들고 빙글빙글 돌고 비단옷에 미기(美妓) 음악에 맞춰 함께 노래부르니 <그 소리> 맑게 넘쳐 흐른다 경옥같은 술 금준(金尊)에 흘러 넘치니 사양말고 마음껏 취하여 긴 날 오래오래 끝없이 놀지니라 좋은 빈객 반가우니 다 함께 즐기시라. 끝나면 악관(樂官)이 또 절화령(折花令)을 연주하고 무대(舞隊) 첫머리의 기(妓) 두 사람이 맞춤을 추며 화병 앞으로 나와 꽃을 꺽는 형상을 하고 춤추며 물러난다. ◎ 악관(樂官)이 수룡금령(水龍令)을 연주하면 두 무대(舞隊)의 12인이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고 끝나면 다음과 같은 수룡금령(水龍令)의 동천경색사(洞天景色詞)를 창(唱)한다. 동천(洞天)의 경치는 사철 봄이라 연하게 붉은 꽃 엷은 흰 꽃들 가벼운 꽃받침에 피어나 있다 경옥 자리 누르고 있는 쇠향로 연기 진하여 향기는 비단 장막에 엉킨다 아리따운 신선 아름다운 가무 바치고 꽃잡고 서로 언약 채색 구름에 달 굴러가는데 붉은 실 그물 느슨하다 마음대로 담소하는 포구악(抛毬樂) 수놓은 소매 바람에 나부껴 봉새처럼 드날리고 별같은 눈동자 버들같은 허리 첫 알 이겨 울리는 환호 가까이하니 꽃같은 광채 아름답다 만좌의 좋은 빈객들 신선의 음악 기뻐 듣고 서로 술잔 전한다 용음(龍吟) 끝나려 하는데 채색 구름 나부끼며 서로 이끌고 떠나 태공(太空)으로 돌아간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소포구악령(小抛毬樂令)을 연주하고 왼쪽 무대(舞隊) 여섯 사람이 춤을 추는데 한 번은 앞을 보고 한 번은 뒤를 보고 하며 춘다. 끝나면 일제히 선다. ◎ 음악이 끝나면 전 무대(全舞隊)가 다음과 같은 소포구악령(小抛毬樂令)의 양항화규사(兩行花竅詞)를 창(唱)한다. 두 줄로 선 미희들 풍류안 공넣기에 열중하고 금(金) 새겨 넣은 깁 띠에 포구(抛毬) 매어 달았다 옥같은 부드러운 손 붉은 실 그물 높이 가리키고 모두들 첫 승 거두려 애쓰는구나 끝나면 무대(舞隊)의 첫 한 사람이 구문(毬門) 앞으로 나가 다음과 같은 창(唱)을 한다. 뜰에 가득한 소고(簫鼓)<의 풍악 소리> 나는 공에 모여들고 실 장대 붉은 그물 대두(臺頭)에 매어있다. 포구희(抛毬戱)를 하여 맞으면 전무대(全舞隊)가 큰 절을 한다. 끝나면 오른쪽 무대(舞隊)의 여섯 사람이 춤을 추는데 한 번 앞을 보고 한번 뒤를 보고 하며 춤을 춘다. 끝나면 일제히 일어서고 음악이 멎으면 소포구악사(小抛毬樂詞)를 창(唱)한다. 끝나면 무대(舞隊) 첫 한 사람이 구문(毬門) 앞으로 나가 앞의 사(詞)를 창하고는 포구희(抛毬戱)를 하여 맞으면 전무대(全舞隊)가 큰 절을 한다. ◎ 끝나면 왼쪽 두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와 같이 하고 다음과 같은 창(唱)을 한다. 노래소리 잦은 가운데 높이 쳐든 손 공 던지면 두 줄의 사람들 회주(回籌) 보기 기다린다 끝나면 오른쪽 두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와 같이 하고 앞의 사(詞)를 창(唱)한다. ◎ 끝나면 왼쪽 세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 같이 하고 다음과 같은 창(唱)을 한다. 오색 꽃 복판에서 포구(抛毬) 보는데 향기 풍기는 볼 붉고 연하며 버들 안개 자욱하구나 끝나면 오른쪽 세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 같이 하고 앞의 사(詞)를 창(唱)한다. ◎ 끝나면 왼쪽 네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같이 하고 다음과 같은 창(唱)을 한다. 맑은 노래와 연이어 치는 북소리 재촉하는데 이번에 제삼주(第三籌)는 사양하지 않으리 끝나면 오른쪽 네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같이 하고 다음과 같은 창(唱)을 한다. 소고(簫鼓) 소리 너무 재촉하지 마시라 채색 공 높고 낮은 것 가려내기 어려워라 끝나면 오른쪽 다섯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같이 하고 앞의 사(詞)를 창(唱)한다. ◎ 끝나면 왼쪽 여섯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같이 하여 다음과 같은 창(唱)을 한다. 두렵기는 연지와 분으로 고루 단장한 얼굴을 붓끝으로 문질러 더럽히면 어쩌나 끝나면 오른쪽 여섯 사람이 위의 의례(儀例)같이 하고 앞의 사(詞)를 창(唱)한다. ◎ 끝나면 악관(樂官)이 청평령(淸平令)을 연주하고 좌우의 무대(舞隊)는 북쪽을 향해 서서 파자(破子)를 춘다. 끝나면 다음과 같은 창(唱)을 한다. 뜰에 가득한 비단옷 차림한 미녀(美女)들 그 빛깔 찬란하다 맑은아침 단청 누각에 잔치 벌였네 갓 피어난 연꽃같이 막 난만하구나 금준(金尊) 자주 권하시오 사양마시라 가까이 보니 버들같은 허리 꺾일 듯 하늘거려 다시 보니 춤추며 도는 것이 흐르는 눈과 같다. 지금은 기쁨에 겨워 즐겁게 노는 때이니 잠시 환희에 찬 노래 소리 멈추라 하지 마시오 끝나면 악관(樂官)이 소포구악령(小抛毬樂令)을 연주한다. ◎ 죽간자(竹竿子) 2인이 좀 앞으로 나와 음악이 멎으면 다음과 같은 구호치어(口號致語)를 한다. 온갖 우미[妙致]한 춤 비연(飛燕)의 기묘함이요 몇 가락 맑은 노래는 다음의 좋은 기회 기다립니다. 계전(階前)에 재배(再拜)하옵고 서로 이끌고 물러가려 하옵니다 끝나면 물러나고 좌우(左右) 무대(舞隊) 열두 사람이 차례로 춤추며 물러난다. § 연화대(蓮花臺) ◎ 무대(舞隊) 악관(樂官) 및 기(妓)의 의관(衣冠)과 행차(行次)는 앞의 의례(儀例)와 같다. 앞에다 두 개의 합립(蛤笠)을 놓고 두 동녀(童女)가 가지런히 가로 선다. 악관(樂官)이 오운개서조인자(五雲開瑞朝引子)를 연주하면 기(妓) 2인이 죽간자(竹竿子)를 치켜들고 좌우로 갈려서 앞으로 들어간다. 동녀(童女)가 앉고 음악이 멎으면 죽간자(竹竿子)가 다음과 같은 구호(口號)를 한다. 무늬 비단 자리 광채나 화려하고 한낮에 펼쳐지니 천 가지 즐거운 일 동시에 일어나네 연꽃 속에서 피어나온 아름다운 자태 절묘한 춤과 어여쁜 노래 비할 바가 없네. 끝나면 물러나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백학자(白鶴子)를 연주하고 끝나면 왼쪽 동녀(童女)가 일어나서 오른쪽 동녀(童女)와 함께 다음과 같은 미신사(微臣詞)를 창(唱)한다. 봉래(蓬萊)에서 살다 내려와 연꽃술에 태어났사옵니다 임금님의 덕화(德化)에 감동한 바 있사와 여기에서 가무(歌舞)로 한 때 즐거움을 드리려 합니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헌천수령(獻天壽令)【만(慢)】 을 연주하고 왼쪽 동녀(童女)가 좌우쪽 손으로 세 차례 무릎을 꿇으며 춤을 춘다. ◎ 끝나고 음악이 멎으면 두 동녀(童女)가 헌천수령(獻天壽令)의 일난풍화사(日暖風和詞)를 창(唱)한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최자령(子令)을 연주하고 왼쪽 동녀(童女)가 춤을 춘다. 끝나면 동녀(童女)가 최자령(子令)의 낭원인한사(苑人閒詞)를 창(唱)한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삼대령(三臺令)을 연주하고 왼쪽 동녀(童女)가 춤춘다. 끝나면 악관(樂官)이 하성조(賀聖朝)를 연주하고 왼쪽이 먼저 춤춘다. 끝나 아악(雅樂)이 끝나려 하여 배례(拜禮)하고 화려한 자리를 하직합니다 신선 수레는 돌아가려고 멀리 구름길을 바라봅니다. 끝나면 물러나고 두 동녀(童女)는 재배(再拜)하고 물러난다. ◎ 연화대(蓮花臺)는 본래 탁발위(拓拔魏)에서 나왔다. 두 여동을 쓰는데 의복과 모자를 조촐하게 차린다. 모자에는 쇠방울을 달아서 장단에 맞춰서 움직이면 소리가난다. 그들이 나타나는데 두 연꽃 속에 감춰두었다가 꽃이 터진 후에 보이게 한다. 춤 가운데의 아묘(雅妙)한 것으로 그것이 전해 내려온지가 오래되었다. § 석노교(惜奴嬌)【곡파(曲破)】 봄은 황도(皇都)에 일찍이 찾아와 궁 안 늪 얼음 풀리고 동풍은 경쾌하고 따사로와 매화꽃 향기 이리저리 날리네 버들은 봄색을 희롱하고 상서로운 안개 엷게 퍼져있네 지금 원소(元宵)를 맞아 백성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 하니 허물없는 정회가 어우러지네 무엇을 아끼랴 서로 맞은 정다운 이 곳 병장(兵仗) 움직이는 일 없고 동군(東君)이 맡겨져 온통 <아름다운> 풍광 생겨 오릉(五陵)의 한산하던 것 차지하여 버렸다 마구 천금(千金) 가지고 원소(元宵)의 오야(五夜) 계속 즐기고 또 봄 저녁 놀고 새운다. 묻노니 꽃등 금문고리 세상에 드물어 동천(洞天)에 봉영(蓬瀛)의 선계(仙界) 휙 스쳐가니 다만 오늘밤이 짧을까 두렵도다. 황제의 고장 자랑스럽거니와 온갖 생령이 다 모여 영원히 자맥(紫陌)의 청루(靑樓) 지키고 재부(財富)가 풍성하기도 하다. 사해(四海)는 태평하고 문무(文武)의 공훈 세상에 으뜸이니 성스러운 임금과 현량한 보필에 힘입어 그토록 다스려졌는도다 화창한 날씨에 풍광도 새로워 가이 운치가 있다. 늘어선 여러 공경(公卿) <임금이> 베푸시는 잔치가 곧 시작되도다 상원(上元)<의 행사(行事)> 법전(法典)대로 따라 하니 전례없이 훌륭하고 그 영광 무한하다. 붉은 하늘 바라보니 용향(龍香)이 훨훨 나부끼고 있다 경사스러운 구름 일고 이슬 젖어 가벼운 한기 아직은 찬데 온통 노니는 자들 재자 가인들이라 거리의 먼지 적시워지고 삼성(參星)은 멀어졌다 웃으면서 가리키며 채찍 치켜들고 “고문(高門)의 성대한 연회 얼마나 많은가”하여 오늘같이 좋은 저녁 새도록 놀자 맹세 하였네 번영하는 세월 더 없이 잘 다스려져 새둥우리도 볼 수 있다 낭원(苑)의 쇠문 문짝 열리고. 촛불 밤새 켜져 있으니 어찌 사람을 막고 필하고 하는 것이랴 컴컴한 먼지는 말을 따라오고 밝은 달은 끝없이 사람들 쫓아온다 노래하면서 농리(李) 노래 같이 부르고 그칠 줄을 모른다 수레바퀴 달리고 굴레 끌러놓아 취우(翠羽)와 화전(花鈿) 서로 섞여 짜여져 아름다운 분을 나란히 모시고 여기 저기 걸어다니며 두루 다 놀고 다닌다 바람에 날리는 기이한 구름의 모양 향기는 이리저리 품속과 소매 감돈다 두루 둘러보니 옥 자리 깔고 수 휘장 친 곳 많기도 하다 다시 없는 좋은 경치 달빛은 하늘거려 거리 끝까지 내리 비치는데 채색 거북 매달려 백 길 높은 곳에 솟아있네 봉새같이 날고 용처럼 뛰어올라 눈에 가득 오색 빛이 어린다. 맑은 하늘에 남은 노을 빛 흩어져 무늬놓은 비단 이룬다 난초기름 점점 타올라 푸른 연기 가득 땅을 휩싸고 송이송이 대궐의 꽃들 어지럽게 늘렸고 온 백성 우러러 보는데 앞으로 가는 구름에 용향(龍香)의 가느다란 연기 함께 머리 조아리고 같이 즐기나니 민중과 함께 같이 만나는도다 누각은 하늘<에 서 있는> 궁전 안에 솟아있는데 오복(五福) 갖춰 하늘 한 가운데에 상서 내린다 여러 가지 악기 소리 함께 어우러지니 맑고 간드러진 소리 하늘 밖까지 울려 퍼진다 만무(萬舞) 나즉이 선회하며 돌아가고 깁옷 끌려간다 경각지간에 수레바퀴 돌려서 돌아가버리려니와 마음 속으로 천의(天意)에 감격한다 다행히 희대(熙臺)에 늘어서 동천(洞天)으로 멀리멀리 성재(聖梓)를 바라본다 <원소(元宵)의> 오야(五夜)는 화서(華胥) 열두 대문 자물통 다 열려도 성경(聖景) 만나기 어려움 견줄데 없다 인간의 한해 쉬이 지나는거라 천천히 머물러 재배(再拜)하니 오색(五色) 구름 뻗어난다 § 만년환(萬年歡)【만(慢)】 금원(禁苑) 갓 개었는데 만년(萬年) 묵은 나무가지 위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 간드러지기도 하다 아롱진 구름은 궁전(宮殿)에 연닿았고 높이 뜬 해는 처마와 기둥에 밝게 비친다 발 걷어 올리니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 아른아른 피어나는 쇠향로 향기 따뜻하고 연기 가벼운데 전해 외치기를, “천자께서 납시었다” 두 줄로 늘어서 손맞잡고 인도하는 관원들 보라 삼청(三淸)에 잔치 벌어진 것을 맑은 보배술 옥으로 빚은 잔 외뿔소 뿔잔에 가득 담겼네 난만한 방향(芳香) 풍기는 꽃 관비녀 비스듬히 봄날을 즐긴다 소소구주(簫韶九奏) 있어 온갖 재주 다 부리며 백희(百戱)를 다 상연(上演)한다 우리 황제께서 원하시는 건 영원토록 나라의 큰 계획 지켜져 사방이 길이 승평 즐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성군(聖君)의 다스림과 교화(敎化)에 감복하여 사방 변경에 봉화 일지않네 태평시절이라 조야(朝野)에 정전(征戰) 없어 나라 안은 태평성대 우순풍조(雨順風調)로다. 노래소리 시끄럽고 소소(簫韶) 구성(九成)에 균천악(鈞天樂) 연주한다 임금님의 장수(長壽) 남산(南山)같기 원해서 다시 연년악(延年樂)을 연주한다 곱고 가는 맵시에 가벼운 몸놀림 내양(內樣)을 본따 깊이깊이 빗어넘겨 마치 오봉(五鳳)과 쌍란(雙鸞)이 마주보고 춤추는 듯 허리띠 따라 이리저리 옥가루 움직인다 꾀꼬리 장막 머리에 가득한 꽃 푸른 버들 떨어진 황금꽃 깔린 섬돌 문대는 것 보인다 뜰 안 가득 가지 가지 아름다운 곡조 울려퍼지는데 그 누가 북을 던지는가 춤추는 난새 쌍쌍이 날고 동물 형상 향로에 나즉히 흩어지는 연기 상서로운 모습에 가느다란 연기 소매자락 훨훨 날리며 느릿느릿 박자따라 가락에 맞춰 요지(瑤池)를 건너간다. 새 악장(樂章)으로 연주하는 가락 수놓은 옷 여미고 꿇어앉아 색동 소매로 경옥 술잔높이 받들고 달 속의 단계(丹桂) 가리키며 봄철은 보내버리기 아쉬워 신선같은 장수(長壽) 하시라 상서롭기 축수한다 § 억취소(憶吹簫)【만(慢)】 서리같이 하얀 깁 수건에 피 적시우고 고운 비단 옷에 눈물 얼룩지우며 그녀는 막 날더러 떠나가라고 하더니라 어느새 사교(斜橋) 가의 저물녘 버들과 곡수(曲水) 위로 돌아가는 끝없는 구름 흐린 달빛 높은 바람에 이슬도 차 나만 이제 외로운 성읍(城邑)에 도착하였구나 강남(江南) 길은 멀기만 하여 오늘밤 이 길에 나그네는 시름으로 야위고 수심 깊어져 마음만 상하네 오래도록 배인 떨궈진 분(粉)은 부질없이 덤덤하며 남은 자욱에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 여기까지 와서 생각하니 무정한 것은 바로 나 강물은 더욱 무정하여서 나로 하여금 그림배 재촉하여 하루에 사흘길이나 와버리게 하였다 속 태우지않으리 새봄에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니 § 낙양춘(洛陽春) 사창(紗窓)이 밝기도 전에 꾀꼬리 소리 들려온다 혜초 피우는 향로에 남은 향줄기 다 타버렸다 비단 병풍 깁 방장으로 봄 추위 스며드니 간밤중 삼경(三更)에 비가 내렸다. 수놓은 발에 한가이 기대어 있자니 가벼운 버들솜 바람에 날리운다 눈쌀 찌푸리고 마음 갈피 못 잡아 꽃 꺾어들고 눈물 씻고서 돌아오는 큰 기러기 향해 떠나온 곳에서 내 낭군 만나보았소 하고 물어보았네 § 월화청(月華淸)【만(慢)】 비가 씻어가 하늘이 열리자 바람이 구름도 가져가 버려 눈에 보이는 아득한 끝까지 조금도 가리운게 없다 때마침 추석이 되어 밤은 고요하고 달빛은 물과도 같다 흰 빛은 황금 기와집과 누대를 밝게 비추고 맑은 기운은 <신선 사는> 옥병 속같은 천지에 가득 차있다 이 정경 여느 보름 때보다 유난히 아름답다. 천리(千里) 밖에 떨어져 있는 옥인(玉人) 생각나 기다리다 지쳐 시름에 겨워 술잔 잡고 취하도록 마셔라도 볼까 오직 감당해내기 어려울까 두려운 것은 누각(漏刻) 물 다하여 <이 밤 지나가면> 또 다시 한 해를 지내야 할 일 가장 한스러운 건 혼자서 책방 지키는 일 부질없이 이 경치 마주하고 있으니 마음에는 상념만 가득하네 항아(姮娥)에게 부탁해서 신선<나라> 계수나무 한 가지 구해다 주게 하는 이외에는 <그 밖에는 즐거운 마음 우러나게 할 길이 없다> § 전화지(轉花枝)【영(令)】 전화지(轉花枝) 평생을 두고 풍류와 재주를 자랑하는 이는 입으로는 장(張) 정(鄭) 조(趙) 등의 새로 지은 가사 노래하고 어려운 가곡 고쳐낸다 거 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나는 어떤 <재주넘는 듯한> 몸짓도 할 줄 알고 몸차림하여 분장할 줄도 알고 얼굴 표정을 지어낼 수 있는데 술자리와 가무를 하는 좌석을 만나게 될 때마다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애석하게도 늙어 버렸구먼 한다 염라대왕 큰아저씨가 일찍이 일러주었거니와 인생일랑 가슴 속을 넓게 가질 것이지 애태우고 살 것 없다고 좋은 철 만나고 아름다운 경치 마주하면 기쁨 따라가고 웃음을 사서 조촐하게 백천년(百千年)을 살아낼 것이고 다만 이렇게 해야만 된다 기한 차서 저승 사자 닥쳐온다면 통지를 보내오는 것을 기다릴거다 § 감황은(感皇恩)【영(令)】 말을 타고 홍진을 밟으며 장안에 다시 왔다 사람의 얼굴 의전(依前)하여 꽃같이 고운데 전에 가졌던 기쁨 겨우 되찾으려다 또 새로운 시름 때문에 갈리워져 버렸다 운우(雲雨)의 꿈 이루지 못한 채 무산(巫山)에 날이 새었다. 천리에 뻗친 애끊는 관산(關山) 가는 옛길 고개를 둘러보니 높은 성은 하늘같이 아득하기만 하고 가슴에 가득찬 헤어져 사는 원한은 떨어지는 꽃과 우는 새에게 주어버리기나 하자 옛 친구는 어디에 있는 건가 청춘은 늙는데 양소매를 모으고 금 채찍을 잡고 허리는 묶어놓은 흰 깁 같은데 나귀를 타고 문 앞을 지나간다 금문(禁門) 앞 거리에는 인적도 없어 일진의 향기 풍기는 바람에 가득차누나 봉새 수놓은 신발 활 모양의 작은 것이 고부장하니 드러나 보여 문득 돌아봄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네 그 자태가 사람의 애를 끊게 만드는 구나 그녀<의 채찍과 등자>를 따라가고 싶기는 하나 체면이 고삐가 되어 잡아당겨 멈추누나 한스럽기는 이 몸이 한가한 남녀 되어지지 못하는 거라 § 취태평(醉太平) 취태평(醉太平) 끙끙대고 고민하고 있소 끙끙대고 고민하고 있소 저는 요즈음 사람이 뇌까리는 말을 들었지만 처음 먹었던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잊어버리라고요 남은 병 깊이 들어 마구 못쓰게 만들어 놓고서는 누구한테 부탁하여 나를 위해 속속들이 설명해주어달라고 하라는 건가 자세히 생각해 본들 어쩔 수 없어 만나보면 약해져 버리고 만다 § 하운봉(夏雲峯)【만(慢)】 연회를 차린 집 깊숙히 들어앉아 있는데 그 난간에 비가 와서 더운 기운 가볍게 나즈막히 가라앉는다 꽃 핀 골짝 채색한 배에 옥술잔 띠우고 맑은 물 가에 둘러 앉으니 초대(楚臺)의 바람은 빠르고 소상반죽으로 짠 대자리 시원한데 긴 날 종일토록 옷깃을 풀어젖히고 지낸다 오래 앉아 있자니 알게 되는데 성근 현악기와 연한 관악기가 가끔 새 가락으로 바뀌운다 월(越) 땅의 아가씨는 난초같은 자태와 혜초같은 마음씨로 요염한 정태 있는대로 부리고 다정하게 다가들며 기쁨 자아내니 총애하는 마음 막아내기 어렵다 술좌석엔 웃음소리 노래소리 간간이 일어나고 나막신과 신발 서로 엇갈려 지나간다 취해사는 고장은 내가 돌아갈 곳이라 모름지기 있는 흥 다 내어 술잔 가득 따라 들고 목청 돋궈 읊조려야지 이제부터는 되풀이 하지 않으리 명예와 이록(利祿) 얽매여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 § 취봉래(醉蓬萊)【만(慢)】 정자 연못에 떨어지는 나뭇잎 농두산(頭山) 꼭대기에 걸린 구름 맑게 개인 가을 화려한 궁궐 하늘 복판에 치솟았고 아름다운 기운 가득차 있다 연한 국화 노랑색 짙고 서리 버틴 단풍 붉은 색 엷어져 보배 층계와 향기 풍기는 섬들에 가까이 있다 옥 집엔 먼지 없고 쇠줄기에는 이슬이 맺혀 푸른 하늘은 물같구나 때는 태평시절 만기(萬機) 겨를 많고 밤 경치 깨끗하고 누각(漏刻) 소리 아득히 들려 오는데 남극성(南極星)에는 노인이 있어 상서로운 물건 바친다 이 때 상감님 노니실텐데 봉황 장식한 연(輦)은 어는 곳에 있을까 생각건대 관현의 풍악소리는 맑고 부드러우며 태액지(太液池)에는 물결이 일고 향기 풍기는 발을 열어 말아 올릴제 달은 밝고 바람은 부드러울 것이다 § 황하청(黃河淸)【만(慢)】 막 개인 경치에 바람도 솔솔 불어 구름 걷히니 맑은 하늘 씻은 것과 같구나 밖을 바라보니 봉황의 쌍대궐엔 아름다운 기운 가득 차 조회 끝나니 향기로운 연기 옷소매에도 묻어나고 근신(近臣)들 상감님 얼굴에 희색 돈다 알리네 간밤에 계속 들어온 봉장(封章) 위대한 황하물이 바닥까지 맑아졌다고 상주(上奏)하였다 임금의 수(壽)는 하늘과 함께 끝없고 꽃다운 향기 동탕하며 하늘에선 자주로이 상서로움 내린다 대성부(大晟府)에선 신악(新樂)의 완성을 상주(上奏)하고 육악부(六樂部)에선 각(角)과 치(徵)의 율도(律度) 조절(調節)을 끝냈다 궁전에 춘풍(春風)이 도니 온갖 꽃들 앞다투어 피고 백관이 모두 술에 취했구나 내궁(內宮)에서 조칙 전해와 다시 미앙궁(未央宮) 안에다 잔치 차리라신다 § 환궁악(還宮樂) 환궁악(還宮樂) 반갑다. 우리 임금님은 봉래(蓬萊) 선계(仙界) 감동시켜 그곳의 신선 모두 다 강림케 하였나니 난새 타고 학 몰고서 누각 앞에 와 장수(長壽)하는 선단(仙丹)을 바치려하네 옥 궁전 층계 앞에 잔치 벌려놓았는데 마침 오늘밤 가을 날에 신선들 당도하여 생가(笙歌) 맑고 세차게 옥 뜰에 연주하여 드림은 성수만세(聖壽萬歲)를 기원함이라 § 청평악(淸平樂) 청평악(淸平樂) 참되신 임금님의 보배로운 역법(曆法)<의 시행(施行)으로> 은혜로운 공덕(功德)으로 태평세월 만드셨네. 좋은 시절 풍년 맞아 백성들도 즐거워 하네 황하수는 맑아졌고 상서로운 나무에는 오색(五色) 찬란한 햇빛 비친다 달빛은 겹겹이 쌓이고 학이 날으는 데 봉황도 춤을 춘다 세계 만방은 복종해와서 함께 명철하신 임금님 받들고 장수(長壽)을 비나니 성수무강(聖壽無疆)하소서 § 여자단(子丹) 여자단(子丹) 궁녀들 솜씨 다퉈 예쁘게 단장하고 서로를 불러가며 꽃가지를 꺾는다 새벽부터 고운 웃음 새 노래 부르네 춤추는 자태 아리땁기 그지없고 간드러지게 돌아가면 잔치 좌석 맞아준다 신선들 한데 모여 있는 거니 틀림없이 요지(瑤池)로들 가는 거라 § 수룡음(水龍吟)【만(慢)】 옥황계신 금 궁궐은 늘상 봄이라 백성들은 높은 하늘 우러러 기꺼이 받든다 매년 한 번씩 좋은 시기 정해서 <가무와 잔치로 즐기니> 풍류에 찬 정취에 감개가 무량하다. 무늬 비단 차림 미희들 뒤질세라 서로 모여 다투어 꽃 가지 꺾어들고 서로 마주 보고서 춤추는 소매 펄럭 거리고 노래소리 간드러지다 분 단장한 얼굴 가리워 비스듬이 푸른 눈썹 들여다 본다 금액문(錦額門) 열리니 채색 베푼 <공놀이>틀과 공 <나타난다> 먼저 신선대(神仙隊)를 끌어오니 향내 풍기며 떨쳐 일어나니 무지개 치마 움직이고 쟁그렁렁 퍼옥 소리 높다란 보좌에는 오색(五色) 구름 자욱한데 환호성 울리며 다투어 큰 절들 하고 물러난다 관현의 풍악소리 모두 울려남은 <신선대의 아가씨들> 돌아가려는거라 우리 상감님 만년토록 은혜와 사랑 베풀어 주시기 바라나이다 하고 § 경배악(傾杯樂) 경배악(傾杯樂) 금중(禁中)의 깊은 누각(漏刻) 꽃들은 활짝 피어 수놓은 여공들에게 하루해 긴데 혜초 향기 풍기는 바람 따뜻한 기운 편다 봄 경치 무르익어 가는 서울의 성문 열둘 안에 정월 십오일 대보름날 저녁 은빛 달 광채가 가득차 있구나 구름까지 치닿은 복도가 하늘을 찌르고 날을 듯이 높은 큰 집 치솟은 황거(皇居) 아름다운데 좋은 기운과 상서로운 안개 자욱하다 푸른 막 화려한 잔치자리로 저녁에 거동하시니 이곳은 곧 층성(層城)의 낭원(苑)이로다 용과 봉의 초롱 그 광채 은하수까지 비춰올라간다 초롱불 휘황한 오산(鼇山) 지척 앞에 치미선(雉尾扇)을 펴서 <어좌(御座) 마련하고> 악부의 두 부의 신선대(神仙隊)들과 이원(梨園)의 4부(部) 관현(管絃)을 모여와 상연(上演)한다 점점 새벽 밝아오건만 서울의 사람들 흩어져가지 않고 온 동네 가득 만세(萬歲)소리 울리고 온 산 가득 힘찬 박수소리 해마다 천자(天子)의 의장(儀仗) 속으로 황금색 연(輦)을 늘 보게 되기를 § 태평년(太平年)【만(慢) 중강창(中腔唱)】 황국(皇國)의 땅에 봄이 가득 차 뭇 꽃들 아름답고 기이한 향기 진동하네 오궁(鼇宮)에 연석(宴席) 벌여 좋은 운치 즐기나니 생가(笙歌) 시작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가네 긴 긴 하루해 바람 또한 즐겁고 버들은 안개 속에 푸르게 엉겨 오직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까 두렵거니와 잠시 기쁘게 술에 취함 즐길 것이다 § 안평악(安平樂) 경옥 잔치자리 벌여놓고 좋은 날 경축하는데 채색 휘장 가운데 달빛이 밝다 저에 맞춘 노래 즐거웁기 꿈 속 같다 단산(丹山) 바라보니 구름 걷고 안개 가셨는데 우뚝이 솟아있는 밝은 달은 규옥(珪玉)과도 같다 얼음 바퀴 먼 하늘에 굴러나와 사심(私心) 없이 천리를 와 비춰준다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맑은 바람 생겨나 단계(丹桂)의 여린 향기 보내주는 거라 오직 원하거니와 흰 넋 장 둥글어 유하주(流霞酒)로 대작하여 아롱진 봉새 깊은 뜰에서 날으며 춤을 춘다 먼 곳의 아름다운 이와 이례적으로 장수(長壽)하는 이 술잔 같이 따르고 손벽치며 춤추고 노래불러 기쁜 소리 가득하다 지금 이 영구히 계속될 태평세상에 자손 더욱 불어나 남자 많고 함께 모여 복되게 번창하고 은혜 속에 장수하리라 § 애월야면지(愛月夜眠遲)【만(慢)】 금문(禁門)의 북 처음 치니 육거리에 밤이 고요하고 거마(車馬)와 사람 드물다 저녁 하늘 맑게 개이고 봄이 찾아와 임원(林園)을 보니 난간에 가득 고운 꽃받침으로 수놓아 냈고 날아다니며 우는 꾀꼬리는 해당 가지 위에서 혀를 희롱하고 자주색 제비는 날아 못의 누각(樓閣)을 돈다 세 그루 잠자는 가는 버들 만(萬) 줄기 가지 드리운 것 깁 띠같이 부드럽다 생각 때문에 간밤에 꽃을 가보았더니 그대로 뒤섞여 아롱져 있었다 온 종일을 술준 앞에서 보내야 할 것이어니와 고운 경치 좋은 때에 당해서 뿔 술잔에 넘도록 술채우고 취해서 난간 있는 곳에 기대어 완상하며 차마 못 하는 건 좋은 경치에 좋은 때를 저버리는 거라 맑은 노래 간드러진 춤 밤중까지 계속되어 머뭇거리고 깁 방장 속에 들어갈 마음 안 내킨다 가인(佳人)이 마음껏 나를 성내게 내버려두고 달을 아껴 밤마다 자는 게 늦어진다 § 석화춘조기(惜花春早起)【만(慢)】 잠시 그렇게 기쁘게 지꺼린다 시간 많이 가서 밤이 깊어 촛불 들고서 꽃 마주보고 술을 드는데 쉽게 응락한 것 저버리지 말 것이라 이웃집 닭이 울어 새벽 알리자 놀라서 깨어나 바삐 머리 빗어 메만진다 서쪽 정원 향해 여러 꽃을 아깝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광풍(狂風)이 불어서 떨어졌을 게라서 § 제대춘(帝臺春)【만(慢)】 방초(芳草)는 푸른 색으로 무성하게 남쪽 발길에 가득하고 따뜻한 버들솜과 어지러운 붉은 꽃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듯 봄날의 시름으로 힘 없이 생각나는 건 어여쁜 짝 얻어 함께 손잡고 봉성(鳳城)의 한식(寒食)을 즐기던 일 지금에 와서는 한 구석에서 봄을 만나고보니 하늘 끝에서 나그네노릇 한다 시름이 곧 풀렸다가 또 실타래같이 <몰려오고> 눈물은 몰래 씻었는데 또 어느새 떨어진다. 무심히 높은 난간에 기대니 온통 황혼이 깃들었고 단지 저물녘 구름과 푸른 하늘 뿐이라 시간을 보내는 건 이제 이미 보내버렸지만 잊는거야 어떻게 잊어내겠나 또 다시 물고기와 큰 기러기에게 물어 다시 소식 찾아본다 § 천추세(千秋歲)【영(令)】 멋있는 자태 생각하니 가지가지 아름다워 이별할 땐 너무나 쉬웠던 것 한스럽거니 향기 풍기는 편지지에 사모하는 뜻 쓰려고 하니 애타는 눈물만 향기 배인 종이 위에 떨어진다 채색 베푼 대청은 깊고 그 때의 즐거움을 언제 다시 가지게 될런지 하루 빨리 다시 만나 거듭 맹서하게 되기를. 아름다운 경치 좋은 때를 소홀하게 보내버리지 말 것이라 원앙 방장 안의 원앙 이불 원앙 베개 위에 원앙이 잔다 그와 같이 마냥 그렇게 천년(千年)토록 살고지고 § 풍중류(風中柳)【영(令)】 구름같은 귀밑머리 아름답기도 하구나 산처럼 깊은 눈썹 애석하여라 어제 만났을 때는 잠시 잠에서 깨어나 있어 그녀를 위해 아직은 말하고 장난질 치고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벌써 술준 앞에서 사람의 깊은 생각 알아차리고 있었더니라 삽시간에 <그녀와의> 사이가 막혀지고 눈은 벌써 깜박거리며 편지를 써부쳐 어떻게 해야 다정함으로 다시 결합(結合)하게 될까 전에 알았던 것보다 낫건 말건 § 한궁춘(漢宮春)【만(慢)】 긴긴 봄날이 유람객에게는 어울려 꽃다운 향기에 온종일 취해 있네 새 연잎 물 위에 점점이 떠 있고 구름은 기괴하게 여름 경치 만드네 더운 빛은 쉽게 사그러지는지라 또 벌써 조락을 가져오는 가을바람 일어난다 흰 이슬 떨어지고 황금색 국화 꽃술 피어나 아침에 구름 돋았다가 저녁에는 눈이 펄펄 날린다 세월이 이처럼 빠르니 술 벗 맞아 함께 즐기고 또 이렇게 시름을 잊는다. 맑은 노래에 아름다운 춤에다 또 겸하기를, 옥관(玉管)에 요지(瑤) 인생은 늙기 쉬우니 태평을 만나잠시 즐겁게 놀것이지 말하기기까지 기다리지 말 것이라 홍안이 급작스레 요 몇해 전날과 같지 않음을 느낀다고 § 화심동(花心動)【만(慢)】 더운 기운이 옷섶을 짓눌러 속수무책으로 지치고 짜증을 나게 만든다 침계(枕溪) 있는 것 이용하여 <서 있는> 백척(百尺)의 붉은 누각(樓閣)에 햇볕 받는 여러 겹의 향기로운 발 한 말수레의 얼음을 둘러놓아도 여전히 더워오는데 붉은 해가 드러나고 비는 끝 빗발을 거둔다 무심히 홍초(紅)를 집어들고 <거기에 붙어있는> 눈 같이 부서진 경옥(瓊玉)부스러기 만지작거려 벗겨내본다 단장 끝내고 나직이 내린 머리는 치켜올리지 않았고 한들한들한 선녀의 옷은 가볍고 엷은 것을 재단한 것이다 땀이 눈물 방울 같이 뿌려져 급히 금쟁반 받들고 앞으로 가서 알알이 받아낸다 봉황(鳳凰)의 쌍부채를 같이 부쳐대는데 <땀을> 닦아내면 닦아낼수록 더욱 허리와 사지가 약해져 청사(靑紗) 가리개를 만들어 가리기나 할까. 선원(仙苑)에 봄이 짙어져 어린 복숭아나무의 가지마다 이미 잡아당겨 꺾을 만하게 되었다 비가 오다 개다 하며 따스하다 추워졌다 하여 점점 꽃 즐길 시절이 가까워진다 버들 흔들리는 누대와 정자에 동풍(東風)이 부드럽고 발 드리운 창문 고요하고 애끓는 마음 달랠 수 없어 멀리 한가하게 찾아나서는 푸른 길은 느닷없이 수심 맺히게 만드는구나 이 원한은 함께 털어놓을 사람 없어 그대로 서서 황혼까지 있자보니 한치되는 마음 부질없이 에어낸다 억지로 수 이불 다둑거려놓고 있으니 대자리와 베개는 누굴 위해 펴놓을 건가 밤이 긴데 궁 안의 누각(漏刻)소리 아득히 들려오고 사창(紗窓)에는 은등잔 깜박거려 비친다 꿈에서 돌아온 곳 매화나무 끝에 엷은 달 반쯤 걸려있다 § 우림령(雨淋鈴)【만(慢)】 늦매미 처량하게 울어 대는데 장정(長亭)을 향해 저물어 가고 소낙비 갓 개어 도문(都門)에 장막치고 두서없이 술마신다 하릴없이 머뭇거리는 터에 목란(木蘭) 배는 떠나기를 재촉한다. 손잡고 서로 눈물 고인 눈을 보며 끝내 말없이 목메어 흐느꼈다 천리(千里) 안개낀 물결은 아득하기만 하고 저녁 안개 자욱이 가라앉는데 초(楚) 땅의 하늘은 공활(空闊)하기도 하다. 다감한 사람은 옛날부터 이별을 슬퍼하는 법인데 더구나 조락(凋落)의 맑은 가을을 어찌 견디어내겠는가 오늘 밤에는 어디에서 술이 깨겠나 버드나무 서있는 강언덕 새벽 바람 불고 채 넘어가지 않은 달 걸려 있는 곳일 게라 이번 떠나 한해 지나면 틀림없이 좋은 때 좋은 경치만 헛되이 보내고 말겠지 비록 천가지 풍정(風情) 우러난단들 또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겠는가 § 행향자(行香子)【만(慢)】 상서로운 경상 광채도 부드럽게 중천 비개인 안개 속에 빛나 좋은 기운 그득이 감돈다 황제의 궁궐은 높고 장려하게 황금색과 푸른 색 공중에 휘황하다 붉은 하늘 밖 요전(瑤殿) 깊은 곳 발 말아올린데 꽃 그림자 겹겹 보련(步輦)을 영접하여 진선(眞仙)도 많이 모여 새 궁(宮)에서 경사스런 수신(壽辰)을 축하한다 마침 만나게 되었나니 성군(聖君)께서 용되어 날으심을 아름다운 그 공덕으로 평화로움 누리어 조야(朝野)가 다같이 기뻐한다 어떠랴 잔치차리고 상감님의 뜻과 자애스러우신 용안을 받들음이 소(韶) 풍류 잡히고 이슬 슬잔 드리려할 때 혜초향로는 그윽한 향기 짙게 피어낸다 길이길이 용안 받들기 원하옵거니와 천추만세(千秋萬歲)토록 밝은 달 맑은 바람 <같이 깨끗이 사시옵소서> § 우중화(雨中花)【만(慢)】 연회 끝나 교외에서 난간에 기대어 서 얼핏 꽃다운 자태한 이와 작별하였네 취해서 긴 거리에 올라서니 이별의 아픔 점점 더 깊어져 엷은 가을 기운에 말 자주 울어대고 늦매미는 <시끄럽게> 저물녘을 울어대니 진정 나그네의 수심을 더 한다. 소년시절의 호사와 풍류 즐기던 때를 생각하니 눈물 방울이 몰래 떨어진다 그전엔 술벗이며 꽃친구들과 채색 베푼 누각의 아름다운 자리에 자리잡고 놀았건만 오늘밤은 맑은 바람 밝은 달 강 가의 마을 산기슭<을 지나간다> 새로운 시름이 물밀듯이 <몰려와> 애끓는 마음으로 먼 곳만 바라본다 어디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 저물녘 구름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는데 § 영춘악(迎春樂)【영(令)】 신주(神州)의 미려(美麗)한 경치에는 봄이 먼저 오는거라 눈에 보이게 봄빛 일찍 완연해 원림(園林) 깊은 곳에 동풍(東風) 지나가니 붉은 꽃 피어난 살구나무 속에 꾀꼬리 소리가 좋다 막막하게 끼어 있는 푸른 안개에 멀고 먼 길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다 푸른 버들과 꽃다운 풀 술에 취해 거듭 노는 것 아까와 하지 말 것이라 어물어물하면 또 나이만 더하게 된다 § 낭도사(浪淘沙)【영(令)】 여기 한 사람이 비연(飛燕) 같은 자태하고 급히 환패(環佩) 가지고 꽃자리에 올라가니 잦은 박판(拍板)은 그냥 붉은 소매 따라 울려가는데 바람에 흔들리네 버들같은 허리 경쾌하게 뒤흔들리는 가벼운 치마 새롭고도 새로운 묘치(妙致) 있는대로 드러낸다 악곡(樂曲) 끝나자 홀로 서서 향기로운 먼지 거둔다 틀림없이 사지가 가엾게 고단한 게라 검은 눈썹 양쪽이 찌푸려진다 § 어가행(御街行)【영(令)】 땔나무 불피우는 연기 끊어지고 은하수 밝아와 보배로운 연(輦)이 천자(天子)의 걸음 돌리자 단문(端門)에는 궁시(弓矢)를 멘 위병(衛兵)들이 조각 베푼 난간에 그득이 모이고 6악(樂) 중에서 순(舜) 임금의 대소(大韶)를 먼저 연주한다 학서(鶴書) 날아 내리고 계간(鷄竿) 높이 솟아올라 <임금님의> 은혜 온 누리에 골고루 펴진다 적상포(赤霜袍) 찬란하게 향기로운 안개 날리우고 희색(喜色)은 봄햇볕 따스함 이룬다 9의(儀)삼사(三事)에 천자(天子)의 용안 우러러보니 여덟가지 채색이 뒤따라 양미간에 생겨난다 춘(椿)나무같은 수명은 다함이 없고 나도(蘿圖)에 경사로움이 있어 언제나 건곤(乾坤)의 주인노릇 하신다 § 서강월(西江月)【만(慢)】 안개에 감싸인 가는 버들이 회칠한 담에 비치는데 드리운 실가지 가볍게 간들거린다 바로 연초(年初)인지라 따뜻한 바람 부드러워 후원(後苑)의 누대(樓臺)와 못을 단장해 준다 방금 피어난 복숭아꽃 연지로 물들인 것 같아 강남(江南)에 봄은 이르다고 편지내야 하겠네 또 몇몇 가지에서 떨어져 흩으러진 이즈러진 꽃들이 땅바닥에 가득히 날리는데 쓸지를 않았다 다행히 때에 이르니 방향(芳香) 풍기는 좋은 시절 다가오네 한스럽기는 그이와의 사이 막혀 기쁘게 만날 기약 아직도 묘연하다 몇마디 구름 속의 슬픈 기러기 소리 느닷 원망과 시름 한없이 밀려와 높은 누각 지나 하늘 끝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를> 멀거니 눈으로 따라가지만 어째서 아무도 소식을 안가져오는 건가 또 혹시나 따로 깊은 애정 생겨나서 나하고 맹서했던 말 잊어버리지나 않았을까 § 유월궁(遊月宮)【영(令)】 지금의 성군(聖君)께서 용루(龍樓)에 앉으셔 성수(聖壽)는 하늘 따라 무궁하리라 보배로운 향로에서 향연(香煙) 뿜어내고 현종(玄宗)께선 월궁(月宮)에 노니신다 바다는 잔잔하고 황하 맑아 성덕(盛德) 넘치는 조정에 시종(侍從)하여 여러 신하 기뻐 만세 외치고 만민(萬民)은 생업(生業) 즐기며 우리 황제 복(福)과 수(壽) 늘어나기 원한다 § 소년유(少年遊) 부용(芙蓉) 꽃이 작년 가지에 피어났고 쌍지은 제비는 날아 돌아가려고한다 난당(蘭堂)에는 바람 부드럽고 쇠향로에는 향기 따뜻하고 새 음악 소리에 발과 방장 움직인다. § 계지향(桂枝香)【만(慢)】 따뜻한 바람 길고 긴 햇살 바로 양춘시절(陽春時節) 봄 경치 밝고 아름답다 한주름 비가 치니 붉은 복숭아꽃 떨어져 땅에 가득하다 규중(閨中)에 홀로 앉아 발은 높이 말아올려 고달픈 봄 얼굴로 힘 없이 섬돌 앞에 나선다 그이가 금문(金門)에 부(賦)를 바쳐서부턴 주취(朱翠) 끊기지 않았다 들으니 상국(上國)에서 방금 편지가 와서 그이가 광명한 조정에서 현량대책(賢良對策)에 응시(應試)하여 이미 우수한 성적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향기 풍기는 편지 뜯어보니 이별의 한스러움은 도리어 새로운 기쁨이 되었다 빨리 경림원(瓊林苑)에서의 연회 끝내게 해서 그이가 돌아와 연리(連理)의 정 영원토록 같이 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번 그이를 만나는 좋은 날 밤에는 저 계수나무 가지에서 원앙 이불로 향기 끌어와야지 § 경금지(慶金枝)【영(令)】 금실로 짠 옷일랑 아끼지 말고 그대에게 권하노니 젊은 시절을 아낄지어다 꽃 피어나 꺾을만 해져야 꺾지 꽃없는 빈 가지 꺾게 되길 기다리지 말지라 하루 아침 뻐꾹새 울기 시작한 후 그제부터는 꽃다운 향기 풍겨내지 않는다. 꽃 있고 술 있으니 잠시 얼굴 활짝 펼 것이지 머리 온통 희어질 때를 기다리지 말 것이라 § 백보장(百寶粧) 한줄기 현악기(絃樂器) 소리로 채색 베푼 대청에서 잔치 갓 시작했다 비파(琵琶)를 잡은 사람 맨 앞에 있는데 쪽머리는 구름이요 허리는 흰 깁 그대로 다시없이 멋들어진다. 가볍게 잡고 천천히 부비는 것 귀엽고 아리따운 자태 자아내고 푸른 눈썹 검은 귀밑머리 없는 수심 간절히 자아내고 새로 만든 곡조는 그것대로 연주 해낼 수 있어 함께 양주곡(梁州曲) 연주하는 것 듣는다 편단(遍段)에 이르러 잦아드는 가락은 분명히 하소연 하는 것만 같고 어찌 알리오 손가락 바닥이 섬세하고 부드럽단 걸 좌중은 말이 없고 오직 금규(金)만 이어졌다 끊어졌다 할 뿐 곡 끝나니 은연중에 왕손(王孫)의 뜻 알게 된다 연꽃같은 걸음 돌려 천천히 봉구(鳳鉤) 내려놓고 요옥(瑤玉) 술잔 받들고서 음악 알아준 것 기뻐하여 가인(佳人)에게 잠뿍 취하고 늦게까지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는 거라 § 만조환(滿朝歡)【영(令)】 미앙(未央) 궁궐엔 붉은 노을 머물러 있고 열두 옥루(玉樓)에는 금수(錦繡)가 흔들린다 치선(雉扇)이 구름같이 펼쳐지고 구슬 발 말아올려져 있는데 향연(香煙) 내는 가루 용향(龍香)을 상서로운 짐승꼴 향로에 더 넣는다 요옥(瑤玉) 술잔 한 번 올리자 소소(簫韶) 연주하고 환패(環佩) 찬 천(千)으로 헤아릴 관원(官員)들 일제히 큰 절한다 함께 군왕(君王)에게 천만세(千萬歲)의 장수(長壽)을 바친다 § 천하악(天下樂)【영(令)】 수성(壽星)은 밝고 오래되었으며 수곡(壽曲)은 잠뿍 취한 후에 높은 목청으로 부르고 수촉(壽燭)은 휘황하고 손으로 쇠향로 잡고 한 줄기의 수향(壽香)을 피운다 수주(壽酒)를 가득 따라 내 마음 정중하게 가다듬고 장수(長壽)을 빈다 수(壽)는 어떠한가 묻는 것인가 “수(壽)는 남산(南山)에 비길만치 길고 복(福)은 그 보다도 더 많도록” § 감은다(感恩多)【영(令)】 깁 방장은 반쯤 드리운데 문도 반쯤 열려있고 남은 등불과 외로운 달은 창틀 비치고 북두성(北斗星)은 점점 옮겨 하늘은 밝아지려고 하는데 누각(漏刻)은 더욱 재촉한다 손잡고 님에게 이별주를 권하자니 눈물은 붉은 분과 함께 금술잔에 떨어진다 흐느끼며 님에게 물어보기를, “오늘밤 떠나가시면 어느 때 돌아오시나요 § 임강선(臨江仙)【만(慢)】 꿈에서 깨니 작은 뜨락엔 찬바람이 쌩쌩 불어 성근 비가 솨솨 내린다 무늬 비단 창 밖에는 가을 소리 내면서 이즈러진 나뭇잎이 내친 듯이 휘날린다 마음 흔들리는데 찬 누각(漏刻)은 길고 외로운 방장은 조용하고 초눈물은 부질없이 탄다 까닭도 없는 곳에는 수 이불과 원앙 베개 할 일없이 맑은 밤을 보낸다 쓸쓸하게 정에 끌린 걸 한스러이 여겨 다투어 젊은이에게 그냥 용서해준다 느껴지는 건 새삼스럽게 지난 날의 풍채가 초라해진 것 애끊는다. 생각하는 건 기쁘고 즐겁던 일 안개가 물결에 막혀버리고 뒤에 만날 기약은 아직도 멀었는데 또 한해 지나갔다 묻고픈 것은 어떻게 막아낼까 이토록 무료(無聊)함을 § 해패(解佩)【영(令)】 얼굴은 단정하고 마음은 깔끔하고 눈썹은 길고 눈은 귀밑머리로 들어가고 코는 우뚝하고 입은 작고 혀는 향기롭고 부드럽고 귀는 그 가운데서 붉고 윤기가 있다 목은 경옥(瓊玉)같고 머리는 구름같고 귀밑머리와 눈썹은 깎은 것 같고 손은 봄철의 죽숙같고 젖은 달고 허리는 가늘고 발은 단단히 조였고 그런 것들은 다시 물으려고도 하지 말 것이라 속악 § 서문 고려(高麗)의 속악(俗樂)은 여러 악보를 참고해서 실었다. 그 중에서 동동(動動) 및 서경(西京) 이하의 24편은 모두 이어(俚語)를 쓰고 있다. § 악기(樂器) 현금(玄琴)【현(絃)이 여섯임】 , 가야금(伽倻琴)【현(絃)이 열둘임.】 , 대금(大琴)【구멍이 열셋임.】 , 장고(杖鼓) 아박(牙拍)【6매(枚)임.】 , 무애(無)【장식이 있음.】 , 무고(舞鼓) 혜금(琴)【현(絃)이 둘임.】 , 필률()【구멍이 일곱임.】 , 중금(中)【구멍이 열셋임.】 , 소금(小)【구멍이 일곱임】 , 박(拍)【6매(枚)임.】 § 무고(舞鼓) 무대(舞隊)【검은 장삼】 가 악관(樂官)들과 기(妓)들을 거느리고 남쪽에 선다. 악관(樂官)들은 두 줄로 앉는다. 악관(樂官) 두 사람이 고(鼓)와 대(臺)를 받들어다가 전(殿) 가운데에 놓는다. 여러 기(妓)들은 정읍사(井邑詞)를 부르는데 향악(鄕樂)에서 그 곡(曲)을 연주한다. 기(妓) 두 사람이 먼저 나가 좌우(左右)으로 갈라서 고(鼓)의 남쪽에 서서 북쪽을 향해 큰절을 하고 끝나면 꿇어앉아서 손을 여몄다가 춤추기 시작한다. 음악의 한 단락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두 기(妓)는 북채를 잡고 춤추기 시작하여 좌우(左右)으로 북을 가운데 끼고 갈라져 한 번 앞으로 나갔다. 한번 뒤로 물러났다 한다. 그것이 끝나면 북의 주위를 돌며 혹은 마주보고 혹은 등지고 하며 빙글빙글 돌며 춤추고 북채로 북을 쳐 음악의 절차를 따라 장고와 맞춰나가는데 음악이 끝나면 멎는다. 음악이 다 끝나면 두 기(妓)는 앞서와 같이 부복했다가 일어나서 물러간다. 무고(舞鼓)<의 유래는 이러하다.> 시중(侍中) 이혼(李混)이 영해(寧海)에 유배(流配)되어갔을 때 바닷가에서 부사(浮査)를 얻어 그것으로 무고(舞鼓)를 만들었는데 그 소리가 굉장했다. 그 춤은 즐겁게 돌아가는 것으로 한쌍의 나비가 꽃을 감도는 것 같고 용감스럽게 두 마리의 용이 구슬을 다투는 것 같다. 악부(樂部) 에서는 가장 기묘(奇妙)한 것이다. § 동동(動動) 무대(舞隊) 악관(樂官) 및 기(妓) 그리고 의관(衣冠)과 행차(行次)는 앞의 의례(儀例)와 같다. 기(妓) 두 사람이 먼저 나가 북쪽으로 향해 좌우(左右)으로 갈라서서 손을 여미고 족도(足蹈)하고서 큰 절을 하고 부복한다. 일어나 아박(牙拍)을 받들어 들고 동동사(動動詞)의 첫 구를 창(唱)한다.【혹 아박(牙拍)을 잡지 않기도 한다.】 여러 기(妓)들은 그것에 따라서 화창(和唱)하고 향악(鄕樂)은 그 곡(曲)을 연주한다. 두 기(妓)는 꿇어앉아서 아박(牙拍)을 띠 사이에 꽂고 음악 한가락이 끝나기를 기다려 일어나 서고 음악 두 가락이 끝나면 손을 여미고 무도(舞蹈)하고 음악 세 가락이 끝나면 아박(牙拍)을 뽑아가지고 한 번 앞으로 나갔다. 한 번 뒤로 물러났다. 한 번 마주보고 한 번 등지고하여 음악의 절차에 따라 혹은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혹은 무릎에 혹은 팔에 아박(牙拍)을 치며 무도(舞蹈)한다. 음악이 끝나기를 기다려 두 기(妓)는 앞서와 같이 손을 여미고 족도(足蹈)하고서 큰 절을 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물러난다. 동동(動動)이라는 놀이는 그 가사에 송축(頌祝)하는 말이 많이 들어있는데 대체로 신선의 말을 본따서 지은 것이다. 그러나 가사(歌詞)가 이속(俚俗)해서 기재(記載)하지 않는다. § 무애(無) 무대(舞隊) 악관(樂官) 및 기(妓) 그리고 의관(衣冠)과 행차(行次)는 앞의 의례(儀例)와 같다. 기(妓) 두 사람이 먼저 나가 북쪽으로 향해 좌우(左右)으로 갈라서서 손을 여미고 족도(足蹈)하고 큰 절을 한 후 부복해서 머리를 들고 무애사(無詞)를 창(唱)한다. 끝나면 그대로 꿇어앉아 있고 여러 기(妓)들은 그것에 따라 화창(和唱)하고 향악(鄕樂)은 그 곡(曲)을 연주한다. 음악 한가락이 끝나기를 기다려 무애(無)를 잡고 소매를 치켜들고 앉아서 춤을 추고 음악 두가락이 끝나면 일어나서 춤추고 족도(足蹈)하면서 앞으로 나가고 음악 세 가락이 끝나면 무애(無)를 희롱하면서 음악의 절차(節次)에 따라 나란히 가면서 앞으로 갔다 뒤로 물러났다 하며 춤을 춘다. 음악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두 기(妓)는 앞서와 같이 손을 여미고 족도(足蹈)하고서 큰 절을 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서 물러간다. 무애(無)라는 놀이는 서역(西域)에서 나왔다. 그 가사(歌詞)는 불가(佛家)의 말이 많이 쓰여져 있고 또 방언(方言)이 섞여있어 그것을 짜넣기가 어려워 잠시 그 절주(節奏)만을 남겨두어 당시에 사용하던 음악의 하나로 갖추어 둔다. § 서경(西京) 서경(西京)의 유래(由來)는 이러하다. 고조선(古朝鮮)은 곧 기자(箕子)를 봉(封)했던 땅으로 그곳의 백성들은 예양(禮讓)을 배워 임금을 존경하고 윗 사람을 받드는 의리(義理)를 알아서 이 노래를 지었다. 그 뜻은 <군장(君長)의> 인애(仁愛)와 은혜(恩惠)가 가득차 그것이 초목(草木)에까지 미쳐 꺾여진 버들가지도 살아나게 할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 대동강(大同江) 주(周) 나라의 무왕(武王)이 은(殷) 나라의 태사(太師)였던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했는데 <기자(箕子)는> 8조(條)의 가르침을 베풀어서 예의(禮義)를 숭상하는 풍속을 일으켜 조야(朝野)에 일이 없었다. 인민(人民)들이 기뻐하여 대동강(大同江)을 황하(黃河)에 영명령(永明嶺)을 숭산(嵩山)에 각각 비유해서 그들의 임금을 송축(頌祝)했다. 이 노래는 고려(高麗)에 들어온 이후에 지은 것이다. § 오관산(五冠山) 오관산(五冠山)은 효자(孝子)인 문충(文忠)이 지은 것이다. 문충(文忠)은 오관산(五冠山) 밑에 살면서 모친(母親)을 지극히 효성스럽게 섬겼다. 그의 집은 수도(首都)에서 30리(里)가 떨어져 있었는데 모친(母親)을 봉양하기 위해 벼슬살이를 하느라고 아침에 나갔다가 저물어서야 돌아오고는 하였으나 아침 저녁의 보살핌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기 모친이 늙은 것을 개탄하여 이 노래를 지었는데 이제현(李齊賢)이 다음과 같은 시(詩)를 지어 이 노래의 뜻을 풀어냈다. 나무토막으로 조그만 당닭을 깎아서 횃대에 얹어 벽에 올려두고 그 닭이 꼬꼬하고 때를 알리게 되면 어머님 얼굴이 비로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같이 늙으시어라. § 양주(楊州) 양주(楊洲)는 곧 고려(高麗)의 한양부(漢陽府)로 북쪽으로는 화산(華山)에 기대고 있고 남으로는 한강 (漢江)에 임해 있으며 토지가 평탄하고 생산(生産)이 풍부하고 시가(市街)가 번화한 것이 다른 주(州)에 댈 것이 아니다. 양주(楊洲) 사람들은 남녀(男女)가 봄이 되면 놀기를 좋아하여 서로 즐거워 하며 이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 월정화(月精花) 월정화(月精花)는 진주(晉州) 기생이었다. 사록(司錄) 벼슬을 하던 위제만(魏齊萬)이 그 기생에게 미혹해서 부인(夫人)을 근심과 분노로 죽게 만들었다. 진주읍(晋州邑)의 사람들이 그녀를 슬퍼하여 부인(夫人)이 살아 있을 때 친애(親愛)하게 살지 않은 일을 추억해서 말해 가지고 위제만(魏齊萬)의 광혹(狂惑)함을 풍자(諷刺)했다. § 장단(長湍) 태조가 민간의 풍속을 순찰하고 부족한 것을 보급해 주고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했다. 백성들은 그 덕(德)을 사모하고 오래되어도 잊지 않았다. 후대(後代)의 왕이 장단(長湍)에 갔을 때 악공(樂工)이 태조(太祖)의 덕(德)을 노래하고 이어 그 후대(後代)의 왕을 송축(頌祝)하고 또 그를 경계한 것이다. § 정산(定山) 정산(定山)은 공주(公州)의 속현(屬縣)이다. 현인(縣人)이 이 노래를 지어 굽은 나무의 얽힌 마디를 복록(福祿)을 송축(頌祝)하는 것에 비유했다. § 벌곡조(伐谷鳥) 벌곡(伐谷)은 새 가운데서 잘 우는 것이다. 예종(睿宗)이 자기의 과오(過誤)와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듣고싶어서 상언(上言)하는 길을 넓게 열어놓고 그래도 여러 아래 사람들이 상언(上言)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이 노래를 지어서 타일러준 것이다. § 원흥(元興) 원흥진(元興鎭)은 동북 방면(方面)에 있는 화령부(和寧府)의 속읍(屬邑)으로 큰 바닷 가에 자리잡고 있다. 읍인(邑人)이 배로 장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자 그 아내가 기뻐서 이 노래를 불렀다. § 금강성(金剛城) 거란(契丹)의 성종(聖宗)이 개성(開城)에 침입해서 궁궐을 불태웠다. <고려(高麗)의> 현종(顯宗)이 개성(開城)을 수복(收復)하고 나성(羅城)을 구축(構築)하자 나라 사람들이 기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몽고병(蒙古兵)을 피해 강화(江華)로 천도(遷都)했다가 다시 개성(開城)으로 돌아와서 이 노래를 지었다고도 한다. 금강성(金剛城)이라고 한 것은 그 성(城)의 견고하기가 쇠같이 굳음을 말한 것이다. § 장생포(長生浦) 시중(侍中) 유탁(柳濯)이 전라(全羅)에 나가서 진수(鎭守)할 때 위엄(威嚴)과 은혜(恩惠)가 겸비하여 군사들이 그를 아끼고 두려워하고 했다. 왜적(倭賊)이 순천부(順天府)의 장생포(長生浦)에 침범(侵犯)하게 되자 유탁(柳濯)이 구원(救援)하러 갔는데 왜적(倭賊)이 바라보고서는 두려워하여 곧 철수해 가버렸다. 군사들이 대단히 기뻐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 총석정(叢石亭) 총석정(叢石亭)은 기철(奇轍)이 지은 것이다. 기철(奇轍)은 원(元) 나라 순제(順帝)의 중궁(中宮)의 동생으로 평장(平章) 벼슬을 하다가 사명(使命)을 받들고 동쪽 고려로 돌아와 강릉(江陵)에 가서 이 정(亭)에 올라가서 4선(仙)의 유적(遺蹟)을 구경하고 큰 바다를 가까이서 내다보고 이 노래를 지었다. § 거사련(居士戀) 객지에 나간 사람의 아내가 노래를 지어 까치와 거미에 부쳐서 그가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다. 이제현(李齊賢)이 시를 지어 이 노래를 풀이하였다. 까치는 울타리 가 꽃가지에서 시끄럽게 울고 갈거미는 침상 머리에서 그물실을 뽑아내고 있다 내 낭군 돌아오실 날 틀림없이 멀지 않을 거라 그이의 신이 이미 사람에게 알려주었으니까 § 처용(處容) 신라(新羅)의 헌강왕(憲康王)이 학성(鶴城)에 갔다가 개운포(開雲浦)로 돌아왔을 때 홀연히 한 사람이 기이한 몸짓과 괴상한 복색을 하고 왕앞에 나와 노래와 춤으로 덕(德)을 찬미(讚美)하고 왕을 따라 서울로 갔다. 그는 자기를 처용(處容)이라 부르고 언제나 달밤이면 시중(市中)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였으나 끝내 그가 있는 곳을 알지 못했다. 당시 그를 신인(神人)이라고 생각했다. 후세(後世) 사람들이 그 일을 기이하게 여겨 이 노래를 지었다. 이제현(李齊賢)이 시(詩)를 지어 이 노래를 풀이하였다. 옛날 신라(新羅)의 처용옹(處容翁)은 푸른 바다 가운데서 왔다고 한다 자개 이빨에 붉은 입술로 달밤에 노래했고 솔개 어깨에 자주 소매로 봄바람 속에서 춤을 추었다 § 사리화(沙里花) 부세(賦稅)가 번중(繁重)하고 권력자들이 빼앗아가고 하여 백성들은 고달퍼지고 재산(財産)이 해를 입어 참새가 곡식을 쪼아먹는 것에 부쳐서 그런 일을 원망했다. 이제현(李齊賢)이 시(詩)를 지어 이 노래를 풀이하였다. 참새는 어느 쪽에서 왔다가 날아가는가 한 해 동안 농사지은 일 아랑곳 없이 홀아비 늙은이가 혼자 손으로 갈고 매고 해놓았는데 밭 가운데 벼와 수수를 다 없애 버리다니 § 장암(長巖) 평장사(平章事) 두영철(杜英哲)이 한 때 장암(長巖)에 유배(流配)되어 가서 한 노인과 사이좋게 지냈다. 소환되게 되자 그 노인은 그에게 구차스럽게 영달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두영철(杜英哲)은 그 말에 따르겠다고 응락했다. 두영철(杜英哲)은 그 후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까지 이르렀는데 과연 또 죄에 빠져 좌천되어 그곳을 지나갔다. 그 노인이 그를 전송하며 이 노래를 지어 그를 꾸짖었다. 이제현(李齊賢)이 시를 지어 노래를 풀이하였다. 구구새야 너는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그물에 노랑입이 붙어 있으니 눈구멍은 원래 어디에 있었길래 불쌍하게 그물에 걸려 참새 못난아 § 제위보(濟危寶) 부인이 죄 때문에 제위보(濟危寶)에서 도역(徒役)살이를 했다. 그녀는 자기 손이 남에게 잡혀진 바 되고 <그것으로 인한 치욕을> 씻을 길이 없는 한스럽게 여겨 이 노래를 지어 혼자서 원망했다. 이제현(李齊賢)이 시를 지어서 이 노래를 풀이하였다. 빨래하는 시냇가 수양버들 곁에서 손을 잡고 마음 속 말하던 흰 말 탄 사나이 비록 처마를 연잇게 하는 석 달 동안 계속되는 비가 내린다해도 손가락에서 어떻게 남은 향내를 차마 씻어버릴 수 있으리오 § 안동자청(安東紫靑) 부인은 몸으로 사람을 섬기다가 한번 자기 몸가짐을 실수하면 사람들에게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바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를 지어서 실의 빨강 초록 파랑 흰색을 가지고 되풀이 비유해서 취사(取捨)의 결정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 송산(松山) 송산(松山)은 개성(開城)을 진수(鎭守)하는 산이다. 태조(太祖)가 개성(開城)에 도읍해서부터 여러 대를 계승해 내려와 국조(國祚)가 연장했다. 이 노래는 그래서 지어진 것이다 § 예성강(禮成江)【노래는 두편이 있다.】 옛날에 중국 상인인 하두강(賀頭綱)이란 자가 있었는데 바둑을 잘 두었다. 그가 한번은 예성강(禮成江)에 갔다가 아름다운 부인을 하나 보고서 그녀를 바둑에 걸어서 <빼앗으려고> 그녀의 남편과 바둑을 두어 거짓으로 지고서는 물건을 갑절로 치뤄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롭다고 생각하고 아내를 걸었다. 하두강(賀頭綱)은 단번에 이겨서 <그녀를 빼앗아 가지고> 배에다 싣고 가버렸다. 그 남편은 한(恨)에 차서 이 노래를 지었다. 세상에 전해지기는 부인(婦人)이 떠나갈 때에 몸을 되게 조여매서 두강(頭綱)이 건드리려고 했으나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배가 바다 가운데에 이르자 뱅뱅 돌고 가지 않아서 점을 쳤더니 이르기를, “절부(節婦)에 감동되었으니 그 여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배는 반드시 파선하리라.”하므로 뱃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두강(頭綱)에게 권해서 그녀를 돌려보내 주었다. 그 부인(婦人)이 역시 노래를 지었다. 후편(後篇)이 그것이다. § 동백목(冬栢木) 충숙왕조(忠肅王朝)에 채홍철(蔡洪哲)이 죄로 먼 섬에 유배되어 갔는데 덕릉(德陵)을 사모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날로 소환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옛날부터 이 노래가 있었는데 채홍철(蔡洪哲)이 그 노래를 고쳐서 자기 뜻을 기탁했다고도 한다. § 한송정(寒松亭) 세상에 전해지기는 이 노래는 슬(瑟) 밑바닥에 쓰여져 강남(江南)에까지 흘러갔으나 강남 사람들이 그 가사(歌詞)의 뜻을 풀지 못했다. 광종조에 국인 장진공(張晉公)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강남에 갔었는데 강남 사람들이 그에게 가사의 뜻을 물었다. 장진공(張晉公)이 시를 지어 노래의 뜻을 풀이하였다. 달빛 밝은 한송(寒松)의 밤 물결 가라앉은 경포(鏡浦)의 가을 슬프게 울며 왔다가는 또 가버리는 소식 지닌 한마리의 갈매기 § 정과정(鄭瓜亭) 정과정(鄭瓜亭)은 내시 낭중(內侍郞中) 정서(鄭敍)가 지은 것이다. 정서(鄭敍)는 과정(瓜亭)이라 자호(自號)했고 외척과 혼인을 맺어 인종(仁宗)의 총애를 받았다. 의종(毅宗)이 즉위하게 되자 그의 고향인 동래(東萊)로 돌려 보내면서 이르기를, “오늘 가게 된 것은 조정의 의론에 몰려서이다. 멀지 않아 소환하게 될 것이다.”하였다. 정서(鄭敍)가 동래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으나 소환명령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거문고를 잡고 이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가 극히 처비(凄悲)하다. 이제현(李齊賢)이 시(詩)를 지어 이 노래의 뜻을 풀이하였다. 임금을 생각하여 어느 날인들 옷을 적시우지 않은 적이 없으니 바로 봄철 산의 뻐꾹새와도 같다 옳고 그르고 한 것은 사람들이여 묻지 말아라 오직 넘어가는 달과 새벽별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 풍입송(風入松) 해동(海東)의 천자(天子)는 지금의 제불(帝佛)이시라 하늘을 보좌하여 교화(敎化) 펴는 일 도우러 오셔 세상다스리시는데 은혜 깊으시니 원근(遠近)과 고금(古今)에 그 유례 드물다 외국에서는 직접들 찾아와서 다들 귀순하여 사방 변경(邊境)은 편안하고 깨끗하여 창이니 군기(軍旗)는 없어졌으니 대단하신 덕은 요(堯) 임금이나 탕왕(湯王)의 그것으로도 견주기가 어렵다 잠시 태평시절을 즐기는 거라 이곳에는 생황과 퉁소 소리 물끓듯하고 또 풍류소리 대단하다 집집마다 기뻐 비느라 향을 피우고 옥수(玉穗) 뽑아낸다 오직 우리 임금님 성수만세(聖壽萬歲) 영원토록 저 산봉우리와 저 하늘같이 끝없이 사시어라 사해(四海)는 승평(昇平)하고 덕(德)이 있어 요(堯) 임금 때보다도 낫다 변경(邊境)과 조정(朝廷)에는 한가지 사고도 없고 장군(將軍)의 보검(寶劒)은 다시 휘두루지 않게 되었다 남만(南蠻)과 북적(北狄)이 자진해서 내조(來朝)하여 백가지 보물을 우리 천자(天子)의 대궐지대에 바치고 금계(金階) 옥전(玉殿)에서 만세(萬歲) 외치고 우리 임금님 오래오래 보위(寶位)에 올라 계시기를 원한다 이 태평시절에 당해서 관현(管絃)과 가요(歌謠)의 소리가 아름답다 임금님 성스러우시고 신하 현량(賢良)한데 황하수 맑아지고 바다 편안한 때를 만났도다 이원제자(梨園弟子)들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악무(樂舞)를 백옥소(白玉簫) 곁들여 우리 임금님 앞에서 연주한다 신선의 음악이 뜰에 가득차 있는데 다 음률에 맞는다 군신(君臣)이 함께 태평잔치에 취하고 임금님의 마음 많이 기뻐지신다 이날 은루각(銀漏刻)은 재촉하듯 자주 전하지 말라 문무관료들 배하(拜賀)하고 함께 임금님의 장수을 빈다 천자께서 옥연(玉輦)을 타시고 돌아가시면 금빛 궁궐 푸른 누각엔 상서로운 연기 감돌고 어지럽게 꽃으로 꾸미고 눈썹 그린 미희(美姬)들 천줄이나 늘어서 생가(笙歌) 맑고 명랑하여 모두 신선들이라 다투어 환궁악사(還宮樂詞)를 창(唱)하여 성수만세(聖壽萬歲)를 알리운다 § 야심사(夜深詞) 날씨가 따뜻하다. 날씨가 따뜻하다 바야흐로 봄을 맞아 상원가절(上元佳節)에 화려한 잔치 차린다 등불은 꺼져가고 달은 가라앉는데 신선들 떼지어 내려온다 궁궐의 누각(漏刻) 재촉하여 물 소리는 졸졸 꽃은 병에 가득차 있고 술은 잔에 가득차 있다 군신(君臣)이 군신(君臣)이 함께 태평세월에 취한다 기뻐 취하고 밤은 깊어 닭은 새벽을 노래하는데 사람의 마음 심히 후해서 못떠나 한다 사람 기다리기란 어려운 거라 사람 기다리기란 어려운 거라 어디에 있는가고 깊숙이 동방(洞房) 속에 갇혀있다 사람 기다리기란 어려운 거라 긴 밤 잠못 이루는데 님은 오지 않고 깁방장 수장막은 신선이 거처하는 곳이라 풍입송(風入松)은 송축(頌祝)하는 뜻이 있고 야심사(夜深詞)는 군신(君臣)이 서로 즐기는 뜻이 있는데 다 연회를 끝내고서 노래하는 것들이다. 어느 때에 지은 것인지는 모른다. § 한림별곡(翰林別曲) 원순(元淳)의 문장(文章)【유원순(兪元淳)】 인로(仁老)의 시(詩)【이인로(李仁老)】 공로(公老)의 사륙(四六)【이공로(李公老)】 이정언(李正言)【이규보(李奎報)】 과 진한림(陳翰林)【진화(陳)】 이 쌍운(雙韻)의 시(詩)를 붓을 달려 단숨에 지어내는 것, 충기(基)의 대책(對策)【유충기(劉基)】 광균(光鈞)의 경의(經義)【민광균(閔光鈞)】 양경(良鏡)의 시부(詩賦)【김양경(金良鏡)】 아아 시장(試場) 그 정경 어떠하겠나. 금학사(琴學士)【금의(琴儀)】 옥쟁문생운운(玉箏門生云云)【이어(俚語). 무릇 가사(歌詞) 중에 이어(俚語)이기 때문에 기재(記載)하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이 표시한다.】 《당서(唐書)》와 《한서(漢書)》, 《장자(莊子)》와 《노자(老子)》,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의 문집(文集),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시집(詩集), 《난대집(蘭臺集)》, 《백락천집(白樂天集)》, 《모시(毛詩)》, 《상서(尙書)》, 《주역(周易)》, 《춘추(春秋)》, 《주례(周禮)》와 《예기(禮記)》 운운(云云)【이어(俚語)】 《태평광기(太平廣記)》 400여권 아아 두루 읽으면 그 정경 어떠하겠나. 안진경(顔眞卿)의 글씨 비백서(飛白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전(篆) 주서(書) 과두서(書) 우세남(虞世南)의 글씨 양수필(羊鬚筆) 서수필(鼠鬚筆) 운운(云云)【이어(俚語)】 오생(吳生)과 유생(劉生) 두 선생 아아 붓을 달려 써 내면 그 정경 어떠하겠나. 황금주(黃金酒) 백자주(柏子酒) 송주(松酒) 예주(醴酒) 죽엽주(竹葉酒) 이화주(梨花酒) 오가피주(五加皮酒) 앵무잔(鸚鵡盞) 호박배(琥珀杯) 운운(云云)【이어(俚語)】 유령(劉伶)과 도잠(陶潛) 두 신선 노인 운운(云云)【이어(俚語)】 붉은 모란 흰 모란 진홍 모란 붉은 함박꽃 진홍 함박꽃 어류옥매(御榴玉梅) 노랑과 자주 장미 지지(芷芝) 동백꽃 아아 한가하게 피어있으니 그 정경 어떠하겠나. 합죽도화운운(合竹桃花云云)【이어(俚語)】 아아 서로 비춰나면 그 정경 어떠하겠나. 아양(阿陽)의 금(琴) 문탁(文卓)의 저 종무(宗武)의 중금(中) 대어향(帶御香)과 옥기향(玉肌香)의 쌍가야금(雙伽倻琴) 김선(金善)의 비파(琵琶) 종지(宗智)의 해금 설원(薛原) 의 장고 아아 밤새 <연주하면> 그 정경 어떠하겠나. 일지홍운운(一枝紅云云)【이어(俚語)】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瀛州)의 세 산 이 세 산에 붉은 누각 아리따운 신선아가씨 푸른 머리 이마 비단 수방장 안에 구슬발 반쯤 말아올린다. 아아 높은데 올라 5호(五湖)를 바라보면 그 정경 어떠하겠나. 푸른 버들과 푸른 대가 정자 가에 심어져 있다. 아아 꾀꼬리 우짖으면 그 정경 어떠하겠나. 당당당당 추자(楸子) 조래운운(萊云云)【이어(俚語)】 옥을 깎은 듯 보드랍거니 운운(云云)【이어(俚語)】 아아 손잡고 함께 노닐면 그 정경 어떠하겠나. 이 곡(曲)은 고종(高宗) 때 한림원(翰林院)의 여러 선비들이 지은 것이다. § 삼장(三藏) 삼장사(三藏寺) 안에 등불을 켜러 갔더니 사주(社主)가 있어 내 손을 잡았다 만약에 이 말이 절간 밖으로 나간다면은 상좌(上座)에게 네가 한 말이라고 이르겠노라 § 사룡(蛇龍) 뱀이 용의 꼬리를 물고서 태산의 뫼뿌리를 지나갔다고 들었다 만(萬) 사람이 각각 한마디씩 하여도 짐작하는 것은 두 마음에 달려있다. 위의 <삼장(三藏)과 사룡(蛇龍)> 두 노래는 충렬왕조에 지은 것이다. 왕이 군소배(群小輩)를 친근(親近)히 하고 연악(宴樂)을 좋아했다. 행신(倖臣) 오기(吳祈)와 김원상(金元祥) 내료(內僚) 석천보(石天補)와 석천경(石天卿) 등이 성색(聲色)으로 왕을 기쁘게 해주기에 힘썼다. 관현방(管絃房)의 태악재인(太樂才人)으로도 부족하다고 여러 도에 행신(倖臣)을 보내서 관기(官妓)로 자색(姿色)과 기예(伎藝)가 있는 자를 고르고 또 성중에 있는 관비(官婢)와 무당으로 가무(歌舞)를 잘하는 자를 골라다가 궁중(宮中)에 등록해서 두어두고 비단옷을 입히고 마종립(馬笠)을 씌워서 따로 한 대(隊)를 만들어 남장(男粧)이라 칭하고 이 노래들을 가르쳐 가지고 군소배(群小輩)들과 밤낮으로 가무를 하고 난잡하게 굴고 군신 사이의 예는 전연 없어졌다. 뒤를 대고 내려주고 하는 비용이 이루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 자하동(紫霞洞) 집은 송산(松山)의 자하동(紫霞洞)에 있는데 구름과 연기 서로 닿아있는 중화당(中和堂) 오늘 원로(元老)님네 모였다는 소식 기뻐서 찾아와 한잔의 장명주(長命酒)를 드리옵니다 한잔이면 천년(千年)의 장수(長壽) 얻게 되오니 한잔하고 또 한잔 드시옵소서 세상의 춘추(春秋) 지나가는 것일랑 도시 상관 마시고 못두덕에는 봄풀이 돋아났고 정원의 버들에는 우는 새 가득하다 삼한(三韓)의 원로(元老)들이 중화당(中和堂)에 잔치를 벌여 백발에 꽃을 꽂고 손에는 쇠술잔 잡고 서로 술을 권하니 비록 풍류(風流)스러운 신선보다 낫다고 한들 무엇이 나쁘리오 월류금(月留琴)으로 태평년(太平年) 연주하니 공(公)들이여 많이 드시고 취하는 것 사양하지 마옵소서 인생에는 술준 앞잡이 좋은 곳은 없고 인생 백년(百年)을 보내는덴 술만한 게 없으니 술잔이 자기 손에 돌아오면 남기지 마시라 정중하게 공(公)들을 위해 한 곡을 부르겠는데 그것은 무슨 곡인가 만년환(萬年歡)이다 인생엔 다시는 희황(羲皇)을 만나보지 못할 것이니 님들이여 힘을 내어 매일매일 마시옵소서 태평신세는 오직 취향(醉鄕) 뿐 자하동(紫霞洞)의 중화당(中和堂) 관현(管絃)소리 가운데 온 좌석 좋은 손들은 다 삼한(三韓)의 국로(國老)들 백발에 꽃을 꽂고 손에 쇠 술잔 들고 서로 술을 권한다 봉래산(蓬萊山)의 선인(仙人)이 도리어 풍류(風流)스럽지 않다. 운운(云云)【이어(俚語)】 시중(侍中) 채홍철(蔡洪哲)이 지은 것이다. 채홍철(蔡洪哲)은 자하동(紫霞洞)에 살면서 자기의 당(堂)을 중화(中和)라 하고 매일같이 원로(元老)들을 맞아다. 극도로 즐기고서야 끝내고는 했다. 이 노래를 지어 가비(家婢)를 시켜 노래하게 했다. 가사(歌詞)는 다 선가의 말로 대체로 자하의 신선에 기탁한 것이다. 원로(元老)들이 중화당(中和堂)에 모였다는 것을 듣고 와서 가사(歌詞)를 노래한 것이다. 삼국의 속악 § 신라(新羅) ○ 동경(東京)【곧 계림부(鷄林府)다.】 신라(新羅)는 승평(昇平)의 세월이 오래 계속되고 정치(政治)와 교화(敎化)가 순미(醇美)하여 신령한 상서가 자주 나타나고 봉새가 날아와 울었다. 나라 사람들이 이 노래를 지어서 그것을 찬미했다. 이 노래에 나오는 월정교(月精橋)와 백운도(白雲渡)는 다 왕궁(王宮) 근처에 있었던 곳들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봉생암(鳳生巖)이 있었다는 것이다. ○ 동경(東京) 동경(東京)은 송축(頌祝)하는 노래다. 신하와 아들이 임금과 아비에게 비천한 자와 젊은이가 존귀한 이와 연장자(年長者)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모든 경우에 통하는 노래다. 이 노래에 나오는 안강(安康)은 곧 계림부(鷄林府)의 속현(屬縣)으로 역시 동경(東京)이라고도 부르는데 큰 지명에 통합되어 불리워진 것이다. ○ 목주(木州)【지금의 청주(淸州)의 속현(屬縣)임.】 목주(木州)는 효녀(孝女)가 지은 것이다. 딸이 아비와 후모(後母)를 섬겼는데 효성스럽다고 알려졌다. 아비는 후모(後母)의 거짓말에 미혹(迷惑)되어 그녀를 쫓아냈다. 딸은 차마 떠나가버리지 못하고 머물러 있으면서 부모를 봉양하는데 더욱 근하고 게을리하는 일이 없었다. 부모는 심히 노해서 또 그녀를 쫓아냈다. 딸은 할 수 없이 하직하고 떠나가 어떤 산중으로 들어갔는데 석굴(石窟)에 노파가 있는 것을 보게 되어 그녀는 마침내 자기의 사정을 그 노파에게 말하고 이어 부쳐살게 해달라 요청했다. 노파는 그녀의 궁박한 사정을 슬퍼하여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딸은 부모를 섬기는 정성으로 노파를 섬겼다. 노파는 그녀를 사랑하여 자기 아들과 짝을 맞춰주었다. 부부는 협심(協心)하여 근면하고 검약하게 살아 부자가 되었다. 그녀의 부모가 심히 가난하다는 것을 듣고 자기네 집으로 맞아와서 극진하게 봉양했다. 부모는 그래도 기뻐하지 않아서 효녀(孝女)는 이 노래를 지어서 스스로 원망했다. ○ 여나산(余那山) 여나산(余那山)은 계림(鷄林) 성내(城內)에 있다. 세상에 전해지기는 서생(書生)이 이 산에 살면서 공부를 해서 과거에 뽑혀 세족(世族)과 혼인을 맺었다. 그 후 그 서생(書生)이 과시(科試)를 관장(管掌)하게 되어 잔치를 차렸다. 그가 혼인한 집에서 기뻐하여 이 노래를 불렀다. 그 후부터 과시(科試)를 관장(管掌)하는 사람은 잔치를 차리고 먼저 이 노래를 불렀다. ○ 장한성(長漢城) 장한성(長漢城)은 신라(新羅)의 국경인 한산(漢山) 북쪽 한강(漢江) 가에 있었다. 신라(新羅)에서는 거기에 큰 진(鎭)을 두었던 것이다. 후에 고구려(高句麗)에게 점거되는 바 되었는데 신라(新羅) 사람들이 군사를 일으켜 그 성을 회복하고 이 노래를 지어 그 공(功)을 기념했다. ○ 이견대(利見臺) 세상에 전해지기는 신라왕(新羅王)의 부자(父子)는 오랫동안 서로 잃고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찾아내게 되자 대(臺)를 구축(構築)하고 거기서 만나고 부자(父子) 상봉의 기쁨을 다하고 이 노래를 지어서 부르고 그 대(臺)를 이견(利見)이라고 이름지었다. 이것은 대체로 《주역(周易)》의 「이견대인(利見大人)」의 뜻을 취한 것이다. 왕의 부자(父子)가 서로 잃고 만나지 못할 까닭이 없다. 혹은 이웃나라에 나가서 회동(會同)을 했었는지도 모르겠고 혹은 인질(人質)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백제(百濟) ○ 선운산(禪雲山) 장사(長沙) 사람이 <먼 고장으로> 부역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람의 처(妻)가 그를 생각하여 선운산(禪雲山)에 올라가 바라보며 이 노래를 불렀다. ○ 무등산(無等山) 무등산(無等山)은 광주(光州)의 진산(鎭山)이다. 광주(光州)는 전라도(全羅道)에 있는데 큰 읍(邑)이다. 이 산(山)에 성(城)을 쌓았는데 백성들은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즐거워서 이 노래를 불렀다. ○ 방등산(方等山) 방등산(方等山)은 나주(羅州)의 속현(屬縣)인 장성(長城)의 성내(城內)에 있다. 신라(新羅) 말년(末年)에 도적이 크게 일어나 이 산(山)에 근거를 두고 있었고 양가(良家) 자녀(子女)들이 많이 잡혀갔다. 장일현(長日縣)의 여인(女人) 역시 잡혀간 가운데 들어 있었는데 이 노래를 지어 자기 남편이 곧 와서 구출해 주지 않는 것을 풍자(諷刺)했다. ○ 정읍(井邑) 정읍(井邑)은 전주(全州)의 속현(屬縣)이다. 정읍(井邑) 사람이 행상(行商)을 나가서 오래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그 처(妻)가 산 위에 있는 돌에 올라가서 <남편이 돌아오는가>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밤길을 가다 해(害)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진흙물의 더러움에 부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전하기는 고개에 올라가 남편을 바라본 돌이 있다고 한다. ○ 지리산(智異山) 구례현(求禮縣) 사람의 딸이 자색(姿色)이 있었는데 지리산(智異山)에서 살면서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부도(婦道)를 다했다. 백제왕(百濟王)이 그녀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첩으로 들이려고 하자 그녀는 이 노래를 지어 죽기를 맹서하고 따르지 않았다 § 고구려(高句麗) ○ 내원성(來遠城) 내원성(來遠城)은 정주(靜州)에 있는데 바로 물가운데의 땅이다. 오랑캐가 귀순해 오면 이 곳에 두고는 하여서 그 성(城)의 이름을 내원(來遠)이라고 하고 이 노래를 불러서 기념한 것이다. ○ 연양(延陽)【연산부(延山府)임】 연양(延陽)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임을 받아 쓰여지게 되었는데 그자는 죽기를 무릅쓰고 열심히 일했다. 자기를 나무에 비유해서 말하기를 나무가 불을 도우려면 반드시 자체를 해치는 화를 초래하지만 그러나 쓰여지는 것을 다행하게 생각하고 비록 재가 되어 다 타버리기에 이른다하여도 사양하지 않는다고 했다. ○ 명주(溟州) 세상에 전하기는 서생(書生)이 외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다가 명주(溟州)에 이르러 한 양가(良家)집 딸을 만났는데 아름다운 자색(姿色)의 소유자였고 서생(書生)을 꽤 알아주어 그는 번번이 시(詩)로서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녀가 이르기를, “여자는 망녕되이 사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당신이 과거에 뽑힌 후 부모님께서 명령이 계시면 일은 잘 될 것입니다.”하니, 서생(書生)은 곧 서울로 돌아가 과거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 여자 집에서도 사위를 보려고 하였다. 그 여자는 평소에 못 가에 가서 물고기에 모이를 주고는 했는데 물고기는 그녀의 기침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와서 모이를 먹었다. 그녀는 물고기에 모이를 주면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을 오랫동안 길러주었으니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라고 하고 깁에 쓴 편지를 던졌더니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뛰어올라 그 편지를 물고 유연(悠然)히 가버렸다. 서생(書生)이 서울에서 어느 날 부모의 반찬을 마련하려고 물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와 그 물고기를 갈랐더니 깁에 쓴 편지가 나왔다. 그것을 읽고 서생(書生)은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 곧 그 깁에 쓴 편지와 자기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곧장 그녀의 집으로 갔더니 사위가 이미 그녀의 집문 앞에 와 있었다. 서생(書生)은 편지를 그 집안 사람에게 보여주고 마침내 이 가락을 노래했다. 그녀의 부모가 이 일을 이상하게 여기고 이르기를, “이것은 정성에 감동되어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그 사위를 보내고 서생(書生)을 사위로 받아들였다. § 속악(俗樂)을 쓰는 절도(節度) 원구(丘)와 사직(社稷)에 제사하고 태묘(太廟) 선농(先農) 및 문선왕묘(文宣王廟)에 제향을 드릴 때, 아헌(亞獻)·종헌(終獻) 및 송신(送神)에는 다 향악(鄕樂)을 번갈아 연주한다. 왕비(王妃) 왕태자(王太子) 왕희(王姬)를 책봉(冊封)하고 왕태자(王太子)가 원복(元服)을 가(加)하는데 있어 빈객(賓客)이 막(幕)에 나가는데 끝나 빈주(賓主)가 목화를 벗고 홀(笏)을 내려놓고 나가서 위(位)에 나갈 때 모두 영선악(迎仙樂)을 연주한다. ○ 문종(文宗) 27년 2월 을해(乙亥)에 교방(敎坊)에서 여제자(女弟子) 진경(眞卿) 등 13인(人)이 전한 답사행가무(踏沙行歌舞)를 연등회(燃燈會)에서 쓰기를 주청(奏請)했는데 제문(制文)을 내려 그것에 따랐다. 동년(同年) 11월 신해(辛亥)에 팔관회(八關會)를 차리고 국왕(國王)이 신봉루(神鳳樓)에 임어(臨御)하여 악무(樂舞)를 관람하였는데 교방(敎坊) 여제자(女弟子) 초영(楚英)이 새로 전래한 포구악(抛毬樂)과 구장기(九張機) 별기(別伎)를 연주했다. 포구악(抛毬樂)은 제자(弟子)가 13인(人)이고 구장기(九張機)는 제자(弟子)가 10인(人)이다. 동(同) 31년 2월 을미(乙未) 연등(燃燈) 때 국왕(國王)이 중광전(重光殿)에 임어(臨御)하여 악무(樂舞)를 관람하였는데 교방(敎坊) 여제자(女弟子) 초영(楚英)이 왕모대가무(王母隊歌舞)를 연주했다. <이 가무(歌舞)는> 1대(隊)가 55인(人)이고 춤으로 네 글자를 만들어 내는데 혹은 왕 “군왕만세(君王萬歲)” 혹은 “천하태평”이 된다. ○ 공민왕(恭愍王) 14년 경술(庚戌) 전에 왕이 유사(有司)에게 명해서 정릉제악(正陵祭樂)을 연습시켰는데 이날에 와서 그것을 친히 구경했다. 임자(壬子)에 재추(宰樞)에게 명해서 정릉(正陵)을 제사케 하고 연습한 음악을 연주시켰다. 동15년 12월 갑인(甲寅)에 재추(宰樞)가 하남왕(河南王)의 사자(使者) 곽영석(郭永錫)을 향연하면서 향(鄕) 당악(唐樂)을 연주하여 우리 음악의 관람을 청했다. 동16년 정월(正月) 병자(丙子)에 휘의 공주(徽懿公主)의 혼전(魂殿)에 석명(錫命)을 고(告)했는데 초헌(初獻)에 태평년(太平年)의 곡(曲)을 연주하고 아헌(亞獻)에 수룡음(水龍吟)의 곡(曲)을 연주했다. 21년 정월(正月) 을묘(乙卯)에 왕이 인희전(仁熙殿)에 나가 제사를 지냈는데 향(鄕) 당악(唐樂)을 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