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입니다.
환난 날에 드리는 기도 (시 50:14-15)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 시간에 “환난 날에 드리는 기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바다와 같아서 잔잔한 날보다 거친 파도가 치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욥기서의 엘리바스는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욥5:7) 했습니다. 불티 없이 불 피울 수 있습니까?
불티가 위로 오르는 것이 당연하듯, 인간의 삶에 고난이 찾아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물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도 눈물로 마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기도하라. 그러면 도우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환난의 날에 드리는 기도는 좀 다릅니다.
환난 날의 기도는 어떤 기도여야 할까요?
1. 환난 날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대하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셨습니다.
앗수르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을 때 하나님께서 요나를 보내 심판을 외쳤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 그러자 왕을 비롯해 온 국민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리시고자 한 심판을 철회하셨습니다.
잠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죄를 깨닫는 것만큼 복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책망을 달게 받는 사람이 가장 현명합니다.
그래서 잠25:12에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했고, 잠13:1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견책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했습니다. 잠13:18에는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했습니다.
잠9:8에는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했습니다. 고전14:24-25에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말씀과 예언 은사가 좋습니다.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환난 날의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렘29:12-13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환난을 면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에게도 이런 약속도 하셨습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절망 상태지만 부르짖어 기도하면 비전까지 주십니다.
사사기에도 원수들의 압제 아래 부르짖고 기도할 때 7번이나 사사를 일으키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삼상 7장 미스바 성회 때도 블레셋이 쳐들어왔으나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할 때 큰 우레를 발하사 물리쳐 주셨습니다.
학자들이 한국교회의 열정과 부흥을 연구하면서 내린 그 결론은 새벽기도와 부르짖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좀 살게 되니까 부르짖는 기도가 사라졌고, 제자교육 운동이 일어났지만 기도 없는 제자교육이었습니다. 본래 제자교육은 그렇지않습니다.
예수님이 제자교육은 첫째가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고, 다음은 기도훈련으로 능력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예수를 믿었으니 이제 할 일은 기도훈련입니다. 기도훈련만 잘 받아도 제자교육 잘 받은 것입니다. 더 욕심 낸다면 마지막으로 사랑을 강조하신 것처럼 기도와 사랑입니다.
3. 환난 날의 기도는 서원기도입니다.
시50:14-15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서원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도움을 바라거나 보답으로 어떤 것을 약속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가 아들 주신다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이 서원입니다. 야곱도 형을 속이고 외삼촌 집으로 가는 일에 광야에서 길을 잃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서원을 이행하지 않다가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두 아들이 보복으로 세겜 성민을 죽이다가 얼마나 두려운 일을 당했습니까?
이처럼 서원은 하나님께서 완악한 자를 회개시키시고 일 시키시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셔서 그 서원을 받아내십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난발해서는 안 되지만 필요할 때는 하세요.
위대한 부흥사 무디가 1892년 영국에서 여객선을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다가 배에 닻이 부러져 배가 파선 위기에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무디가 회개하며 서원했습니다. 회개한 것은 영국의 스퍼전이 과로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건강 염려로 전도의 삶이 위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만약 저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신다면 이제부터 저의 건강도 물질도 아끼지 아니하고 오로지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쏟겠습니다." 서원하고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그가 깨어났을 때 그의 가슴은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밤 3시에 1,000마일 밖에서 배가 와서 배를 구출해 주었습니다.
한국의 부흥사 박재봉 목사님도 어렸을 때 폐병으로 폐에 7개나 손가락이 드나들 정도의 동공이 생겨 피를 토하여 죽어갈 때 의사들은 탄식하며 내려가서 부모님이나 뵈라고 했습니다. 그는 부모에게 실망을 주기 싫어 산에서 죽으려고 올라가다가 쓰러졌습니다. 쓰러져 얼마를 기도했는지 고요한 새벽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병이 나으면 무엇을 하겠느냐" 그래서 박재봉은 "예 종신토록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힘껏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서원기도를 하자 갑자기 뜨거운 불이 폐에 가득하고 전류처럼 흐르는 것 같더니 가슴이 시원해졌고 걷게 되어 집으로 내려가 집 마당을 돌면서 하나님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4. 환난 날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121:7에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하셨고, 시91:10-11에도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성도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애굽 나라에 열 가지 재앙이 몰아칠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재앙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출15:26에도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환난이 와도 면제받고 사시기 바랍니다. 시91:4-7에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환난을 겪지 않겠다고 해서 환난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온 국민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자고 결의한다고 해서 전쟁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전쟁을 포기하면 전쟁이 더 가깝게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그러므로 우리 모두 진실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부르짖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서원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환난을 면제 받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