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이 왔다. 한 여성회원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당신 회사 커플매니저나 사장 당신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이네요. 사람 뒷통수 쳐놓고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두고 볼 거예요.”
며칠 전 불만을 제기한 그녀에게 사과하고 탈퇴처리를 하면서 잘 마무리 했는데 느닷없이 이처럼 악의적인 메일을 받으니 황당했다.
그
녀가 처음 회원 가입한 것은 4년 전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그녀는 29세로 찰랑찰랑한 생머리에 하얀 피부, 아름다운 외모,
세련된 스타일이었고, 밝은 표정과 발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미인이었다. 수많은 회원들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특이 사항이
있는 경우는 예의주시하게 된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로 매니저들 사이에서 회자됐고 나 역시 메일을 받고나니 기억이 났다.
남
녀 만남에서 여성이 외모가 뛰어나면 게임 끝이다. 어느 정도 무난한 조건은 외모에 묻힌다. 얼굴이 예쁘면 다른 여성들보다
우선적으로 만남 기회도 주어진다. 여성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남성들에게는 외모가 가장 어필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나 전문직 같이
조건 좋은 남성들 중에 외모를 따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남성들이 그녀가 찾는 결혼상대이기도 했기에 소개는 쉽게 이뤄졌다.
여자 얼굴 예쁘면 남자들에게 최고 인기
첫
만남 상대는 전문직 종사자로 킹카로 불릴 만큼 멋진 남성이었다. 만남 다음 날 그 남성은 입이 귀에 걸린 목소리로 “만족한다”는
전화를 걸어왔고, 감사의 표시로 피자까지 돌렸다. 그 후 3~4주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 남성은 매니저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녀와는 어떻게 되었느냐” 묻자, “아주 불쾌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자신이 찾던 스타일이라면서 행복해하던
그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남성을 질리게 하는 여성들을 종합해보면 3가지 유형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돌변형으로 웃다가 울다가 도무지 어찌 변할지 종잡을 수 없는 여성이다. 둘째는 집착형으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계속 붙잡고 늘어진다. 셋째는 예민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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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그 남성의 말을 듣자니 그녀는 첫번째에 해당했다. 몇 번 만나면서 서로 어느 정도 친해진 즈음이었다고 한다. 대화 도중에
가볍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상이 좋아서 예전에 잘 나갔을 것 같아요. 남자들한테 인기도 많고.”
그 남성으로서는 그녀의 미모를 칭찬한다고 한 말인데 사근사근하던 그녀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니 그런 얘기를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요? 그럼 내가 과거가 복잡한 여자라는 거예요?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죠?”
남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화를 냈고, 그러다가 서로 욕을 하는 상황에까지 갔다고 한다. 그렇게 첫 만남은 끝이 났다는 것이다.
처
음에는 서로 성격이 안 맞는 남녀가 만났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곧 두번째 소개를 했다. 최고의 학벌과 직업을 가진 이
남성과도 처음에는 순조롭게 만남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몇 주 후 그 남성은 그녀에게 치를 떨며 항의 전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그런 여자를 소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말 실수 몇 번 한 것 가지고, 1~2시간씩 전화를 걸어 못살게 구는 건
예사이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풀릴 때까지 계속 물고 늘어진다”고 했다. “이제는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면서 ‘마귀할멈’이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했다.
그녀가 퀸카에서 위험인물 된 사연
그의 결정적인 한마디가 그녀의 실체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다른 남자 누구한테도 절대 소개시켜서는 안 된다. 마음에 독가시가 있는 여자다. 찔리면 전치 몇 년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그녀에 대한 경계경보가 발령되었다. 그녀는 최고의 퀸카에서 위험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아름답지만, 몇 번 만나보면 남성들이 싫어하는 세가지 모습을 다 갖고 있는 최악의 만남상대였다.
그
녀를 만난 남성들은 불쾌한 경험을 했지만, 어찌 보면 그녀의 가시에 찔려 잠시 아프고 만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 그녀는
100m쯤 떨어져서 봐야 미인이지, 가까이 갈수록 지옥도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회원에 대해 확신이 있으면 자신 있게 소개를
하는데, 이런 경우처럼 일단 회의가 들면 소개 할 때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누구를 소개할지도 난감하고, 그녀가 또 어떤
성격을 드러내서 대형사고를 칠지 조마조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매니저 한 명이 상황을 좀 풀어보겠다고 그녀에게 몇
마디 한 것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남녀가 잘 만나려면 성격을 조금 감출 필요가 있어요. 처음부터 다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거든요.” 남성들의 항의를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고, 에둘러서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뜻이었는데, 오히려 그녀의 성질을 돋우고
말았다.
“내 성격이 어때서요. 고객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어떤 남자예요?”
매
니저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그녀에게서 처음 느꼈던 그 신선함과 발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내부에서 공유하는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성격 몹시 예민. 남성들의 피드백 안좋음. 소개시 문제
발생 소지 많음’ 그녀에 대한 소개가 차츰 줄어들었고, 그렇게 그녀는 우리들 사이에서 잊혀졌다.
그녀의 기록카드 ‘성격 몹시 예민. 남성들의 피드백 안좋음. 소개시 문제 발생 소지 많음’ 으로 적혀
2~3
년이 지난 후, 그녀가 고객만족센터로 그 문제의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알고 보니 일련의 사건 이후로 그녀에 대한 매니저 소개는
중단되었지만, 그 동안 온라인으로 계속 만남을 가져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온라인상에서는 외모가 좋으면 엄청난 프러포즈를 받게
된다. 그래서 계속 남자를 만나왔다는데, 무려 123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만났던 남자들 중에 매니저의 지인이 있었다. 그녀를 잘 아는 매니저는 처음에는 만나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남자는 이미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고, 할 수 없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얼마 후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여자와 점점 가까워지고, 마음을 열게 되면서 남자는 매니저가 한 말을 해버린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자기가 보기에 좋은 여자를 매니저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 당신같이 좋은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을까요? 매니저가 사람 잘못 본 것 같네요. 내가 가서 말해줘야겠어요.”
그 의도야 어땠건 간에 매니저가 고객의 흉을 본 셈이 되었고, 그녀는 사과를 요구했다. 그럴 경우에는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에 사과를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입장이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사과를 했다.
“여기는 나하고 안 맞는 것 같아요. 탈퇴하겠어요."
보
통의 경우 고객이 탈퇴한다고 하면 설득을 하는 게 먼저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가 나가겠다고 하니 ‘얼씨구나’ 했다. 말리는
척하다가 탈퇴를 기정사실화하고, “좋은 분 꼭 만나십시오.”라는 인사와 함께 탈퇴 처리까지 해주었다. 굿바이.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나 싶었는데, 채 하루도 안 지나서 그녀의 독기 어린 메일을 받은 것이다. 결국 내가 그녀의 가시에 찔린 124번째 남자가 된 셈이다. 그래도 나 역시 행운남이다. 그녀는 탈퇴를 했기 때문이다.
후
일담 한마디. 첫 번째 만난 남성은 그래도 그녀를 못 잊어서 몇 달 후 다시 만났다. 그녀 역시 몇 번의 만남에 실패한 터라
재회한 처음에는 나긋나긋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의 그 성격이 드러났고, 그 남성은 그녀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