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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주고받는 한 소셜 네트워크에서 ‘Be careful’이란 제목이 1위로 올랐다. 걱정 반 호기심 반에 파란색 링크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줄줄이 달린 댓글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내용인즉슨, 요즘 애들 사이에 뜨는 게임이 있는데 그걸 통해 마약 거래가 이루어졌고 자기 아들도 희생양이 됐다며 당장 게임기를 버리라는 어느 아빠의 글이었다. 이 원글 아래, 비디오 게임은 백해무익하다며 동의하는 댓글들과 게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반대하는 대댓글들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게임이라면 얼마 전 아들도 다운받은 건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호기심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심란한 마음으로 다음 글들을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탈선의 시작은 비디오 게임이니 절대 시키지 말라는 글을 읽으면 당장 게임기를 뺏어야 할 것 같다가도, 온라인으로 낯선 이들과 연락이 쉬워진 게 원인이란 글을 읽으면 인터넷을 끊을까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각각의 댓글을 읽을 때마다 내 생각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다 어느 댓글에서 피식 코웃음이 터졌다. ‘그저 집 밖을 나가 학교에 가는 게 가장 위험한 행동일걸.’ 이 냉소적인 글은 지금까지 복잡했던 내 심정을 다 부질없게 만들었다.
이 이슈를 가족과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도 이 아빠처럼 아들에게서 막무가내로 게임기를 압수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또 아이들에겐 그들을 불신하는 잔소리꾼 엄마로 비칠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줏대 없는 내 수준이 들통날까 주저했던 거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이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올렸을까 궁금했다. 가족 간에도 나누기 쉽지 않은 뜨거운 감자를 왜 불특정 다수가 득실거리는 SNS에 던졌을까. 진짜 다른 부모들에게 조언하려는 순수한 의도였을까. 아니면 자기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즉흥적인 화풀이였을까.
게임을 둘러싼 페어런팅 논쟁은 결국 산으로 갔다. 정확한 정보 없이 감정적으로 특정 게임 회사를 매도 하는 댓글에, 이 지역에 사는 수많은 IT 종사자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들이대며 반론을 제시했다. 결국 며칠 뒤, 원글과 그 밑에 달린 모든 댓글이 지워졌다. 아무런 결론 없이 공중분해 된 상황이, 마치 어떤 양육 방식이 맞을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포기해 버린 내 처지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글을 캡처해 둘걸. 뚜렷한 주장이 있는 이들의 논쟁이 어쩌면 내 어정쩡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에 온 가족이 탄 차 안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아직 뭣 모르는 중학생 아들은 이 재밌는 게임을 못 하게 될까 봐 아는 친구들이랑만 한다고 변명하기 바빴다. 뭐 좀 안다 싶은 고등학생 딸은 논쟁이 있었던 그 SNS에서도 맘만 먹으면 마약 거래가 가능한 거 아니냐며 어른들의 아이러니를 비웃었다.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확고한 주장이 있었다. 어른들의 기우와 무지까지 되레 다 파악하면서 말이다. 남편은 앞선 내 생각과는 달리, 자기 의견을 당당히 내세우는 아이들의 소리를 잠잠히 경청했다. 지금은 틴에이저 아이들에게 일장 연설할 때가 아닌 것쯤은 남편도 이미 배운 모양이다. 뜨거운 감자를 서로에게 토스하기보다, 각자 자기 나름의 레시피로 멋지게 요리해 낼 줄 아는 가족에게 새삼 놀랐다.
도통 답을 찾지 못하는 처지를 솔직하게 나눈 것도 나만의 요리법이었지 싶다. 어쩌면 엄마의 난처함을 도와주려고 아이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꺼냈을 수도 있다. 나와 아이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남편도 말수를 줄였을지도 모른다. 염려와 두려움에 계속 묶여 있었다면 내 생각 안에 갇혀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가족을 의심했을 거다. 이번 기회를 통해, 최선의 페어런팅은 솔직한 소통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몸소 체험했다. 문득 원글 아빠가 생각났다. 혹시 그도 뭔가를 오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떤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을까. 아들과 이루지 못한 소통을 온라인 공간에서는 가능할 거로 생각했을까.
논쟁이 결론 없이 사라진 게 아쉬웠는지 새로운 글 하나가 올라왔다. 잘 아는 이의 글이었다. 문제의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기기들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서도, 또 그것을 사용하는 아이들을 돌볼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까지 조리 있게 잘 쓴 글이다. 그래서 반대하는 댓글도 악플도 달리지 않았다. 그런데 짧은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세대마다 그들만의 부가부(Bugaboo)가 있는 게 참 웃기지?’ 그저 웃기지만은 않은 뼈 때리는 팩트다.
구세대의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새로운 세대는 늘 홍역을 치른다. 알고 보면 별거 아닌 일을 괜한 걱정거리로 둔갑시킨다.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 망태 할아버지가 잡으러 온다며 어린아이들을 겁주던 어른들이, 오히려 도깨비장난 같은 새로운 형식의 놀이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꼴이 웃기면서도 슬프다.
610호 <월간문학> 등단
제11회 시애틀문학신인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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