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보완수사권 타협 택한 듯
정성호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가 사실상 확정되자 사퇴를 표명한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이재명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재명이 보완수사권 폐지에 따른 우려를 수차례 강조해왔지만 강성 당원 표심이 중요한 민주당 8·17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택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에 따라 이달 내 국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가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성호는 지난 25일 언론사에 “이재명에게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사퇴 의지는 이전부터 이재명 측 참모들을 통해 전달했다”면서 “저는 더 할 일도 의지도 없다”고 했다. “당에 가서 중심을 잡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 같다”고도 말했다.
정성호는 지난해 발간한 ‘검찰 보완수사 우수사례집’을 통해 “경찰에서 1차 수사한 송치 사건의 오류나 미진한 부분을 새로운 수사를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 수사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며 보완수사권 유지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올 초 민주당 강경파 주도로 민주당에서 다시 보완수사권 폐지가 추진되자, 직에서 물러나 민주당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호는 민주당이 지난 24일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당론으로 추인한 이후, 이재명 측에 사의를 재차 전했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성호는 ‘억울한 1%의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며 보완수사권 일부 존치를 주장했는데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실상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앞두고 이재명이 그의 사표를 반려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처럼 민주당이 보완수사권 존폐를 놓고 갈라졌지만, 미국과 남미 출장 중인 이재명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재명은 지난 1월 “보완수사를 안 하는 게 맞다”면서도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등에는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했다. 지난 6월에도 이 같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최종 판단은 국회에 맡기겠다며 “그에 따른 책임도 민주당이 져야 할 것”이란 취지로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완전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보완수사권 폐지안에 제동을 걸 경우,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사고 당권 경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이재명의 침묵이 길어지는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현재 민주당 당권 주자들은 모두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가 공식 입장이지만, 당대표 재직 시부터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강조했던 정청래의 선명성이 더 강하다는 평가가 있다. 김민석은 총리 때 “숙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전당대회 국면이 본격화한 지난달 25일 “보완수사권 폐지가 이재명 정부의 최종 입장”이라고 발표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이 속내는 다를지라도 지금은 보완수사권과 관련해선 강경 당원들 무서워서 온건 발언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대로 보완수사권은 폐지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재명 측에선 일단 시행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개정안을 내자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이재명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재명 측 관계자는 “민주당이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할 일은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오는 30일 본회의에 형소법 개정안을 올린 뒤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시작되면 국회법에 따른 종결 절차를 밟아 31일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 법사위 소위에서 27∼28일 형소법 개정안의 조문 심사를 마무리한 뒤, 이번 주 법사위 전체회의로 넘길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보완수사권 폐지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26일 페이스북 글에서 “이재명이 재의요구권(거부권)마저 포기한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미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동반 몰락”이라며 “나라를 팔아먹은 것만 매국이 아니다. 국민을 팔아먹은 것도 매국”이라고 했다.
야권에선 정성호 사표 표명에 대해 “이재명 정부 집권 2년차에 ‘당정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