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mkorea.com/7323427307
흔히 트위터에서는 소분홍들이, 기타 커뮤니티에서는 극단적인 일뽕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1. 한국은 대대로 기술력이 없고 미개해서 흰옷만 입고 다녔다
2. 한국은 기술력이 없어 화려한 옷은 다 중국에서 하사받고 옷감도 다 외국에서 수입해서 스스로는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과연 그럴까요?
그런 주장이 말도 안되는 확증편향이자 억측임을 알려주는 조사연구 보고서가 최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나왔습니다.
국립대구박물관 홈페이지에 가시면 해당 보고서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데, 이 보고서를 보면 우리가 아는 한복이 생각보다 많이 협소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용인 영덕동에서 발견된 16세기 초반 여성의 장저고리를 보존처리하고 이번 상설전시 개편을 위해서 해당 저고리의 원형을 한번 복원해보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해당 저고리는 금실로 짜여진 '금직단'을 사용한 저고리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금박은 많이 들어봤어도 금직단은 흔히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금박은 나무로 판 도장에 금박을 묻히고 옷감 위에 바른 접착제에 그것을 찍어내는 방법으로 우리가 흔히 보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금직단은 금박을 실에 붙여그 자체로 직기에 원단을 짜내는 매우 사치스럽고 고급스런 기술이었기에 1733년 영조가 문직기(직물에 문양을 넣기 위해 사용하는 틀)의 사용을 금지한 이후 서서히 사라져 최근에는 거의 그 기술이 잊혀지고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직단에 대해서는 낯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저 저고리만 특별한 예외 사례고 조선 유물 대부분에 금직단이 거의 쓰이지 않은 것 아니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금직단은 생각보다 매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전기와 중기에 유행했던 무덤 조성 방식 덕분에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회곽묘입니다.
회곽묘는 시신을 나무 관 속에 눕힌 뒤 석회와 모래, 황토를 섞은 재료를 관 주변으로 부어 단단하게 굳힌 묘입니다.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벽이 만들어지고 석회는 토양과 만나면 굳으면서 열을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관 내부의 온도가 100도 이상으로 높아집니다. 결국 관 내부는 진공 상태이자 멸균 상태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죽은 자가 입고 있던 옷과 죽은 자의 시신이 그대로 발견되게 되죠. 그래서 조선시대 전기 무덤에서는 미라나 당시의 옷이 그대로 원형대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59965
회곽묘들에서는 다양한 옷들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상류층 여성의 옷 대부분은 금직이나 흉배,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진 자수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출토된 복식은 경기도박물관과 단국대학교 석주선 박물관 등에서 다량 소장하고 있는데 아래 사진들이 바로 무덤에서 출토된 금직을 사용한 저고리들입니다.
치마의 경우 치마의 일부를 금직으로 장식하거나 아니면 치마 전체를 금직으로 화려하게 만든 치마가 16세기 평산신씨 묘에서 출토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은 행주기씨 묘 출토 17세기 초 동자와 포도문이 직금된 장식된 치마입니다.
그럼 이 직금은 모두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한 것이고 우리는 이걸 만들 기술이 없었을까요?
실제로 고급 비단의 경우 중국에서 수입한 사례도 실제로 있지만 직금단의 경우 국내에서 짜서 사용할 기술이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조실록에 편금단이라는 기록이 있어 편금사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고, 연산군 대의 기록을 보면 화려하고 다양한 직금단을 3차례에 걸처 짜서 들이라는 기록과 중국에서 추가적으로 수입을 하라고 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론 중국에서 수입을 하기도 하였으나, 우리 스스로도 직금을 할 수 있는 기술과 그 장인들은 존재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직금 기술은 잊혀지고 단절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기관들의 노력으로 전통 금사 제작 기술과 금직 기술이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이 직금 저고리의 복원과 16세기 복식 문화 보고서에 실린 금직단 제직 과정입니다.
이렇게 재현된 금직단 16세기 저고리는 현재 대구박물관 복식문화실 상설전에 전시되어 있으니 한번 쯤 방문하셔서 그 찬란함을 직접
감상하는 기회를 가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일본애들이 맨날 그러더라 한국은 옷감염색하는 기술이 없어서 흰옷 입은거라고 지들은 신발 만드는 기술도 없어서 300년전까지 맨발로 다닌 놈들이
흰옷도 만들기 쉽지않을 거 같은데...원래 천연직물은 흰색 아니잖아
22..
ㄹㅇ
원숭이들이 자꾸 지네 미개한걸 우리한테 뒤집어 씌워~! 열받게
저런 주장하는거 일빠잖아 일본은 옷 바느질 할줄도 몰라서 다 터진거 걸치고 다녀놓고ㅡㅡ
울나라가 얼마나 다양한 공예가 있었는데ㅎ 지금의 공예도 많이 사랑해주세요ㅎㅎㅎ
걍 흰옷에 미쳐있었던 거라고요..
저런 주장하는 새끼들은 백타 일빠잖아ㅡㅡ 우리나라 공예가 얼마나 수준급인데!!!!
그렇게 노동을 많이하던 중세에 흰옷을 입은게 엄청 사치스러운거였다고 하던데.. 빨고 삷고 풀먹이고 다듬이질하고.. 여자들이 착취수준으로 매달려서 노동해야 흰색이 나왔는데 멍개소리
이불 돌돌싸맨걸 옷이라고 쳐부르는 나라가 나대네
시들은 바느질 기술 없어서 어깨 빵꾸난 채로 살았으면서.
진짜.. 바보인가?
개화려한 백제가 있는데… 튜닝의 끝은 순정인 인 것을 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