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봉함 속의 개운당 유서
뒷날 학자들 중에서 소견이 부족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 나의 근유를 잘못 이해하거나 이 경전의 출처를 알지 못하고서 도리어 비방하는 말을 하여 보리의 인연을 잃어버리고 악한 길로 빠지게 될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지어 스스로 주를 붙여 남겨 보이는 바이다.
나는 속세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註=상주(경북) 개운동에서 태어나시니 아버지는 김씨이고 어머니는 양씨였다. 부모의 태몽에 달 속에 하나의 둥근 태양 같은 금성을 끌어 안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다고 하시니라.
일찍 부모를 여의고
註= 세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섯 살에 어머님이 돌아가시니 황홀하기가 지난 밤 꿈만 같았다.
외가에 의탁하였다가
註= 상주읍에 계시는 외숙부께서 가엾게 여겨 거두어 기르셨는데 일년도 못되어 문경 도대동으로 이사 하였다. 일곱 살에 외숙부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없으므로 상주가 되어 피눈물을 흘리며 삼년상을 치루었고 아홉 살에 외숙모마저 돌아가시거늘 역시 피눈물로 삼년상을 마치니 이웃 사람들이 양씨집에 효동이 났다고 하더라. 그 뒤로 세간이 무상함을 깨달아 늘 점잖은 어른을 만날 적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물으면 사람들은 도리어 나를 비웃었다. 어느날 스님을 만나 처음으로 싣달태자가 동서남북 사대문에 유람차 다니다가 네 가지 현상[나고 ․ 늙고 ․ 병들고 ․ 죽음]을 보고서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환하게 깨달아짐이 있어 마음으로 크게 기뻐함이 마치 새장에서 벗어난 새와 같았다. 그래서 일 년 만에 제사를 마치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봉암사에서 어린 소년의 나이로 머리를 깍고
註= 慧庵혜암선사를 따라가서 시자가 되었는데 그때 나이 열 세 살이었다. 한 해가 못되어 스승이 입적하시니 끝없이 애통하게 여기다가 확실하게 무생함을 깨달았다.
그 후 십 년 동안 스승을 구하여
註= 육 년 동안 幻寂庵환적암에 머물다가 열 아홉 살에 스승을 찾아 나섰다.
강산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본사로 돌아와 환적암에서 스승을 만나 수행하는 법을 듣고 白蓮庵백련암에서 금을 연단하여 구슬을 얻고[수다원과를 마침] 심원사에서 보임출태[사다함과]하시고 유집임경[아나함과]하는 동안에 여가를 활용하여 瑜伽心印正本首능엄경의 원고를 초하여 끝냈으나 발행할 시기가 아직 이르고 면벽[아라한과]이 더 급하기에 우선 보류하여 간행하지 않고 여러 마리의 용으로 하여금 교대하며 지켜 보호하게 하고 지리산 묘향대로 떠난다.
註=은밀한 곳에서 남모르게 도를 닦아 증득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의 모습이 신선의 풍채로 변하는데다가 일마다 기적이 많은 것을 보고 양봉래(楊蓬來, 이름은 士彦사언)가 출현했다고 하면서 사방 이웃에서 끊임없이 찾아들므로 오래도록 선정에 들기가 어려워서 부득이하여 멀리 한적한 곳으로 떠난다. 떠날 무렵에 원고는 경전을 얹어 놓은 시렁 천장 위에다가 깊이 간직해 놓고서 후세의 어진 이를 기다리며 바위 위에 몇 가지 흔적을 남겨서 그것을 보고 믿고 따르게 한다. 불성이나 도의 힘은 우주가 다 같은 것이나 그 닦아 증득하는 여하에 따라 여러 가지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니 힘써 정진해야 한다.
百 년 뒤에 큰 인연이 있는 사람이 이를 인쇄하여 널리 배포할 것이니 그 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서 끝내는 모두 보리의 인과를 이룰 것이다.
註= 믿고 알고 닦아 증득하는 것이 功이고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는 것이 덕이다.
후세에 이 경전을 받들어 독송하는 자는 경문이나 게송 그리고 주와 토에 있어서 한 자 한 구절이라도 함부로 고치지 말아라. 또 비방하는 요망한 무리들은 반드시 신이 벌을 내릴 것이다. 희양산 환적암은 보환화상께서 입적하신 곳이다. 오늘 도중에서 이 몸을 돌이켜보니 감개무량하다. 후세의 여러 어진 이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산 속에 무엇이 있던가 산마루에 흰 구름만 많아라. 다만 스스로 기뻐는 할지언정 그대에게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이니 각기 스스로 깨달아서 각기 스스로 기뻐하라. 내가 스승을 만나 불법을 듣고서 수능엄삼매를 몸소 닦고 실천하여 증득한 공적에 대하여 대강 보여주어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고 수행하게 하고자 한 때문에 죄와 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현묘한 기미를 누설하노니 믿지 않고 수행하지 않는 것은 그대들의 허물이니라. 十여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면서 떠돌다가 홀연히 고덕스님의「공연히 쇠신만 닳게 하면서 동서로 분주하게 다녔다네」라는 글귀에 느낀 바 있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환적암으로 돌아오니 그때 나이 서른이었다. 스승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잠도 자지 않고 밥도 굶다가 공경히 절하면서 기원하기를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더니 때로는 예쁜 여자가 앞에 나타나며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도 하며 혹은 사나운 법이 뒤에서 위협을 가해오기도 하며 도적들이 문을 부수기도 하며 그 밖에 기쁘거나 두렵거나 믿음이 가거나 의심이 가는 등 마구니의 장난을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도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 정직만을 굳게 지키면서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고 선정을 성실하게 닦았다. 이렇게 하기를 일년 남짓 지났을 적에 어떤 미친 듯한 스님이 비틀 걸음으로 들어오는데 몸의 형태는 수척하고 의복이 남루한데다가 온 몸에 진무른 부스럼이 나서 그 냄새가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경히 절하고 맞이하여 시봉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건만 때로는 꾸짖기도 하고 더러는 때리기도 하였으며 어떤 때는 희롱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랑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한 달여 지나도록 역시 마음을 동요하지 않고 정직만을 굳게 지키며 배나 더 공경할 뿐 한번도 의심하지 아니하였더니 어느날 밤에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심한 사람이구나. 꾸짖어도 괴로워하지 않으며 때려도 성내지 않고 희롱해도 싫어하지 않으며 사랑해 주어도 기뻐하지 아니하니 마음을 항복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도를 증득할 것이니라. 여러해 동안 부처님 앞에서 기원한 것이 무엇이었는고?」
눈물을 흘리며 공경히 절하고 대답하기를
「지극한 소원은 참다운 스승을 만나 불법을 듣는 것이요 그 밖에 구한 것이 없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스승이 되면 어떻겠는고?」
나는 곧 슬픔과 기쁨이 한데 어울려 백번 절하며 간절히 빌었더니 말씀하시기를
「인걸은 명당의 지역에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를 닦는 것도 그러하다」하시고 나를 데리고 희양산에 올라가시니 달이 대낮처럼 밝고 눈 앞 경계가 통쾌하게 전개되었다. 큰 반석 위에 말끔한 집이 저절로 세워지고 때가 되면 음식이 저절로 내려왔다. 나는 이런 것을 보고서 신심이 백배나 솟구쳤다. 스님과 제자가 삼보 앞을 향하여 공경히 예배하고 큰 참회와 깊은 맹서를 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도를 닦는 것은 마음을 항복받는 것으로 시작과 끝마무리의 긴요함이 되나니 수행하는 사람들이 만에 하나도 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고 아만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설법을 마치시고 나를 시켜 공부를 착수하게 하시니 七일 만에 첫 번째 단계인 간혜지 누진통의 인을 증득하니 우리 스승께서 『정본수능엄경』과『유가심인록』을 나에게 부촉해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현존사에게 口訣구결로 받은 믿고 알고 닦아 증득하는 일이 모두 여기에 기록되어 있으니 소중하게 받들어 간수하라.」
공경히 절하고 받으니 또 다시 대승의 현묘한 비결을 말씀으로 전해주므로 이를 하나 하나 터득하고 깨달았다. 주고 받기를 마친 다음에 공경히 백 번 절하고 삼보 앞에 그 은혜를 감사드리니 우리 스승께서 손을 잡고 이별을 고한 다음 허공으로 날아가시기에 공경히 백 번 더 절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전송하고 돌아보니 깨끗한 집도 간데 온데 없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임을 감탄하고 백련암으로 내려와서 백 일 만에 십신인 수다원 누진통 과를 증득하고 다시 칠일만에 초주 分定道胎분정도태 인을 증득하고서 도장산으로 들어갔다. 어째서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 도를 닦는데 가장 긴요한 일이 되는가 하면 성품이 움직이면 마음이니 그 이름이「魔音心마음심」이고 마음이 고요하면 성품이니 그 이름이「聖品性성품성」이다. 그러므로 성품을 따르는 자는 성인이 되고 마음을 따르는 자는 마구니가 되나니 마구니와 성인은 두 종류가 아니건만 자신이 지은 것을 자신이 되돌려 받는 것이니라. 후학들은 이를 깨달아야 한다. 마음을 항복받은 다음에라야 도를 닦을 수 있는 것이니 비유하면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물으 마시면 독이 되는 것처럼 사람이 마음을 항복받으면 도를 닦을 만한 그릇이 되고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면 도를 닦을 만한 그릇이 못된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마음 항복받는 것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인연이 있는 모든 어진 사람들이 이 경전을 읽고 불법을 깨달아서 정진에만 전일하게 하면 보리를 이룰 수 있으리니 이는 내가 마음 속에 고통을 받으면서 스승을 구하고 도를 깨달은 근본이다.
五十 一세 되는 경자년 팔월 세 번째 경일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여 뒤에다 덧붙인다.
게송을 지어 읊어 이르되
주먹으로 「洞天통천」이란 글자를 쓰고
돌이 물렁한 흙처럼 부드러워서
나의 유명한 글귀를 받아들여 잘 나타내 주네.
맑은 물 흐르는 반석 위에
일부러 용과 함께 놀며 가르쳤나니.
나의 조그마한 장난 같은 자취도
천추 만추에 전할 수 있거든
더구나 경을 간행하는 공덕이랴!
복의 터전이 한이 없으리.
수행하는 여러 어진 이들은
나고 죽는 물거품 같은 일을 벗어나리.
위대하여라! 이 경전의 공덕은 무게를 달아 볼 수도 없고 헤아려 알 수도 없고 생각해 볼 수도 없는 것이니라.
자비의 광명 두루하여 험한 길 비춰주며
지혜의 칼 이리 저리 죄의 뿌리 끊으시니
공경하고 공경하라. 처음으로 발심한 천박한 무리는 이 사람의 말을 자세히 들어라.
대장부가 진실한 법을 만나면 모름지기 그 뜻을 지키고 영원히 물러서지 말지어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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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조사님의 귀한 유서를 소개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