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특집] 소리소문없이 떠난 스타들
항상 프로야구 정규시즌 개막을 맞는 야구팬들의 마음은 설렘 그 자체다. 올해는 어느 팀이 우승할지, 또 어느 팀이 돌풍을 일으키고 별들이 탄생할지 점치며 5일 플레이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바로 지난해까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호령하다 야인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라운드나
덕아웃이 아닌 관중석에서 야구를 봐야 한다. 가슴 졸이는 승부의 세계를 벗어나 한결 편안해진 면도 있지만 마음은 아직 덕아웃을 떠나지 못했다.
●영원한 야구인 김성근
지난해 LG에서 은퇴한 김성근 전 감독은 전국을 돌며 아마추어 학생야구와 사회인 야구인들에게 야구기술을 전수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약체라던 LG를 4강에 턱걸이시킨 뒤 승승장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접전을 벌인 끝에 준우승으로 이끌고도 구단과의 불화로 끝내 옷을 벗었다.
평생 소원이던 우승반지를 껴보지 못해 아쉬움은 남지만 천직인 야구
지도를 오늘도 쉬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배명고의 사회인 야구 지도 현장. 그는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사회인 야구 선수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야구인생의 새로운 희망을 봤다. 명색이 프로에서만 20년 넘게 지도자 생활을 했는데 아마추어 학생 스포츠도 아닌 사회인 야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들의 열정과 야구사랑에서 환갑을 넘긴 나이에 야구인생의 새로운 답을 봤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떠나 야구 자체를 즐기는 그들에게 기본기를
전수하며 흐뭇한 황혼을 즐기고 있다.
●나의 사랑 SK야 돌풍을 이어라
강병철 전 SK 감독도 지난 시즌을 끝으로
야인이 됐다.
시범경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위에 오른 SK의 선전을 바라본 그의 가슴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2000년 새로 창단된
SK를 맡은 지 3년 만에 유니폼을 벗었지만 그가 키운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어느 팀도 부럽지 않은 탄탄한 전력으로 그라운드를 펄펄 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뿌듯하다. 지난 1984년과 1992년 롯데의 우승을 이끈 비결도 젊은 선수들의 패기였다. 비록
지금은 농사를 다 지어놓고 관중석에서 결실을 음미해야 할 때라는
게 다른 점이랄까.
강 전 감독은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떠나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야구장을 찾아 야구인들을 만나며 한결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평생을 야구밖에 모르고 살아왔고, 야구에 관한 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새록새록 새로운 야구세계에 눈뜨는 자신을 느낀다.
젊은 신임감독들의 성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선배로서 야구를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아마추어 지도자가 좋아
프로에서 배운 기량을 아마추어 학생야구에 접목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 LG에서 지난해 은퇴한 최창호는 모교인 경북고의 코치를 맡아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87년 청보
핀토스에 입단해 태평양~현대~LG를 거치며 프로야구 선수 생활만 16년. 그러나
이제는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구슬땀을 흘린다.
지난 91년 15승을 올리며 프로 야구판을
호령하던 때가 눈에 선하다. 지금도 마운드에 서면 웬만한 후배들보다 잘할 자신이 있지만 장차 프로야구를 짊어질 후배들을 키우는 일도 선수 시절 못지않게 소중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이밖에 지난해 은퇴한 선수는 아니지만 SK에서 뛰었던 내야수 추성건이 서울고 코치로 활동하고 있고, 두산의 김경원은 지난 겨울 춘천고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전형도 박재용 홍우태 등도 고교야구 지도자로 꿈나무 지도에 열정을 쏟고 있다.
●야구밖에 몰랐는데
시즌 개막을 시린 가슴으로 바라보는 이는 영원한 야인들이다. 롯데~삼성을 거치며 국내 강속구 투수의 거목으로 기대를 받았던 박동희는 지난해 말 소리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국보투수 선동열을 능가하는 시속 150㎞를 웃도는 광속구를 자랑했지만 맘껏 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진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지난해 말 서울로 이사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야구를 그만뒀거나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사람이 많지만 마음은 영원히 그들의 땀과 정열이 묻어 있는 그라운드로 향해 있다.
이환범기자 wh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