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채은성(24)은 2009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해 우여곡절 끝에 5년 만에 정식선수가 됐다. 그 사이 야구 선수들이 겪을 만한 시련의 터널은 모두 지나왔다. 프로 입단 후 수술과 재활에 경험했고,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해 '야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제대 후 포지션 변경 스트레스로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야구 선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등 제구력 난조를 겪는 증상으로 대개 투수가 많이 걸린다)에 시달리며, 야구를 내려놓을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채은성은 신고선수 꼬리표를 떼고 정식선수로 승격됐다. 올 시즌 그는 LG 내야진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하며 29일 현재 1홈런 48타점·타율 0.324(111타수 36안타)을 기록 중이다. 1군 콜업 전까지 퓨처스(2군)리그에서는 34경기에 출장해 6홈런 39타점·타율 0.403(129타수 52안타)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파란만장한 그라운드의 삶을 산 그는 "매일 기회를 주신 분께 어떻게 하면 보답을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신고선수 시절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장광호 LG 2군 배터리코치와 채은성의 숨은 가능성을 알아보고 정식선수로 승격시켜준 뒤 꾸준히 1군에서 기회를 주고 있는 양상문 LG 감독을 '은인'이라고 불렀다.
정수근 베이스볼긱 위원이 지난 26일 잠실구장에서 채은성을 만났다. 인터뷰 후 정 위원은 "사람은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 채은성은 그 나이 또래들과 비교해 상당히 단단해진 선수였다"고 평했다.
(채은성의 인터뷰는 30~31일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정수근 위원과 LG 채은성
정수근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정) :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채은성(이하 채) : "초등학교 3학년 때 스카우트 아닌 스카우트로 하게 됐어요. 당시 야구부 감독님이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선수를 뽑아가셨는데, 저를 지목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죠.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집에 와서 얘기를 하니 아버지께서 야구를 하라고 얘기하시더군요. 끝까지 싫다고 했는데, '딱 한 번만 가봐서 재미없으면 말아라'고 하셔서 한 번 가봤죠. 근데 거기 가서 치고, 달리고, 던지는 야구의 매력에 빠져서 그때부터 야구부원이 됐습니다."
정 : "프로에는 신고 선수 신분으로 들어왔다."
채 : "2009년 프로에 입단했어요. 연습생으로 들어왔는데, 확실히 구단에서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관심도도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마땅히 오라는 대학도 없고 해서 프로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이 행복했다가 나중에는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연습생 시절을 보내고 프로에서 성공한 선배들이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어요. 사실 처음에 군대 가기 전까지 막연히 '열심히만 하자'였습니다. '열심히 하면 누가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이었는데, 그건 바보같은 생각이었더라고요.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하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정 : "야구선수가 군대를 현역으로 간다는 것은 사실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채 : "처음에는 안 간다고 떼를 썼어요. 군대를 가게 되면 사실 2년 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때 프로에 내야수로 들어가서 얼마 안가 포수로 전향했거든요. 장광호 배터리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수술 끝나자마자 바로 입대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수술 후에 바로 어떻게 군대를 가냐’했더니, ‘현역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죠. 그때는 신고 선수 신분인데, 수술도 했고 군대까지 갔다 오면 누가 나를 쓰겠냐. 사실 야구를 그만두라는 소리가 아닌가 생각했죠. 그래도 장 코치님이 아들처럼 많이 생각해주시고, 챙겨주시니까 상담을 했죠. 그때 코치님이 ‘갔다와서도 충분히 야구 할 수 있다’고 희망을 주시더라고요. 그 말 한 마디에 믿고 움직였죠. 그때 결심이 섰어요. (채은성은 군 의장대 출신이다)"
정 : "군대 생활은 어땠나."
채 : "야구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갔어요. 제가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데, 힘이 부족했거든요. 기술이 있어도 힘이 없으면, 야구가 잘 안 느는 것 같더라고요. 좋은 기술이 있어도 하드웨어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군대에 가서 러닝이랑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어요."
정 : "군대에서 야구 기술 훈련 같은 것은 전혀 못했나."
채 : "간혹 하긴 했어요. 캐치볼 정도. 거기에 야구를 좋아하시는 감독관님이 계셔서 어느 정도 허용을 해주긴 했어요. 그래도 기술적인 부분을 연마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정 : "2012년 제대 후 LG로 다시 돌아왔다."
채 : "휴가 나와서 구단에 인사드리러 오면 단장님이나 코치님들이 제대 날이 언제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때 좀 희망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정 : "그래도 ‘제대해서 안 불러주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
채 : "장 코치님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해서 믿었죠. 그 분은 제게는 은인이시거든요."
정 : "몇 년 동안 2군에 있었지?"
채 : "첫 1군 콜업인 2014년 5월27일 삼성전까지 계속 2군에 있었죠."
정 : "안 잊어버리고 제대로 기억하고 있네."
채 : "네. 그럼요."
정 : "첫 타석은."
채 : "첫 타석은 희생번트요. 배영수(삼성) 선배님 공을 때려서 만들었어요."
정 : "느낌이 어땠어. 1군에 올라와서 첫 타석 들어가기 전 대기타석에 섰을 때."
채 : "올라오자마자 선발 출장이었는데, 선발 출장할지도 몰랐어요. 처음 선발 라인업에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은 좋았는데, 긴장이 되더라고요. 마음 편하게 먹자고 생각을 하고 경기에 임했는데, 초반 무사 1, 2루 찬스가 제 앞에 만들어졌어요. 무조건 번트 사인이 날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태원 코치님이 오시더니 번트를 지시하더라고요. 2군에서 시합할 때에는 중심타선에 있었기 때문에 번트를 댈 일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번트 사인이 나와서 긴장했어요. 무조건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만약 실패하면 어쩌지 생각하니까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그래서 딱 초구를 건드렸는데, 다행히 잘 굴러가서 진루타를 만드는 데 성공했죠."
정 : "어느 쪽으로 댄 거야."
채 : “투수랑 포수 가운데 큰 바운드가 나왔어요. 그냥 굴리기만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잘됐죠. 두 번째 타석은 팀이 3-2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주자없을 때 들어섰거든요, 제가 노림수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주자도 없고 내 타격을 해보자라는 생각만 했죠. 초구에 직구 주겠다 싶어서 타이밍을 잡았는데, 파울이 났어요. 저도 포수를 해봤으니까, 아, 다시 한 번 직구 주겠다 싶어서 직구 타이밍에 히팅 포인트를 뒤쪽에 뒀는데, 체인지업이 왔어요. 포인트를 뒤에 둔 덕에 안타로 만들 수 있었어요. 행운이었죠.”
정 : "포수 얘기를 했는데, 타석에서 포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채 : “개인적으로 도움이 돼요. 포수들의 유형이 있는데, 제가 벤치에 많이 있다 보니까 경기를 많이 보게 돼요. 특히 포수들의 성향을 잘 보는데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투수를 리드하는지, 내 생각대로 가는지 역으로 가는지를 살펴요. 공부가 많이 됩니다
경기 전 채은성이 팀 동료 황목치승과 장난을 치고 있다
경기 전 채은성이 팀 동료 황목치승과 장난을 치고 있다.
정 : "남다른 노력을 해본 적이 있나."
채 : "군대에 있을 때에는 체력을 키우는 데 노력을 많이 했는데, 프로에 와서 보니까 매일 집중하고 경기를 해야 해서 체력도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도 경기 끝나고 나면 방망이도 더 치고, 손목 웨이트도 꾸준히 해요. 아직은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기회를 잡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거든요."
정 : "운동 외적인 노력도 하나."
채 : "야구를 많이 봐요. 핸드폰으로 야구 동영상 같은 것도 찾아서 보고 잘 치는 타자들은 나와 뭐가 다른지, 어떻게 치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요. 어떻게 하는지를 확인하고. 영상을 보다 보면 잘 치는 타자들은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정 : "요새 방망이가 잘 안 맞던데."
채 : "제가 안 좋을 때 영상을 보니까, 타석에서 몸이 빨리 열리고 쫓아가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안 맞기 시작하다 보니 타석에서 생각도 많아졌어요."
정 : "투수들의 투구 패턴도 처음하고는 많이 달라졌지?"
채 : "네. 저에 대한 전력분석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정 : "'상대하기 진짜 힘들다' 싶은 투수는 누구야."
채 : "밴헤켄(넥센)하고 니퍼트(두산)요. 둘 중에서 뽑으라면 밴헤켄이요. 제가 이제껏 한 투수에게 삼진 3개 이상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밴헤켄에게는 삼진을 3개나 먹었어다. 직구도 좋고, 포크볼, 체인지업 등 다 좋아요. 진짜 치기 힘들어요."
정 : "리그 A급 투수들은 사실 실투가 많이 없는데, 그들을 대하는 본인만의 노하우는 아직 없나."
채 : "마음가짐이 달라요. 조금 더 집중한다고 해야 하나. 더 마음을 단단히 먹어요. 그리고 이것저것 생각하기보다 한 구종만 노려요. 거기서 승부를 못 보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래도 어렵더라고요."
정 : "사실 한 구종만 노리고 타석에 들어가는 게 위험성이 높은데, 예를 들어서 직구 타이밍에 들어갔다가 직구 안 맞으면, 투수들은 대개 다음 구종으로 변화구를 택하는데, 그럴 때에는 직구 타이밍에서 조금 더 늦게 나간다든지 그런 요령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
채 :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타석에 들어가기는 하는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직구를 노렸다가도 슬라이더가 눈에 보여서 방망이를 휘둘러 안타를 만드는 경우가 있기 해요. 근데 A급 투수들에게는 그 수가 잘 안 먹혀요. 워낙 공이 좋으니까요. 제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실패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되려 두 가지를 생각하려고 하니까 직구가 오는데 타이밍이 늦어서 헛스윙하는 경우가 발생해요."
정 : "직구를 치겠다 마음 먹고 들어가서 변화구를 칠 수 있는 요령이 생기면 좋다. 아마 내년이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마음의 부담감을 갖지 말고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A급 투수가 나왔다고 해서 타석에서 일단 공을 보고 가자라는 느긋한 생각은 버려라."
채 : "네, 맞아요. 일단 공 하나 본다 생각하고 초구부터 못 덤벼요. 간을 본다고 해야하나요.(웃음)"
정 : "그런 것을 떠나서 하나의 투수라고 생각하고 덤비는 것이 중요하지. 포수에서 야수로 다시 전향했는데 괜찮아? 역시 내 자리인 것 같아?"
채 : "포수에 대한 생각이 컸어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죠. 희소성이 있기도 하고요. 포수를 하면서 야구가 늘어간다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채은성의 인터뷰는 31일 2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