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7일 수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천하의 민심을 얻으려면
문왕이 강태공에게 “임금이 어떻게 하면 천하가 모두 따르게 됩니까?”하고 묻자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오, 만민의 천하가 아닙니까. 고로 천하의 이(利)를 함께 하는 자가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것이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인 덕 의 도’(仁 德 義 道)에 대하여 그의 경륜을 펼칩니다.
“천하의 이(利)를 얻고 이것을 제멋대로 천단(擅斷 : 멋대로 처리하는 것)해서는 천하를 잃게 됩니다. 하늘에는 시(時)가 있고, 땅에는 재화(財貨)가 있사온데, 이것을 사람과 더불어 같이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인(仁)이옵니다.
이러한 인이 있는 곳에 천하의 민심이 쏠리는 것이며 죽을 사람을 구해주고,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며, 환난을 당한 사람을 구해 주고, 사람의 급함을 구제하는 것을 덕(德)이라 하옵니다. 이 덕이 있는 곳에 천하의 민심이 모두 쏠리는 것입니다.
뭇사람과 같이 근심하고 같이 즐기며 같이 좋아하고 미워함을 같이하는 것을 의(義)라 하옵니다. 이러한 의가 있는 곳에 천하의 민심은 쏠려 달려가게 마련입니다.
무릇 사람은 죽음을 싫어하고 삶을 즐기며, 덕을 좋아하고 이로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러한 이(利)를 낳는 것은 도(道)이옵니다. 도가 있는 곳에 천하의 민심이 모두 쏠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육도삼략에서)
문왕은 태공의 말을 듣고 감탄하여 그를 왕사(王師)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 천하를 통일합니다. 태공망이 말한 이 ‘인덕의도’의 길은 참으로 어려운 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천하의 민심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천하의 민심을 모두 모으는 길은 분명 하느님나라를 이 세상에 선포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복음 선포’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가본 적도 없고, 내가 살아본 적도 없는 하느님나라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한다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막연하고, 어떻게 어디에서부터 수순(隨順)을 밟아야 할지 막막한 것이 복음 선포라는 생각을 합니다. 더군다나 ‘인덕의도’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언제나 주변을 맴돌고 있거나 중심사고(中心思考)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면 이것은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나라를 더 멀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덕의도’의 길을 걷고 있다면 하느님나라는 자동적으로 선포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인덕의도’의 길을 걷도록 간곡하게 행동규범까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참으로 험난한 길을 마련하십니다.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영적인 힘에 의지하고, 성령에 의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에 의지하여 전력투구하라는 주님의 가르침 말고도 주님의 뜻에 의지하여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닫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자를 고쳐주라고 권한을 내려주십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의사가 많아야 합니다. 마음이나 육신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 간호사, 병리실험사, 영상 진단관계자, 영양사, 조리사, 관리운영자, 간병인, 보호자 등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병자를 고쳐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직접 그 일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권능을 물려주시어 세상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도록 파견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을 가지고 주님께나 제자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간청합니다. 사랑은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복음도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항상 대기하는 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괴롭고 힘들며, 많이 아프면 주님을 찾아가고, 교회에 의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게 치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나라의 선포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억지로 또한 강제로 복음을 선포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 선포도 예수님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나라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하느님나라를 체험하고, 그 안에서 살도록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이 현대 복음 선포의 관건일 것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막연하고 막막한 것을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합당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겸손하게 ‘인덕의도’의 정신으로 세상을 복음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 에즈라기의 말씀입니다. 9,5-9
저녁 제사 때에, 나 에즈라는 5 단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어진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쳐,
주 나의 하느님께 6 말씀드렸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죄악은 머리 위로 불어났고, 저희 잘못은 하늘까지 커졌습니다.
7 저희 조상 때부터 이날까지 저희는 큰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죄악 때문에 오늘 이처럼,
임금들과 사제들과 더불어 저희가 여러 나라 임금들과 칼에 넘겨지고,
포로살이와 약탈과 부끄러운 일을 당하도록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8 그러나 이제 잠깐이나마 주 하느님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저희에게 생존자를 남겨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곳에 저희를 위하여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희 눈을 비추시고, 종살이하는 저희를 조금이나마 되살려 주셨습니다.
9 정녕 저희는 종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임금들 앞에서 저희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저희를 되살리셔서,
하느님의 집을 다시 세우고 그 폐허를 일으키도록 해 주셨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다시 성벽을 쌓게 해 주셨습니다.”
축일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Vincent de Paul)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연도 : 1581-1660년
같은 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오 아 바오로,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원선시오
프랑스의 농부인 쟝 드 폴(Jean de Paul)과 베르트랑드 드 모라스(Bertrande de Moras)의 6남매 중 셋째 아들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는 프랑스 남서부 랑드(Landes) 지방의 푸이(Pouy)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고향 인근의 닥스(Dax) 대학교와 툴루즈(Toulouse)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160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605년 그는 어떤 부인의 기부금을 받기 위해 마르세유(Marseilles)에 갔다 돌아오던 중에 해적들에게 잡혀 튀니지에서 노예로 팔려 가는 불운을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1607년 아비뇽(Avignon)으로 탈출하였고, 그 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로마로 갔으나 1609년에 앙리 4세(Henry IV)에 대한 비밀 임무를 띠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이때 그는 파리(Paris)에서 프랑스 해군 함대의 사령관인 공디(Gondi) 백작 가문의 가정교사와 영적 지도신부로 활동하였다. 어느 날 공디 백작 부인의 청으로 죽어가는 가난한 농부의 병자성사를 집전하면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겠다는 서원을 한 그는 1617년 샤티옹(Chatillon)의 주임신부로 사목을 시작했다. 그리고 1618년 그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을 파리에서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가난한 이를 돕기 위한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1625년 선교회를 설립했는데, 이 회는 ‘빈첸시오회와 라자로회’로 알려졌다. 그는 주로 농부들에게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본당 단위의 회를 구성하였으며, 1633년에는 성녀 루도비카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3월 15일)과 더불어 ‘애덕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병원과 고아원을 세웠고,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대속하였으며, 새로운 신학교를 세움으로써 사제 양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은 물론 프롱드(Fronde) 전쟁의 희생자를 위한 구호소를 세우고 영적인 저술도 많이 남겼다.
귀족적이고도 충성스러운 성격을 지녔던 그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고 인간의 고통과 비참을 경감시키기 위해 일생을 다 바쳤다. 그는 또한 가난을 유발하는 구조적 환경을 개선하고 제거하는데 적극성을 보인 탁월한 인본주의 그리스도인이었다. 1660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가 파리에서 선종했을 때, 그가 설립한 회와 수도회는 이미 프랑스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있었다. 그는 1737년 6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885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모든 자선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빈첸시오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더욱 축복 속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