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깊은 산 속에 혼자 사는 신도를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거름이었지만 울울창창 숲은 벌써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아뿔싸, 가뜩이나 불안한 목사 앞에 집체만한 짐승이 길을 가로 막았다. 곰이었다. 목사는 그대로 주저앉아 하나님께 간청의 기도를 간절히 올렸다.
“하나님 저를 살려 주옵소서”
그러자 곰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일용할 양식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결국 목사가 곰에게 잡아먹힌 걸 보면 하나님도 간청보다는 감사를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세상 사람을 3가지로 분류한다면 감사해야 할 일이 많은데 감사하지 않는 사람, 감사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 감사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겠다. 나는 ‘감사합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마 하루에 최소한 100번 이상은 중얼거리거나, 속엣말을 하거나, 혼자 있을 땐 고함까지 내지른다. ‘감사합니다.’란 말씀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신지 오래다. 나는 하나님께 간청할 일은 없다. 다만 언제나 감사할 뿐이다. 그러고 나면 존재 자체가 한없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다 .
아침에 눈을 뜨면 명상을 한 후 잠자리에서 아침운동에 들어간다. 사지를 뻗어 기지개를 켜보면 아직도 힘이 솟구친다. 그때마다 나는 1100만부가 팔린‘사막의 꽃’의 작가이며 소말리아 여전사인 와리스 디리의
“나는 고통 없이 숨 쉬고 있는 매 순간을 사랑해요. 아침에 일어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건강한 나 자신을 볼 때의 희열이란! 그 어떤 차별도, 불평도 없이 나의 마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이토록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는 말을 떠올린다. 거기에 비해 소설가 황시운의 글이 떠오르면 나는 그녀의 고통을 절감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사지와 오장육부를 느끼는 고통을 나도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12년 전 일어난 추락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후유증으로 신경병증성 통증을 얻었다. 그 탓에 내 하반신은 밤낮없이 불에 데고, 벌 떼에 쏘이고, 바위에 짓눌리고, 칼에 찢기는 듯한 통증에 시달려왔다. 게다가 이 지독하고도 만성적인 통증은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를 동반하여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 그러나 나는 지금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한 덕분이다.’
난 정말 감사하게도 지금은 관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루 많은 시간을 들여 관절 강화와 보호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것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신거다. 그래서인가, 젊은 애들처럼 설레발을 떨거나 사부작사부작 발서슴을 한다. 산에서 아가씨를 구하다 낭떠러지에 떨어진 일과 폐품리어카를 밀어주다 얻은 어깨의 상처는 의사의 진단보다 더 빨리 호전되어 밥도 내손으로 떠먹고, 옷도 내 손으로 입고 벗고, 반신욕도 할 수 있어 감사, 감사, 감사한다. 가게에 나간다는 핑계로 봉사활동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 넓은 아파트도 밀대보다 손으로 빡빡 걸레질하고, 세탁기의 빨래도 널고, 말리고, 갠다. 아닌 게 아니라 누구에겐 벨이 좀 꼴리지만 그럴 수 있는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드린다. 그보다 더더욱 감사, 감사할 일은 한 달 전부터 어깨가 거의 회복되어 관절이 약한 아내의 전신을 다시 마사지할 수 있다는 기쁨에 더불로 감사한다. 밖으로만 도는 아내가 간혹 섭섭하여 더러 심통을 부리지만 아내의 입이 귀에 걸리고, 꽃길을 걷듯이 봄날 같은 표정을 짓다, 설핏 잠들기도 하는 그녀를 보노라면 심통을 부리던 나 또한 봄눈 녹듯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不亦樂乎).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마사지 하는데 3.40분은 걸리지만 내 실력은 가히 베트남마사지 수준이라 자부한다.
-사실은 아내를 최상으로 마사지한다는 핑계로 베트남마사지에 들러 호사 좀 했고, 지압도 연구했다.-
경북 예천의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채수근 상병 부모가 육필 편지를 해병대에 보냈다. ”진심 어린 국민 여러분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 “유가족을 다독여주신 귀한 말씀들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다”고 했다. 해병대 발전도 기원했다. 길지 않은 편지에 ‘감사’란 글이 네 차례나 등장한다. 상처를 후벼 파 원한을 키우기보다 조용히 파묻었다. (조선일보 만물상)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 맡아본 적 있나. 부모 속이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 영화 ‘괴물’의 주인공 희봉의 말이 지금도 나의 머리를 울린다.
비비언 그린이 “인생이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지만 “칠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속담이 있지만 이번 장마는 흡사 생에 처음 겪는 것 같이 지루했었다. 그러나 어제로 장마가 끝났다니 이제 우리 모두 감사하면서 더위를 이겨내자. 사랑과 외로움, 슬픔과 아픔, 좌절과 희망들이 삶에 촘촘히 수놓아진 뒤에야 우리는 진정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오늘까지 부대껴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또 감사를 드려야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쨍하고 해 뜰 날, 죽기 전에 꼭 한 번 더 올 테니까.
끊임없이 감사하자. 그래야 감사할 일이 늘어나고, 감사는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에너지라 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도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라 했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 하셨다.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 했던가.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거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문학비평가 이어령도 죽기 전‘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하지 않았는가.
작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큰 것에도 감사하지 못한다. 남세스럽지만 내가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달력 앞에서 군가처럼 노래 부르기다. 부엌에서 아내가 킥킥거리거나말거나 두 손을 허리에 올려 한참을 좌우로 흔들다가(허리 관절을 위해) 힘차게 노래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며 보내자/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 아직도 나는 싸~라 있다!”
마우스를 놓고 나니 흡사 내자랑 같아 왠지 머쓱하다. 뜬금없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관절이 좋지 않는 친구들이 생각나 미안스럽고…. 허지만 친구야. 지금 정도인 것에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그럼, 개중에는 이렇게 호령하는 친구도 있을까?
“일어나소서, 하나님! 나의 하나님, 도와주소서! 저놈의 얼굴을 후려갈기소서. 이쪽저쪽 귀싸대기를 올리소서. 주먹으로 아구창을 날리소서.”
성경을 당시 언어로 쉽게 풀어 쓴 ‘더 메시지 바이블’ 시편 3장7절에 나오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드린 기도 말이다.
어쨌거나 우린 나태주 시인의 시 ‘행복’처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어 감사하고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어 감사하고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에 감사, 감사하자.
첫댓글 모든 것에 감사로 가득 찬 자네의 글이 살아서 내 마음에 와 닫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별을 보고 감사하면 달 빛을 주시고 달 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 빛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공자 앞에서 문자 쓰고
태양 앞에서 양초 켯네..
나는 먼지로 소이다.
자네 관절 자랑은 정말 부럽다 그것은 다 미리 예비 한 운동 덕분이라고 생각 한다
나는 관절이 문제다 과 체중에 운동도 안 하니 당연지사 아닌가. 어제 치매 검사를 했는데 만점을 맞았다 그리고 시력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관절 극복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그래서 효과 없음을 분석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 것은 설명이 길어지고 비밀이다. 혹시 아나, 효과가 있을지, 불가능은 없다고 누가 말 했지. 하하하, 이런 공지를 해야, 결심이 굳어 지니까.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글쎄 그래도 모르지...>>>>.
치매 만점이야 당연지사지.
이 친구야 자네 맷집을 이겨낼 관절이 어디 있간디?
자넨 허벅지가 보물이야
언젠가 한 번 본때를 보여 줄 걸 . . .
고맙네
책장속에 잠자는 엘범을 다시보는 즐거움 을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