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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2014.08.04 05:30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최근 1만 시간 이상 노력하면 대가가 된다는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을 정면 반박하는 심리학 논문 하나가 화제이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 논문의 결론을 국내 언론이 왜곡 보도하는 바람에 "결국 노력해도 소용없는 것 아니냐?"라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이에 이 논문에 대한 정확한 소개와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첫째, 이 논문의 정확한 결론은 "훈련이 중요하지만, 이전에 주장되던 것만큼은 중요하지 않다"이다. 이 결론을 저자들의 다른 논문에 나오는 표현으로 바꾸면 "노력은 성취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이다. 논문의 저자들은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노력이 성취의 충분조건이라는 주장이 틀렸을 수 있음을 주장할 뿐이다. 다시 말해 누구라도 재능과 상관없이 노력하면 된다는 주장이 과장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지 결코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훈련이 전문성 획득의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해서 노력과 훈련을 경시할 수는 없다.
둘째, 이 논문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여러 영역에서 재능과 노력의 영향력을 숫자로 표시하였다. 예를 들면 음악은 노력의 영향력을 21%, 선천적 재능의 영향력을 79%라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보도하였다. 그러나 논문 어디에도 선천적 재능이 79%라는 주장은 없다. 이 연구는 노력, 더 정확히는 훈련 시간의 차이가 성취의 차이를 설명하는 변량(variance)이 음악은 21%라고 말하고 있을 뿐, 나머지 79%의 변량이 모두 선천적 재능으로 설명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아니 말할 수가 없다. 저자들의 분석에 사용된 연구들은 연습량만 측정하였을 뿐 재능 수준을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능의 영향력 계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논문의 저자들도 그래프를 통해 '노력이 설명하는 부분 21%'와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 79%'라고 분명하게 명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는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된 그래프를 '선천적 재능'으로 표기하는 심각한 실수를 범하였다.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재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배운 나이, 성취에 대한 가족이나 문화의 가치, 개인의 성격 등 많은 요인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 아니면 재능'이라는 매우 위험한 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하여 있지도 않은 사실을 논문의 결론인 양 소개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참고로 선천적 재능이 79%를 설명한다는 것은 재능과 성취의 상관계수가 0.9에 육박한다는 것인데 이는 학자들에게는 꿈에나 나올 법한 불가능한 수치이다.
셋째, 재능과 노력의 구분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장시간 노력을 하는 것도 재능의 일부일 수 있고, 노력을 통해 재능이 성장하기도 한다. 둘은 역동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노력이 정확히 몇 퍼센트, 재능이 정확히 몇 퍼센트라고 칼로 무 자르듯 결론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1만 시간 법칙을 둘러싼 이 논쟁은 '최고 수준의 전문성'에 관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신 등급 하나를 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학생이나 100타를 깨기 위해 노력하는 아마추어 골퍼, 토플 점수를 올리기 위해 애쓰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여전히 노력이 최선의 선택이다. 비록 최고 수준의 전문성이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노력의 양과 성취의 정도는 비례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대학'에 나오는 "심성구지, 수부중불원의(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라는 마음가짐이 최선일 것이다.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비록 적중하지는 못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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