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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0.경 출간 예정인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충북알프스 산행 예정일이 3월 1일이니 이제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에서 산외면 활목고개를 잇는 약 43kn의 구간으로 이 거리를 한방에 진행하려면 야간 산행은 필수적입니다.
그럴 경우 구병산과 묘봉, 관음봉 등에서의 그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러니 무박 산행보다는 부득이 1박2일로 진행해야 하는 코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배 아라미스, 자룡 등과 함께 2014. 11. 8. ~ 9. 이틀에 걸쳐 진행하였기에 눈에 익은 길이긴 합니다.
그때 체감했던 힘듦이란....
상당한 난이도라는 얘기입니다.
즉 별 특이한 어려움이 없음에도 이른바 빨래판 같은 오르내림이 심해서인지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루트를 다시 진행하려니 2018. 12.~ 2019. 1.까지 운동량이 부족한 저로서는 심히 걱정이 되기만 합니다.
뒤늦게 지리서부능선 일부와 계룡산을 다녀오긴 했지만 여전히 동계훈련 부족이라는 찝찝함이 남아 있습니다.
지리에 들까 아니면 공룡을 한 방 하고 와?
그렇게 먼 곳을 다녀오느니 가까운 삼각산 12성문이나 관악산 11국기봉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마침 존경하는 후배 아라미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이것저것 얘기하다 관악산 국기봉 얘기를 꺼내니 자신도 마침 시간이 비었으니 함께 하자는군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입니다.
자료를 찾아 보니 제가 그 구간을 진행한 시기가 2012. 5. 4.이군요.
8시간이 조금 안 걸린 그 구간.
이번에도 그 정도를 예상하고 2019. 2. 26. 이른 새벽 집을 나섭니다.
지도 #1
06:30
만나기로 약속한 정시에 사당역으로 나갑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라미스님.
반갑게 악수를 하고는 들머리로 향합니다.
중간에 떡 하나 사고....
06:45
오늘 산행을 시작합니다.
관음사를 향해 오릅니다.
06:55
관음사 사찰은 훤하게 불이 밝혀져 있고 독경 소리가 들립니다.
지도 #1의 '가'에서는 운동시설이 있는 곳을 경유하여 정자 좌측으로 오르는 길과 암벽을 잡고 올라야 하는 진입금지 구간 등 두 곳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직등 길을 선택합니다.
우면산 쪽에서 붉은 기운이 올라옵니다.
07:10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317.3봉 바로 아래에 있는 관음사 국기봉 즉 제1국기봉에 오릅니다.
날씨가 좀 쌀쌀하지만 오르느라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국기봉에 오르면서 안양지맥에 접속을 합니다.
지맥枝脈 얘기가 나왔으니 산줄기 얘기 잠깐 하고 갈까요?
관심없는 이들에게는 백날 떠들어 봤자 잔소리 혹은 알아 듣지도 못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반복하면 학습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백두대간은 어지간한 분들도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니 여기서는 간단히 지맥을 얘기하기 위하여 정맥은 냄새만 맡고 가기로 합니다.
산줄기에는 계급이 있다.
그리고 산경표는 적당히 유교적 성향을 띠고 있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책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산경표는 백두산과 백두대간을 아버지 줄기로 하여 정간, 정맥을 두었다. 그리고 산경표에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사실 지맥(支脈)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대간이나 정맥의 하위 개념도 암시해 주었다. 이는 성호의 지봉유설이나 이중환의 택리지 그리고 각 실록과 지리지에 무수히 나오는 개념이다.
요약하면 대간 - 정맥(간)만 두고 이들로부터 가지 치는 줄기는 지맥(支脈)이라고 하여 그 개념 정립은 후대로 미루어 두었던 것이다. 주의할 것은 선조들이 설정한 개념은 일단 지맥(支脈)이었고 이는 보통명사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산줄기 산행에서 쓰는 지맥은 지맥(枝脈)이라 하여 대한산경표를 따를 때 여기에 강(江) 이름이나 천(川) 이름을 붙여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강을 산과 달리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산줄기를 볼 때 항상 강과 연결하여 생각했다. 그러니까 가지 줄기들을 강을 둘러싼 줄기와 그렇지 않은 줄기로 나누었다. 즉 강을 둘러싼 줄기를 주맥으로 보고 그렇지 않은 줄기를 지맥으로 본 것이다. 주맥은 정간과 정맥이었고 여타 줄기들은 다 지맥이었다. 곧 조선산맥 즉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각 지맥이 작은 산맥으로 나뉘어져 간 것이었다.
그렇게 한 것이 백두대간을 비롯한 1정간 13정맥으로 모두 15개의 산줄기였다. 산경표는 그 산줄기마다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나라 산의 조종인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줄기에는 그 위상에 걸맞게 ‘대(大)’자를 넣어 대간이라 했다. 물론 이름은 산 이름인 백두산과 지리산의 옛 이름인 두류산의 첫 글자를 따서 백두대간이라 했다.
그리고 모든 줄기들이 강을 따라 가다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맥을 다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강을 중심으로 이름을 붙이거나 그 줄기가 지나는 지방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산줄기 이름을 강에서 따온 것은 노년기 산지의 애매한 줄기의 이어짐을 역으로 물 흐름에서 찾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실제 산경표를 보면 산줄기들이 강을 따라 가다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맥을 다 하는 것은 장백정간, 낙동정맥, 한남정맥 그리고 낙남정맥 등에 불과하다.
어쨌든
대원칙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함이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맞는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77쪽
정맥은 다음 번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
그 하위 개념인 지맥을 들여다 봅니다.
3. 지리산의 지맥枝脈
지맥은 대간과 정맥의 하위개념이다. 즉 대간大幹〉정맥正脈〉지맥枝脈이니 지맥은 산줄기 계급 체계의 제일 하위에 있는 개념이다. 물론 기맥, 분맥, 단맥, 여맥도 상정할 수 있지만 너무 세분시키는 것이기도 하며 논란만 부추기는 격이니 여기서는 언급을 피한다.
지맥이라는 계급이 붙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①‘산줄기 요건’으로 백두대간이나 정맥 그리고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여야 한다. 그리고 ②‘물줄기 요건’으로 그 줄기가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합수점형)여야 하며, ③마지막으로 ‘산줄기의 길이 요건’으로 그 도상거리가 30km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들이다.
다만 ②요건의 경우 산줄기를 조금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는 바, 가령 관련된 물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울타리형)이나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산줄기형)의 경우 등이 그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합수점형, ㉯울타리형, ㉰산줄기형 등 세 가지가 유형에 해당되어야 한다. 좀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산줄기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차근차근 살펴보자.
㉮ ‘합수점合水點’형의 예
좌측 개념도는 백두대간 지리산 입구인 여원재에서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 ~ 반야봉으로 진행하는 대간능선과 대간길의 만복대 바로 앞에서 가지를 쳐 밤재 ~ 견두산 ~ 형제봉을 지나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3.2km의 가지줄기 개념도이다.
이를 위 지맥의 3요건에 대입시켜본다.
보다시피 이 가지 줄기는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줄기이니 ①요건에 합당하다. 그리고 이 줄기가 백두대간 만복대 부근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서시천이라는 물줄기가 발원을 하는데, 이 서시천이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섬진강과 합류되는 합수점인 개념도 ‘A'의 곳에서 이 줄기의 맥이 잠기게 되니 이 역시 ②요건에 합당! 그리고 이 가지줄기의 도상거리는 33.2km가 되므로 기본 요건인 30km를 넘으므로 이 역시 요건 ③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가지줄기는 枝脈이라는 계급을 얻게 되고 그 이름은 강 이름인 서시천을 따서 ’서시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는 고유명사가 된다.
㉯울타리형의 예
합수점형에 비해 설명이 조금 복잡해진다. 산줄기가 여러 개 나오긴 하지만 원리는 같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좌측 개념도의 주主줄기는 역시 백두대간이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백두대간에서 큰 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쳐 나가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에서 보청천이 발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맥 이름이 암시하듯 이 산줄기는 금강의 북쪽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이 보청천이 10대 강 중 하나인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을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보청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두 개의 산줄기가 잠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산경표 상으로는 팔음지맥과 금적지맥이 그것이며 대한산경표 상으로는 보청지맥과 보청북지맥이 그것이다.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필자가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대한산경표의 이름으로 얘기를 이어가겠다.
똑같은 물줄기로 들어가는 두 산줄기의 우선권은 그 산줄기가 속한 주산줄기의 계급이나 세력에 따른다. 이 경우 백두대간〉정맥이므로 이 물줄기는 백두대간 몫이다. 따라서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으로 잠기는 줄기는 대간에서 분기한 줄기이므로 ①의 요건을 충족하고 합수점으로 갔으니 이 역시 ②의 요건을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이 가지 줄기의 도상거리가 57.7km가 되니 지맥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 지맥의 이름은 물줄기 보청천의 이름을 따 보청지맥이라 명명한다.
이렇듯 ‘합수점’형인 이 보청지맥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보청천으로 들어온 다른 줄기가 문제이다. 즉 이 줄기 역시 한남금북정맥이라는 정맥에서 분기 되었으므로 ①요건은 충족하며 이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약 49.6km가 되므로 이 역시 ③요건을 충족한다.
다만 합수점은 합수점인데 주主산줄기가 아닌 부副산줄기이기 때문에 위 보청천에 밀리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보청천의 북서쪽 울타리 역할을 하므로 이런 경우는 지맥의 유형 ‘②울타리형’으로 보아 지맥에 편입시키기로 한다. 엄격한 해석보다는 산줄기를 유용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보청천의 북쪽으로 잠기는 산줄기이므로 이름은 ‘보청북지맥’으로 명명한다.
㉰산줄기형의 예
위에서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의 유형을 ‘산줄기’형이라고 분류한다고 했다. 이는 혹시나 합수점형이나 울타리형으로 분류될 경우 모두 잔가지 가령 여맥이나 단맥 등으로 처리되어 지맥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됨에 따라 선조들이 물려주신 이 소중한 산하를 유용하게 선용하지 못하는 불합리함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라 이해하면 된다.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인 합수점으로 가지 않는 특수한 경우니 이를 산자분수령의 예외 유형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강이나 하천을 동원할 수도 없으니 물줄기 이름을 붙이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그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로 한다.
물론 이 경우도 ②의 합수점 요건에만 예외가 되기 때문에 ①, ③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위 참고도의 경우 금북정맥의 구수산에서 3.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태안군 이원면 내리의 후망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이원’면의 이름을 따서 이원지맥이라 하고 같은 방법으로 금북정맥의 솔개재에서 1.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대산읍의 이름을 따 대산지맥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 근간 '현오와 걷는 지리산' 중에서
그럼 위 내용들을 안양지맥에 대입해 볼까요?
참고도 #1
한남정맥이 안성에 있는 칠장산에서 가지를 쳐 한강 하구로 향해 진행하다 수원 광교산을 지나 백운산에 이르러 북쪽으로 가지 하나를 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줄기가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 이 안양천이 발원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 가지 줄기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안양천이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한강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그 맥을 가하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그 가지줄기의 도상거리가 30km가 넘을 경우 이 줄기는 '지맥枝脈'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음도 이미 살펴봤습니다.
이 줄기의 길이를 측정해 보니 34.8km가 되므로 이는 지맥의 요건을 충족하여 그 물줄기의 이름을 따서 안양지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미리 자세히 살펴봤으므로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뭐하러 이런 걸 알아야 할까요?
그저 우리 선조들께서 알려주신 우리 산줄기를 좀 더 유용하게 쓰고자 함이라면 답이 되겠습니까?
기회 있을 때 또 보죠.
좌측 철계단을 따라 오르면 333.5봉을 오르게 되고 그러고는 잠시 우측으로 빠져 제2국기봉을 갔다 되돌아 와야죠.
우측 선유봉의 제2국기봉이 보이고 중앙 좌측 뒤로는 연주대의 군시설이 보입니다.
07:14
이건 순수한 보너스.
철계단 뒤 파이프능선이 보이고 그 뒤로 남태령 지나 우면산으로 흐르는 줄기가 보이는군요.
제2국기봉으로 향합니다.
07:26
가뿐하게 선유봉으로 오른 다음 되돌아 나와 연주대를 향합니다.
오늘은 관악산을 갔다 내려오는 분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군요.
진행방향 우측으로 서울대 공대로 내려가는 능선 즉 자운암능선이 보이고 그 중간에 태극기가 날리고 있습니다.
연주대를 넘어 부대 바로 우측으로 떨어지는 능선을 타야겠죠.
상당한 비알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좀 힘든 구간입니다.
지도 #2
08:06
가짜 삼각점이 있는 곳을 지나,
08:14
지도 #2의 '나'의 곳입니다.
암벽등반을 하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입니다.
오르다가 중앙 멀리 이 안양지맥이 가지를 치는 백운산을 봅니다.
관악문을 통과하고....
그러면 정면으로 연주대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지난 신년 해맞이 산행 때 저 연주대를 내려오다 보니 달라진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삼단 로프를 잡고 오르내려야 했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나무 데크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안전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삼각산 백운대와 만경봉이 명백하고 우측으로는 도봉산 자운봉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미세 먼지로 시계가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많이 벗겨진 느낌입니다.
예전의 로프가 보이고 그 위로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악문을 보고...
그 좌측으로 서울대학교도 봅니다.
08:40
관악산 정상을 넘어 연주대에서 정상석을 보고,
암요.
관악산에서 괜히 술 잘못 먹고 헤롱거리다가는 큰일 나기 쉽습니다.
우측으로 들어 자운암 능선으로 내려가는데 음지라 얼음이 그대로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줄에 의존해 냐려갑니다.
09:00
그러고는 제3(자운암)국기봉입니다.
바람이 드셉니다.
잽싸게 다시 부대 옆 안양지맥으로 되돌아 나와,
09:56
연주대.
늘 멋진 모델이 되어주어 고맙기만 합니다.
여기서 연주대戀主臺에 관해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를 들어봅니다.
늘 인터넷에 나와 있는 얘기들은 그럴 둣합니다.
말바위가 마암이어서 이 바위에 올라타면 득남할 수 있다는 얘기도 그럴 듯하기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허무맹랑한 얘기죠?
우선 마암하면 지리동부능선 즉 덕천지맥에 있는 마암이 떠오릅니다.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은 그의 산행기 '유두류산록'에서 다음과 같이 그렸습니다.
1)이로부터 영랑재(永郞岾)에 이르기까지는 길이 극도로 가팔라서, 정히 봉선의기(封禪儀記)에 이른바 “뒷사람은 앞사람의 발밑을 보고, 앞사람은 뒷사람의 정수리를 보게 된다.”는 것과 같았으므로, 나무뿌리를 부여잡아야만 비로소 오르내릴 수가 있었다.
2)해유령(蟹踰嶺)을 지나면서 보니 곁에 선암(船巖)이 있었는데, 법종(法宗)이 말하기를, “상고 시대에 바닷물이 산릉(山陵)을 넘쳐흐를 때 이 바위에 배(船)를 매어두었는데, 방게螃蟹가 여기를 지나갔으므로 이렇게 이름 한 것입니다.”하였다. 그래서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때의 생물들은 모두 하늘을 부여잡고 살았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또 등성이의 곁을 따라 남쪽으로 중봉(中峯)을 올라가 보니, 산중에 모든 융기하여 봉우리가 된 것들은 전부가 돌로 되었는데, 유독 이 봉우리만이 위에 흙을 이고서 단중(端重)하게 자리하고 있으므로, 발걸음을 자유로이 뗄 수가 있었다. 여기에서 약간 내려와 마암(馬巖)에서 쉬는데, 샘물이 맑고 차서 마실 만하였다. 가물 때를 만났을 경우, 사람을 시켜 이 바위에 올라가서 마구 뛰며 배회하게 하면 반드시 뇌우(雷雨)를 얻게 되는데, 내가 지난해와 금년 여름에 사람을 보내서 시험해 본 결과, 자못 효험이 있었다.
점필재는 마암을 두 곳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제석봉에도 마암이 있어 제석봉 승려들은 마암당을 건립하였다는 기사가 개벽 제34호에 실린 지리산보(1952년 4월 1일 刊)에 나오죠?
현재 咸陽郡守 閔麟鎬씨는 空殼의 名勝古蹟이나마 보존하랴고 保勝會를 조직하고 智異山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하야 智異山誌를 즙집葺輯 중이오, 同郡有志 姜渭秀씨는 遊山하는 人의 편리를 圖키 위하야 山上에 望海亭을 건축하고 朴魯翊 及 靈源寺僧 一同은 帝釋堂을 건축하얏스며 李璡雨 及 碧松寺僧 一同은 馬岩堂을 건축하야(兩處는 皆 中峯) 本年 陽春佳節에 開山式을 行하랴 한다. 此가 本山의 幸이라 할지.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마암의 마馬는 말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잡채 만한 바위가 무슨 말모양을 한 바위이겠습니까?
마산(馬山)의 유래
마산봉을 정면으로 보며 내려간다. 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 샘물 표시가 되어 있다. 마시기에 별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 물이다. 안전시설이 되어 있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마산 삼거리를 지나 2004년 이설된 2등급삼각점(간성24)이 있고 정상석 두 기가 서 있는 마산1052.0m이다.
마산은 ᄆᆞᆯ산에서 왔다. 말(馬)은 중세 국어에서는 ‘ᄆᆞᆯ’이었다. 그런데 고대국어 체계에서는 뒤에 모음이 있는 경우 두 음절로 말하는 ‘개음절어’ 체계여서 고려시대 이전에는 ‘말’의 경우 ‘ᄆᆞᄅᆞ’로 발음 되었을 거라고 한다. 따라서 이 ‘ᄆᆞᄅᆞ’는 말(馬) 말고도 ‘마루’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지금의 ‘산마루’와 같이 ‘꼭대기’ 혹은 ‘높은 곳’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의미의 잔재가 馬峴, 馬山, 馬嶺 등이다. 그러니 보통 지명의 유래나 전설 등이 얘기하는 것과 같이 ‘말의 형태를 닮았다.’는 등의 동물 말(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이 마산도 생김새와는 관계없는 단지 ‘높은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에 불과하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564쪽
사설이 길었습니다.
다시 '대臺' 얘기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대는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만복대의 ‘대臺’의 의미는?
대臺는 보통 외형 상 내려다보았을 때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거나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바위 꼭대기의 넓고 평평한 반석盤石을 얘기한다. 그런데 바위는 기가 모이는 힘이 대단하여 바위 주변에서 수행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효험이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큰 바위 주변에 수도처로서의 대臺가 많다는 것이다. 이 기도발이 먹힌다는 것은 비단 스님들의 수행뿐만 아니라 무속인들이 산신으로부터 영험함을 전수받는 데에도 상당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는 누천년 간 사제지간에 전승 혹은 같은 직업군에서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경험담의 일부로도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니 이렇게 대단히 신비스러운 바위 주변에 '토굴'들이 많다 보니 큰 바위를 일컫는 '대臺'가 '토굴'의 이름에 붙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에는 ‘지리10대’ 가령 문수대, 우번대, 서산대, 문창대 등 이런 ‘대臺’가 10곳 이상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이와 같은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있는 암벽과 그 아래로 석간수가 흐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지리산에 있어서 '대臺'의 의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산재한 유명 수도처에 옛날부터 '대臺'자가 붙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스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의 수도승들은 땅굴을 파고 기거하면서 수행을 했다 한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땅굴 대신에 깊은 산중에 한 칸 암자를 짓는 형태로 변했는데 어쨌든 이런 연유로 하여 자신이 거주하는 곳을 낮추어 일컫는 말로 '토굴土窟'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 토굴은 혼자 수행할 공간만 있는 조그만 암자의 뜻으로 이해하면 될까? 한 걸음 더 나아가 낮추어 일컫는 이 '토굴'을 불가에서는 암자와 구별하여 대臺라 칭한다 한다. 그러니 문수대라 함은 문수암을 말하는 것도 되고 묘향대라 함은 묘향암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수도처로서의 '대臺'는 토굴의 다른 이름이며 토굴의 배경이 되는 바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진 17> 문수암 정경. 노고단 아래 있는 토굴로 지리10대 중 하나이다.
그런데 만복대는 이런 ‘대臺’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저 봉우리의 다른 이름 즉 ‘정상이 두드러지게 평평한’의 의미인 돈대墩臺의 뜻으로 쓰였으니 위에서 얘기한 ‘대臺’와는 좀 다르다 하겠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83쪽 이하
그러니까 이 응진전은 연주암의 부속 법당을 얘기하는 것도 되겠고 어느 정도 독립적인 것이라 본다면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토굴 즉 연주대 자체로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속리산 문장대나 지리산의 만복대도 같은 臺이지만 문수대를 얘기할 때는 이와 같은 암자 즉 토굴을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자면 끝도 없으니 이만하죠.
깔딱고개로 가면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연주암과 탑.
10:05
깔딱고개를 지나,
학바위 능선으로 접어들면서 우측으로 자운암 능선을 봅니다.
중앙 우측으로 제3국기봉도 보고....
좌측으로 8봉 능선입구에 있는 제5(팔봉2)국기봉을 봅니다.
제6 국기봉은 그 뒤로 넘어서 간 다음 불성사로 내려가 소공원 방향으로 진행하면 되겠죠?
10:23
그러고는 제4(학바위)국기봉을 찍습니다.
그 국기봉 뒤로 삼성산과 제7(삼성산)국기봉을 봅니다.
이곳도 아까 자운암 국기봉과 같이 안양지맥으로 다시 되돌아나와야 하는 불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능선 산행같이 계속 능선 ~ 고개 ~ 능선의 이음이 아니라 왕복을 해야 하는 소구간이 있다는 게 어쩌면 이 관악 국기봉이 갖는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도 #3
10:48
다시 안양지맥에 들어 8봉 갈림길을 향합니다.
10:54
진행방향 우측으로 제5(팔봉)국기봉이 보이는군요.
아까 학바위능선에서 볼때는 안양지맥 능선에서 우측으로 상당히 벗어난 곳에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곳 능선에서 보면 바로 능선에 붙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0:57
주름바위를 지나면서도 그 국기봉을 겨냥합니다.
11:02
팔봉능선 갈림길입니다.
직좌하면 지맥길이고 여기서 직우하면 불성사입니다.
물론 우틀하면 팔봉능선인데 조금 위험합니다.
그런데 우측에서 아무리 뒤져봐도 국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등로 바로 옆이었는데....
여기서 한 5분 헤맵니다.
우선 먼 곳에서 봐야 하니 일단 직진합니다.
제6국기봉부터 보자는 얘기죠.
11:21
527.9봉인 제7(팔봉제1)국기봉에 오릅니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면서 문제의 제6국기봉을 찾습니다.
아까 지나왔던 자리에 분명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뿔사!
등로 우측!
그러니까 아까 그 등로에서 바로 왼쪽으로 올라야 했습니다.
몇 분 허탕을 쳤군요.
다시 되돌아갑니다.
11:21
그러고는 문제의 제7(팔봉제2)국기봉에 오릅니다.
포스트까지 확인하고 불성사로 내려갑니다.
이 얘기 저 얘기 ..
주저리 주저리...
11:57
불성사를 지나,
12:28
유원지 삼거리에서 우틀.
12:36
망월암을 따르고....
잠깐 사면을 치고 올라가 계곡으로 들어갑니다.
좌측 길을 따라 오르면,
12:55
구조목 9-1에서 좌틀합니다.
밭이 있는 표지판 앞에서 우틀하여,
13:04
삼막사를 따르고,
지나온 관악산 연봉들을 보면서,
느긋하게 오릅니다.
상불암을 지나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면,
13:26
제7(삼성산)국기봉에 오릅니다.
수고는 해주셨는데 해발 고도 표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분명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478.6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정상석이 있는 이 478.6봉이 삼성산이냐,
아니면 저 중계탑이 있는 480.9봉이냐?
그것도 아니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서 명시하고 있는 삼각점(안양420)이 있는 455봉이 삼성산인가요?
높이로 보나 조망으로 보니 중계탑이 있는 저 480.9봉이 삼성산이어야 하거늘 세 봉우리 중 가장 낮은 455봉이 삼성산이라니...
혹시나 무슨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닐까요?
인터넷에는 원효, 의상, 윤필 등 삼인의 고승 때문에 생긴 삼막사와 관련되어 삼성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남부지리산의 오산에 있는 사성암 같이 믿기 어려운 얘기이고...
원효, 도선, 의상, 진각 등 4인의 대사가 수행을 했다하여 사성암이라 한다. 하지만 어디 그 분들뿐이겠는가. 원감도 여기서 안선安禪하였으니 오성이 아니라 육성도 될 법하다. 봉성지에 따르면 ‘암자 위에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는 백장의 빈틈이 있다. 속칭 용암湧巖이다. 바위에는 12대가 있고 대에는 자기 이름이 있다.’고 적고 있다. 이에 육당 최남선은 심춘순례에서 “용암의 湧은 아마 ‘솟은’과 비슷한 무슨 음의 대자對字일 것이요, ‘솟은’은 대개 ‘ᄉᆞᆫ’ 혹 ‘ᄉᆞᆯᄋᆞᆫ’의 연이와延而訛(오랜 시간이 흘러 변형됨)한 이름일 터, 이것이 곧 다른 곳의 입암立巖, 선암 등과 마찬가지로 신체석이라는 …(중략) … 그런데 사성이라 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솟은’의 종교어적 대자일 따름이다. ‘솟은 바위’에 지었다 하여 ‘솟은庵’ = 사성암이라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30쪽
어쨌든 정상석이야 그곳에 세울 수 없으니 이곳에 세운 것 같고....
구지도를 한 번 볼까요?
광복 이전에 만든 일제시대의 지도에는 분명하게 480.9봉을 삼성산이라고 표기하여 놓았군요.
그렇다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와 있는 455.0봉은 그저 삼각점(안양420)이 있는 봉우리였군요.
국기봉에서 내려와 상불암 표지판 좌측으로 들어 안부를 지나는 바로 좌측에 있던 봉우리 같지도 않은 봉우리였는데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것이군요.
아!
이제 제대로 이해가 갑니다.
그러니 예전 일제강점기 하의 지도나 ,
1957년에 새로 제작한 지도나 현재의 KT중계탑이 있는 480.9봉(당시는 481m)이 삼성산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지도가 1974년도에 들어오면서 희미해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그러고는 다시 측량을 하여 지도에 올리는 과정에서 눈이 침침한 분이 작업을 했는지 이 481봉은 누락한 체 삼각점이 있는 봉만 455m로 기입을 합니다.
그리고 이 삼각점봉(455m)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덩그라니 삼성산 표기만 되어 있는 그 이름을 455봉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1987년에 인쇄한 지도만해도 삼성산은 480.9봉을 떠나 455봉으로 갔다 478.6봉으로 갔다 우왕좌왕 합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확고하게 455봉으로 자리 잡습니다.
생각건대 산이름은 큭별한 유래가 있지 않은 이상 그 부근에서 최고봉이 그 이름을 차지하게 마련입니다.
더욱이 이 삼성산은 원효니 의상을 떠나 478.6봉, 455봉 그리고 480.9봉 등 봉우리가 세 개여서 삼성산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을 합니다.
그렇다면 첫째 행정구역이 서울시 관악구와 경기도 안양시의 도계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중 최고봉이고 조망도 수려하며 마침 그 아래 삼막사라는 고찰이 있기도 하니 그 산 이름은 아무래도 최고봉인 480.9봉에다 붙여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삼막사를 보고 한참이나 놀다가,
14:05
삼성산 KT중계소 앞으로 나갑니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지도 #4
,
14:19
깃대봉445.6m 국기봉을 겨냥합니다.
조금 난이도가 있는 곳입니다.
우회해 제8(깃대봉)국기봉을 오릅니다.
여기서 민주동산 국기봉은 보이지 않고 중앙 우측으로 칼바위 국기봉과 우측의 돌산 국기봉이 보입니다.
무너미 고개를 지나 호압사 방향을 버리고 우측 능선을 탑니다.
민주동산 광장을 지나는데 온통 길이 질퍽이고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닙니다.
완연한 봄날이군요.
그 길을 지나,
15:03
제9(민주동산)국기봉에 오릅니다.
따뜻한 날 오후.
잠이 솔솔 옵니다.
잠시 간식도 먹을겸 쉽니다.
골짜기 건너 298.9봉 좌측으로 칼바위 국기봉이 보이고....
또 가야죠.
15:26
이번에는 298.9봉에서 민주동산 국기봉을 봅니다.
15:29
제10(칼바위)국기봉을 봅니다.
이제 하나 남았군요.
예전에 아주 불편하게 오르내리던 칼바위 능선이 이제는 이렇게 아주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군요.
그래도 일부러 칼바위능선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아무 생각없이 나눕니다.
지도 #5
그런데 저 돌산 국기봉에 노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여러 명 오고가는 게 보입니다.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느긋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걷습니다.
16:00
돌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119헬기가 날아오더니 돌산 주위를 선회합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주위에 나뭇잎이니 흙이니 온갖 것들이 날리고 ...
혹시나 돌이 날아올까봐 잽싸게 몸을 숨깁니다.
그러더니 헬기에서 들것용 베드가 내려오는군요.
무슨 사고가 난 것에 틀림 없습니다.
베드를 내려놓은 헬기가 잠시 멀어진 큼을 이용하여 잽싸게 올라 사진 한 장을 남깁니다.
사고였습니다.
그 베드는 시신을 옮기기 위한 수단이었고 돌산 정상에는 산악구조대원 4명이 화이버를 쓴 채 그 베드에 시신을 묶고는 헬기에 다시 실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 구조 현장을 계속 촬영을 하고....
일행도 없이 혼자서 어떻게 저런 큰 변을 당했는지....
어쨌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6:05
내려오면서 찝찝한 마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백덕산에 이어 두 번째 보는 사고 현장이군요.
16:21
이제 거의 다 왔군요.
신고를 받고 구조대가 출동을 했다가 시신을 확인하고는 헬기를 부른 거군요.
산에서는 무조건 안전이 제일입니다.
16:30
이 일주문이 이곳으로 2년 전에 옮겼군요.
제 기억이 잘못됐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충북알프스 워밍업을 슬슬 놀면서 마쳤습니다.
주말 산행이 부드럽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이제 제 컨디션을 회복했으니 말입니다.
첫댓글 넘 힘든산행은 자제해 주세요~ㅎㅎ 간만에 국기봉들 봅니다. 충북알프스 잘 하시구요~
새로운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추카드려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절대 무리한 산행 자제하고 있습니다.
산에서는 항상 조심해야지...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나도 작년 10월에 까딱했으면 저 꼴 났을 텐데요...ㅠㅠㅠ
그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생각만해도 오금이 저립니다. 마음과 달리 몸 신경이 예전같이 따리 주지 않는것 만큼은 확실합니다. 이번에도 국기봉 오르면서 의식적으로 손잡이, 발 디딜 곳 재삼 확인하면서 진행했습니다.
충북알프스 잘 다녀와요. 중간에 암릉지대가 몇곳 나오지요.
덕붐에 국기봉 순례기를 잘 감상하고 갑니다,충북알프스도 무탈하게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언제 미세먼지 없을 때 나도 국기봉 순례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산은 항상 조심해야겠지요, 사고를 당하신 이름모를 분께 조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