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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비정규직 근로자와 원청업체인 기륭전자 사이의 의견차로 발생한 기륭전자사태가 최장 농성기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농성 시작 1895일 만인 2010년 11월 1일 노사간의 합의로 타결되었다.
2005년 비정규직 노조 설립 직후 파견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원청업체인 기륭전자 측에 자신들의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며, 7월 5일부터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공장을 점거해왔다. 10월 기륭전자는 노동부 감독으로 불법 파견 판정이 내려졌으나, 이후 완전 도급 형태로 전환하였다. 그 해 9월 공장 점거중인 노조원 32명을 파견 회사가 해고 통보하자, 이들은 부당해고에 대해 소송을 했으나 2007년 1~6월 사이 서울행정법원 및 대법원은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후 문제해결을 위한 각계의 중재에도 재고용 및 고용보장기간에 대한 노사의 입장차로 합의는 실패했고, 그 사이 기륭전자의 대주주가 세 번이나 바뀌면서 노조의 농성이 계속되었다. 그동안 2008년 이명박정부 초기 농성에 참여한 노조원의 취업과 위로금 지금에 관한 합의안이 도출되었지만 위로금 액수에 이견이 생겨 합의가 결렬되었다. 합의가 타결된 2010년 11월 1일 노사는 해고된 비정규직 농성자 1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일정액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내용에 합의하며 5년여에 걸친 농성이 끝을 맺었다.
[오늘의 인물]
2011년 11월 1일
‘한반도·아시아문제’ 석학 스칼라피노 교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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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피노 교수, 92세로 별세
- 동아시아 논문 500여편 내… 한승주 교수 등 한국인 제자 둬 “아시아는 내 인생이었다”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연구의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히는 로버트 스칼라피노(92)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가 지난 1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별세했다.
1919년 미국 캔자스주 리븐워스에서 태어난 스칼라피노 교수는 샌타바버라대를 졸업하고 1948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음해부터 버클리대에 재직하며 반세기 넘게 교수로 활동했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미국과 한국’ 등 한반도 관련 연구서 출간으로 한국의 현대사 연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북한도 6차례 방문하는 등 남북관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현대 일본정당과 정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등 아시아 문제와 관련된 39권의 저서와 500여편의 논문을 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에는 미국과 유럽에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 ‘신동방견문록-리븐워스에서 라싸까지’에서 스칼라피노 교수는 “2차대전 발발 이후부터 아시아는 내 인생이었다. 아시아로 인해 나는 큰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한국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대학원 제자였던 이정식 경희대 석좌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외무장관을 지낸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황병태 전 대구한의대 총장, 장달중 서울대 교수 등 한국 내에 많은 제자들이 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신동방견문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첫 인상은 단순하고 전통적인 정치관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고 “유신헌법과 독재정치는 장차 있을 미군 철수에 대한 대비책이었다”고 분석했다.
1959년 미국 상원에 제출한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그는 군부 집권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당분간 쿠데타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5·16 세력은 스칼라피노 교수 보고서 내용을 접하고 "한국 군인에게 기개가 없다는 말이냐"며 분개했다고 한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1992년 조선일보 새해 특별기고에서 그는 "낙관론자들조차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일순간의 극적인 사태를 통해 이루어지리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통일의 과정은 남북한 국민들이 함께 일할 수 있을 만큼 경제 및 문화적 유대가 강화되어야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도 그는 "한반도 통일은 북한의 붕괴나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한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서는 "20~30년 후 경제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극심한 빈부갈등 등 문제가 산적해 있고 공산당의 독재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67건
ㆍ2011년 · ‘한반도·아시아문제’ 석학 스칼라피노 교수 별세
ㆍ2009년 · 학술원회원 우형주 명예교수 별세
ㆍ2002년 · 대한민국 전자정부 출범
ㆍ2001년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 한국인으로 첫 월드시리즈 진출
ㆍ2001년 ·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을 합병한 새 ‘국민은행’ 출범
ㆍ1999년 ·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계열사 사장단 14명과 함께 사퇴
ㆍ1997년 · 해태그룹 화의 신청
ㆍ1993년 · 유럽의 정치-경제 통합에 관한 마스트리히트조약 발효
ㆍ1989년 · 한국-폴란드 국교 수립
ㆍ1988년 · 서울시 인구 1천28만6천5백3명 기록
ㆍ1988년 · 외환보유-송금 자유화
ㆍ1987년 · 해병대사령부 재창설(73년 10월 10일 해체)
ㆍ1986년 · 광주시가 직할시로 승격
ㆍ1983년 · 미해병, 그레나다 철수
ㆍ1983년 · 새주민등록증 발급 개시
ㆍ1983년 · 미국 신형토마호크 미사일 영국 도착
ㆍ1982년 · 인도- 파키스탄 뉴델리서 정상회담
ㆍ1982년 · 한울회사건 고-대법원 핑퐁판결
ㆍ1981년 · 언론인 유광열 사망
ㆍ1981년 · 정부, 앤타카 앤드 바부다와 외교관계 수립
ㆍ1980년 · 전국 인구-주택 센서스 실시
ㆍ1980년 · 사회정화위원회 발족
ㆍ1980년 · 문교부,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 결정
ㆍ1978년 · 미국, 긴급 달러보호책 발표
ㆍ1977년 · 미국, 국제노동기구(ILO)탈퇴 선언
ㆍ1972년 ·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
ㆍ1966년 · 잡지의 날 제정
ㆍ1966년 · 문화예술 종합 월간지 `공간` 창간
ㆍ1964년 · 월맹게릴라, 월남 美공군기지 습격, 사상 56명, B57기 27기 파손
ㆍ1963년 · 베트남 군부쿠데타(1차)로 정반민 장군 집권(2일 고딘디엠 대통령 피살)
ㆍ1963년 · 부산 수산센터(종합어시장) 개장
ㆍ1962년 · 소련, 화성에 로케트발사 성공
ㆍ1961년 · 알제리서 혁명7개군 데모
ㆍ1960년 · 서울대생들, 민족통일연맹-장면총리 미소방문-남북학생회담등 주장
ㆍ1960년 · 인도네시아, 석유 산업 국유화를 발표
ㆍ1956년 · 국내 최초 TV방송국 HLKZ-TV 정규방송
ㆍ1956년 · 영국-프랑스군, 수에즈운하 폭격
ㆍ1956년 · 오스트리아, 영국-프랑스와 단교
ㆍ1954년 · 알제리 독립을 요구하며 7명의 프랑스인 살해, 알제리아 독립전쟁 시작
ㆍ1954년 · 호남선에 특급열차 태극호 등장
ㆍ1952년 · 미국, 세계최초로 수소폭탄 실험
ㆍ1951년 · 미국, 네바다서 원폭실험 개시
ㆍ1950년 · 코리아타임즈 창간
ㆍ1949년 · 서울-부산간 민간항공취항(운임 1만100원)
ㆍ1948년 · 중국 상선, 남만주해에서 폭발, 침몰로 6천여명 사망
ㆍ1948년 · 여순반란사건 반도 89명 사형집행
ㆍ1945년 · 북한 노동신문의 전신 `정로(正路)` 창간
ㆍ1939년 · 외국인 입국체재 및 퇴거령 공포
ㆍ1935년 · 나진항 개항
ㆍ1934년 · 부산-장춘간 직통열차운행개시
ㆍ1931년 · 동아일보 신동아 창간
ㆍ1925년 · 중국, 무한정부 수립
ㆍ1925년 · 백암 박은식 선생 사망
ㆍ1922년 · 오스만 투르크 제국 멸망
ㆍ1916년 · 신소설 작가 이인직 사망
ㆍ1911년 · 총독부, 교과서편찬 개시
ㆍ1911년 · 압록강철교 완공
ㆍ1909년 · 사법청의 개청으로 법부 폐지
ㆍ1909년 · 창경원 개원
ㆍ1908년 · 한국의 첫 월간 잡지 `소년` 첫 발행
ㆍ1908년 · 한국 최초의 월간 잡지 ‘소년’ 발행
ㆍ1905년 · 한국, 도량형 신제도 채택
ㆍ1894년 · 러시아 민족주의를 지지한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3세 사망
ㆍ1800년 · 미국 대통령 관저 백악관 개관
ㆍ1757년 ·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 출생
ㆍ1755년 · 포르투칼 리스본에 지진(약 10만명 사망)
ㆍ1435년 · 조선, 일식 발생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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