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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0-1 울산 : 2년만에 개막전으로 성사된 동해안더비의 승패는 운에서 결정되었다.
K리그가 개막하기 직전에 열렸던 ACL 1라운드에서 동해안 클럽 두 팀은 이번시즌 어떻게 전술을 운용할 것인가에 대해 일종의 맛보기로 보여주었고, 이번 K리그 1라운드에서도 ACL과 보여줬던 전술과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포항은 언제나 그랬듯이 김승대를 펄스나인에 배치해놓은 4-3-3을, 울산은 전지훈련 때 주력으로 연습해왔던 김성환과 김선민을 중원에 두는 4-4-2를 사용했다.
2년만에 개막전으로 잡힌 K리그 최고의 더비인 동해안 더비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언론에서 예상한 것과 달리, 필자는 이 두 팀이 이번시즌 가장 유력한 리그 우승후보라고 예상하고 있으며, 이 두 팀만큼 전술이 다양한 팀들이 사실 K리그 내에 잘 없다. 게다가 지난 2013년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포항이 극적으로 울산을 잡고, 드라마틱하게 다섯번째 리그 우승을 거두었기에 울산이 이번 경기에서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마지막으로 이 경기에서 키플레이어는 각 팀의 플레이메이커인 이명주와 김선민의 진검승부에서 판가름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선수 다 지난 경기에서 멀티 포지셔닝이 가능하며, 공간 창출과 활용능력, 그리고 볼 배급에 있어서는 탁월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 경기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좁은 간격, 거센 압박, 그리고 빠른 템포
이 경기는 전반전 초반부터 흥미로웠다. 전반 1분부터 양 팀에서 각각 슈팅을 기록한 것을 기점으로, 포항과 울산은 넓은 스틸 야드에서 매우 좁은 간격으로 맞대응하였다. 포항은 원래 점유율과 좁은 간격을 통하여 패싱 축구를 구사하기로 유명했기에 크게 다른 것은 없지만, 재미난 것은 울산이 포항을 상대로 좁은 간격과 거센 압박으로 맞대응했다는 점이다. 마치 ACL에서 세레소 오사카가 포항을 상대했던 것을 연상케 했다.
세레소와 울산의 차이점을 꼽는다면, 역시 체력 차이였다. 울산은 기본적으로 K리그 클럽들 중에서 피지컬과 지구력, 활동량으로는 웬만해선 지지 않기로 소문났기에 포항을 상대로 좁은 간격을 두어 그들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전면부터 거센압박을 가하는 데에 있어서 큰 무리는 없어보였다.
좁은 간격 내에서 거센 압박이 쉴새없이 이루어지다보니, 경기 템포까지 자연스레 빨라졌다. 경기 템포가 빨라지면서 유리한 쪽은 되려 포항이었다. 원래 빠른 템포로 끌고 올라가던 울산이 오히려 공격으로 전환 시에, 빠르게 전개되질 못했다. 반대로 포항이 빠른 템포로 경기를 운영하면서 울산의 수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포항의 빠른 템포의 공격을 울산은 허슬플레이로 다 받아냈다.
공격 전환 시, 울산의 포메이션 변화
김선민과 김성환의 위치이동에 따라 공격전환시 포메이션 변화가 일어났다.
울산은 전반전에 독특한 전형을 선보였다. 공격시에 중원에 배치되어 있던 김선민과 김성환이 각각 전진과 후퇴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던 4-4-2가 아닌 3-5-2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이것은 펩 과르디올라가 과거 바르셀로나에서 보여주었고, 현재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여주고 있는 체인형성과 어느정도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홀딩 역할과 함께 스토퍼 역할을 김성환에게 부여하면서 김성환에게 빌드업 시작을 맡겼다. 그리고 그 앞에 김선민을 링커로 두어 양 측면 사이드백과 전방에 배치된 공격수들에게 볼배급을 하여 포항을 상대로 효과적인 패스플레이를 시도하려고 했었고, 이것이 조민국 감독이 원했던 그림 중 하나였으며, 전반 20분대까지 이 전형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전형은 포항을 상대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상운이 중앙으로 들어오고, 김신욱이 밑으로 내려와서 체인 형성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최전방 사이드에 배치되어 있는 하피냐와 김용태의 움직임이었다. 박희철이 김용태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으면서 그를 무력화시켰고, 하피냐는 울산의 의도와 달리 한 템포씩 늦게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김원일을 넘어서질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무열과 김영삼의 역할
전반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포항의 윙포워드인 고무열과 울산의 사이드백인 김영삼의 역할이었다. 울산의 공격 시발점은 라이트백인 이용으로부터, 포항의 주 공격루트는 조찬호-신광훈이 위치하고 있는 오른쪽 측면이었는데, 이 경기에서는 서로의 오른쪽 측면이 철저하게 봉쇄당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고, 그 중심에는 고무열과 김영삼이 있었다.
평소에 이용의 공격적인 오버래핑을 봉쇄하기 위해 황선홍 감독이 피지컬이 좋고, 돌파력이 좋은 고무열로 틀어막는 방법은 신의 한 수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무열은 이 경기에서 윙포워드보단 윙어에 가깝게 아예 측면으로 빠지면서(고무열이 위치하던 자리는 이명주가 쇄도해서 올라갔다), 이용을 전담마크하면서 그를 압박했고 그것이 통했다. 그리고 이용으로부터 컷백을 하여 속공을 펼치면서 울산을 위협했던 점까지 감안한다면, 고무열의 역할이 이 경기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용이 막혀서 오른쪽을 내주는 대신에 울산은 아예 포항전에 강한 김영삼을 중심으로 왼쪽 측면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김영삼은 종적으로 움직이는 조찬호의 패턴을 확실히 읽어내어 그가 오른쪽 측면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발 앞서 공을 따내면서 조찬호를 묶어버렸다. 그렇게 오른쪽 측면에서 힘을 못쓰게 되니 조찬호가 중앙으로 들어가서 돌파시도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에 탄력받아 김영삼은 한상운과 연계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신광훈까지 벗겨내면서 왼쪽 측면을 집요하게 노렸다.
결과적으로 포항과 울산은 전반전 내내 자신들의 메인 루트인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서 주 공격이 이루어졌고, 그것이 효과적으로 상대방에게 먹혔다.
포항이 날린 두 번의 기회
스틸야드에서 포항을 상대로 무승부로 끌고 가는 것은 경기내용이 어찌되었던 간에 울산이 경기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포항은 확실히 울산에게 페이스가 말려버렸다. 후반전이 시작되면서도 그러했고, 김선민에게 데뷔골을 내줄 뻔까지 했다. 하지만 포항이 그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던 기회가 두 번 있었고, 이 중 한 번이라도 성공했으면 이 경기는 포항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첫번째 기회 : 포항은 강민수가 오버래핑하는 과정에서 컷백하여 역습으로 연결하는 데에 성공했다. 강민수가 올라오면서 울산 수비라인은 자연스레 무너지면서 공간이 생겼고, 조찬호와 김승대 vs 이용과 김치곤, 숫자싸움에서 2대2가 되었기 때문에 포항 입장에선 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조찬호의 슈팅을 김승규가 막아내면서 포항은 첫번째 기회를 놓쳐버렸다.
두번째 기회 : 두번째 찬스에서 포항은 예전에 세레소가 자신들에게 했던 방법을 울산에게 적용하였다. 평소 스타일이 아닌 원터치 다이렉트 패스로 조찬호가 고무열에게 연결했고, 그것을 이어받은 고무열의 슈팅까지 좋았으나 골대에 맞으면서 포항은 결정적인 두번째 기회까지 날려버렸다.
교체 타이밍
밑줄 친 선수들은 교체투입된 선수들이다. 양 팀 다 세 명 교체했으나, 타이밍은 울산이 더 적절했다.
후반전을 판가름했던 또다른 변수는 교체 타이밍이었다. 포항은 66분에 고무열이 부상으로 교체아웃되기 전까지 교체가 한 명도 없었던 것에 반해, 울산은 경기가 풀리지 않으니 부진했던 김용태와 나름 분전했던 한상운을 조기에 교체아웃시키고 고창현과 백지훈을 투입시키면서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사실 포항은 줄곧 자리를 잡지 못하여 공격의 흐름을 끊어버리던 김태수와 최전방에서 펄스나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김승대를 조기에 교체했어야했다. 물론 고무열이 부상당한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변수였다 하더라도, 그 전에 취약 요소를 해결시켰더라면 고무열의 부상이 경기흐름의 터닝포인트로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레소전처럼 김태수를 빼고 배천석을 투입시켰더라면, 울산의 수비부담은 더 커질 수 있었을 터인데, 배천석이 고무열 대신 투입하면서 포항은 취약 요소를 그대로 안고 경기를 했던 셈이다.
이용을 봉쇄한 일등공신이었던 고무열이 나감과 동시에 이용의 움직임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박희철의 수비 부담은 자연스레 커지게 되었고, 김태수가 제대로 위치를 잡지 못하게 되니 이명주의 활동량이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었으니, 그것이 결과적으로 포항의 전술 균형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이명주의 멀티 포지셔닝
후반전에 접어들수록 이명주의 멀티 포지셔닝이 가장 눈에 띄었다. 세레소전에서도 이번 경기처럼 전천후와 후방 플레이메이커, 그리고 섀도 스트라이커 역할까지 맡았으나, 세레소전에서는 그렇게 좋은 포지션 소화는 아니었었다. 아무래도 전방에 있던 김승대의 움직임이 생각만큼 좋지 않았던 탓이 컸고, 처음 선보이는 것이라 생각만큼 따라주진 않았다. 하지만 울산 전에서 이명주는 동료 선수들의 폼과 상관없이 멀티 포지셔닝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포항이 공격할 시에는 언제든지 쇄도하여 페널티박스 안에서 수비수를 달고 다니면서 동료 선수들의 수비 압박을 분산시켜준다던지, 직접 슈팅을 때리면서 공격본능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울산이 공격을 시도할 시에는 중원으로 내려와서 자리를 지키면서 울산을 압박하고, 그리고 후방 플레이메이커를 자처하면서 포항의 템포를 골라주는 역할까지 보여주었다.
이 경기만 놓고 보았을 때, 이명주의 능력과 가능성이 마인츠에서 뛰고 있는 구자철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으며, 현재 국가대표에서 구자철이 맡고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에 더 적합하다고 보여졌다. 뿐만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를 쓰지 않는 역삼각형 구도를 사용할 때에도 문제없이 전천후와 플레이메이킹, 그리고 압박 수비가 가능하기에 국가대표팀 자원으로 더 크나큰 존재감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승부를 결정지은 김신욱의 골, 그리고 하피냐의 파울 논란
82분, 고창현의 쓰루패스가 포항의 중원을 가르면서 하피냐에게 연결되었고 하피냐가 그 공에 걸려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김광석을 밀쳤고 그 공이 김선민에게 연결되었다. 김선민이 때린 슈팅을 신화용이 막아냈으나 흘러나온 공을 다시 김신욱이 득점으로 연결시키면서 경기의 균형을 깨뜨렸다.
김신욱의 득점 장면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바로 그 전에, 하피냐가 김광석을 밀쳐낸 장면이다. 포항은 하피냐가 김광석을 밀쳐낸 행위가 파울인데 파울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억울해하는 입장이었다. 유선호 주심은 김광석이 쓰러지는 것을 일종의 다이빙으로 판단하고, 경기를 속행했다. 이 중에서 누구의 관점이 옳은 지 확실하게 답변할 순 없지만, 득점장면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를 남겨둔 것은 확실하다.
내용 면에서 보았을 때, 양 팀 다 거의 대등했으며 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아니었다. 필자도 처음에 무승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 더비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행운의 여신이었고, 그 행운의 여신이 울산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이 운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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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퀄! 감사합니다.
이야 분석이 장난 아니네요.. 잘봤습니다
정말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