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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MBC가 지난 5월 31일 방영한 5.18 특집 다큐멘터리 ‘추기경의 오월’은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천주교인들의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한 회고와 증언을 담았다. 사진은 ‘추기경의 오월’ 영상 갈무리. (왼쪽부터) 5.18 당시 남동성당 주임이었던 김성용 신부, 김수환 추기경,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 성염 전 주 교황청 한국대사 |
디테일에 속지 말자
33년. 예수님이 인간의 나이로 살아낸 그 세월만큼도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이 단기 기억상실증을 아프게 반성하자.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영상으로도 차마 똑바로 마주보지 못할 그날의 선한 눈동자들을 기억하자. 괴롭더라도 눈물이 앞을 가릴지라도 이 다큐 <추기경의 오월>을 보자. 우리의 오늘이 얼마나 고귀한 희생 위에 어렵게 세워졌는지 다시 생각하자.
지극히 상식적이고 통속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생각해보자. 유신정권과 군부독재가 애용한 우리 역사의 ‘특수성’이나 ‘지정학적’ 위기 상황 등등의 ‘국정 교과서’ 문장들 말고,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긴데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만 통하는 그런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같은 ‘신기한 이야기’들 말고, 보편타당한 질문부터 해보자. 친일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처럼 화려한 논리와 디테일한 해석과 독특하고 창의적인 발상 말고, 인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자.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시작했는가?
독재자가 결국 지향한 것은 돈이었다. 자국민에게 군 통수권자가 총부리를 겨눈 이유도 국가의 금고를 사유화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독재의 말로는 재산은닉, 부정부패, 탐욕으로 끝나는 이야기였음을 우리는 해외 유명 독재자들을 통해서도 익히 잘 알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만 웬일인지 ‘청렴’ ‘29만원’ 등의 논리가 먹히기도 했던 요상한 설정이 있었다. 심지어 ‘청렴’이 독재자의 전유물처럼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독재자는 오직 ‘권세’만을 탐할 뿐 돈에는 아무 욕심이 없는 것처럼 포장했고 그게 ‘신화’가 되었다. 때로는 권력욕도 없이 사명감만 있는 무슨 수도자 같은 ‘구국의 영도자’들로까지 추앙되곤 했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그런 가공된 에피소드를 곁들인 정신교육을 수도 없이 받았었다.
독재의 최종 기착지는 ‘유령 회사’?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 중인 조세피난처의 한국인 명단 공개는 아주 중요하다. 그 빙산의 일각이나마 공개됨으로 인하여 우리는 겨우 오랜 환각에서 깨어날 수 있게 되었다. 자국 군대로 하여금 자국민을 향해 집단발포와 무차별 살육을 하게 만들었던 진짜 목적은 결과적으로 ‘유령 회사(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으로 해외 조세피난처에 쌓아둔 은닉 재산이 증명하고 있다. 추징금조차 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 또한 그 무시무시한 자금력에서 나온다. 한 번의 쿠데타로 자자손손 누대에 걸쳐 엄청난 부를 향유할 수 있는 가문의 ‘시조’가 된 것이다. 피 묻은 돈이 단지 돈으로 그치리라는 것 또한 착각이다. 우리의 ‘부녀 대통령’ 기록은 심지어 새 역사마저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광주에서의 최초 발포명령을 있게끔 만들었다. <백 투 더 퓨처> 등등 온갖 타임머신 혹은 타임슬립을 다룬 영화에서처럼, 결과와 원인을 뒤집어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응원해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가 보일 것이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성찰하자. 디테일에 속지 말자.
(* 다큐 ‘추기경의 오월’은 광주MBC 홈페이지 www.kjmbc.co.kr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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