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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극필반(物極必返)
사물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온다
物 : 물건 물(牛/4)
極 : 지극할 극(木/8)
必 : 반드시 필(心/1)
返 : 돌아올 반(辶/4)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북경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1919년 5·4운동을 주도한 호적(胡適) 박사가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란 감독이 만들어 내는 여배우와 같다.” 한 사람의 여배우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선량한 여인, 혹은 표독한 여인 등 다양한 모습으로 연기를 한다.
역사는 객관적이고 엄정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서술하는 사람의 시각이나 입장, 목적에 따라서 아주 달라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 오던 공자도 모택동에 의해서 ‘중국의 역사 발전을 막은 원흉’으로 낙인이 찍혀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맨 먼저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되어 온갖 박해를 받았다.
그러다가 개혁개방 이후 다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 중국에서는 공자를 배우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그의 언행록이라 할 수 있는 ‘논어’에 대하여 재해석한 책이 연일쏟아져 나와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2008년 음력설 연후 1주일 동안 북경사범대학의 우단(于丹)이라는 40대 여교수가 나와 ‘논어감오(論語感悟)’라는 주제로 중국 중앙방송에서 강의를 하여 대단한 인기를 끌었었다. 우단 교수는 2006년 10월 1일부터 1주일 동안 중앙방송에서 ‘논어심득(論語心得)’이라는 강의로 중국방송사상 가장 인기를 누린 강의를 하였다. 그의 ‘논어심득’은 지금까지 800만권이 팔렸다.
전공자가 아닌 우단 교수의 책이 이렇게 잘 팔리자, 전공한 교수들이 더 알차고 정확한 내용의 책으로 독자들에게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논어’에 관한 책을 계속 써내어 ‘논어 붐’이 일어나게 되었다.
공자라는 같은 사람의 책인데도, 시각과 입장에 따라서 이렇게 달리 대접을 받는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사람에 의해서 조작되어지고 조작된 역사가 정치가에 의해서 이용되어지는 것이다.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가 자기들의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진시황의 업적은 다 덮어두고 폭군으로만 묘사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시일에 이룬 자랑스런 역사’라고 정의하였다. 우리 역사에 대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진 긍정적인 평가이다. 똑같은 역사를 두고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잘못된 역사’라고 부정적으로 정의하였다.
지식인들은 대체로 남의 말을 의심하고 남과 다르게 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반공을 너무 강조하니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반공정책에 순응하지 않아야 지조 있고 용기 있는 지식인이 되고, 순응하면 비겁한 어용지식인처럼 되는 분위기가 되어갔다.
이것이 점점 확산되어 좌파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좌파를 주장하면 지조가 있고, 진보적이고, 국가민족을 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좌파정권까지 탄생시켰다.
좌파정권이 100%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침묵하는 대중의 정서와 어긋난 정책을 너무 많이 펼쳐나갔으므로, 이제 유권자인 국민들은 좌파정권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음(陰)의 기운이 가장 성한 동지(冬至)에 양(陽)의 기운이 생겨나듯이, 사물이 너무 극도로 지나치게 되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옛날 성인(聖人)들은 중용(中庸)의 도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반(返)’자는 ‘반(反)’자로도 쓴다.
물극필반(物極必返)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우리가 유년시대부터 노년시대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거울삼아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상을 예측해 보면 어떤 일정한 동일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상을 추측해 보아도 역시 동일궤도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으며 한 사람도 그 공식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출발하여 면으로, 군으로, 도로 확대해 가면서 약 60여 년 이라는 세월을 두고 사람들이 살아나가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통계학적으로 조사하여 동일궤도상의 공식에 적용시켜 본 결과, 이상하리 만치 그 공식이 불변의 철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시도해 보아도 모든 통계가 그 공식에 일치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이 공식이 적용되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내 한 몸의 일생에서 시작하여, 이것을 미루어서 사방으로 폭을 넓혀 보고 점차적으로 우리나라 전체에까지 확대하여 조사해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서 과거의 역사를 회상해 보면, 역사적 흥망성쇠라는 것도 한 개인이 흥망성쇠 하는 공식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앞으로 올 일을 예지하는 것인데, 나는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즉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현재와 과거를 확실히 아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행적만 잘 안다면 미래에 올 일이야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조물주가 이 공식을 내놓지 않았다면 개인이나 한 국가나 흥망성쇠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이 불변의 철칙을 알지 못하고 범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고 쇠함을 면치 못할 것이요, 그 공식을 알고 즐겨 지키는 자는 흥하고 성함이 자연히 오는 것이다.
이것이 대자연의 법칙이요, 공식이다. 하늘이 무엇이며 조물주가 어디 있느냐 하며 이 대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하는 자도 간혹 있지만, 공식과 법칙을 위반하는 이런 자들의 행위가 결국 멸망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역사는 밝혀 주고 있다.
여기서 이 공식을 지키는 자의 행위를 선(善)이라 하고, 그 공식을 위반하는 자의 행위를 악(惡)이라 해보자. 그리하여 누구나 그 생각과 행위에 선한 요소가 많으면 그 결과 복이 찾아올 것이요, 악한 요소가 많으면 재앙이 오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이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자가 잘 되고 선한 자는 고생만 한다고 말하나, 이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시간에 느리고 빠른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공식이 예외로 작용한 경우는 역사상 없었다.
현 세계의 물질문명이 비록 첨단을 걷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모든 흐름이 점차 악화 일로로 치달아 자멸의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남북통일이 언제야 이루어질 것인가, 혹시 파국이 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도 아주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쉽사리 낙관하지 못하고 있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북한이 아무리 남침준비를 하고 있다 하여도 남한에 사는 국민이 그 고난을 두 번 당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생각이다. 또한 한국도 6․25 당시와 같은 무방비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아무리 전쟁을 잘 한다고 해도 승산 없는 전쟁을 일으킬 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민생의 안정이다. 즉 사회의 특권층에 집중되어 있는 부(富)를 분산시켜 극심한 빈부의 차를 과감하게 시정해야 한다. 이렇게만 되면 나라의 힘이 커져서 전쟁의 가능성은 없어지며,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가장 최 상책의 전략이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어떠한가? 그것과 정반대로 국내 특권층이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자기네 사욕을 채울까 하고 있으며, 또한 그 특권층들에게 아부하며 나라와 민족은 어찌되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인간들이 이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형편이다.
그리하여 국민들도 '사람이 살아가는 정당한 도리' 따위는 염두에도 둘 새 없이 서로 이익을 좇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스스로 멸망을 부르는 길을 서슴없이 택하고 있다.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이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지나 장차 날이 밝아오려는 때에 온갖 귀신들이 난무하는 현상이요, 장차 온갖 어두운 것들이 모두 사라지려는 물극필반(物極必返;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의 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현상이 비록 눈앞에서는 비참하나 머지않아 밝은 태양이 떠오를 전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미리 어둠 속의 한 가닥 밝은 빛을 길러 꿈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이 선각자들의 책임이다.
날이 모두 밝은 뒤에는 누구나 광명(光明)을 아는 것이니, 이 물극필반이라는 경지에서 자아를 잃지 말고, 탁류에 헤매이지 말며, 미래의 일꾼이 될 씨앗들을 썩지 않게 싹틔울 역할을 각자 스스로 맡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한 가닥 희망이다.
물질문명의 극이 머지않아 정신문명과 교체할 단계에 왔다는 것을 나는 다시금 강조한다. 이 새로운 정신문명의 건설자, 곧 미래 5천년 조화세계의 주역은 바로 우리 백두산 민족임을 모두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옛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힘이 같으면 지혜를 헤아리고, 지혜가 같으면 덕을 헤아린다. 일하는 이가 많고 쓰는 이가 적으면, 그 쓰임이 넉넉할 것이요, 쓰는 이가 많고 일하는 이가 적으면, 그 쓰임이 궁핍해질 것이니, 만인과 더불어 같이 기꺼워하는 사람이 흥하리라."
이것이 가장 쉽고도 또 가장 어려운 일이다. 행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실패한다. 다만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면서 한편으로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도리를 핵심으로 하고 나아가야 동녘에 떠오르는 맑게 개인 아침 해가 모든 사악함을 몰아내고 온 누리를 비추는 상쾌함이 있을 것이다.
▶️ 物(물건 물)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소 우(牛=牜; 소)部와 음(音)을 나타내며 勿(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만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소(牛)를 지목하여 만물을 뜻한다. 勿(물)은 旗(기), 천자(天子)나 대장의 기는 아니고 보통 무사(武士)가 세우는 색이 섞여 있는 것, 여기에서는 색이 섞여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物(물)은 얼룩소, 나중에 여러 가지 물건이란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옛 모양은 흙을 갈아 엎고 있는 쟁기의 모양과 牛(우; 소)로 이루어져 밭을 가는 소를 나타내었다. 나중에 모양이 닮은 勿(물)이란 자형(字形)을 쓰게 된 것이다. ❷회의문자로 物자는 '물건'이나 '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物자는 牛(소 우)자와 勿(말 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勿자는 무언가를 칼로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物자는 소를 도축하여 상품화시키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에는 다양한 색이 뒤섞여 있던 '얼룩소'를 物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후에 다양한 가축의 종류나 등급과 관계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지금은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제품'이나 '상품', '만물'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物(물)은 (1)넓은 뜻으로는, 단순한 사고(思考)의 대상이건,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건을 불문하고, 일반으로 어떠한 존재, 어떤 대상 또는 어떤 판단의 주어(主語)가 되는 일체의 것 (2)좁은 뜻으로는, 외계(外界)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감각에 의해서 지각(知覺)할 수 있는 사물(事物), 시간(時間), 공간(空間) 가운데 있는 물체적, 물질적인 것 (3)사람이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구체적 물건. 민법 상, 유체물(有體物) 및 전기(電氣) 그 밖에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自然力). 사권(私權)의 객체(客體)가 될 수 있는 것 등의 뜻으로 ①물건(物件) ②만물(萬物) ③사물(事物) ④일, 사무(事務) ⑤재물(財物) ⑥종류(種類) ⑦색깔 ⑧기(旗) ⑨활 쏘는 자리 ⑩얼룩소 ⑪사람 ⑫보다 ⑬살피다, 변별하다 ⑭헤아리다, 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건(件), 물건 품(品), 몸 신(身), 몸 궁(躬), 몸 구(軀), 몸 체(體)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음 심(心)이다. 용례로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내거나 가공하여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 들고 다닐 만한 크기의 일정한 형태를 가진 대상을 물건(物件), 물건의 본바탕으로 재산이나 재물을 물질(物質), 물건 값을 물가(物價), 쓸 만하고 값 있는 물건을 물품(物品), 물건의 형체를 물체(物體), 물건의 분량을 물량(物量),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하는 데 쓰는 여러 가지 재료를 물자(物資), 어떤 사람의 좋지 않은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논란하는 상태를 물의(物議), 마음과 형체가 구별없이 하나로 일치된 상태를 일컫는 말을 물심일여(物心一如), 사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는 뜻으로 사물의 질서를 일컫는 말을 물유본말(物有本末),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물외한인(物外閑人), 바깥 사물과 나 그리고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이르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무엇이나 제각기 그 주인이 있다는 뜻으로 무슨 물건이나 그것을 가질 사람은 따로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물각유주(物各有主),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는 뜻으로 남을 의심한 뒤에 그를 두고 하는 비방이나 소문을 듣고 믿게 됨 또는 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됨을 이르는 말을 물부충생(物腐蟲生), 나는 물건이 많고 지역이 또한 넓음을 일컫는 말을 물중지대(物衆地大), 만물이 한 번 성하면 한 번 쇠함을 이르는 말을 물성칙쇠(物盛則衰), 물건이 오래 묵으면 조화를 부린다는 말을 물구즉신(物久則神),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의 양면을 일컫는 말을 물심양면(物心兩面), 사람과 사귀는 데 선물이나 음식 대접은 다소 박하더라도 정만은 두터워야 함을 이르는 말을 물박정후(物薄情厚), 세상이 시끄러워 사람의 마음이 안정을 얻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물정소연(物情騷然), 사물은 바뀌고 세월은 흘러감을 이르는 말을 물환성이(物換星移) 등에 쓰인다.
▶️ 極(극진할 극/다할 극)은 ❶형성문자로 极(극)은 간자(簡字)이다. 용마루의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亟(극; 위아래가 막힌 곳에서 말(口)와 손(又)으로 빨리 하라고 지시함)의 뜻이 합(合)하여 지극히 높다는 데서 '지극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極자는 '다하다'나 '극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極자는 木(나무 목)자와 亟(빠를 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極자가 그려져 있었다. 갑문에서는 땅을 딛고 머리로 하늘을 받치고 있는 거인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까지 '다다라 있다' 즉 '극에 달하다'라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口(입 구)자와 攴(칠 복)자가 더해지면서 세상을 호령하는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고, 소전에서는 木자가 더해지면서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음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極(극)은 (1)지축(地軸)의 양쪽 끝, 곧 북극(北極)과 남극(南極) (2)지축이 천구를 자르는 점. 천구의 극 (3)은하면에 수직(垂直)된 직선(直線)이 천구를 관통(貫通)하는 점. 은하극 (4)전지(電池)에서 전류(電流)가 드나드는 두 끝, 곧 음극과 양극. 전극(電極) (5)자석에서 자력이 가장 센 양쪽의 끝, 곧 남극(南極)과 북극(北極) (6)한 구면상(球面上)에 그린 대원(大圓) 또는 소원(小圓)의 중심을 통과하는 구(球)의 직경(直徑)의 양쪽 끝 (7)극좌표(極座標)에 있어서 좌표의 원점(原點) (8)어떤 점의 한 곡선(曲線)이나 곡면(曲面)에 관한 극선(極線), 또는 극면(極面)을 생각할 때의 그 점의 일컬음 (9)동물축(動物軸)의 양끝 (10)어떤 명사(名詞)의 앞에 붙어 '아주', '극심(極甚)한', '극히' 따위의 뜻을 나타냄 (11)더할 수 없는 막다른 지경(地境) 등의 뜻으로 ①극진(極盡)하다 ②지극(至極)하다 ③다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 ⑤이르게 하다, 미치게 하다 ⑥세차다, 엄(嚴)하다(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혹독(酷毒)하다 ⑦죽이다, 징벌하다 ⑧바로잡다, 고치다 ⑨병들다, 지치다 ⑩괴롭히다 ⑪내놓다 ⑫멀다 ⑬잦다(잇따라 자주 있다), 재빠르다 ⑭극, 한계(限界) ⑮남북(南北)의 두 끝 ⑯하늘 ⑰별의 이름 ⑱북극성(北極星) ⑲정점(頂點), 최고의 자리 ⑳제위(帝位) ㉑임금의 자리 ㉒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㉓대들보(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 ㉔중정(中正) ㉕근본(根本) ㉖흉사(凶事), 흉악한 일 ㉗깍지(활 쏠 때 사용하는 기구), 장갑(掌匣) ㉘매우, 심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진(殄), 다할 진(盡), 다할 궁(窮), 다할 갈(竭), 끝 단(端), 가난할 빈(貧)이다. 용례로는 몹시 심함을 극심(極甚), 더 갈 수 없는 극단에 이름을 극치(極致), 더할 수 없는 정도를 극도(極度), 사물의 끝닿은 데로 맨 끝을 극한(極限),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성질이 지독하고 과격함을 극성(極盛), 온갖 말로 태도가 매우 완강하거나 열렬함을 극구(極口), 있는 힘을 아끼지 않고 다함을 극력(極力), 지독한 심한 추위를 극한(極寒), 지독한 심한 더위를 극서(極暑), 힘이나 마음을 다함을 극진(極盡), 극구 칭찬함을 극찬(極讚), 맨 끝이나 맨 끄트머리를 극단(極端), 아주 매우 작음을 극소(極小), 몹시 가난함을 극빈(極貧), 매우 중요한 비밀을 극비(極祕), 몹시 악함 또는 더할 수 없이 지독한 악덕을 극악(極惡), 지극히 매우 큼을 극대(極大), 뜻을 다함을 극의(極意), 지극히 열렬함을 극렬(極烈), 끝에 있는 땅으로 남극이나 북극을 극지(極地),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극미(極美), 더 할 수 없이 무거운 형벌을 극형(極刑), 몹시 궁함을 극궁(極窮), 극히 어렵고 고생스러움 또는 몹시 가난함을 극간(極艱), 극히 공손함을 극공(極恭), 말이나 행동이나 성질이 아주 아름다움을 극가(極嘉), 몹시 줄임을 극감(極減), 지나치게 심한 말을 극론(極論), 지극히 선량함을 극선(極善), 몹시 심한 더위를 극염(極炎),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극려(極麗), 지극히 적음을 극미(極微),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긍정하고 능동적으로 활동함을 적극(積極), 극도에 달하여 어찌 할 수 없음을 궁극(窮極), 끝이 없음으로 동양 철학에서 태극의 처음 상태를 일컫는 말을 무극(無極), 더욱 심하게를 우극(尤極), 몹시 분에 넘침을 과극(過極), 몹시 바쁜 때를 방극(方極), 지구 위에서 가장 추운 곳을 한극(寒極), 어떠한 정도나 상태 따위가 극도에 이르러 더할 나위 없음을 지극(至極), 임금이나 부모의 은혜가 너무 커서 갚을 길이 없음을 망극(罔極), 더없이 악하고 도의심이 없다는 말을 극악무도(極惡無道), 너무 성하면 얼마 가지 못해 패한다는 말을 극성즉패(極盛則敗), 사물의 근원과 끝을 철저히 규명한다는 말을 궁원극위(窮源極委),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하늘이 넓고 끝이 없다는 뜻으로 부모의 은혜가 매우 크고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호천망극(昊天罔極), 성정이 음침하고 매우 흉악하다는 말을 궁흉극악(窮凶極惡), 총애가 더할수록 교만한 태도를 부리지 말고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는 말을 총증항극(寵增抗極) 등에 쓰인다.
▶️ 必(반드시 필)은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八(팔; 나눔, 필)과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의 합자(合字)이다. 땅을 나눌 때 말뚝을 세워 경계를 분명히 하여 나눈다는 데서 반드시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必자는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必자는 心(마음 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심장'이나 '마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必자는 물을 퍼 담는 바가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갑골문에 나온 必자를 보면 바가지 주위로 물이 튄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必자는 바가지나 두레박을 뜻했었다. 하지만 후에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더한 柲(자루 비)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참고로 必자는 心자에서 유래한 글자가 아니므로 글자를 쓰는 획의 순서도 다르다. 그래서 必(필)은 ①반드시, 틀림없이, 꼭 ②오로지 ③가벼이, 소홀히 ④기필하다, 이루어 내다 ⑤오로지, 전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없어서는 아니 됨을 필요(必要), 그리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필연(必然), 반드시 없으면 안 됨을 필수(必需), 꼭 이김이나 반드시 이김을 필승(必勝), 필연이나 반드시를 필시(必是), 반드시 패함을 필패(必敗), 반드시 읽어야 함을 필독(必讀), 장차 반드시 이름이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됨을 필지(必至), 반드시 죽임 또는 그런 마음가짐을 필살(必殺), 꼭 얻음 또는 꼭 자기의 물건이 됨을 필득(必得), 필요하게 씀을 필용(必用), 반드시나 틀림없이 꼭을 필위(必爲), 꼭 그리 됨을 필정(必定), 반드시 명중함을 필중(必中), 반드시 앎을 필지(必知), 우편물 따위가 정해진 기일까지 틀림없이 도착함을 필착(必着), 꼭 이루기를 기약함을 기필(期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 또는 어찌하여 반드시를 하필(何必), 필요가 없음을 불필(不必), 생각하건대 반드시를 상필(想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을 해필(奚必),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일컫는 말을 필사즉생(必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일컫는 말을 필생즉사(必生則死),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필유사단(必有事端), 틀림 없이 꼭 망하고야 맒이나 패멸을 면할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필망내이(必亡乃已),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필유곡절(必有曲折), 품은 원망을 반드시 풀어 없애고자 애씀을 일컫는 말을 필욕감심(必欲甘心), 결코 이러할 이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필무시리(必無是理),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좇아야 한다는 말을 여필종부(女必從夫),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세상만사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생자필멸(生者必滅),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을 거자필반(去者必返),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덕필유린(德必有隣), 누구나 허물이 있는 것이니 허물을 알면 즉시 고쳐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과필개(知過必改), 세상일은 무상하여 한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성자필쇠(盛者必衰), 어찌 꼭 이익만을 말하는가 라는 뜻으로 오직 인의에 입각해서 일을 하면 이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필왈이(何必曰利), 황하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으로 결국은 본뜻대로 됨을 이르는 말 또는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다는 말을 만절필동(萬折必東) 등에 쓰인다.
▶️ 返(돌이킬 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反(반)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反(반)은 '돌이키다', '돌아오다', '되돌아가다'의 뜻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返자는 '돌아오다'나 '돌려보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返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反(되돌릴 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反자는 손으로 사물을 뒤집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돌이키다', '되돌리다'라는 뜻이 있다. 返자는 이렇게 '되돌리다'라는 뜻을 가진 反자에 辶자를 결합한 것으로 '돌려보내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返(반)은 길을 돌아가는 일의 뜻으로 ①돌이키다 ②돌려보내다, 되돌리다 ③돌아오다, 되돌아오다 ④바꾸다, 새롭게 하다 ⑤도리어 ⑥번, 횟수(回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회복할 복(復), 돌아올 환(還)이다. 용례로는 서류 등을 결재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것을 반려(返戾), 도로 돌려 줌을 반환(返還), 남에게서 빌린 것을 돌려 줌을 반납(返納), 도로 돌려 보냄을 반송(返送), 줄 돈을 다 갚는 것을 반제(返濟), 상품 따위를 되돌려 보냄을 반품(返品),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길을 반로(返路), 회답하는 편지나 전보를 반신(返信), 답장으로 오가는 편지를 반찰(返札),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을 반보(返報), 보내온 물건을 받지 않고 다시 되돌려 보냄을 반각(返却), 수레를 되돌린다는 뜻으로 멀리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이르는 말을 반가(返駕), 기치를 돌린다는 뜻으로 출정한 군대나 여행하는 사람이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이르는 말을 반패(返旆), 남에게서 빌린 물건을 도로 돌려줌을 반벽(返璧), 아직 돌아오거나 돌려 보내지 아니함을 미반(未返), 갔다가 돌아옴을 왕반(往返), 노인이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반로환동(返老還童),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를 이르는 말을 거자필반(去者必返),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진다는 뜻으로 머지않아 멸망하지만 한때나마 그 기세가 왕성함을 이르는 말을 회광반조(回光返照), 병거가 한 대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참패를 형용해 이르는 말을 척륜불반(隻輪不返), 행하는 것이 없으면 돌아오는 소득도 없음을 이르는 말을 공행공반(空行空返), 용이 그의 못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영걸이 제 고향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을 용반기연(龍返其淵)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