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판 위에서 우리는
이유정
삶과 죽음이라는 두 기물 사이에서 언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왕과 폰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
운명이 이어놓은 들목에서 망설임은 또 다른 고뇌를 낳는 것인지
두근거리는 심장은 실눈 짓는 살바람을 짐작할 수는 없는지
지평선 너머 비옥한 땅과 텅 빈 공허 사이에서 무엇에 이끌려 흔들리고 있는지
모호한 내일의 여정에서 두려움과 기대가 엇갈리는 지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지
마주하는 진실과 허무의 경계에서 수척한 일상은 언제까지 반복될 것인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격려하는 문장으로 남을 수는 없는지
해가 지는 동안 살아가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만 하는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간 뒤, 간절한 기도는 어디로 흘러가 버리는지
혼돈의 물결 속에서 볼멘 눈초리들은 신의 마음을 알아내기는 하는지
마지막에 각자가 선택한 길이 답이 되는지
물음이 물음을 낳고, 꼬리가 꼬리를 물고
딸랑딸랑
시간의 종은 울리고
웹진 『시인광장』 2024년 4월호 발표
이유정 시인
2017년 《미네르바》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사랑은 아라베스크 무늬로 일렁인다 』. 동시집『사라진 물고기』등이 있음. 제4회 전영택문학상, 제8회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