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둑에서 들녘을 걸어
올해는 예년보다 다소 이르게 제주도는 장마권에 든 유월 중순 금요일이다. 우리 지역은 필리핀 근해에서 유입되는 저압부가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장마전선을 자극해 오후부터 강수가 예보된 날이다. 그동안 태양 복사열로 달구어진 지표면인데 비가 내려 열기를 식혀주었으면 한다. 흡족하게 내리는 비는 물 부족을 겪고 있는 여름 밭작물의 생육에 거름보다도 도움이 되지 싶다.
날이 밝아온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낮이 길어지고 날씨가 무더워진 계절을 맞아서는 하루 일정은 셋으로 나눠 보낸다. 해가 일찍 떠 햇살이 강렬하게 비치지 않은 아침 이른 시간은 강둑이나 들녘 산책으로 보낸다. 9시가 되면 냉방이 잘 된 지역 마을도서관으로 들어 시원한 곳에서 책을 펼쳐 점심때까지 머문다. 이후 열람실을 나와 한 끼 때우고 오후 일과를 맞는다.
창원역 앞에서 근교 들녘으로 나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하루를 시작하려 일터를 찾아가는 여러 부류 사람들과 같이 좁은 버스를 같이 타고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일대를 거쳤다. 대산 일반 산업단지와 가술 거리에 이르자 승객은 거의 내려 두 아낙과 셋이 남았다. 그들은 북모산에서 내렸는데 아마 비닐하우스 일을 나가지 싶다. 청양고추 수확은 부녀들의 일손이 연중 필요했다.
나는 마지막 손님이 되어 제1 수산교를 앞둔 노송 그루가 아름다운 요양원에서 내렸다. 김해 한림으로 뚫은 신설 국도를 건너 강둑으로 나갔다. 둔치 건너편은 밀양 수산 시가지 높은 아파트가 바라보였고 그 뒤로는 덕대산이 옅은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였다. 물길 따라 수산대교 방향으로 걸어가자 이른 시각부터 인부들이 팀을 꾸려 제방에 무성한 제초 작업에 땀 흘려 고생했다.
강둑에는 갈대를 비롯한 식생은 초여름에 한 차례 자르고 늦가을 서리가 내리면 한 번 더 정리했다. 낙동강 환경유역청에서 나서는 듯했다. 예초기를 등짐으로 지고 풀을 자르면 그 뒤에서는 바람을 일으켜 길바닥을 청소해 나갔다. 자전거나 보행자가 지날 때는 안전 요원이 호루라기 신호로 작업을 잠시 멈춰 주어 자갈이 튀거나 지푸라기가 날려도 작업 구간을 걱정 없이 지나왔다.
수산대교 교각 밑에서 바라보는 유장한 물길과 갯버들은 시야가 탁 트여 사진을 남기는 명소였다. 강둑 자전거길은 갈래가 져 둔치로도 나뉘었는데 그곳으로 내려섰다. 한동안 금빛으로 수를 놓은 금계국꽃은 거의 저물어 가는 즈음이었는데 계절은 어느새 성큼 여름으로 다가왔다. 지역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주는 플라워랜드에는 해바라기가 넓은 면적 차지해 개화가 기대된다.
둔치에 조성된 꽃밭을 지나자 지역 상권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파크골프장은 이른 시각임에도 동호인이 운집해 여가를 즐겼다. 그곳을 지날 때가 아침 8시 이전이었는데 시내에 사는 이들이 몰려 나가 삼삼오오 팀을 이뤄 잔디밭을 누볐다. 둔치에는 휴게 편의 시설이 없어 강둑 너머 모산이나 가술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잔디밭으로 되돌아가 날이 저물도록 시간을 보냈다.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니 눈앞에는 세대교체 된 물억새와 갈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북부리 팽나무가 바라보인 언덕을 돌아 강둑을 올라 동부마을 앞 들녘을 지나왔다. 모내기를 마친 논둑에 앞그루로 키운 수박 파지가 널브러져 작은 덩이를 하나 골라 손에 들었다. 우암리에서는 이삭 당근에 이어 머스크멜론도 하나 더 챙겼더니 양손에 든 짐이 묵직했는데 나중 언젠가 가벼워지게 된다.
가술에 닿은 9시 맞춰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에 들었다. 찾는 이가 없어 개인 서재처럼 지내는데 어제 읽은 나의 내일을 생각해본 ‘퓨쳐 셀프’가 여운으로 남았다. 오늘은 문학 서가에서 권정생의 ‘슬픈 나막신’을 골라 읽었다. 광복 이전 작가가 태어난 일본에서 겪은 식민지 백성이 그곳 주민들과 어울려 살던 애환이 흑백 사진처럼 그려졌다. 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여. 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