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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의 단성소(을묘사직소)-1555 - 남명의 上疏文
선무랑으로서 단성현감에 새로 제수된 조식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전하께 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선왕(중종)께서는 신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시고 처음에 참봉에 제수하셨습니다(1538년임) 그리고 전하께서 왕위를 이으신 뒤에 주부로 제수하신 것이 두번이었는데 지금 또 제수하여 현감으로 제수하시니 떨리고 두렵기가 언덕과 산을 짊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감히 황종(?) 한 자쯤 되는 땅에 나아가서 하늘의 해와 같은 은혜에 사례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사람을 쓰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깊은 산과 커다란 못 어느 곳에 있는 것이든 재목을 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가져다가 커다란 집을 짓는 일을 이룩하는 것은 훌륭한 목수가 하는 것이지 나무가 스스로 참여할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쓰시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시는 책임 때문입니다. 제가 걱정이되어 견딜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니 감히 그 큰 은혜를 저 혼자 누릴 수는 없습니다만 머뭇거리며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을 끝내 측석(어진 신하의 자리)아래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벼슬에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저의 나이는 예순에 가깝고 학문은 어두우며 문장은 과거시험에 끝자리에도 뽑힐 수 없고 행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일을 제대로 해 내기에도 모자랍니다. 과거시험을 보기 10여년 동안에 세번이나 떨어진 뒤 물러났으니 애초부터 과거공부를 일삼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과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마음 좁은 평범한 백성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큰 일을 할 만한 온전한 인재는 아닙니다. 하물며 그 사람 됨됨이가 선한가 선하지 않은가는 과거를 보려고 하느냐 과거를 보려고 하지 않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잘것 없는 신이 이름을 도둑질하여 집사(추천관원)에게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했고 집사는 이름만 듣고서 전하에게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도록 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과연 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를 지닌 사람은 아니며 도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신처럼 이렇지는 않습니다. 신에 대해 다만 전하께서 아시지 못한 것일 뿐만아니라 재상도 또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 지 못하면서 등용하여 훗날 국가의 수치가 된다면 어찌 죄가 보잘것 없는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파느니 알찬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이 차라리 신의 한몸을 저버릴 지언정 차마 전하는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운 첫번째 까닭입니다. 또 전하의 國事가 그릇된 지 이미 오랩니다. 나라의 기틀은 이미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전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컨데 큰 나무가 백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에게 파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 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는지가 오랩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가운데 충성된 뜻있는 신하와 일찍 일어나 밤 늦도록 공부하는 선비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형세가 극도에 달하여 지탱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小官들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大官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오직 뇌물을 긁어 모으는 데 혈안입니다. 고기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오라 內臣들은 派黨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外臣들은 향리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리떼처럼 날뛰면서
가죽이 다 닳아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이치를 모르고 있읍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깊이 생각해 보면 탄식만 길게 나올 뿐, 낮이면 하늘을 우러르기 수차례였고 눈물과 한숨을 누를 길 없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지가 오랩니다. 나라가 이지경이고 보면, 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밖의 소식이 막힌 깊은 궁궐안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나이 어린 先王의 한 외로운 자식일 뿐입니다.
저 많은 天災와 , 천가래 만가래로 흩어진 민심을 무엇으로 막고,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냇물이 마르고(국어) 곡식이 비처럼 내리니(회남자) 그 조짐이 무엇이겠습니까. 노랫가락이 구슬프고(예기) 입는 옷이 흰색이니 나라가 어지러울 형상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이런 때를 당해서 비록 재주가 公과 公을 겸하여 三公의 위치에 있다해도 손을 쓰기 어려운 형편이온데, 하물며 微臣과 같이 아무 힘도 없는 자야 더 말해 무엇하리이까? 위로는 나라의 위태로움을 조금이나마 부지할 수 없을 것이며, 아래로 터럭만큼도 백성들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니, 전하의 신하되기 또한 어렵지 않습니까. 추호라도 헛된 이름을 팔아 전하의 벼슬을 도적해서 그 녹만 먹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그런 신하가 되는 것을 신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운 두번째 까닭입니다.
또 제가 요즈음 보건대 변방에 일이 있어 여러 대신들이 밥도 제 때에 먹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신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찌기 20년 전부터 이 일이 생겼던 것을 전하의 靈明하심에 힘입어 이제야 발각된 것이요,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평소 조정에서는 재물로 사람을 임용하니 재물만 모이고 민심이 흩어져 결국 쓸만한 장수도 없게 되고 성안의 병사 한 사람 남아있지 않기에 이르렀으니 적이 무인지경으로 쳐들어 온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대마도 왜노가 향도와 남몰래 짜고 만고에 끝없는 치욕스러운 짓을 하였건만 왕의 신령한 위엄이 떨치지 못하여 마치 절하듯하였습니다. 이는 옛 신하를 대우하는 의리가 혹 주나라 예법보다 엄하면서 원수를 총애하는 은덕이 도리어 망한 송나라보다 더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세종께서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시고 성종께서 북벌하신 일을 보아도 어디에도 오늘날과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것은 하찮은 피부병에 지나지 않고, 마음과 속의 병은 이 보다 더 심각합니다. 가슴과 배의 통증이란 걸리고 막히어 위 아래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곧 공경대부가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들어가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수레는 달리고 사람은 달아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근위병을 불러모으고 나라일을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정치나 형벌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전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방촌(마음)의 사이에서 말이 땀을 흘리는 것처럼 노력하여 만 마리의 소가 밭을 갈아야하는 너른 땅에서 공을 거두는 그 기틀은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입니다. 유독 전하께서 종사하시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學問을 좋아하십니까? 聲色을 좋아하십니까? 弓馬를 좋아하십니까? 君子를 좋아하십니까? 小人을 좋아하십니까? 그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전하께서 활연히 깨달으시어 분연히 학문에 진력하사 明德.新民의 도를 얻으신다면 거기에 萬善이 갖추어져 있어 백가지 應策이 연이어 나올 것이니 그것으로 조치를 취하신다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고 백성을 평화롭게 위기를 평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해서 간직하시기만해도 마음이 비지 않음이 없으며 저울질이 고르지 않음이 없으며 사특한 생각이 나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이란 것도 다만 마음을 간직하는 데에 달려있을 뿐이니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하ㅔ 되는 데 잇어서는 유교와 불교가 한 가지입니다. 다만 사람의 일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다리가 없이 땅을 밟고 있는 형국이므로 우리 유가에서는 본받지 아니할 뿐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교를 좋아하시니 그것을 학문하는데로 옮기신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유가의 일입니다. 이는 어렸을 때 집을 잃었던 아이가 자기집을 찾아 부모 친척 형제 친구를 만나보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 달려 있고 사람을 쓰는 것은 몸으로써하고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로써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쓰는데에 몸으로써 하신다면 유악안에 있는 사람은 사직을 보위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아무 일도 모르는 보잘것 없는 저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을 눈으로만 뽑으신다면 잠잘 때 이외에는 모두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 이 경우에도 앞뒤가 막힌 보잘 것 없는 저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이겠습니까. 다른 날 전하께서 왕천하의 지경에 이르도록 덕화를 베푸신다면 저는 마구간의 말석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그 마음과 힘을 다해서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이니 어찌 임금을 섬길 날이 없겠습니까.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새롭게하는 요점으로 삼으시고 몸을 수양하는 것으로서 사람을 쓰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완도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밝게 살피시길 엎드려 비옵니다. 신은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하께 아룁니다.
을묘년(1555년) 월 일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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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선단학파이고 지리산에서 수행하신 분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