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화축구의 수비조직력에 대해서는 제가 여러번 감탄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식으로 가동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계속 몰리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절대로 공간을 내주지 않고 결정적인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고 느껴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일본전 25분부터 35분까지 극단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이 팀의 성향이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마 중계를 본 분들은 모두 기억할 겁니다. 이용수위원은 계속해서 "미드필더가 너무 내려와 있기 때문에 세컨볼을 못 따낸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 그것이 바로 이 팀의 수비의 핵심입니다. 수비에 들어섰을 때에 미들과 수비라인사이의 간격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수비시스템이 단지 "잠그기" 로 쓰인건가요? 아닙니다. 이 팀은 전반부터 꾸준하게 이런 식으로 경기를 해왔습니다. 박성화감독은 4백 수비의 개념을 어느정도 자기식으로 정립을 한 듯 합니다. 상대 공격수가 우리 진영에 넘어올 때 수비수들은 라인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뒷걸음을 쳐주고, 뒤에서 쫓아들어오는 미드필더들과 함께 상대 공격수를 싸먹어 버리는 것이 이 팀의 수비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4백 일자라인의 기본입니다. 즉, 상대선수의 패스가 못 나올 타이밍에 라인을 끌어 올리고, 상대선수가 드리블을 해올 때는 3미터의 간격을 두고 라인을 유지하면서 뒤로 후퇴한다는 것이 4백 수비의 정석입니다. 라인을 유지하면서 상대의 다른 공격수를 오프사이드로 묶어놓고, 간격을 유지하면서 드리블하는 선수가 속도를 못내도록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서 쫓아들어오는 우리 DMF 에 의해서 상대선수가 공격을 진행할 공간을 없애는 것이 현대의 일자수비라인의 기본이 됩니다. (이것을 흔히 "3m 딜레이" 라고 합니다.)
한국팀이 4백에 적응이 안된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인컨트롤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단 수비수가 공을 뺏으려 전진하기보다는 뒤로 후퇴한다는 개념에 익숙해져 있지 않고, 또한 이런 라인에 의한 딜레이보다는 김태영, 박재홍, 조병국처럼 전진해서 공을 차단하는 브레이커 형의 수비수들이 각광을 받아왔던 것도 이유가 되겠습니다. 4백 일자라인의 수비수가 공을 미리 차단하려 달려드는 브레이커형일 경우, 이 선수가 제껴져버리면 뒤에 받쳐줄 선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윙백이 제껴질 경우 센터백이 공간을 미리 차단하고, 센터백이 제껴질 경우 다른 센터백이 협력을 들어오면서 DMF 는 센터백의 위치를 메꿔주는 식의 "협력수비", 또한 "압박수비"가 우리에게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런데 안태은-이강진-김진규-오장은 (또는 박희철) 의 이 어린 선수들이 신기하게도 이 일자라인을 유지합니다. 상대 선수와 간격을 유지하면서 잘 따라내려오다가 DMF들이 상대공격수를 싸먹으면 바로 역습에 들어가고, 그것이 되지 않으면 일단 내려온 미드필더들은 수비와 간격을 좁혀 상대 공격수들이 활동할 공간을 아예 내주지를 않습니다. 이때에 위험한 것은 상대가 다시 볼을 뒤쪽의 빈 공간으로 돌릴 때인데, 이때에는 미드필더들중 한명이 꼭 재빠르게 뛰쳐나와줍니다. 이 조직력이 박성화축구의 수비의 핵심이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낸 다음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백지훈-오장은 등을 통해 미들을 거쳐가는 것과, 또하나는 김승용, 박주영에게 한번에 크게 열어주는 것입니다. 전반에는 양쪽이 다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반 25분부터는 전방으로 나가는 패스가 죄다 잘렸습니다. 이것은 두가지 이유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수비수들이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는 시간대여서 시야가 좁아졌다는 것이고. 또하나는 일본선수들이 우리 진영에 많이 넘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 미들진과 공격수간의 넓은 공간을 빼앗겨 버렸다는 점입니다. 한가지만 더 붙이자면, 상대선수가 우리 진영에 많이 넘어와 있으니 박주영이나 김승용에게 한번에 넘기려는 욕심이 좀 있었겠지요. 심지어 차기석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도 공격수가 눈에 들어오니까 빠르게 긴 패스를 넘겼는데, 이것 역시 짤렸습니다. 김호감독님의 말대로, 수비진이 좀더 침착하게 스토어링 플레이를 했거나, 미들에서 패스가 조금만 세밀하게 연결이 되었더라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몰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감탄스러웠던 것은, 이부분입니다. 10분동안 한국팀은 단 한차례의 역습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프코트게임으로 수세에 몰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달리면서도 정작 제대로 오픈찬스 한번 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골을 내준 장면은, 이렇게 디펜스라인이 제대로 갖춰진 상태가 아니었고, 앞선 장면에서 수비수들의 클리어링 미스가 두차례나 있었습니다. 즉, 집중력만 떨어지지 않고, 상대공격수의 "수퍼플레이"가 나오지 않는 한. 일본정도의 팀에게는 쉽사리 기회를 주지는 않을 수비조직력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또하나는, 후반 30분께의 이 한차례의 역습상황에서 상대진영에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도 순식간에 7명의 선수가 넘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3명의 선수는 이미 페널티박스 근방까지 접근을 해 있었습니다. 즉, 이 팀의 미드필더들은 수비시에는 우리 페널티박스까지 내려왔다가 공격으로 전환될 때는 순식간에 밀고 올라갑니다.
이런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DMF 의 엄청난 기동력이 요구됩니다. 결국, 박감독이 김근철, 고창현보다 김수형을 선호하고. 김영신, 이용래 대신 백지훈과 김태원을 뽑아든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또한, 이렇게 미드필더와 공격수간의 간격이 넓을 경우 최전방 공격수가 고립되기가 쉽기 때문에 행동반경이 좁은 정조국보다 본선에서는 김동현을 더 중용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개개인의 능력은 떨어지지만, 전술이해도는 높다"라는 말도 수긍이 갑니다. 83,84년생으로 이루어진 작년의 팀은 공격전환시 이종민, 최성국등 준족의 선수들의 전방이나 정조국, 김동현의 높이를 이용하는 단순한 플레이로 "뻥축구다" 라는 비난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 팀의 키플레이어였던 권집선수가 기동력보다는 패싱쪽에 장점이 있었던 탓으로 보입니다. 결국, 박감독은 김수형의 대타를 찾아내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의 팀은, 지난대회의 공격수들과 같은 화려한 맛은 없지만. 공격시에 백지훈선수를 축으로 한두차례 빠른 패스로 공간을 열면서 한꺼번에 밀고 올라옵니다. 투톱 역시 정조국 (김동현), 최성국에 비해서 개인기량은 떨어지지만. 전술적으로는 좋은 움직임을 보입니다. 조원광선수는 교체를 염두에 두고 초반부터 많은 움직임을 주문한 듯 하고, 백승민선수가 기대만큼 못하지만 대신 안태은 선수가 활발하게 오버래핑을 해줍니다.
다만, 최전방에서 최후방까지 폭넓게 뛰어야 하는 이런 축구는 미드필더들을 과도하게 혹사시키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상대선수보다 경련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도 운동량이 너무 많아서가 아닌가 싶구요. 특히나 백지훈 선수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안태은선수가 올라오는 사이드 공간까지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짝이되는 김태원 선수나 오장은 선수는 수비부담이 커집니다. 공격에서의 오장은의 장점이 희석이 되는 것은 이런 탓으로 보입니다. 다시 보니 안태은 선수 물건이군요. 박희철이 나올 때는 오른쪽에서, 오장은이 윙백으로 뛸 때는 왼쪽에서 뛰는데, 어느쪽에서건 연장후반까지 지치지 않고 폭넓은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우즈벡전의 신영록선수의 오버헤드 장면도, 안태은선수의 패싱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미들에서 적극적으로 붙어주는 히딩크의 축구와 비교하자면, 간격을 두고 물러나는 박성화의 축구에선 확실히 박진감이 덜하긴 할겁니다만. "수비지향" 이라거나 "잠그기" 로 간단하게 매도당할 팀은 아닌 듯 싶습니다. 미드필더들의 기동력이 최우선되는 박성화의 팀이, 과연 체력이 바닥에 떨어졌을 중국전에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도 궁금합니다. 지금보다는 앞날이 중요한 선수들이니만큼,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침착하게 자기 경기를 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첫댓글 감탄... 좋은 글입니다. 저도 청소년대표팀의 미드필드 간격이 치밀하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이 점은 현 성인 국가대표팀이 가장 먼저 보완해야 할 점이죠. 특히나 한방으로 낭패를 볼 수 있는 중동팀과의 경기에는 꼭 필요한 스타일입니다.
이런 좋은 글을 왜 토론장에 안 올리시나요. =ㅁ=
그렇군....먼가 하나 알았네.
토론장에 올리세요 정말 뭔가 하나 알게된듯.....
이제야 한국도 포백가동할수있다는 사실에 만족했습니다...ㅋㅋ
와 정말 잘읽고 좋은글이네요 신문선 위원도 이런말 자주햇는데 미들라인과 수비라인의 간격.... 또한 나도 항상 이런면을 마니 생각하곤 햇는데., 정말 좋은글이네요..... 감탄받는분들 많을거같은 기분 저도 감탄
박성화는 한국축구에 포백시스템을 이상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감독입니다.. 다년간 유럽과 남미를 오가며 선진축구를 습득해온 국내 정상급 엘리트 감독..
좋은 글이네여~ 근데 가끔 보면 박성화감독씹는 분들이 왜케 많은거죠? 전 좋기만 하던데~
코엘류호의 실패와도 관련이 있겠지요...그 때 수석코치가 박성화감독이었고...코엘류경질후에 박성화코치의 역할에 대한 말이 많았지요,,,
박성화가 전술적으로 좋은면도 많이 있지만...전략적인 선수교체를 잘하지못하는 단점도있지요..... 한마디로 과감성이 없다고 할수있죠....장단점을 모두 갖춘감독.....안전성으로 보자면 100점.
축구도 진짜 과학적이구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