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메이저리거 백차승 선수
전 미국 메이저리거인 백차승 선수의 한국 국적 회복 시도가 또다시 무산됐습니다. 백차승 선수는 "한국 국적 회복을 허가하지 않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백 선수의 이번 소송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가수 유승준의 사례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유승준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한국 국적을 포기했기 때문에 사법당국이 더욱 단호한 입장입니다. 사실 국적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함부로 포기하거나 회복해준다면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겠죠?
그렇다면 백차승 선수의 국적 회복은 무엇이 쟁점인지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촉망받던 고교 선수의 항명·귀화
백차승 선수는 부산고 시절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촉망받는 투수로 꼽혔습니다. 청소년 대표팀의 주축 멤버로 활약했죠.
하지만 1998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이른바 '항명파동'에 연루되면 그의 야구인생에도 서서히 그늘이 지기 시작합니다.
대표팀 경기 중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덕아웃으로 퇴장해버린 백 선수에게 대한야구협회는 '무기한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립니다. 이에 백 선수는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구단인 시애틀 매리너스와 입단계약을 맺습니다.
백차승 선수는 이후 팔꿈치 수술을 거쳐 2004년 메이저리그에 정식 데뷔합니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어 정식으로 귀화합니다. 그 스스로 한국 국적을 포기한 거죠.
백 선수는 이후 한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합니다. 2008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해 5선발 자리를 꿰차기도 했죠. 팔꿈치 부상 탓에 메이저리그에서 승수를 많이 기록하진 못했지만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나 아시안게임, 올림픽 같은 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대회가 열릴 때마다 백 선수의 대표 발탁을 놓고 논란이 거듭됐습니다. 실력만 놓고 보면 국가대표급이지만 매번 국적이 걸림돌이 됐고 결국 백 선수는 단 한번도 성인팀에서 태극마크를 달지 못합니다.
당시 대회 출전 선수들에게는 부여한 병역면제 혜택을 떠올리면 백 선수가 한국 국적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쩌면 백 선수는 섣부른 국적 포기 결정으로 태극마크는 물론 그에 따른 병역혜택 기회까지 함께 걷어차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선수 은퇴 후 국적회복 신청…"병역기피 의도, 회복 불허"
백 선수의 이후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009년 팔꿈치 부상 때문에 소속 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방출 당한 이후 독립리그에서 메이저리그 복귀를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깁니다. 하지만 일본 리그에서도 1군 무대에는 서지 못했고 독립리그와 프로 입단테스트를 전전하다가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백 선수는 선수생활이 끝나자 돌연 한국 국적 회복을 노립니다. 지난 2016년 법무부에 국적 회복 허가를 신청한 거죠.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백 선수를 '병역 기피 목적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했던 자'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백 선수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제기합니다. 법무부의 '병역 기피' 판단을 수긍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행정법원도 법무부와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립니다. 백 선수는 법정에서 병역의무가 면제되는 38세 이전에 국적 회복을 신청한 만큼 병역 면탈 의도는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백 선수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는 것이 유력해진 상황에서 국적 회복을 신청했다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수 겸 배우 유승준씨
"병역 기피 위한 국적 상실=국적 회복 불가"
그렇다면 사법당국이 백 선수에게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행 국적법(9조)은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 상실(포기)의 경우, 국적 회복을 불허한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적을 일시 포기했다가 나이가 들어 병역의무가 면제된 뒤 다시 국적을 회복하는 국적법 악용 시도를 원천 차단하려는 목적인데요.
백 선수나 가수 유승준 같은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이는 똑같이 적용됩니다.
지난 2016년 미국 시민권자인 A씨는 법무부에 국적 회복을 신청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그의 국적 포기가 병역 기피 목적이 명백하다고 본 것입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역시 패소했습니다.
사법당국은 A씨의 나이에 주목했습니다. 17세 때인 1985년 미국으로 이주한 A씨는 1995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합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거죠. 그리고 A씨는 2년 뒤인 1997년에 다시 국내로 들어와 영어강사로 일합니다. 그리곤 2014년 돌연 국적 회복을 신청합니다. "다시 한국인이 되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A씨는 이미 40대에 들어섰습니다. 병역의무가 면제되는 만 36세(개정 이전 기준, 현행 법은 38세)를 훌쩍 넘긴 상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