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알면…그 거래 속내막이 보인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게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고법 정형식 판사와 이 부회장의 1심 변론을 진두지휘했던 법무법인 태평양 송우철 변호사가 대학교 때부터
소문난 절친관계였던 사실이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송 변호사는 1심 선고 직후 사임계를 냈지만 2심 때도 사실상 변론 전략을 짰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이 법리다툼보다는 법조계에 만연해 있는
사적 관계나 전관예우에 의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한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받았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2심 법원이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받은 것으로 판단한 뇌물액을 현저하게 낮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뇌물을 준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 씨에 대한 법원판결에서는
이 부회장이 준 돈 대부분을 뇌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1심 법원도 비슷했다.
결국 정형식 판사가 있는 2심 법원 만이 이 부회장의 혐의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본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2심 선고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흑막들을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 2월 5일 서울고법 재판부는 뇌물 공여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날 오후 이재용 부회장은 1년 동안의 수감복을 벗고 의왕 구치소를 나왔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이 부회장 자신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파격이란 말이 법조계에서 많았다.
당장 그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재판부에 세간의 눈과 귀가 쏠렸다.
특히 주심판사였던 서울고법 정형식 부장판사에 의심의 눈초리가 모아졌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정 부장판사에 대한 감사 청원 내용에 불이 날 정도였다.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진 2월 5일 시작된 국민청원은 사흘 만인 8일 동의 20만 건을 돌파했다.
청원에 동의한 숫자가 20만을 넘으면 청와대 참모인 부처 장관이 이에 대답해야 한다.
청와대는 개별 판사에 대한 징계를 할 권한이 청와대에 없다는 답변을 남기며 일단락됐지만,
정 부장판사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엿볼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대학 때부터 소문난 사이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판결이 1달이 지난 지금 <선데이저널>은
당시 삼성그룹과 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물로부터 2심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은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바로 이 부회장의 1심 대표 변호인을 맡았던 법무법인 태평양의 송우철 변호사와 정형식 판사가
서울대학교 법대 동기이자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를 함께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내에서도 가깝기로 유명한 사이였다고 한다.
2012년부터는 서울고법에서 부장판사로 함께 근무했다.
물론 송 변호사가 2심 재판에서도 이 부회장의 변호인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송 변호사는 1심 재판이 끝나고, 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되자 사임계를 냈다.
두 사람이 가깝다는 사실이 법조계에서도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오해를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삼성 측과 송 변호사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송 변호사는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뗐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사임계를 내고 공식변론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변호인단을 이끌며 전략을 수립했던 것이 송 변호사였다고 한다.
당시 이 부회장 변호인단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삼성 측 변호인단이
사적 인연으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외부에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상 송 변호사가 변호인단 회의에 꾸준히 참석했고,
함께 전략을 수립했다”며 “불필요한 오해를 말하지만
메머드급 변호인단을 꾸렸던 삼성이
유독 송 변호사만 교체한 것은 오히려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즉 본국 법조계에서 관행으로 통하는 ‘몰래변론’이 이 부회장의 2심 재판 과정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송 변호사가 사임계를 낸 뒤에도 삼성 측 관계자 또는 변호인단과 접촉을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고 한다.
삼성그룹이 1심에서 패한 이후에도 로펌을 태평양에서 다른 곳으로 바꾸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대기업 총수 재판을 보면 1심에서 재판을 질 경우에 다른 로펌으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때도 그랬고, sk그룹 최태원 회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삼성은 1심에서 완패했음에도 태평양을 교체하지 않았다.
그동안 서울고법 재판 공정성에 대해서 여러 시비가 있었고,
그 배경으로 정 부장판사의 친인에 대해까지 거론되는 일이 있었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정 판사의 친척이란 의혹까지 제기했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이 부회장의 석방은
정 부장판사의 절친인 송우철 1심 대표 변호사를 적절하게 활용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 의심이다.
삼성그룹의 방어전략이 1심과 2심이 거의 유사했음에도 재판부의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나,
뇌물공여자(이재용)이나 뇌물수수자(박근혜)의 뇌물액이 다른 것도
결국 2심 재판부만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순실씨 1심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최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하고,
72억 9427만원을 추징했다. 여기서 72억 9427만원은 최씨의 뇌물액이다.
재판부는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승마지원 명목으로 받은 뇌물액에 용역 대금과 더불어 마필 금액 및 마필 보험료를 포함했다.
‘안종범 수첩’증거능력 판단 달라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 측에서 최씨 소유의 코어스포츠에 제공한 용역대금 36억 3484만원만 뇌물액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박영수특별검사팀이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승마지원 관련 뇌물액 77억 9735만원 중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 3484만원과 말 3필 및 그 보험료 36억 5943만원 등
합계 72억 9427만원을 인정했다.
두 재판부의 판결이 엇갈린 가장 큰 이유는 마필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됐는지에 대한 시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최씨의 1심 재판부는 최씨 딸 정유라씨에 지원한 마필 소유권이 형식적으로 삼성에 있지만 실질적으로 최씨에게 있다
고 봤다. 반면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마필의 소유권이 최씨에게 이전되지 않았다고 봤다.
마필과 차량을 공짜로 사용하는 이익을 뇌물로 준 것이지 이를 액수로 산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또 최씨가 화를 낸 것이 삼성 측에 마필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마필을 적어도 삼성 명의로 등록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에 대한 삼성 측의 반응 역시 최씨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는 것일 뿐
소유권 이전을 승낙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른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도 달랐다.
재판부는 업무수첩을 정황 증거로 사용하는 범위 내에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밝혔다.
상고심에서도 전관예우 논란일 듯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이 박 전 대통령의 단독 면담에서 대통령과 개별 면담자 사이에 대화가 있었고
그 대화 내용을 추단할 간접사실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진실성과 관계 없어야 하는데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기재는 그 내용의 진실성이 문제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증거능력 자체를 부인했다. 전관예우, 몰래변론을 활용하는 삼성그룹의 재판 전략은 상고심에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미 삼성그룹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고용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삼성 측은 상고심 변호인에 대법관을 지낸 차한성 변호사(64·사법연수원 7기)를 선임한 바 있다.
차 변호사는 4년 전까지 대법관으로 근무했다. 현재 대법원의 구성상 사건이
어느 재판부에 배당되더라도 일부 소속 대법관과 근무 시기가 겹치게 돼 논란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차 변호사는 2006년 8월~2008년 3월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쳐 2014년 3월까지 대법관을 지냈다.
퇴임 후 지난해 3월까지는 로펌 취업제한 3년 규정에 따라 태평양 산하 공익법인 동천에서 활동했지만,
이후에는 사건을 수임해 변론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차 변호사의 선임이
대법원 심리에 부적절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송 변호사의 경우처럼 사임계를 내고도 몰래변론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차 변호사는 아예 선임계를 내고 변호를 맡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놓고 로비를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차 변호사는 대법관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함께 근무한 대법관들이 1~2명씩 모든 소부(小部)에 포진해 있다.
사건을 맡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소부는 4명의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재판부로,
전원합의체 회부사건을 제외한 사건을 맡는다.
현재 이 부회장 사건의 관리재판부인 대법원 2부는 소속 대법관 4명 중 3명이 차 변호사와 근무인연이 있다.
고영한·김소영 대법관은 차 변호사와 함께 대법관을 지냈고,
권순일 대법관은 차 변호사가 법원행정처장이었을 당시 행정처 차장이었다.
관리재판부는 정식 재판부 배당 전까지 사건의 기록 관리 등 본안심리 전 업무를 처리한다.
향후 다른 재판부에서 사건을 담당하게 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1부 소속 김신 대법관과 3부 소속 김창석 대법관은
모두 차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있던 2012년 8월부터 대법관을 지내고 있다.
어느 소부에서 사건을 맡더라도 소속 대법관 일부는
이 부회장의 변호인과 대법관 근무 시기가 겹치게 되는 셈이다.
SundayJournal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