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여야 정치권부터 시민들까지 반대 한목소리
"해수부는 바다 옆으로, 해사는 바다 없는 곳으로?"
지난 5월 2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거행된 ‘제140기 해군·해병대 사관후보생 수료 및 임관식’. 연병장 앞으로 진해만 위에 떠있는 해군 함정과 거북선(왼쪽)이 보인다.
“해양수산부는 바다 옆 부산으로 옮기면서, 해군사관학교를 바다도 없는 대전으로 옮기는 게 말이 되느냐.” 경남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한 영관급 해군 장교는 이렇게 토로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12월 세종에 있던 해수부를 바다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보냈는데, 1946년 ‘해군병학교’로 진해에서 개교해 올해로 80주년 된 해사를 바다도 없는 대전으로 옮기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다. 이 같은 이 정부 방침에 대한민국 해군 모항(母港) 진해는 격앙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해사가 자리한 진해 구(舊)도심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육군대학을 대전에 빼앗긴 후 공동화가 시작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여기에 노무현 때인 2007년 해군작전사령부마저 부산으로 떠나면서 치명타를 입었는데, 해군사관학교를 또다시 대전에 넘겨줄 처지다.
육군대학 이어 해사마저 대전으로
육군대학에 이어 해군사관학교마저 재차 대전 유성 자운대로 떠나면 러일전쟁(1905년)에 승전한 일제가 바다(海)를 제압(鎭)할 군항(軍港)으로 조성한 진해에 남는 주요 해군 시설은 해군교육사령부, 군수사령부, 잠수함사령부, 해군 덕산비행장, 해군 해양의료원, 해군회관, 한산대 체력단련장(골프장), 미 해군 함대지원단(CFAC) 정도다.
특히 해사는 대한민국 해군을 이끌고 갈 정예 장교들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수병 기초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사령부와는 비할 바 없이 그 상징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 이지호씨가 지난해 12월 해군 학사장교 임관식을 가진 곳도 해사다.
이미 진해를 비롯한 창원 지역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해사 이전에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해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전 조달청장)은 지난 7월 27일부터는 해군사관학교 정문, 해군교육사령부 앞 진해루 등지에서 당 소속 시도의원들과 번갈아 가며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이종욱 의원은 “해군사관학교는 1946년 1월 17일 3군 사관학교 중 최초로 개교해 지난 80년간 진해에서 1만여명의 대한민국 해군 정예 장교를 양성해 왔다”며 “해군 작전사에 이어 해사마저 진해에서 이전시키겠다는 것은 진해구민의 오랜 헌신과 자부심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성토했다.
심지어 민주당 진해지역 시·도의원들도 지난 7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해군의 본거지이자 군항의 도시인 진해를 대표해 해군사관학교 통합·이전 추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해군 사병과 준사관을 진해교육사령부에서 양성하는 상황에서 장교 양성 기관만 내륙으로 이전하는 것이 해군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반영한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이례적으로 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상태다.
해군작전사에 이어 해사마저 진해를 떠나면 과거 휴가와 외박을 나온 사관생도와 수병들로 불야성을 이뤘던 진해 구도심은 사실상 몰락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일제가 러일전쟁 승전기념탑을 세웠던 자리에 들어선 제황산(해발 110m) 진해탑 아래 중원로터리를 기점으로 방사상으로 조성된 진해 구도심은 한때 해군이 설립한 해양극장을 비롯해 영화관만 4곳에 달할 정도로 흥성했다. 6·25전쟁 와중에는 육군사관학교도 서울 태릉에서 진해로 옮겨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육사 참모장(이규동 장군)의 딸이었던 이순자 여사가 육사 생도였던 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곳도 지금의 해군교육사령부가 있는 진해 경화동이었다.
하지만 진해 구도심은 육군대학 이전(1996년), 진해시청(현 구청) 이전(2004년), 해군작전사령부 이전(2007년) 등 3연속 충격파로 휘청인 지 오래다. 육군대학이 대전으로 떠난 지 30년이 넘는 지금까지 ‘육대’란 약칭으로 불리는 여좌동 육군대학 일대는 아직도 대부분 공터로 남아있다.
2010년 마산·창원·진해 통합 후 한때 야구장 부지로 검토됐다가 무산된 이후, 연구개발 부지로 용도를 틀었지만 수십 년째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육대 부지 남쪽의 사실상 폐선된 진해선 철길 남쪽의 진해 최대 상설시장인 진해중앙시장도 파리를 날린 지 오래다.
육대 부지 바로 동쪽에 2638가구 아파트(창원메가시티 자이&위브)를 신축 중이지만, 입주는 오는 2029년에나 시작될 전망이다.
해사마저 이전하면 구도심에 남은 주요 시설 중 하나인 진해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여파가 미칠 전망이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진해 해안경비대를 방문한 백범 김구가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바다에 두고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을 두고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준다)’라고 쓴 친필 시비가 서 있는 남원로터리 인근 진해 시외버스터미널은 해사 정문 바로 옆에 있어 해사 생도와 면회객들에게 여객수요 상당 부분을 기대왔다.
해사가 진해를 떠나면 2015년 기차가 끊어지며 사실상 폐역이 된 진해역처럼 시외버스터미널 폐쇄 역시 시간문제라는 얘기도 들린다.
곤혹스러운 ‘아덴만 영웅’ 황기철
해사 이전은 진해 지역의 해군 표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기철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진해 출신으로 진해고, 해사(32기)를 졸업한 황기철은 해군 진해기지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 해군사관학교장, 해군참모총장, 국가보훈처장(장관급) 등 해군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에 보수표심이 강한 진해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서도 2020년과 2024년 두 차례 총선에서 50%에 가까운 득표를 했지만 석패한 바 있다. 지난 총선 때 표차는 497표에 그쳤다.
진해서 근무하는 한 해군 부사관은 “이종욱 현 국민의힘 의원은 육군 일반병 출신”이라며 “지난 총선 때 해군에서는 작전사령관 시절 ‘아덴만 작전(소말리아 해적퇴치)’을 성공시킨 황기철을 지지한 사람들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한데 오는 2028년 총선 때 재기를 노리는 상황에서 민주당 정권에서 해군작전사 이전에 버금가는 폭탄을 터뜨린 셈이다. 하지만 사관학교 통합은 이재명의 대선 공약이고, 민주당 정권에서 추진 중인 사안이라 대놓고 볼멘소리를 할 처지도 아니다. 이에 안규백, 한병도 진성준, 강건작, 홍익표 등을 두루 만나 의견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황기철은 최근 “해사가 대전으로 옮길 거라는 소식에 시민들의 민심이 좋지 않다”며 “해군의 도시 진해에 그대로 존치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해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황기철은 지난 총선 때 출구조사에서 크게 이기고도 마지막에 역전패당했다”며 “해사 이전이 현실화되면 오는 2028년 총선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