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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
중간에 화장실 한 번 다녀왔지만 사랑하는 이들과의 동침이니 개운하게 잔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노고단님의 어젯밤은 어땠을려나?
충전을 마친 전화를 들으려는 순간 벨이 울립니다.
이심전심.
염화미소입니까?
똑같이 통한 것이죠.
"형님 잘 주무셨습니까?"
"노고단님도 잘 주무셨구요? 그나저나 춥지는 않았어요?"
사실 원래는 "밤에 별 잘 셌습니까?"였는데 아무래도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더군요.
"춥기는요 더워서 땀에 땅바닥이 녹았는 걸요. 그런데 예정대로 4시 출발인가요?"
"예. 다들 준비 중이니까 제 시간에 출발할 거 같아요. 점심은 여기서 주먹밥을 준비했는데 하나 더 가져갈네요."
"아니예요. 저 먹을 건 제가 다 준비했고요. 여기서 피앗재 삼거리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오리지널 비박 프로에게 괜한 걸 물었습니다.
"한 20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러니까 4시 반 정도에 맞춰서 출발하세요. 이따 봅시다."
지도 #1
04:00
산장 주인 다정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4. 20. 홀대모 모임 때 다시 보기로 합니다.
정해진 시긴에 따라 움직입니다.
피앗재 삼거리를 지나 노고단 대장님과 합류 아직 동트기 전의 대간길을 걷습니다.
05:05
667.5봉에 올라 한숨을 돌립니다.
그나저나 저는 제 온 짐을 다 차에 두고 온 덕에 헤드랜턴도 없어 앞에는 청풍명월님을, 뒤로는 금수강산님의 도움을 받으며 어둠 속을 진행합니다.
산수대장님의 공지사항을 제대로 읽지 않은 탓입니다.
매사 성격이 이러니....
05:39
무거우면 걷지 못하는 저이기에 계속 노고단님 짐을 보고 한숨만 쉽니다.
"이따 관음봉 해산굴을 통과할 때 과연 어떻게 진행할까?"
06:49
날이 밝아오며 이제는 랜턴의 도움없이도 진행 가능합니다.
천황사 갈림길을 지납니다.
대원들이 한남금북정맥을 할 때 올라오던 길이라 낯익어 하는군요.
아침에 늘 보던 습관때문에 대원들 먼저 올려보내고 저는 뒤따르기로 합니다.
드디어 일출입니다.
오늘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올랐으니 마지막까지 무탈 산행이 이루어지기를 조용히 빌어봅니다.
07:14
한남금북정맥 들머리를 통과합니다.
위에서는 사진 찍느라 시끌벅적하군요.
모두 우리 대원들 목소리입니다.
하긴 속리산 천왕봉에 이 시간에 올라올 사람들은 대간이나 정맥 팀 이외에는 전혀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한남금북정맥에 관하여.....
오늘은 이 한남금북정맥을 가지고 정맥 공부를 좀 해볼까요?
그런데 그에 앞서 우리는 왜 대간이니 정맥이니 하는 산줄기 이름을 알아야 필요가 있을까요?
도대체 백두대간이니 한남정맥이니 하는 산줄기 이름들을 꼭 알 필요가 있기나 하는 걸까요?
우선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간이나 정맥이라는 산줄기는 옛부터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불려오던 우리 고유의 이름이기에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이름이 이순신, 이율곡, 조식이라는 순 한국식으로 부르던 것이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가네자와니 뭐니 하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다가 해방이 되면서 1946년 '조선성명복구령'에 의하여 다시 제 이름을 찾았는데 유독 산줄기 만큼은 침략자들이 만든 지도를 근간으로 하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백두대간은 함경산맥, 마천령산맥, 낭림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 5개로 잘린 채 아직도 원상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한남금북정맥이 차령산맥이나 노령산맥 등으로 불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저 간幹은 줄기이고, 맥脈은 줄기에서 뻗어나간 갈래를 말합니다.
그러니 그 간幹은 나라의 중심이 되는 산줄기여서 大를 붙여 대간이라 한 것이고 이 대간에서 가지를 치는 갈래줄기와 물줄기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정맥이라 이름한 것이기 때문에 물줄기와 산줄기를 달리 볼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산경표에서는 이 산줄기들을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보았습니다.
그 산경표는 19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한북정맥이 한양이라는 도성을 통과하기 위하여 한강봉 부근에서 직진하여 도봉산을 통과하게 그렸다던가 금남정맥이 백제의 도성을 지나기 위해 무리하게 부여로 진행시킨 점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1980년 이우형 선생이 산경표라는 책자를 발굴한 이래 많은 논의들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발전적인 논의였습니다.
가령 산경표의 취지를 살려 백월산에서 금강과 서해의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를 금북기맥으로 하자는 얘기나 금남정맥의 싸리봉 부근에서 왕사봉 방향으로 진행하여 금강과 서해의 합수점으로 가는 줄기를 금남기맥으로 하자는 논의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 이론 등이 발전하다 보니 2004. 8. 25. 드디어 우리나라 산줄기의 백과사전격인 신산경표라는 박성태 선생님의 불후의 명저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하 그 발전상을 백두대간의 천왕봉에서 가지를 치는 산줄기를 바탕으로 애기해 보겠습니다.
그 얘기는 곧 산줄기의 이름의 변천 과정과도 같습니다.
원산경표, 신산경표, 대한산경표가 모두 똑 같은 산줄기를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리산에서 갈라진 정맥
먼저 원산경표는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가지를 친 정맥을 한남금북정맥이라고 하여 위 개념도의 'A'의 속리신 ~칠현산 구간을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분이기分二岐'한다 하여 하나는 한남정맥이 되고 다른 하나는 금북정맥이 된다 하였습니다.(산경표 최성우 본 74쪽).
여기서 한남정맥은 칠현산을 지나 광교산을 거쳐 강화도가 내려가 보이는 문수산성에서 마침을 보여주고, 금북정맥은 필현산으로 이어져 백월산 ~ 안흥진으로 가는 산줄기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지도에 원산경표를 그리고 보니 백월산 ~ 월명산 ~ 중대산 ~ 금강 좌측으로 잠기는 줄기가 애매해졌습니다.
일단 이줄기를 금북정맥에서 갈리는 줄기이니 금북기맥으로 부르면서 답사를 하였습니다.
이때까지가 원산경표 시대로 신산경표가 발표되기 이전인 2004. 8. 24.까지 입니다.
박성태 선생님의 신산경표
그러고는 신산경표 시대로 접어듭니다.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님이 2004. 8. 25. 그동안 연구해 온 자료를 모아 신산경표'를 발표하게 됩니다.
여러 얘기가 많지만 여기서는 이 한남금북정맥만가지고 얘기를 하겠습니다.
즉 박성태 선생은 몇 가지 점에 착안을 합니다.
모든 산줄기는 물을 만나서 그 맥을 다하여야 하는데 정맥이라는 계급을 가진 겹침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은 10대 강과는 관계없이 산에서 그 맥을 다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하였습니다.
산경표의 대원칙인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냐는 것입니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정확한 개념에 대해서는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455쪽 이하 참조)
그러고는 이 한남금북정맥158.8km를 한남정맥이나 금북정맥에 편입시키기로 합니다.
그 기준에 도상거리 개념을 적용합니다.
한남이나 금북 중 어느 줄기가 더 기냐는 겁니다(長者勝原則).
그럴 경우 칠현산 ~ 문수산의 도상거리는 177.4km인 반면 칠현산 ~ 안흥진의 도상 거리는 280.2km가 되니 속리산 천왕봉 ~ 칠현산 구간의 도상거리 150.8km는 금북정맥 몫이 됩니다.
그리하여 한남금북정맥은 없어지고 금북정맥은 381km로 확정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이 그림을 지켜보니 금북정맥의 끝은 합수점으로 가는 게 아니라 그저 긴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눈이 띕니다.
즉 백월산에서 좌틀하여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합수점(C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만연히 안흥진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신산경표의 박성태 선생은 여기에 주목하고 과감하게 정맥의 끝을 금북기맥 방향으로 돌립니다.
그리하여 A+B+C로 이어지는 정맥 378.2km을 완성하고 그 이름은 지방의 호칭을 따 호서정맥으로 확정하게 됩니다.
그러고는 백월산 ~ 안흥진(위 개념도 D)의 129.4km는 기맥 개념을 동원하여 금북기맥으로 남겨둡니다.
이것이 신산경표의 이론입니다.(자세한 것은 졸고 2014년 8월호 월간 산 196쪽 이하 호서정맥 참조)
산으로 박흥섭의 대한산경표
이에 대해 '대한산경표'의 이론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우선 취지는 원산경표가 가지는 뜻을 존중하자는 입장입니다.
즉 우리나라 정맥의 형태가 '합수점형'이 아닌''울타리형'인 고로 겹침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이나 호남금남정맥도 이런 취지로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다만 금북정맥의 경우 합수점이 아닌 산줄기형이므로 이를 수정하여 기존의 금북기맥을 정맥에 포함시켜 즉 B+C를 금북정맥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길이도 282.4km로 정해집니다.
이렇게 금북정맥이 확정될 경우 나머지 백월산 ~ 안흥진 구간의 129.4km는 단순히 '산줄기형'의 지맥으로 남게 되므로 그 지방의 이름인 태안군의 '태안'을 따서 태안지맥으로 이름하게 됩니다.
기맥이라는 개념도 불필요하고 복잡하니 다 지맥에 편입시킵니다.
이게 대한산경표의 입장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산줄기의 세 가지 형태입니다.
3. 지리산의 지맥枝脈
지맥은 대간과 정맥의 하위개념이다. 즉 대간大幹〉정맥正脈〉지맥枝脈이니 지맥은 산줄기 계급 체계의 제일 하위에 있는 개념이다. 물론 기맥, 분맥, 단맥, 여맥도 상정할 수 있지만 너무 세분시키는 것이기도 하며 논란만 부추기는 격이니 여기서는 언급을 피한다.
지맥이라는 계급이 붙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①‘산줄기 요건’으로 백두대간이나 정맥 그리고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지맥에서 가지를 친 줄기여야 한다. 그리고 ②‘물줄기 요건’으로 그 줄기가 가지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와 자신보다 상위등급의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산줄기(㉮합수점형)여야 하며, ③마지막으로 ‘산줄기의 길이 요건’으로 그 도상거리가 30km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들이다.
다만 ②요건의 경우 산줄기를 조금 더 유용하게 쓰기 위하여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두는 바, 가령 관련된 물줄기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울타리형)이나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산줄기형)의 경우 등이 그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합수점형, ㉯울타리형, ㉰산줄기형 등 세 가지가 유형에 해당되어야 한다. 좀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산줄기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차근차근 살펴보자.
㉮ ‘합수점合水點’형의 예
위 개념도는 백두대간 지리산 입구인 여원재에서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 ~ 반야봉으로 진행하는 대간능선과 대간길의 만복대 바로 앞에서 가지를 쳐 밤재 ~ 견두산 ~ 형제봉을 지나 서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3.2km의 가지줄기 개념도이다.
이를 위 지맥의 3요건에 대입시켜본다.
보다시피 이 가지 줄기는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친 줄기이니 ①요건에 합당하다. 그리고 이 줄기가 백두대간 만복대 부근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서시천이라는 물줄기가 발원을 하는데, 이 서시천이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섬진강과 합류되는 합수점인 개념도 ‘A'의 곳에서 이 줄기의 맥이 잠기게 되니 이 역시 ②요건에 합당! 그리고 이 가지줄기의 도상거리는 33.2km가 되므로 기본 요건인 30km를 넘으므로 이 역시 요건 ③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이 가지줄기는 枝脈이라는 계급을 얻게 되고 그 이름은 강 이름인 서시천을 따서 ’서시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이는 고유명사가 된다.
㉯울타리형의 예
합수점형에 비해 설명이 조금 복잡해진다. 산줄기가 여러 개 나오긴 하지만 원리는 같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좌측 개념도의 주主줄기는 역시 백두대간이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백두대간에서 큰 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쳐 나가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에서 보청천이 발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맥 이름이 암시하듯 이 산줄기는 금강의 북쪽을 진행한다. 그러므로 이 보청천이 10대 강 중 하나인 금강과 만나는 합수점을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보청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두 개의 산줄기가 잠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산경표 상으로는 팔음지맥과 금적지맥이 그것이며 대한산경표 상으로는 보청지맥과 보청북지맥이 그것이다. 신산경표와 대한산경표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필자가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대한산경표의 이름으로 얘기를 이어가겠다.
똑같은 물줄기로 들어가는 두 산줄기의 우선권은 그 산줄기가 속한 주산줄기의 계급이나 세력에 따른다. 이 경우 백두대간〉정맥이므로 이 물줄기는 백두대간 몫이다. 따라서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으로 잠기는 줄기는 대간에서 분기한 줄기이므로 ①의 요건을 충족하고 합수점으로 갔으니 이 역시 ②의 요건을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이 가지 줄기의 도상거리가 57.7km가 되니 지맥이라는 계급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 지맥의 이름은 물줄기 보청천의 이름을 따 보청지맥이라 명명한다.
이렇듯 ‘합수점’형인 이 보청지맥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으나 보청천으로 들어온 다른 줄기가 문제이다. 즉 이 줄기 역시 한남금북정맥이라는 정맥에서 분기 되었으므로 ①요건은 충족하며 이 산줄기의 도상거리가 약 49.6km가 되므로 이 역시 ③요건을 충족한다.
다만 합수점은 합수점인데 주主산줄기가 아닌 부副산줄기이기 때문에 위 보청천에 밀리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보청천의 북서쪽 울타리 역할을 하므로 이런 경우는 지맥의 유형 ‘②울타리형’으로 보아 지맥에 편입시키기로 한다. 엄격한 해석보다는 산줄기를 유용하게 사용하자는 취지이다. 따라서 보청천의 북쪽으로 잠기는 산줄기이므로 이름은 ‘보청북지맥’으로 명명한다.
㉰산줄기형의 예
위에서 반도의 모양새를 가진 땅에서 호수나 강 혹은 바다 등으로 진행하는 산줄기의 유형을 ‘산줄기’형이라고 분류한다고 했다. 이는 혹시나 합수점형이나 울타리형으로 분류될 경우 모두 잔가지 가령 여맥이나 단맥 등으로 처리되어 지맥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됨에 따라 선조들이 물려주신 이 소중한 산하를 유용하게 선용하지 못하는 불합리함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라 이해하면 된다.
산자분수령의 대원칙인 합수점으로 가지 않는 특수한 경우니 이를 산자분수령의 예외 유형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강이나 하천을 동원할 수도 없으니 물줄기 이름을 붙이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그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로 한다.
물론 이 경우도 ②의 합수점 요건에만 예외가 되기 때문에 ①, ③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위 참고도의 경우 금북정맥의 구수산에서 3.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태안군 이원면 내리의 후망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이원’면의 이름을 따서 이원지맥이라 하고 같은 방법으로 금북정맥의 솔개재에서 1.2km 진행한 곳에서 가지를 쳐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부근에서 잠기는 산줄기는 대산읍의 이름을 따 대산지맥이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이하 지리 2지맥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횡천지맥도 지리산의 영역인 낙남정맥의 삼신산에서 가지를 쳤으며 상당 구간을 지리남부능선과 함께 하므로 이것까지 살펴본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405쪽 이하
07:16
천왕봉으로 오릅니다.
그러고는 맨 먼저 하는 일이 뒤를 돌아보는 일이겠죠.
중앙 맨 뒤로 형제봉이 우뚝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해가 높이 솟아 있고.......
그 천왕봉에는 이정목과,
정상석,
그리고 1등급 대삼각점(속리11)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천왕봉의 이름은 천황봉이었습니다.
천왕봉인가? 천황봉인가?
“형. 근데 천왕봉이야? 천황봉이야? 예전에 신문에 떠들썩했던 한 기사가 생각이 나네.”
벌써 10년이 됐나? 한때 신문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산 이름과 관련하여 일제 잔재 청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증폭시켰던 일이었다. 바로 천황봉(天皇峰)이냐 아니면 천왕봉(天王峰)이냐에 관한 논쟁이었다.
논쟁의
불씨는 녹색연합이 던졌다.
1991년
환경문제의 대안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배달환경연구소가 있었다.
이
연구소가 확대 ·
개편되면서
출범한 게 녹색연합인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동안
꾸준하게 백두대간,
연안해양,
탈핵운동(脫核運動)
등을
이끌면서 SOFA
협정에
환경조항이 들어가게끔 하였으며 왕피천 지역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케 하였고,
4대강
문제,
백두대간
보호법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무효화 등 많은 가시적인
문제의 핵심은 천황(天皇)이 일본의 왕을 가리키는 말이고 이는 일제가 천왕(天王)이었던 것을 임의로 바꾼 것이므로 일종의 창지개명(創地改名)에 해당한다. 고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은군도 힘을 보탰다.
반면 이 개명작업에 시종일관하여 반대를 한 이가 신산경표의 저자 박성태 선생이었다. 선생의 지론은 간단했다.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한 기록을 통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통성 회복과 정체성 확립, 민족정기 회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천황(天皇)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련의 산 이름 변경고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자.
천왕봉으로의 개명을 찬성하는 이들의 입장으로 녹색연합과 보은군의 연합군이다. 우선 녹색연합은 2005년 2월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이름 보고서’에서 ‘천왕봉’이 맞는다고 주장하는데 이어 산림청도 2007년 8월20일 충청북도에 ‘지명정비’ 협조 공문을 보냈다.
녹색연합은 이 보고서에서 “일제 때 땅 이름을 바꾼 ‘창지개명’ 작업의 하나로, 속리산 천왕봉을 일본 왕을 뜻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 증빙자료로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 법주사 소장 고지도뿐만 아니라 1911년 5월 일본육군참모본부가 만든 ‘한국지형도’ 등을 제출하면서 이들 지도에는 천왕봉으로 돼 있지만, 1918년 일본총독부에서 만든 지도부터 천황봉으로 바꿨다고 덧붙였다.
이에 보은군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위원장 이향래 군수)를 열고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일제 잔재로 지적한 '천황봉'을 '천왕봉'으로 개명키로 의결했다. 위원회는 개명 근거로 대동여지도, 팔도군현도 등 고지도와 1930년 법주사 호영스님이 그린 법주사도(法住寺圖) 등에 '천왕봉'으로 표기돼 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 고서에도 속리산 정상에 '천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개명작업을 반대하는 이는 민간지리학자 박성태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한다. 선생의 지론은 이렇다.
첫째, 일제가 만든 1 : 50,000 지형도에는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봉이나 산이 9개나 있다. 속리산 같은 유명산에도 있지만 사천시와 통영시의 작은 섬에도 있다. 속리산 같은 큰 산이면 모를까 어디 있는 지도 모를 봉이나 산까지 찾아 일일이 천황이란 이름으로 바꿨을까?
둘째, 일제는 같은 한자어인 천황(天皇)이라도 일본 것과 우리나라 것을 구분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만든 지형도를 보면 우리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는 산이나 봉 이름은 그대로 天皇山 또는 天皇峰으로 기재하고, 자기네 문자로는 그들이 천황을 의미하는 てんのう(덴노)를 쓰지 않고 외래어표기인 가타카나로 チョンハン 또는 チョンフヮン으로 써서 천황에 가까운 음으로 기재했다. 그래서 속리산 천왕봉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 심지어는 조그만 섬에도 천황산이나 천왕봉을 그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셋째, 천황(天皇)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나 봉은 우리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고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천황봉(天皇峰)이나 천황산(天皇山)은 우리 선조가 만들어 쓴 이름이지 일제가 만든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고전의 예로 윤휴(尹鑴,1617-1680)의 백호전서(白湖全書) 제24권 기(記) 세심당기(洗心堂記)에 ‘…起步於庭 相與指點 文壯天皇 雲煙面目…’라 하여 속리산의 문장대와 천황봉이 나옴을 든다. 그리고 계속하여, 조선 후기 실학파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천지편(天地篇) 지리류(地理類) 동부(洞府) 세전우복동도기변증설(世傳牛腹洞圖記辨證說)을 거론하여 ‘…一去槐山 一去尙州 俗離山天皇峯南幹也…俗離山天皇峯 在洞北爲祖 洞右白虎外 天皇峯兩間少下…’.라 하여 속리산 천황봉이 나옴 등을 거론한다.
그리고 고지도의 예로는, ⓵1872년 전라도 영암군 지방지도에 월출산 천황봉이 있고, ⓶전라도 장수현 지도에 장수읍 동북쪽 지금의 노곡리 뒷산에 천황봉이 있으며, ⓷전라도 용담현 지도에 지금의 천황사가 있는 곳에 천황산이 있다. ⓸그리고 광여도의 전라도 구례현 지도에는 지금의 천황봉이 천황산으로 기재되어 있음 등을 든다.
어쨌든 한 민간지리학자의 노력도 헛되이 속리산 천왕봉은 2007년 12월26일 천왕봉으로 변경고시 되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해?”
뻔히 어떤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묻는 장감독은 자기의 생각을 굳히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박성태 선생이 내 사부 같은 존재라서 장감독이 오해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천왕이라 하면 나는 육당 최남선의 글을 떠올리게 돼. 그의 불함문화론을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백두산근참기’를 읽던 생각이 난다 그거지. 즉 1927년 그가 백두산을 오르던 중 허항령 부근에서 만난 사당을 보면서 감격을 하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이 사당에서 목주(木主)에 ‘천왕지위(天王之位)’라고 쓰인 글을 발견하게 되지. 거기서 그는 백두산신이 천왕이고 국사대천왕임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돼. 그러면서 환웅이 천왕인데 그 용례(用例)가 산으로 와서는 지리산의 천왕봉, 속리산의 천왕봉이 되고 민간으로 가서는 태백산의 천왕사(天王祠), 대구 달성의 천왕당(天王堂) 등이 된다고 했어. 그러니 천왕은 곧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이라는 것이지. 육당의 글을 어찌 보면 일제와 상관없이 속리산은 천왕봉으로 불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런데 천황의 사전적 의미로는 ⓵ 옥황상제를 가리키기도 하고 ⓶ 일본의 임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 즉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앙과 관련하여 옥황상제를, 일본에서는 현실적인 자기네 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지. 그리고 박성태 선생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많은 산들에도 이미 천황산 혹은 천황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었잖아.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천황봉이라는 이름은 옥황상제와 관련한 민간신앙과 함께 일제 이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는 순수한 우리의 고유 이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리고 정부가 수립된 후 각 산 이름을 고시할 때 천황봉으로 불렀던 것은 그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겠어?”
“그렇다면 형은 ‘천황봉파’라는 것이네. 좋아. 그렇다 치고 계룡산도 명산 아니야? 민간신앙에서는 속리산보다 더 신령스러운 곳이라고도 보는데 거기도 천황봉이 있잖아?”
좋은 지적이다. 천황봉이 천왕봉이어야 한다면 속리산보다는 오히려 계룡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형. 그런데 예전부터 이 봉을 천왕봉이라고 불렀으니까 천왕사라는 절이 있었던 거 아니야?”
“그건 천황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지. 조금 이따 이정목을 볼 거야. 지금도 천왕봉 아래 대목리에 가면 천황사라는 절이 있어. 물론 창건연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가자.”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18쪽 이하
제일 뒤 좌측으로 관음봉이 우뚝합니다.
그 우측으로 문장대가 보이고.....
충북알프스의 관음봉!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다가도 그 황홀한 모습은 아직도 눈에 삼삼합니다.
그 좌측으로 속가치로 떨어져 878.4봉.......
도장산은 먼지에 싸여서 제대로 보일 리 만무하고.....
자, 또 가야죠.
등로는 땅땅하게 얼어 있습니다.
지도 #2
석문을 지나고.....
산죽밭을 지나...
비로봉 뒤로 천왕봉을 봅니다.
천왕봉과 비로봉
“그런데 형. 보통 산에는 비로봉이든 천왕봉이든 둘 중의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이 속리산에는 비로봉과 천왕봉 등 두 개의 이름이 병존하는 것이지?”
보통은 천왕봉이나 비로봉 중 천왕봉이 있으면 비로봉이 없고, 비로봉이 있으면 천왕봉이 없을 법한데 이 속리만큼은 두 이름의 봉우리를 다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좀 욕심이 많은 산인 것 같다. 비로봉과 천왕봉 혹은 천황봉이 양립할 수 없는 이유? 뭐 꼭 양립할 수 없다는 것보다는 두 개의 최고가 한 곳에 있기에는 좀 벅차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제갈량(諸葛亮)과 사마의(司馬懿)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유를 좀 살펴보자.
우리 민족 최고(最古)의 신앙은 아무래도 산악숭배신앙이다. 그러니 환웅부터 시작하여 삼국시대의 천군(天君)을 거치는 동안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천왕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산이든 명산에는 천왕(황)봉에 제단 즉 제천단을 두고 제사를 드렸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 천황봉이나 천왕봉은 어느 산에서도 최고봉이라는 뜻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악신앙설’이다.
반면 비로봉은 불교 신앙의 한 단면이다. 즉 ‘불교신앙설’로 불교에서 부처님 중 가장 으뜸인 부처님은 비로자나불이다. 그러니 불가의 기운이 가득 찬 산에서는 그 최고봉을 비로봉이라 불렀음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금강산, 묘향산, 오대산, 치악산, 소백산 등 이른바 ‘5봉’이라고 하는 산에 비로봉이 최고봉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다.
한편 보통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원인은 위와 같이 불교와 무관치 않으나 종교적인 원인 이외에 국어학적인 측면에서 ‘비로’를 밝히려는 유력한 시도가 있다. 즉 이 ‘비로’는 단순히 한자를 차자(借字)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까 얘기한 산악신앙과 결부하여 소원을 ‘빌다’의 ‘빌’에서 접미사 ‘오’가 붙어 비로가 되었고 이것을 한자로 毘盧, 毗盧 혹은 飛蘆로 표기는 하였으니, 다 우리말 어간 ‘빌~’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27쪽
고릴라 형상을 한 상고내석문을 지나고....
08:07
배가 고파 오는군요.
미니 초콜릿 몇 개 먹고....
멋진 암봉들....
느긋하게 걸어오시는 분들......
08:30
아직도 건재한 신선대 매점.
우리나라 유일한 국립공원 내 민간인이 운영하는 매점이죠.
좀 안타깝습니다.
드디어 문장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속리산이라는 이름의 유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릴라 모습을 한 상고내석문이 나온다. 그러고는 신선대로 오른다. 신선대 매점은 산에 있는 그것으로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공원 내의 매점일 것이다. 기르던 황구는 하산시켰다 하고 아직도 도토리 막걸리는 예전의 맛을 잃지 않았다. 막걸리 맛 속에서 고운 최치원의 시 한 수를 읊조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 하는구나. 道不遠人 人遠道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은 산을 떠나려 하는구나. 山非離俗 俗離山‘
“이 시의 俗離山 때문에 이 산을 속리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며?”
“그럴 거 같지? 그런데 이 시를 해석할 때 ‘사람(속세)이 산을 떠난다.’고 했잖아. 그게 올바른 해석이기도 하고.”
“그러네. 그럼 속리산은 어디서 온 이름이야?”
“고운 최치원은 한국문학의 비조(鼻祖)로 평가받지만 사실 뼛속까지 중국인이었잖아. 12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거기서 17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는 속리산을 얘기할 때 우리말 어법대로 ‘속세를 떠난다.’의 의미로 이해하잖아. 그런데 한문 어법에 맞춰보면 그 말은 이속(離俗)이 되어야지 속리(俗離)는 아니잖아. 그러니 최치원 같은 대가가 한문을 몰라서 그렇게 썼겠어? 그러니 그게 아니고 지난 번 ‘백수리산’을 얘기할 때 ‘수리’에 대해서 얘기했잖아. 이 속리도 마찬가지로 ‘수리’의 변형에 불과해. 즉 ‘높은 산’이라는 거지. 거기에 법주사와 같은 절집이 있으니 종교적 색채까지 덧붙여 누군가가 한자까지 동원하여 속리산(俗離山)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거야. ‘시루, 수레, 우리, 싸리 등도 다 고구려말 ’수리‘의 변형에 불과한 거야.”
이전의 속리산 이름은 구봉산 혹은 이자산으로 불렸다. 물론 산경표에는 속리산과 구봉산을 전혀 다른 산으로 취급을 하고 있기는 하다.
- 졸저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230쪽
좌측으로 묘봉이 보이고....
09:03
법주사와 화북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사거리입니다.
너무 지체하여 서둘러 문장대로 올라갑니다.
09:09
바로 앞줄이 대간길 초입의 헬기장.
대간길은 문장대에서 우틀하여 저 헬기장에 접어든 다음 늘재 방향으로 가게됩니다.
와이드 화면으로 볼까요.
우측 우뚝 솟은 천왕봉이 보이는군요.
중앙 멀리 이안지맥의 두루봉631.1m이 희미하게 보이고.....
정면의 관음봉 그리고 중앙 좌측이 묘봉.....
빨리 내려오라고요?
알겠습니다.
빨리 통과해야지요.
원래 운장대였던 문장대에서의 조망도 거침이 없다. 일망무제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런데 이 웅덩이들은 뭐야? 이런 거 관악산에서도 본 거 같은데.”
“맞아. 아까 동국여지승람 얘기할 때 ‘가마솥 같은 구덩이’라는 표현 나왔지? 이런 지형을 나마gnamma라고 부르나 본데 이 지형의 생성과정과 관련이 있겠지. 유독 이 부분으로 침식과 풍화가 집중됐겠고.”
철 계단을 내려와 두 개의 정상석이 있는 우측으로 목책이 보인다(지도의 ‘라’의 곳). 관음봉을 거쳐 묘봉으로 진행할 수 있는 루트다, 하지만 여기부터 북가치까지는 비탐방구간으로 묶여 있다. 보은군의 야심찬 ‘충북알프스’ 사업이 여기서 멈춘 느낌이다.
“형.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알프스란 이름을 가진 곳이 여러 군데 되잖아?”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사실 우리나라에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곳이 몇 군데 된다. “그래. 밀양과 양산 그리고 울산에 걸쳐 있는 영남알프스가 그중에서 대표선수일 거야. 낙동정맥이 지나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꾼들은 정맥이나 양산지맥이나 단장지맥을 즐기는 외에 영알태극종주라고 해서 석골사를 들머리로 하여 운문산 ~ 가지산 ~ 능동산 ~ 재약산 ~ 영축산 ~ 신불산 ~ 배내고개에 이르는 약 48km의 중거리 코스를 즐기기도 하지. 그런데 사실 영남알프스라고 하면 사자평의 억새와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억새밭이 그 상징 아니겠어? 어쨌든 알프스하면 떠오르는 것이 초원에서 보는 첨봉(尖峰)에 눈 덮인 하얗고 거친 바위산일 것인데 영남알프스는 이런 맛은 없다고 봐야지. 물론 주위에 신불공룡능선과 간월공룡능선이라고 하여 바위 구간이 있는 줄기가 있기는 해. 하지만 이것들은 규모가 너무 작으니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야. 그러고 나온 게 호남알프스나 이 충북알프스 그리고 조종지맥과 가평지맥을 중심으로 한 경기알프스가 있는데 이것저것 따져보면 그래도 이 충북알프스가 그런대로 알프스라는 이름을 갖기에 적당할 것 같아.”
“그런데 무슨 알프스가 이렇게 많아? 이걸 다 누가 만든 거야?”
“글쎄 아마 지역 산악회에서 붙인 이름이겠지. 모두 대간이나 정맥 혹은 지맥 등을 이용하여 그걸 연계시킨 코스야. 호남알프스는 금남정맥을 연계하는 산줄기인데 보통 들머리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에서 출발하여 종남산 ~ 서방산 ~ 써레봉을 지나 율치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금남정맥에 접속을 하게 돼. 그러고는 연석산 ~ 운장산 구간을 지나면서 구봉산 구간으로 들어가는데 이 구간이 호남알프스 구간의 백미라 할 수 있지. 충북알프스야 지금껏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한 곳이고, 경기알프스는 가평읍 이곡2리 목동초등학교 앞에서 출발해서 가평지맥 일부구간과 한북정맥 일부 구간 그리고 조종지맥 일부 구간을 연결시킨 환종주 코스야. 여기에 광주알프스니 뭐니 해서 새롭게 종주 코스를 만드는 등 만드는 사람 마음인데 이걸 다 조정할 필요는 있겠지.”
- 졸저 전게서 231쪽 이하
대단하신 3인의 여성 대원들이 포즈를 취합니다.
09:20
금단의 줄을 넘습니다.
이런 곳은 이것저것 눈치 볼 것 없습니다.
그냥 빨리 넘어가면 그뿐입니다.
카메라 의식하고 지나는 사람 쳐다보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바닥이 얼어 있어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내려가자마자 곧바로 암벽구간이 시작됩니다.
문장대에 한 사람이 올라와서 주변을 관찰하시는군요.
장애물들이 자주 나타나면서 진행을 더디게 합니다.
09:50
지도 #2의 '가'의 곳입니다.
980봉을 넘어 드디어 문제의 해산굴에 도착합니다.
노고단님의 큰 배낭이 걱정인데 역시 기우였습니다.
이제부터 노고단님 배낭 걱정은 끝.
제 걱정을 해야 할 판입니다.
해산굴을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
멋진 조망처에서 관음봉을 보고,
980.6봉과 그 우측 뒤의 문장대를 봅니다.
10:08
문제는 내려가는 데 있습니다.
다행히 로프는 살아 있지만 영 불안하기만 합니다.
바닥은 매우 미끄럽고.....
이런 곳을 세 번 통과하고도 또 위험 지역을 지나야 하는데 오늘 최고의 난코스입니다.
10:21
200m 정도 전진하는데 30분이나 걸렸습니다.
또 로프....
생명의 줄입니다.
우측으로 아슬아슬하게 놓여져 있는바위를 봅니다.
11:12
가지고 온 주먹밥을 먹고 939.7봉은 우회합니다.
된비알을 올라 관음봉에 접근합니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우회한 939.7봉 그리고 980.6봉을 넘어 문장대가 보이는군요.
관음봉은 로프도 없는 바위를 기어올라야 하는 곳입니다.
먼저 올라간 노고단님이 뒤에 오는 대원들에게 올라오는 바위 순서와 발을 디딜 곳 등을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네. 그렇죠. 그렇게......
11:21
록키문님이 관음봉 정상에 올라 포즈를 취합니다.
그러고는 강산님이 오르고....
저 관음봉 정상은 아주 위험한 곳이라 오르고 말고는 간의 크기와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4년 전 오른 적이 있어서 오늘은 과감하게 등정을 포기합니다.
고남님이 이렇게 슬림합니까?
충북알프스 중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이 관음봉에서 마냥 조망을 즐깁니다.
좌측 문장대 우측 천왕봉.
이런 곳입니다.
앞에 보이는 봉이 878.4봉, 좌측이 북가치 넘어 묘봉.
그 묘봉 뒤로 상학봉 좌측이 신정리 마을.....
골짜기 아래로 법주사가 보이고....
뒤로는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 일대....
맨 뒤로 묘봉 우측으로 거지를 친 비로봉과 상모봉으로 이어지는 암봉 능선.
저 비로봉 뒤로 넘어가면 활목고개로 가게 되고 그 줄기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계가 됩니다.
화북면....
그 우측으로 백악산 능선....
아쉬움으로.....
30분 정도 머물다 자리를 뜹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12:07
속가치를 지나,
미련이 남아....
지리산 꽃봉산 뒤의 공기바위의 아류?
예전에는 탐방구간이었던 흔적입니다.
묘봉이 104km 남았다는군요.
묘봉 ~ 문장대의 거리가 4.9km라고 하고....
13:28
다 왔군요.
북가치입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탐방허용 구간.
위에서 부산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려오는군요.
우리가 풀먹은 솜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측은하게 보이는가 봅니다.
하긴 그들의 생각으로는 이제 몇 분 올라왔다고 저렇게들 늘어져 있으니 언제 이 산행을 마치겠냐는 말이겠죠.
여기서 서원리에 세워져 있는 차 두 대를 회수라기 위하여 노고단, 산한구비, 날다람쥐 님 등 3분이 먼저 출발합니다.
발이 빠른 세 분이 회수조로 선발된 것입니다.
노고단님은 강산님을 위하여 수지까지 차를 운전할 것 같군요.
능히 그렇게 양보하실 분이니까....
노고단님의 명언 한 마디를 소개하자면....
"하산주 없는 산행은 노동에 다름 없느니라!"
또 올라갑니다.
다행히 예전에는 몇 군데 로프를 잡고 오르던 곳이 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이렇게 말끔하게 데크 시설이 완료되어 있군요.
아주 편하게 올라갑니다.
시간도 단축되고....
13:57
그러고는 3등급삼각점(속리311)이 박혀 있는 874.6봉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묘봉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경치가 좋아 모두들 그렇게 알고 기념촬영에 열중이지만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저 건너 봉우리를 묘봉이라고 표기하여 놓았습니다.
물론 높이로 보자면야 이곳이 저 묘봉보다 20cm 낮기는 하지만 조망으로 보나 위치적으로 보나 이곳이 묘봉일 것 같은데.....
그 우측으로 아까 보던 비로봉으로 흘러내리는 암봉군이 보입니다.
저 봉우리는 상모봉으로 해서 운흥리로 흘러내리는 줄기이지만 도계와는 샹관이 없는 줄기입니다.
즉 이 봉우리에서는 관음봉은 물론 문장대 그리고 우측으로는 천왕봉까지 조망이 되니 이곳에 묘봉이라는 이름을 주어야 하는 게 맞지않냐는 것입니다.
대단한 묘봉입니다.
오늘 봉우리 감상은 이제 이걸로 마칩니다.
묘봉에서 10분 정도 머물다 내려갑니다.
지도 #3
이제 나무 계단을 내려가,
건너 묘봉을 바라보고는,
진행방향 우측의 비로봉 등을 봅니다.
물론 저곳도 위험한 곳이어서 출입금지 구간입니다.
14:20
바로 이곳이죠.
암릉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이곳이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묘봉874.8m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로프도 없어 올라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저 바위는 누가 올려놨는고!
여전한 아쉬움으로 뒤가 보일 때마다.....
14:43
영원한 소년.
금수강산님이십니다.
국토지리정보원지도에는 아무런 표기가 되어 있지 않지만 엄연히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지도 #3의 '다'의 곳입니다.
14:54
전에는 활목재로 진행을 했는데 오늘은 신정리입니다.
그곳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발목까지 쌓여 있는 낙엽을 헤치고 지나가니 이런 계단이 나옵니다.
보은군에서는 정말이지 이 충북알프스에 목을 멨던 것 같은데 무심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출입금지 구역으로 막아버렸으니....
15:16
이제 평지로.....
임도로.....
예. 화기 한 번 사용하지않고 조심해서 다녀왔습니다.
아쉬움....
주요구간을 막아놨는데....
이런 안내판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억울할 수 밖에....
그런데 묘봉 ~ 문장대의 5.9km(실제는 북가치 ~ 문장대)구간은 비법정탐방로라 표시하여 놓고 043-542-5267로 탐방 문의하라고 합니다.
혹시 이 구간을 이용하실 분은 연락해서 허가를 득하고 진행하십시오.
이렇게 까지 홍보해 놓았는데 불허를 하겠습니까?
16:10
신정리 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차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곧이어 차량 세 대가 도착하고 분승하여 뒤풀이 장소로 이동합니다.
16:41
"오늘 무탈하게 완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배 제의하겠습니다. 제가 '해밀' 외치면 '위하여'로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저리 주저리....."
오늘 제일 기분 좋은 분은 막판에 참가를 결정하신 고남님이십니다.
진행 중일 때에는 "두 번 다시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언제 한 번 더 와야겠다고 하시는군요.
17:30
분위기는 무르익고...
오늘 대원들과 참으로 많은 대화 나눴습니다.
제 얘기는 다 쓸데없는 얘기였고...
고마웠고 ...
왜 산에서는 한 팀이 되어야 하고 그 우정과 사랑이 돈독해지게 되는지 백분 이해하게된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정말 멋진 멤버들이었습니다.
청풍명월 선배님의 도움으로 대전으로 와서 KTX로 집에 도착하니 20:30이 채 되지 않는군요.
첫댓글 정말 멋진 구간입니다. 겨울 관음봉은 좀 위험하지요. 역저 지리산이 대박 나기를 바랍니다.
대원들 모두 준족이시구만요..충알 완주를 추카드려요~ 새로 쓰신 지리산도 대박나시길~
오래전 한여름 땡볕에 충북알프스 한다고, 준치대장님이랑 같이, 더위먹고 중간에 탈출한 기억이 나네요...완주 축하드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충북알프스가 참 멋진 구간이네요.아직 미답인지라,관심있게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