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정부는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구입할 경우 최대 167만원,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는 209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장애인 보장구 수입업체들이 이 규정을 악용해 전동휠체어 구입 보조금을 가로채 예산을 축내고 있다.
업체들은 전동휠체어들을 무료로 제공한다던지, 장애인이 부담해야 할 구입 대금 20%를 업체가 대신 내주겠다고 한 뒤 가격을 부풀린 가짜 영수증을 끊어 정부 보조금을 타내는 등의 수법으로 보조금을 축내고 있다. 결국 피해를 입는 건 장애인들이다.
혼탁한 전동휠체어 판매실태를 들여다봤다. | |
일부 업체들 엉터리 전동휠체어 보급
|
 |
|
▲ ⓒ김태현 기자 |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사례 하나, 뇌병변장애로 몸이 불편한 아들을 둔 한 40대 남성은 한 업체에서 ‘전동 휠체어를 공짜로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209만원짜리 전동휠체어 가격 중 80%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지원하고 나머지 20%는 해당 업체가 부담한다는 솔깃한 내용이었다고.
그러나 이 남성은 이 회사 영업사원을 만난 뒤 구입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원래 휠체어 가격의 20%(42만원)는 본인 부담인데 이를 회사가 부담하는 대신 영수증을 209만원으로 끊어달라고 제안해 이를 거절했다.”며 “나중에 문제가 생겨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업체들의 불법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6월초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판매하지 않은 전동휠체어를 판매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보조금을 타내는 수법으로 장애인 보장구 구입지원금 4천여 만원을 챙긴 모 메디컬 대표이사 이모씨(42세)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권모씨(47세) 등 8명을 불구속입건했다.
또한 2008년 초에도 이와 유사한 적발 사례가 있었는데, 당시 광주경찰청 광역수사대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의료기 판매업자 이모씨(45세)가 2006년 11월 7일부터 2007년 12월 사이 위와 같은 수법으로 편취한 장애인 보장구 구입보조금은 4천681만원에 달했다.
또 일부 업자들은 장애인들에게 쉽게 고장이 나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전동휠체어를 보급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건보공단에서 휠체어 구입비를 지원하면서 내건 조건인 내구연한 기간은 6년이다. 즉 공단에서 한 번 구입비를 지원하면 6년 동안은 휠체어 구입비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저소득 장애인의 경우 한 번 휠체어를 구입했으면 어떻게든 6년을 타야 하는데 일부 업자들이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중국 ·대만산 엉터리 싸구려 전동휠체어를 보급해 결과적으로 장애인들이 골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단체 업체와 결탁해 소개비 받아 그러면 구체적으로 엉터리 전동휠체어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까. 문제는 장애인들에게 보급되고 있는 엉터리 전동휠체어들이 철저하게 건보공단에서 지원하는 구입 지원비를 노리고 제작된 휠체어라는 것이다. “전동휠체어 구입비 지원 제도가 시작되자 일부 업자들이 발 빠르게 중국·대만 등에 싸구려 전동휠체어 제작을 의뢰하고 이걸 수입해서 장애인들에게 보급했다.”는 것이 업체 관계자들 얘기였다.
보장구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국내에서는 전동휠체어 제작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미국·유럽·중국·대만 등에서 완제품을 수입하거나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고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제품들에 비해 중국·대만에서 제작되는 제품들은 가격과 품질이 현저하게 낮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엉터리 전동휠체어의 경우, 수입단가는 약 6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대만에서 들여오는 전동휠체어는 구입보조금을 노리고 수입했기 때문에 업자들이 수리를 해야 할 때 필요한 부속도 들여오지 않았고 수리를 할 능력도 없어서, 판매만 하고 사라지는 업체들이 많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들은 2005년 지원이 시작된 해부터 시작된 내구연한 6년이 끝나는 2011년, 또 한 번 이런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재 중 인터넷에서 국내에서 규모가 큰 한 전동휠체어 판매업체의 안내문을 발견했다. 주로 미국 유럽의 제품을 들여와서 판매하는 이 업체는 자사 홈페이지에 ‘일부 보장구 수입업체가 고장이 잘 나는 저가의 전동휠체어를 특정 장애인 단체와 결탁해서 단체에 한 대 당 30만원~40만원의 소개비를 준 다음 무조건 무료라는 명목으로 팔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개재했다.
안내문을 보고 이 업체 대표를 인터뷰 했다. 업체 대표는 “현재 장애인 단체나 개인이 전동휠체어 한 대를 팔거나 소개시켜 주면 그들에게 30만원을 주는 곳도 있고 많게는 40만원을 주는 업체도 있다.”고 현황을 설명했다.
|
 |
|
▲ 안내문을 게재한 보장구 업체 홈페이지 | 업체 대표의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전동휠체어 구입보조금이 일반건강보험대상자 장애인에게는 167만원,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장애인에게는 209만원으로 일률적으로 지원되기 때문에 업체들이 중국 등에서 60만원짜리 전동휠체어를 들여올 경우 부대비용을 다 빼고도 전동휠체어 한 대 당 60만원~70만원 이상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인 장애인들은 전동휠체어에 관한 정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엉터리 전동휠체어 판매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 업체에서 수입 전동휠체어를 무료로 보급한다고 얘기할 경우, 틀림없이 저가 중국이나 대만산 훨체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게 이 업체 대표 지적이었다.
버려지고 있는 전동휠체어
실정이 이렇다 보니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인들이 입고 있다.
기존 장애인들은 전동휠체어 지원금에 대해서나 어떤 제품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중도 장애인나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정보 공유에 약한 장애인들은 어떤 게 좋은 제품인지 알지 못한다.
업체 관계자들은 “장애인들이 공짜라는 말에 솔깃해 품질이 낮은 저가의 휠체어를 받게 된다 해도, 사실상 그들에게는 전동 휠체어가 발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엉터리 전동휠체어라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한 번 교체할 때마다 적게는 20~30만원에서 많게는 60~70십만 원의 비용이 드는 배터리·핸드 콘트롤러 등 장비를 교체해서 타야 하는데, 저가의 휠체어를 사용할 경우 그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고장난 전동휠체어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동휠체어의 부품은 그때그때 수입을 해야 하고 가격도 높기 때문에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전동 휠체어가 꼭 필요한 장애인들은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도 고쳐 쓰지만, 휠체어가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위 같은 행태를 저지르는 업체들에게서 쉽게 휠체어를 구입해 쓰다가 고장이 나면 쉽게 버려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 업체 관계자들의 말이었다.
다수의 업체 관계자들은 “만약 미국이나 유럽에서 제대로 만든 전동휠체어를 수입할 경우 보통 한 대 당 200만원~ 300만원, 비싸면 400만원이 넘는 제품들도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구입 보조금을 지원 받아도 추가 부담을 해야 수입 전동휠체어를 구입할 수 있다.”고 전했다.
건보공단과 식약청 서로 책임 전가
그러면 전동휠체어 판매 시장이 이렇게 어지러운데 관계 당국은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하고 있는 걸까.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는 불량 전동휠체어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나름대로 조치를 취했다. 복지부는 작년부터 전동휠체어 45개 모델을 선정해 장애인들이 선정된 모델의 전동휠체어를 구입했을 경우에만 지원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복지부의 이러한 조치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전동휠체어가 의료기기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2008년부터 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검증을 맡아 검증된 모델을 선정했는데, 식약청의 검증 과정에서 얼마나 휠체어가 튼튼한가의 기준이 되는 ‘내구성’ 항목이 빠진 채 검증을 진행하고 모델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45개의 전동휠체어 선정 모델 중 무려 31개가 엉터리 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대만산 전동휠체어 모델로 채워졌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동휠체어를 기준으로 모델을 선정하다보니 미국이나 유럽산 고가 제품들보다 중국·대만 제품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그런 것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동휠체어가 얼마나 튼튼한가를 알 수 있는 내구성이 검증 과정에서 빠진 이유에 대해서는, “전동휠체어라는 건 어차피 1~2년의 시간이 지나면 고장이 나기 마련이라 소모품 교체가 필요한데, 그에 비해 내구연한 6년이라는 기간은 너무 길다. 건보공단이 소모품 교체에 대한 지원도 없이 내구연한을 너무 길게 잡아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책임을 건보공단에 돌리고 있었다. 엉터리 전동휠체어도 문제지만 건보공단이 장애인에게 다시 휠체어 구입비를 지원하는 기간을 너무 길게 잡은 것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보장구 구입 지원 담당자는 “전동휠체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에 ‘업체 등록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모든 휠체어 판매 업체들을 대상으로 등록제를 실시해서 만약 업체가 엉터리 휠체어를 판매하는 등 부정행위를 저지른 게 적발되면 등록을 취소시켜 전동휠체어를 판매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것이다.
또한 관계자는 “조만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동휠체어를 대상으로 샘플 조사를 실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업체들을 대상으로 버려지거나 수리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전동휠체어들을 조사한 다음 보급 모델을 선정할 때 참고하겠다.”는 것이 관계자의 부연설명이었다.
이 밖에도 “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 배터리를 구입할 때도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는 게 건보공단 관계자의 얘기였는데, 이어 “배터리 외 다른 소모품에 대한 지원은 계획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수리 책임질 수 있는 업체만 전동휠체어 판매해야
그런데 이런 건보공단 방안에 대해 소비자 단체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화원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대표는 “이런 사기 사건들은 전국적으로 아주 많이 일어나고 있고 적발되어 보도에 나오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런 사태에 대해서 복지부나 건보공단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데 신경을 안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대책으로 “100만원이 넘는 보장구에 대해서는 일련번호를 붙여 대여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준비 중인 대여 방식은 지원금과 판매에만 열을 올려 값싼 중국제품을 수입해서 파는 업체들도 줄어들게 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또 고장이 났다거나 필요 없어지면 바로 버려서 낭비되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일련번호를 붙여 대여하게 되면 보장구에 대한 관리 또한 용이해질 것”이라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었다.
정 대표는 이어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도 보장구 산업을 진흥시켜 직접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전동휠체어가 생산되지 않아 각국에서 수입을 하고 있는데, 이러다보니 업체에서 값비싼 유럽이나 미국 제품들을 들여오기보다는 저가의 중국 ·대만산 제품을 들여오고, 이를 비싸게 되파는 사기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장구 업체 관계자는 “결국은 소비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보공단이나 복지부가 담당 수요자에게 전동휠체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그걸 보고 스스로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정보를 알 수 있게끔 하지도 않으면서 무작정 고르라고 하면 장애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이어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장애에 대해 공감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장애인 단체, 장애인 당사자들이 뭉쳐서 개선해나가야 하며, 각 업체들도 AS센터를 많이 만들고, AS를 책임질 수 있는 업체에 한해서 판매할 수 있는 허가를 내주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