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3. 10. 14. 토요일.
오전에는 비가 살짝 내리고, 오후에는 날이 들었다.
나는 오전에 아내와 함께 내과병원에 들러서 당뇨병에 대한 공복혈당 조사를 받은 뒤 당뇨약을 처방받았고, 아내는 빈혈증세 등으로 검진받은 뒤 약을 샀다.
귀가한 뒤에 늦은 아침밥을 먹고는 은근히 피곤하여 눈 감고는 낮잠을 잤다가 오후 3시가 훌쩍 넘어서야 잠 깬 뒤 늦은 점심밥을 떠먹었다.
2.
오늘 내 아파트단지로 택배 전송된 <한국국보문학> 동인지 '내 마음의 숲' 제36호를 받았다.
책이 묵직하다.
문학글을 읽기 시작하다가 아래 문구를 보고를 고개를 갸우뚱했다.
'팔만대장경'
양은순 작가
국사 연대와 본문 내용이 잘못되었고, 틀린다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아래는 본문에서 인용한다(272쪽).
'....
팔만대장경은 750년 몽골군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부처님을 믿는 나라에서 대장경을 만들어 보존하면 부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목수는 목판을 천년만년 썩지 않도록 소금물에 담그고 뜨거운 물에 찌고 진을 뺀 다음, 옻칠을 해서 물과 공기가 미치지 않도록 오래 그늘에서 말린 후.
학자와 스님은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팔만 여장의 목판에 오천자의 불경을 16년 만에 새겨 넣은 것을, 삼재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명당 가야산 해인사에 보관한다.'
문제점 :
1) 서기 750년이면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이다. 그런데 어떻게 750년을 고려시대, 몽고침략 운운하는가?
2) 또한 팔만대장경 경판에 새긴 글자가 5천자인가?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한다.
1) 몽고의 고려 침략은 서기 1231 ~1259년에 걸쳐서 6회 침략한다.
- 몽고의 고려 침략은 2023년 지금으로부터 계산하면 792 ~ 764년 전이다.
2) 팔만대장경의 경판 숫자는 8만1,258판이며, 이에 수록된 글자는 52,729,000자라고 한다.
- 2014년에 수립한 '해인사 대장경판 중장기 종합 보존관리계획'에 따른 조사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경판의 숫자가 8만 1352판이라고 밝혔음.
위 문학지에서 올린 내용을 아래처럼 고쳐야 할 듯...
1.
원안 : 팔만대장경은 750년 몽골군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고친다면 : 팔만대장경은 790여년 전, 몽골군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2.
원안 : 팔만 여장의 목판에 오천자의 불경을 16년 만에 새겨 넣은 것을,
고친다면 : 팔만여 장의 목판에 오천이백여 만 자의 불경을 16년 만에 새겨 넣은 것을,
몽골의 고려 침략 :
1231년부터 1259년까지 6차에 걸친 몽골의 침입이 있었음.
팔만대장경 : 八萬大藏經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고려대장경, 高麗大藏經, Tripitaka Koreana
팔만대장경 경판 숫자 :
2014년에 수립한 '해인사 대장경판 중장기 종합 보존관리계획'에 따른 조사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경판의 숫자가 8만 1352판이라고 밝혔다.
................
'... 1231년(고종 18년) 몽골은 고려를 침공했다.
막강한 몽골군에 맞서 고려의 무신정권은 국왕과 함께 강화도로 천도하며 항전했다. 이후 압박과 협상, 결렬과 항쟁이 2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강화도 항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고려 국민과 국토는 몽골군에게 유린당했다. 홍복원 같은 투몽인(投蒙人)들도 속출했다. 유라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승전한 몽골군까지 합세하면 고려의 운명은 시간문제였다.
1259년 고종은 굴욕적 평화를 선택했다. 삼별초는 진도를 거쳐 탐라(제주도)에서 계속 항전했다. 몽골군과 김방경의 고려 관군은 김통정이 이끌던 삼별초군을 항파두리에서 진압했다. 삼별초를 진압한 김방경에게는 충렬왕과 같은 충렬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
* 2023년 현재 인구 약 300만 명의 몽골은 자타가 공인하는 몽골제국의 후계국이다.
- 1279년 당시의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고려)도 나온다. 속국이 되어....(2023년으로부터 계산하면 744년 전이다).
위 수필에서는 신라말 대학자인 '최치원'의 이름이 나온다.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가야산 홍류동을 방문했다.
고운/ 또는 해운이라고 함. 최치원은 경주최씨 시조이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경주최씨 종친회 위원이기에 대전에서 활동하셨고(1950년대 ~ 1982년까지 역임. 아버지는 1982년에 작고하셨고, .... 나는 종가 일에는 손을 일체 대지 않았다. 서울에서 공직생활이나 충실히 ......),
내 고교시절인 1960년대 후반, 최치원의 저서인 계원필경(桂苑筆耕)은 대전 회상사 인쇄소에서 번역, 발간해서 전국에 배부했다.
나는 회상사 인쇄소에서 이 책을 받아서, 리어커로 실어 나르면서, 심부름 다녔고....
대전 동구 중동의 '회상사'는 족보 발간인쇄소/ 전문업체
나는 경주최씨 32대손
'가야산 홍류동 최치원'이란 문구를 넣어서 검색한다.
1) 가야산 홍류동 최치원 : 서기 857생 ~ 사망 년도는 미상
2) ' .... 남산제일봉과 가야산 사이는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홍류동계곡이다. 합천8경 중 하나인 홍류동계곡은 공원 입구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십리길 계곡이다. 가을 단풍이 날릴 때면 흐르는 물에 홍엽이 빨갛게 비친다고 해서 ‘홍류동’(紅流洞)이란 이름을 얻었다.
홍류동계곡에는 소리길이 이어진다. 해인사 들머리의 대장경문화축전 행사장에서 출발해서 해인사를 향해 6.8㎞ 이어진다. 고운 최치원의 산책로이며 소요길이다. 계곡 주변엔 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농산정(籠山亭), 애송시를 새긴 제시석(題詩石) 등 고운과 관련된 명소가 늘어서 있다. 계곡에 가까이 다가서면 힘찬 물소리가 따라오고, 멀어지면 산새 소리와 바람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길상암에서부터 최치원이 노닐었다는 농산정까지 구간이 소리길의 하이라이트다. 길상암 부근 칼로 자른 듯한 바위 아래 계곡물이 푸른빛으로 고여 있는 낙화담 부근의 경관이 빼어나다.
내가 대학생 시절인 1960년대 말에 아버지와 함께 합천 해인사를 방문해서 영내를 구경했다.
훗날 또 방문했고.
* 해인사 위치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더 보완할 예정....
아쉽다.
책에 내는 글은 한번이라도 더 다듬자.
책에 내면 고칠 재간이 없다! 재발간하지 않는 한....
잘못되고, 엉터리로 쓴 내용은 문학계 전체 이미지를 흐리게, 나쁘게 한다.
2023. 10. 14.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