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 (마르1,21-28)
참된 권위는 언행일치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을 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를 살려주시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권위를 뜻하는 라틴어 ‘아욱토리타스 auctoritas’는 ‘아우제레 auge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는데, 이 동사는 ‘자라게 하다.’ ‘증가시키다.’ ‘커지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권위로 번역된 그리스어 원형 ‘엑수시아’(exousia)는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 곧 ‘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권위는 사람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살아있는 힘입니다.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성장시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주신 권위는 사람들을 성장시키라고 주신 것이지 망가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2코린 10,8).하고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마을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그 말씀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당신의 명예와 영광을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사람들, 특히 어려움 중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쳐주시며 마귀를 몰아내셨습니다. 이렇듯 율법학자들과는 다른 예수님의 진정한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가르침과 행동의 일치입니다. 언행일치의 가르침과 삶,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자라게 하는 권위, 악한 영을 복종시킬 수 있는 하느님에게서 나온 권위였습니다. 이 권위를 교회, 오늘 우리에게도 맡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령에게 ‘조용히 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주님의 이름으로 호령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존경에서 따라오는 권위보다는 권력으로 사람들을 내리누르려 합니다. 나, 누군데... 의원인데... 용산에 있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권력을 가지고 콧대를 세우려 합니다.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가식적으로 드러난 ‘권위적인 행동’일 뿐입니다. 마음 안에서 나오는 권위를 지녀야지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악령에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느님을 이용하고 이웃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이가 있다면 악령 들린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금배지를 답니다. 왜 금배지를 답니까? 그만큼 권위를 지녔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국민을 위한 대변자로 그들을 뽑아놓았더니 자기 잇속 챙기는 것에는, 발 빠르고 힘든 국민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금배지 달 자격이 없습니다. 밥그릇 싸움에 민생은 항상 뒷전입니다. 여야가 다투다가도 자기 세비를 올리는 데에는 아무 이견 없이, 소리소문없이 올립니다.
경찰이나 소방대 고위직의 모자를 보면 금테를 둘렀습니다. 그 금테를 두르는 것은 그처럼 고귀하게 봉사하겠다는 뜻입니다. 수위실의 수위도 금테를 두르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충실히 고귀하게 봉사하겠다는 뜻입니다. 금테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금테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봉사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올바른 권위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희생, 봉사, 섬김, 말하는 바와 행동의 일치를 통해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가정에는 가장의 권위, 부모의 권위가, 학교는 선생님의 권위, 병원에는 의료진의 권위가 살아 있어야 하고, 국가의 지도자들은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성직자는 성직자의 권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권위를 지키기보다 권력을 추구하는 욕심이 세상을 어둡게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행동, 이런 말 하고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권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지도층인 율법 학자들은 배운 것도 많고 권력, 재력을 다 갖췄지만 속은 비어있고 겉모양을 중시하여 율법의 의미를 까다롭게 따지는데 급급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행실을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3,3이하). 그들의 말은 죽어 있고 공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더러운 영이 알아보고,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일종의 아부 혹은 타협의 제안입니다. ‘당신이 고수라는 것을 인정하니까 나를 그냥 내버려 두라.’ 예수님은 타협을 단호하게 거부 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습니다. 더러운 놈은 떠나갈 때에도 발악을 하며 떠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임을 인정하면서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하며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것이 더러운 영의 특징입니다(손희송주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평소에 하느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요한15,6).는 말씀처럼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잘린 가지처럼 입으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하느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따로국밥” 신앙인입니다. 국 따로, 밥 따로이듯, ‘신앙 따로, 생활 따로’여서는 안 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 앞에서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존재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멸망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러 오셨습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멸망시키러 오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더러운 영을 멸망시키는 것이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파멸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파멸시키는 악을 그 사람에게서 나가게 함으로써 그를 살리려고 오셨습니다. 죄악의 올가미에서 풀어주러 오셨습니다.
한 번 우리의 삶을 성찰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실천하려고 할 때 ‘이 말씀대로 산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망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잖아요. 복음이 희생을 요구할 때도 있고 용서와 화해, 더 큰 사랑을 실천하기를 요구받을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대로 한다면 분명 손해를 봐야 하고, 바보가 되어야 하며 때로는 생존의 위협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타협하길 원하고 나에게 손해 보지 않는 범위 안에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갖는 생각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말씀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실천한다는 것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사람이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이 말씀은 듣기에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6,60).하고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고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6,67).하고 물으셨고, 이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6,68).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나의 생각과 다른 말씀, 희생이나 고통을 감당해야 할 말씀을 들었을 때 순명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는 우리를 멸망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려고 오셨고 치유해 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믿고 받아들이게 될 때 나를 위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유광수신부).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도록 얻게 하려고 왔다”(요한10,10)고 선언하셨습니다. ‘멸망시키러 오셨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생활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나를 살리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권위 있는 말씀을 실행하는 기쁨을 차지하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
아멘 🙏 감사합니다 ♡
주님을 믿고 받아들이게 될때 나를 위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묵상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