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03 새옹지마 시 147:12-20; 렘 31:7-14; 엡 1:3-14; 요 1:(1-9), 10-18
새옹지마라는 고사를 들어보았습니다. 변방 노인의 말이라는 뜻으로 그 유래를 거슬러가면,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이 키우는 말이 집을 나갑니다. 사람들은 그를 찾아와 위로합니다. 노인은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이 사는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으니 괜찮다고 합니다. 어느 날 집을 나간 노인의 말이 다른 말을 한 마리 데려옵니다. 사람들은 노인을 찾아와 축하합니다. 정말 노인의 말처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을 수 있다며 좋아하는데, 이때도 노인은 좋을 일은 나쁜 일도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고 나갔다가 그만 다리를 심하게 다칩니다. 또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합니다. 노인은 또다시 화도 복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전쟁이 나서 모든 아들이 징집되었는데 노인의 아들은 노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유래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합니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올 한해 이런 마음으로 버티고 회복하자는 의미로 제목을 잡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다사다난했습니다. 어려운 일도 기쁜 일도, 다시 기쁜 일도 어려운 일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어려움에 허덕이는 많은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옹지마의 유래처럼 일희일비하지 말고 더 멀리, 더 크게 보고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태어나서 절망이 컸습니다. 그러나 때문에 인간의 가장 큰 덕이라 할 수 있는 겸손을 배우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사업을 한답시고 큰소리치다가 십 원짜리 하나 없이 다 털어먹고 빈털터리일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가까이 지난해는 급히 새집을 구해야 하는데, 오갈 데 없다가 너무 좋은 조건으로 아주 좋은 집을 구했습니다. 이게 나라냐, 헬조선, 삼포, 다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민간다는 등, 불안한 용어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촛불이 밝혀지고 희망찬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지난해는 코로나 해라고 할 만큼 위기가 지속되었습니다.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희망의 기운이 드세게 일고 있는 것을 보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전화위복, 새옹지마의 올 한해 이기를 다시 한번 신년 주일에 간절히 두 손 모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눈먼 사람, 다리 저는 사람, 임신한 여인, 해산한 여인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는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넘어지지 않게 평탄한 길로 인도하며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지키듯이 지키겠다고 합니다. 그때에는 처녀가 춤을 추며 기뻐하고,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위로한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근심에서 벗어나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랜 세월 포로로 있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노예 상태로, 억압당하고 무시당하고 유린당합니다. 그 백성들이 이제 회복의 때를 맞게 된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하고 병든 그들이 이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근심이 기쁨이 되어 춤추며 즐거워합니다. 오랜 위기가 새로운 희망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이들입니다. 그런데 왜 노예가 되어 자유를 빼앗기고, 위기 속에 살아야 합니까? 억압당하고 구속되고 고통당해야 합니까?
요한복음서 본문은 말합니다. 그 빛이 세상에 오셨으니,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그를 알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예정된 백성, 그러나 그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왜 못 받아들일까요? 그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 때문이라고 합니다. 잘못된 선민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감히 위대하신 하나님께 선택되었는데 하면서 교만했던 것입니다. 이기적 탐욕에 따라 탕자처럼 자기 권위를 더 없이 높인 까닭일 것입니다. 선민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악한 본능에 충실했던 까닭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창조세계의 보존과 회복이 우선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전쟁으로 약탈하고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림 대신 죽임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생명과 정의와 평화보다 자기 욕망으로 불의에 앞섰던 것입니다.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아 사람들을 죽인다면 그 운전사를 멈춰 세워야 한다고 히틀러에 대항한 본회퍼 목사의 주장입니다. 하나님은 미친 운전사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내어 줍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방 신을 섬기며 내일의 안녕을 구하는 자에게 이방의 포로가 되어보라고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깨달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참 잔인한 분 같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비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이방의 포로로 내어 주었겠습니까? 오랜 고통에서 다시 돌아올 때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며 춤을 추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헤어진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혈통으로, 육정으로, 욕망으로부터가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다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오롯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습니다. 우리를 회복시켜주십시오. 하나님만을 찬양하겠습니다. 당신의 뜻을 따라 생명 정의 평화를 위하겠습니다. 죽임에서 벗어나 살림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함께 시편 본문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시 147:12-20
12 예루살렘아, 주님께 영광을 돌려라.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13 주님이 네 문빗장을 단단히 잠그시고, 그 안에 있는 네 자녀에게 복을 내리셨다. 14 네가 사는 땅에 평화를 심어 주시고, 가장 좋은 밀곡식으로 너를 배불리신다.
15 주님이 이 땅에 명만 내리시면, 그 말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16 양털 같은 눈을 내리시며, 재를 뿌리듯 서리도 내리시며, 17 빵 부스러기같이 우박을 쏟으시는데, 누가 감히 그 추위 앞에 버티어 설 수 있겠느냐? 18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니,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른다. 19 주님은 말씀을 야곱에게 전하시고, 주의 규례와 주의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알려 주신다. 20 어느 다른 민족에게도 그와 같이 하신 일이 없으시니, 그들은 아무도 그 법도를 알지 못한다. 1)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