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는 문화를 사랑한 군주로 알려졌지만,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일에 있어서는 야만스런 정책을 주저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코샤크 병사들은 에스키모인들로 부터 북극동물들의 털가죽을 공출받기 위해, 500명의 에스키모 아이들을 볼모로 잡아간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겨울이 혹독한 러시아에서는 모피가 황금처럼 값진 것이어서 화폐의 대용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정러시아는 에스키모인에게 모피의 상납을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 이유는 에스키모인들은 철저한 자급자족 경제였기 때문이다. 털가죽은 방한옷과 방한텐트등을 만들기 위해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생필품이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해온 반면, 러시아에서는 털가죽은 무기등을 사고 파는 화폐로도 사용되어 수요가 무한적이었다. 그리하여 흑수달등 극지 온혈동물들은 멸종의 위기에 이르렀다.
제정 러시아에게 털가죽이 야만적인 정책의 상징이었다면, 대영제국에게는 설탕이 그 악역을 맡았다. 초기자본주의에서 황금같은 역할을 했던 설탕은 돈 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여, 담배 못지않게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기호품이다. 소금이 없으면 못사는 것과는 달리, 설탕이 없이도 잘 살아 왔던 인류는 이제는 설탕이 없으면 못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영국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선에 태워 서인도제도로 잡아다가 설탕농장을 만들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독성이 강력한 설탕은 영국의 산업화의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전통적인 영국농부들은 에스키모인들 만큼의 자급체제는 아니었지만, 높은 수준의 자급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설탕을 비롯한 차 커피 담배 등에 점차 중독되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는 이농현상을 촉진시켰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에 앉아, 커피에 설탕을 넣어 저으며, 인권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설탕이나 커피 담배등을 생산하기 위한 노예착취는 에스키모 아이들 납치못지 않게 악랄한 것이었다. 흑인노예들은 절도를 하다 들키면 손목이 잘리고, 달아나다가 잡히면 발목이 잘리기도 하였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식민지를 거느린 나라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란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