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스라바스띠에 있는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공원에 천이백 오십인의 많은 수행승의 무리와 많은 보살, 마하살과 함께 계셨다. 아침 무렵에 세존께서는 옷을 걸치고 가사와 바루를 들고 큰 도시 스라바스띠로 탁발하기 위해 들어가셨다. 이 때에 세존께서는 큰 도시 스라바스띠에서 탁발을 하고 나서, 공양을 드시고, 드신 뒤에 다시 돌아와서, 바루와 가사를 거두시고, 두 발을 씻으시고, 결가부좌를 하시고, 몸을 곧게 세우시고, 앞을 향해 주의력을 집중시키며,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이 때에 많은 수행승들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서 세존의 두발에 머리를 조아리며, 세존께서 계신 곳을 세번 오른쪽으로 돌아,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2. 그 때에 장노 쑤부띠는 그 모임에 와서 함께 앉았다. 그리고 장노 쑤부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세존께서 계신 쪽으로 합장하여, 세존께 여쭈었다 ; 얼마만큼이나 보살 마하살이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이의 크낙한 도움으로 수호함을 받는지, 세존이시여,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희유하십니다. 얼마만큼이나 보살 마하살이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이의 크낙한 은혜로 부촉받는지, 세존이시여,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승을 시작한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들이 어떻게 입지하고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합니까?
이렇게 엿쭙고나자 세존께서는 장노 쑤부띠에게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쑤부띠여, 그것은 이러하다. 그것은 이러하다. 쑤부띠여, 보살 마하살은 여래의 위대한 도움으로 수호받으며, 보살 마하살은 여래의 크낙한 은혜로 부촉받는다. 그러므로 쑤부띠여,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어떻게 보살승을 시작한 자들이 입지하고 수행하고 마음을 닦는지 내가 너에게 설할 것이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장노 쑤부띠는 세존께 대답했다.
3.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여기 보살승을 시작한 자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 뭇삶이란 알에서 나거나, 태에서 나거나, 습기에서 나거나, 신비스럽게 나거나, 모습이 있거나 모습이 없거나, 알음알이가 있거나, 알음알이가 없거나, 알음알이 있지도 알음알이가 없지도 않거나 뭇삶이란 개념아래 파악되는 뭇삶의 세계에 뭇삶들이 있는 한, 뭇삶에 대한 어떠한 모습이 시설되는 한, 이 모든 것을 나는 열반의 세계로 남김없는 열반의 세계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무수한 뭇삶들이 열반으로 이끌어졌지만 하나의 뭇삶도 열반으로 이끌이지 않았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약, 쑤부띠여, 보살에게 뭇삶이란 생각이 일어나면 그는 `깨달은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자아'라는 생각이 일어나거나, `뭇삶'이란 생각이나 `영혼'이란 생각이 일어나거나, `개인'이란 생각이 일어나면, 그는 `깨달은 존재'라고 불릴 수 없다.
4. 더구나 쑤부띠여, 보살은 물건에 보시를 하거나 다른 어떤 곳에 머물러서 보시를 해서는 않된다. 모습에 머물러서 보시해서는 않되며, 소리, 향기, 맛, 감촉,마음의 대상에 머물러서 보시를 해서는 않된다. 쑤부띠여, 보살 마하살은 인상이란 생각에 머물지 않도록 보시를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하는 보살의 공덕의 쌓임은 쉽게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에 공간의 크기를 쉽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남쪽, 서쪽, 북쪽, 상하, 그 사잇방향, 그 모든 열가지 방향의 공간이 크기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보시를 행하는 보살의 공덕쌓임은 쑤부띠여, 이처럼 ㅎ헤아리기 어렵다. 쑤부띠여, 이것이 보살승을 시작한 자들이 인상이란 생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해야 하는 까닭이다.
5. 쑤부띠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상호를 갖춘 것을 통해서 여래를 볼 수 있는가?
쑤부띠가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상호를 갖춘 것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상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상호를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게서는 장노 쑤부띠에게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상호를 갖추는 한 허망하며 상호를 갖추는 것에서 자유로운 한 허망하지 않다. 우리는 [여래의] 상호가 상호가 아니기 때문에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6. 이렇게 말씀하자, 장노 쑤부띠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 세존이시여, 미래의 마지막 시간에,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오백년, 가르침이 무너질 때가 되면 이와같은 경전의 귀절이 설해질 때에 그 진실을 이해하는 누군가 뭇삶들이 있겠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미래의 마지막 시간에,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오백년, 가르침이 무너질 때가 되면 이와같은 경전의 귀절이 설해질 때에 그 진실상을 이해하는 누군가 뭇삶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또한 쑤부띠여, 미래의 마지막 시간에,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오백년, 가르침이 무너질 때가 되면 그 진실상을 이해하는 덕을 갖추고 계율을 갖추고 지혜를 갖춘 보살 마하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쑤부띠여, 이들 보살마하살은 결코 한 부처님께 헌신한 것이 아니며 한 부처님 아래서 공덕의 뿌리를 심은 것도 아니며 오히여 쑤부띠여, 이들 경전의 귀절이 설해질 때에, 청정한 믿음의 한마음을 설하는 많은 수십만 부처님께 헌신하며 많은 수십만 부처님 아래 공덕의 뿌리를 심는 보살마하살들이 있을 것이다. 쑤부띠여, 그들은 부처님의 지혜에 의해서 여래에게 알려지며, 쑤부띠여, 그들은 부처님의 눈에 의해서 여래에게 보여지며, 쑤부띠여, 그들은 여래에 의해서 인식된다. 쑤부띠여, 그들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셀 수 없는 공덕의 쌓임을 낳고 얻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이 모든 보살 마하살들에게는 자아란 생각이 없으며 뭇삶이란 생각이 없으며, 영혼이란 생각이 없으며 개인이란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쑤부띠여, 이 보살 마하살들에게는 법이란 생각도 없으며 법이 아니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쑤부띠여, 그들에게는 생각도 생각이 아님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만약 쑤부띠여, 그들 보살 마하살들에게 법이란 생각이 일어나면 그들은 그 때문에 자아, 뭇삶, 영혼, 개인이란 생각에 집착이 생겨나게 되며, 만약 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일어나도 그들은 그 때문에 자아, 뭇삶, 영혼 개인이란 생각에 집착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보살 마하살에게는 법이든 법이 아닌 것에든 집착이 생겨나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그러한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 땟목의비유의 법문을 아는자는 법마져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
7. 또 다시 세존께서는 장노 쑤부띠에게 말씀하셨다 ; 쑤부디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위없는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현등각한 어떠한 법이 있는가 또는 여래가 가르친 어떤 법이 있는가?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존자 쑤부띠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제가 세존께서 말씀하신것을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여래께서 위없는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으로 현등각한 어떠한 법도 없으며 또한 여래께서 가르치신 어떠한 법도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여래께서 현등각 하시거나 또한 가르치신 이 법은 파악될 수 없고 말할수 없으며,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거룩한 분들은 무위에 의해서 구별되기 때문이다.
8.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훌륭한 아들, 훌륭한 딸이 십억 세계의 이 우주를 칠보로서 채워서 그것을 여래,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들에게 선물로 준다면, 그 훌륭한 아들, 훌륭한 딸은 그것을 인연으로 보다 많은 공덕의 쌓임을 이루겠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많겠습니다. 선서여, 많겠습니다. 그 훌륭한 아들 또는 좋은 가문의 딸이 그것을 인연으로 공덕의 쌓임을 이루겠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어래께서 공덕의 쌓임이라고 한 것은 여래께서 공덕의 쌓임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공덕의 쌓임 공덕의 쌓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렇지만 또한 쑤부띠여, 훌륭한 아들, 훌륭한 딸이 십억 세계의 이 우주를 칠보로서 채워서 그것을 여래,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 이들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이 법문으로부터 넷귀의 시를 취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상세히 가르치고 설명하는 것이
그것을 인연으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더욱 많은 공덕의 쌓임을 이룬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것은 여래,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의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도 여기서 나왔기 때문이며 여기서 세존이신 부처님들도 나왔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쑤부띠여, 깨달은 이의 법, 깨달은 이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깨달은 이의 법이 아니다라고 여래는 깨달은 이의 법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달은 이의 법이라고 한다.
9.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흐름에 든 자가 또한 내가 흐름에 든 자란 과보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쑤부띠는 말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흐름에 든 자가 또한 "내가 흐름에 든 자란 과보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는 아무런 법도 얻은 바가 없으므로 흐름에 든 자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습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과 마음의 대상들을 얻지 못했지 때문에 흐름에 든 자라고 합니다. 만약 세존이시여, 흐름에 든 자에게 "내가 흐름에 든 자의 과보를 얻었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는 곧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다. 뭇삶에 집착하는 것이며, 영혼에 집착하는 것이며, 개인에 집착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떻게 생가하느냐? 한번 돌아온 자가 "내가 한번 돌아온 자의 과보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돌아온 자가 또한 내가 한번 돌아온 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한번 돌아온 자의 과보를 얻은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돌아온 자라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는냐? 돌아 오지 않는 자가 "나는 돌아오지 않는 자의 과보를 얻었다"고 행각하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자가 또한 "내가 돌아오지 않는 자의 과보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돌아오지 않는 자의 과보를 얻은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지 않는 자라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거룩한 이가 또한 "내가 거룩한이의 과보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거룩한 이의 과보를 얻었다"고 거룩한 이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거룩한이 라고 부르는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만약 세존이시여, 거룩한 이에게 "나는 거룩한이 의 과보를 얻었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는 그의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며 뭇삶에 집착하는 것이며 영혼에 집착하는 것이며 개인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저를 여래,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 이께서 무쟁삼매인으로 인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탐욕에서 벗어난 거룩한 이입니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나는 거룩한 이이다. 나는 탐욕에서 벗어난 자이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존이시여, 제가 거룩한 이의 과보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여래께서는 `쑤부띠, 훌륭한 아들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쟁삼매인이라고 한다' 라고 저에게 수기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10.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여래,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이신 연등불로부터 배운 어떠한 법이라도 있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여래,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 이 이신 연등불로부터 배운 어떠한 법도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떤 보살이든지 `나는 국토를 장엄할 것이다.' 고 말했다면 그는 잘못 말한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쑤부띠여, 여래는 국토의 장엄, 국토의 장엄은 장엄이 아니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엄한 국토'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쑤부띠여, 보살마하살은 머물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즉, 어디든지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색깔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되며, 소리, 향기,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된다. 이를테면 쑤부띠여, 어떤 사람이 산의 제왕 쑤메루 같은 몸을 갖는 큰 몸을 소유한다면 그것을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몸은 또한 클 것인가?
쑤부디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큽니다. 선서이시여, 그 몸은 큽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몸, 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슴하셨기 때문입니다. `몸'이라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존재도 비존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므로 몸이라고 합니다."
11.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많은 큰 강 갠지즈강에 모래알 만큼의 갠지즈강들이 있다면 그 가운데 모래알도 또한 많겠는가?
쑤부띠는 말했다 ; 그 갠지즈강도 매우 많겠습니다. 하물며 그 갠지즈강들 가운데 있는 모래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그것을 내가 너에게 설명한다. 쑤부띠여, 그것들을 내가 너에게 천명한다. 만약 어떤 여자나 어떤 남자가 그러한 갠지즈강들의 있는 모래알 세계 만큼의 일곱가지 보물들고 가득 채워서 여래,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 이에게 보시를 하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 쑤부띠여, 그 여자나 그 남자가 그것을 원인으로 해서 큰 공덕의 쌓임을 낳겠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많겠습니다. 선서이시여, 그 남자나 그 여자가 그것을 원인으로해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공덕의 쌓임을 낳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나 만약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들이 이 법문으로 부터 단지 넷귀의 시라도 취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설명하면 그는 그것을 인연으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더욱 큰 공덕의 쌓임을 낳는다.
12. 또한 쑤부띠여 이 법문으로 부터 단지 넷귀의 시라도 취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설명한다면 그 땅의 한 지점은 신, 인간, 아수라로 이루어진 세계를 위한 성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법문을 남김없이 암송하고 이야기 하고 숙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면, 쑤부띠여, 그들은 위없는 기적을 성취한 분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쑤부띠여 그 땅의 지점에서 스승이 머물며, 또는 여러 현명한 스승의 지위에 있는 자가 머문다.
13a. 이와같이 말씀하시자 장노 쑤부띠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여주었다 ; 세존이시여, 이 법문은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그것을 마음에 지닙니까.
이와같이 말했을 때 세존께서는 존자 쑤부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이 법문은 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 부르며 이와같이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가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했던 것은 바라밀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고 한다.
13b. 쑤부디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가르친 어떠한 법이란 것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가르치신 법이란 것은 어떠한 것도 없습니다.
13c.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 세계의 낱낱의 땅의 티끌의 숫자는 어떠한가? 많겠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많겠습니다. 선서이시여 땅의 띠끌은 많겠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여래께서 땅의 티글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존이시여, 티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티끌이라고 부릅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이 세계는 여래께서 세계가 아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계라고 부릅니다.
13d.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이를 위대한 분이 갖춘 서른두개의 상호를 통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 이는 위대한 분이 갖춘 서른두개의 상호를 통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여래께서 말씀하신 위대한 분이 갖춘 서른두개의 상호들은, 세존이시여, 상호가 아닌 것이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분이 갖춘 서른두개의 상호라고 부릅니다.
13e.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디여, 한 여자나 어떤 남자가 날마다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만큼의 자신의 몸을 보시하고 이처럼 갠지스강의 모래알을 세는 횟수만큼의 무한의 시간을 그 자신의 몸을 보시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이 법문으로 부터 넷귀의 시라도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설명하면 그것을 인연으로 헤아릴 수 없이 셀 수 없는 더욱 많은 공덕취를 낳을 것이다.
14a. 이때에 실로 장노 쑤부띠는 가르침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 ; 그는 눈물을 닦으면서 세존께 말했다 ; 참으로 여래께서 최상승에 머무는 뭇삶의 이익을 위해, 최상승에 머무는 뭇삶의 이익을 위해, 저에게 지혜가 생겨나게 해준, 이 법문을 말씀하신 것은 세존이시여, 저는 일찌기 이와같은 법문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을 설하실 때 그것을 듣고 진실한 알음얼을 일으키게 되는 보살은 위없는 기적을 성취한 분들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진실한 알음얼이란 진실한 알음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진실한 알음얼, 진실한 알음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4b. 세존이시여, 가르치신 바와 같이 제가 이 법문을 이해하고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미래에 마지막 시간에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500년에 올바른 가르침이 무너질 때에 어떤 뭇삶들이 있어서, 세존이시여, 이 법문을 지니고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숙달해서 다른 사람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면 그들은 위없는 경이를 성취한 분들이 될 것입니다.
14c. 세존이시여, 그리고 또한 그 가운데 참으로 자아라는 알음얼, 뭇삶이란 알음얼, 영혼이란 알음얼이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그 가운데 어떠한 알음얼도 알음도 얼음얼이 아님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자아의 알음얼이라는 것은 바로 알음얼이 아니기 때문이며 뭇삶이란 알음얼, 영혼이란 알음얼, 개인이란 알음얼은 바로 알음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존경받는 깨달은 분들은 모든 알음얼에서 벗어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14d. 이와같이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장노 쑤부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그러하다. 그렇다. 여기 이 경전을 설할 때 떨고 두려워 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않는 뭇삶들은 위없는 경이를 성취한 이들이 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는 위없는 바라밀로서 바라밀이 아닌 것을 가르쳤다. 쑤부띠여, 여래가 말한 위없는 바라밀은 헤아릴 수 없는 존경받는 깨달은 이들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위없는'이라고 부른다. 더구나 쑤부띠여, 여래의 인내의 바라밀은 참으로 바라밀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까링가의 임금이 나의 팔다리와 손발으로 부터 살점을 떼어낼 때 그 때에 나에게 자아란 알음얼, 뭇삶이란 알음얼, 영혼이란 알음얼, 또는 개인이란 알음얼, 어떠한 알음얼도 알음얼이 아닌 것도 없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야, 만약 내게 그 때에 자아란 알음얼이 있었다면, 내게 그 때에 나쁜 생각이 생겨났을 것이다. 만약 뭇삶이란 알음얼, 영혼이란 알음얼, 개인이란 알음얼이 일어났으면 내게 그 때에
나쁜 생각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나는 내가 `인욕을 가르치는 이'라는 이름의 선인이였던 과거의 세상을 잘 알고 있는데, 그 때에 나에게는 자아란 알음얼이 없었으며, 뭇삶이란 알음얼, 영혼이란 알음얼, 개인이란 알음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쑤부띠여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모든 알음얼을 버린 뒤에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모양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되며 소리, 냄새, 맛, 감촉및 의식의 대상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된다. 법에 머무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머무는 것은 실로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말씀하셨다 ; 보살은 머무는 데가 없이 보시를 베풀어야 한다. 모습, 소리, 냄새, 맛, 감촉및 대상에 머물면서 보시를 베풀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쑤부띠여, 보살은 모든 뭇삶의 이익을 위해서 이와같은 방법으로 보시를 베풀어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뭇삶이라는 알음얼은, 쑤부띠여, 알음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래가 말씀하신 모든 뭇삶은 뭇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여래는 진실에 입각해서 말씀하시며 진리에 입각해서 말씀하시며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며 있는 그대로가 아닌 것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여래는 거짓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14. 쑤부띠여 더구나, 여래가 바로 깨닫고 가르치고 숙고한 것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예를 들어서 쑤부띠여, 마치 어둠속에 들어서면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드시 사물에 빠져 보시를 하는 사물에 빠진 보살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예를들어, 쑤부띠여 마치 눈있는 사람은 밤이 밝아져서 해가 떴을 때, 눈있는 자는 여러가지 보습을 볼 수 있듯이 사물에 빠지지 않고 보시를 하고 사물에 빠지지 않은 보살은 여러가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4h. 쑤부띠여 더구나 또한, 참으로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들이 법문을 받아 지지고 독송하고 숙달해서 남을 위해 자세히 설며할 것이다. 쑤부띠여, 여래는 그들을 깨달은 이의 지혜로 알며, 쑤부띠여, 여래는 그들을 깨달은 이 눈으로 보며, 여래는 그들을 알고 있다. 쑤부띠여, 이들 모든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공덕의 쌓임을 낳아서 자기 것으로 할 것이다.
15a. 쑤부띠여 그런데 또한, 어떤 여인이나 어떤 남자가 아침에 갠지스강의 모래알 만큼 많은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점심때에 이와같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만큼의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저녁때에도 갠지스강의 모래알 만큼의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많은 무한히 영원한 시간동안 모든 자신의 소유를 버리는 것보다 이 법문을 듣고 그것을 비방하지 않는 쪽이 훨씬 많은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공덕의 쌓임을 낳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쓰고 받아지니고 독송하고 숙달해서 남을 위해 자세히 설명하는 사람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15b. 더구나 쑤부띠여, 그전에 이 법문은 실로 불가사의하고 비교될 수 없다. 여래는 맨앞의 수레에 탄 자를 위해서, 가장 좋은 수레에 탄 자를 위해서 이것을 설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법문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숙달해서 남을 위해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여래는 그들은 깨달은 이의 지혜를 알며, 여래는 그들을 깨달은 이의 눈으로 보며, 여래는 그들을 알고 있다. 쑤부띠여, 이들 모든 뭇삶들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의 쌓임을 갖추게 될 것이다. 불가사의하고 비교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고 한계가 없는 공덕의 쌓임을 갖추게 될 것이다. 쑤부띠여, 이들 모든 뭇삶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이 법문을 낮은 이해력을 지닌 뭇삶들은 들을 수 없다. 자아라는 견해를 지니거나 뭇삶이란 견해를 지니거나 영혼이란 견해를 지니거나 개성이란 견해를 지닌 자는 이 법문을 들을 수 없다. 보살의 계를 받지 않은 존재가 이 법문을 듣거나 지니거나 독송하거나 숙달 할 수 없다. 그러한 경우는 있을 수 없다.
15c. 쑤부띠여 그러나, 또한 참으로 어떠한 지방이라는 이 경전이 설해지는 곳은 신들과 인간과 아수라와 함께하는 세계가 예배하는 곳이 될 것이다. 그 지방은 오른쪽으로 돌며 경배하는 곳이 될 것이며, 그 지방은 탑묘가 있는 곳처럼 경배하는 곳이 될 것이다.
16a. 그런데 쑤부띠여, 또한 훌륭한 아들 훌륭한 딸들은 바로 이와 같은 경전을 지녀 기억하고, 독송하고, 숙달하고, 충분히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세히 설명하더라도 그들은 경멸당할지 모른다. 그것도 심하게 경멸당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이들 뭇삶들은, 전생에서 저지른 더러운 업장들이 악취로 이끌더라도, 그들은 현세에서 경멸당함으로 해서 전생에서 저지른 더러운 업장을 파괴시키고 깨달은 이의의 깨달음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16b.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나는, 과거세에, 헤아릴 수 없는 아주 헤아릴 수 없는 세월 전에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이, 올바로 깨달은 이인 연등불을 비롯한 나로 인해 기뻐하고, 흡족해하고, 나를 싫어 하지 않은 팔만사천만억 부처님들을 기억한다. 쑤부띠여, 그들 거룩한 부처님들이 나로 인해 기뻐하고, 흡족해하고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미래의 마지막 시간에, 마지막 시대에, 마지막 오백년에 올바른 가르침이 무너질 때에 이와 같은 경전들을 지니고, 기억하고, 독송하고, 숙달하여 남에게 자세히 설명하면, 쑤부띠여, 이 공덕의 쌓임에 비해 앞의 공덕의 쌓임은 백분지 일에도 십만분의 일에도 백만분의 일에도 억만분의 일에도 천억분의 일에도 못미친다. 수량에서도, 구분에서도, 계산에서도, 비교에서도, 유추에서도, 비유에서도 감당하지 못한다.
16c. 쑤부띠여, 더구나 만약 내가 그 훌륭한 아들, 훌륭한 딸들의 공덕의 쌓임에 관하여 말하거나 말한다면 뭇삶들은 미쳐버리거나 마음이 혼란될 것이다. 쑤부띠여, 그런데, 여래는 이 법문을 불가사의 하다고 말했으므로 그 작용의 결과도 불가사의 하다라고 기대하여야 한다.
17a. 이때에 존자 쑤부띠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보살승을 시작한자는 어떻게 입지해야 하며 어떻게 수행해야 하며 어떻게 마음을 닦아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보살승을 시작한 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 ; 나는 모든 뭇삶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참열반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그가 이처럼 뭇삶 존재들이 참열반으로 이끌었다 하더라도 뭇삶도 참열반에 이끌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만약, 보살에게 뭇삶이란 알음얼이 일어나면 그는 보살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영혼이라는 알음얼과 개인이라는 알음얼에 이르기까지 생겨났다면 그는 보살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보살승을 시작한자라고 이름부를 만한 어떠한 법도 없기 때문이다.
17b. 쑤부띠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 여래, 연등불을 통해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했다는 어떠한 법이 존재하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존자 쑤부띠는 세존께 대답했다 ; 제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의 의도를 이해하건데, 세존이시여, 여래게서 여래이신 연등불을 통해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했으리라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말씀하셨을 때 세존께서는 존자 쑤부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그러하다. 쑤부띠여, 그러하다. 쑤부띠여, 여래가 여래이신 연등불을 통해서 위없는 올바른 가르침을 증득했으리라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만약 쑤부띠여, 여래가 어떠한 법을 통해서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했다면, 여래이신 연등불이 나에게 사람의 아들이여, 그대는 미래에 샤끼야무니라고 불리우는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른 개달은 이가 될 것이다라고 수기를 주지 않았을 것이야. 쑤부띠여, 여래가 여래이신 연등불을 통해서 위없는 올바른 가르침을 증득했으리라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때문에 여래이신 연등불이 나에게 "사람의 아들이여, 그대는 미래에 샤끼야무니라고 불리우는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가 될 것이다." 라고 수기를 주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있는 그대로를 뜻하는 명칭이며 쑤부띠여, 여래라고 하는 것을 `생겨남이 없음'을 뜻하는 명칭이며, 쑤부띠여, 여래는 `대상의 끊어짐'을 뜻하는 명칭이며, 쑤부띠여, 여래는 `결코 생겨남이 없음'을 뜻하는 명칭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이 `생겨남이 없음'이 바로 최상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17d. 쑤부띠여, 누군가가 이렇게 오신 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가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있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쑤부띠여 그는 나에게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이렇게 오신 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가, 그것을 통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한, 그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래가 깨닫고 보여준 가르침, 거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럼므로 여래는 모든 법은 깨달은 이의 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깨달은 이는 모든 법을 법이 아니라고 말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깨달은 이의 법이라고 말한다. 쑤부띠여, 예를들어 어떤 사람이 몸을 지녔는데 아주 큰 몸을 지닌자라면 어떻게 생각하는냐?
존자 쑤부띠는 말했다 ; 여래께서 몸을 지녔는데 아주 큰 몸을 지닌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몸이 없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몸을 지녔는데 아주 큰 몸을 지닌 자라고 불러웁니다.
17f.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그러하다. 내가 뭇삶을 참열반으로 이끌 것이다라고 보살이 말했다면, 그는 보살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보살이라고 이름부를 만한 어떠한 법이 있느냐?
쑤부띠는 말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보살이라고 이름부를 만한 어떠한 법도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뭇삶, 뭇삶'이라고 하는 것은, 쑤부띠여, 여래가 뭇삶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뭇삶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법에는 자아가 없고, 모든 법에는 뭇삶이 없고, 영혼이 없고, 개인이 없다라고 말했다.
17g. 쑤부띠여, 어떤 보살이 `나는 국토를 장엄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는 국토의 장엄이라고 하는 것은 장엄이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토의 장엄이라고 불리운다.
17h. 쑤부띠여, `모든 법에는 자아가 없다. 모든 법에는 자아가 없다'라고 이해하는 자를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는 보살마하살이라고 부른다.
18a.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는 몸으로의 눈이 있느냐? 쑤부띠가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께서는 몸으로의 눈을 갖고 계십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는 하늘 사람의 눈이 있느냐? 쑤부띠가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께서는 하늘사람의 눈을 갖고 계십니다.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는 지혜의 눈이 있느냐? 쑤부띠가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여래께서는 지혜의 눈을 갖고 계십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는 다르마의 눈이 있느냐?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께서는 다르마의 눈을 갖고 계십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에게는 깨달은 이의 눈이 있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께서는 깨달은 이의 눈을 갖고 계십니다.
18b.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큰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만큼의 그 모래알에 관해 말했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께서는 모래알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큰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만큼의 갠지스강이 있어서 그 속의 모래알 만큼 많은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는 어떻게 매우 많겠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이시여, 그렇습니다. 그 세계는 매우 많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얼마나 많은 뭇삶이 그 세계요소 가운데 있더라도 나는 그들의 다양한 마음의 흐름을 알고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가 `마음의 흐름, 마음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흐름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마음의 흐름'이라고 불리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과거의 마음도 인식되지 않고 미래의 마음도 인식되지 않고 현재의 마음도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19.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이 이십억 세계를 칠보로서 가득채워 그것을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에게 보시하면 그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은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공덕의 쌓임을 낳겠느냐?
쑤부띠는 말씀하셨다 ; 세존이시여, 많겠습니다. 선서이시여, 많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그러하다. 쑤부띠여, 그러하다. 그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은 그로 인해서 많은 공덕의 쌓임을 낳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는 공덕의 쌓임, 공덕의 쌓임이라고 하는 것은 공덕의 쌓임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공덕의 쌓임이라고 불리운다. 만약, 쑤부띠여, 공덕의 쌓임이 존재했다면, 여래께서는 `공덕의 쌓임, 공덕의 쌓임이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20a.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아름다운 몸의 성취를 통해 볼 수 있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는 아름다운 몸의 성취를 통해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아름다운 몸의 성취, 아름다운 몸의 성취 라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몸의 성취' 라고 불리웁니다.
20b.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상호의 갖춤을 통해서 볼 수 있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는 상호의 갖춤을 통해서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가르치신 이 상호의 갖춤은 여래께서 상호의 갖춤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호의 갖춤이라고 불리웁니다.
21a.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께서는 `내가 가르침을 설했다' 라고 생각하는가? 쑤부띠는 말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내가 가르침을 설했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누군가가 `여래가 가르침을 설했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잘못 말한 것이다. 그는 그가 배운 진리가 아닌 것으로 나에게 대해 말한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가르침을 설함, 가르침을 설함' 이라고 하지만 쑤부띠여, 가르침을 설함이라고 인식될 만한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21b.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존자 쑤부띠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 세존이시여, 미래의 마지막 시간, 마지막 시대 마지막 500년 동안에 올바른 가르침이 무너질 때에 이와 같은 법을 들고 진실로 믿을 어떠한 뭇삶들이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쑤부띠여, 그들은 뭇삶도 아니고 뭇삶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는 뭇삶, 뭇삶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뭇삶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뭇삶이고 불리운다.
22. 어떻게 생각하느냐? 쑤부띠야, 여래께서 그것을 통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였다는 어떠한 법이라도 존재하느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그것을 통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하였다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그러하다. 그러하다. 또한 아주 작은 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지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불리운다.
23. 그리고 더구나 쑤부띠야, 그 법은 평등하며 아무런 차별도 없다. 그러므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불리운다. 자아가 없으므로, 뭇삶이 없으므로, 영혼이 없으므로, 개인이 없으므로 그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은 평등하게 모든 착한 법을 통해서 증득된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는 `착한 법, 착한 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착한 법' 이라고 불리운다.
24. 그리고 더구나 쑤부띠야, 어떤 여자나 남자가 삼천대천 세계에서 가장 큰 산 쑤메루 만큼의 칠보 더미를 모아서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에게 보시했다면 그리고 한 선남자나 한 선여인이 지혜바라밀을 통해서 이 법문으로 부터 한 싯귀를 얻어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면, 쑤부디야, 앞의 공덕쌓임는 뒤의 공덕쌓임의 백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또한 비유를 감당할 수 없다.
25. 어떻게 생각하느냐? 쑤부띠야, 여래가 `나로 인해 뭇삶이 해탈했다'고 생각하느냐? 쑤부띠여, 결코 그렇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로 인해서 해탈했으리라는 어떠한 뭇삶이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쑤부띠야, 더구나 여래로 인해 해탈했을 어떠한 뭇삶이 존재한다면, 그는 여래에 대하여 자아라는 집착, 뭇삶이라는 집착, 영혼이라는 집착, 개인이라는 집착을 지닌 자가 될 것이다. 쑤부띠여, 여래는 자아라는 집착이라고 하는 것은 집착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리석은 범부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쑤부띠여, 여래는 `어리석은 범부'라고 하는 것은 범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범부'라고 불리운다.
26a.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상호의 갖춤을 통해서 보여질 수 있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에 이해하건데 여래께서도 상호의 갖춤을 통해 보여질 수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쑤부띠야, 옳다. 옳다. 쑤부띠야, 그러하다. 그러하다. 여래는 상호의 갖춤을 통해 보여질 수 없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가 상호의 갖춤을 통해 보여진다면 전륜성왕도 여래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상호의 갖춤을 통해서 보여지지 않는다. 존자 쑤부띠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제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건데 여래께서는 상호의 갖춤을 통해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마침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싯귀를 읊으셨다.
형상을 통해서 나를 보고
소리를 통해서 나를 듣는 자들은
잘못된 사변에 빠졌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리라.
26b. 부처님은 법을 통해 보여진다.
스승들은 법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또한 아무도 법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하며 인식할 수 없네.
27. 쑤부띠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상호의 갖춤을 통해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했느냐. 쑤부띠여, 참으로 그렇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가 상호의 갖춤을 통해서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증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쑤부띠여, 아무도 그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못할 것이다. ; 보살승을 시작한 것 때문에 어떠한 법의 손괴가 시설되었거나 파멸이 시설되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보살승을 시작한 것으로 어떠한 법의 손괴가 시설되었거나 파멸이 시설되었던 것은 없기 때문이다.
28. 더구나 쑤부띠여, 참으로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들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만큼의 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서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에게 보시한다면, 또한 어떤 보살이 자아없고 근원이 없는 법을 감내하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서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아주 많은 공덕의 쌓임을 낳을 것이다. 쑤부띠여, 그러나 참으로 위대한 존재도 공덕의 쌓임을 자신이 가져서는 안된다. 존자 쑤부띠는 말씀드렸다 ; 가질지라도 쑤부띠여, 탐착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29. 그런데 진실로 쑤부띠여, 누군가가 `여래는 가거나 오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는다' 라고 말했다면 쑤부띠여, 그는 내가 말한 바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라고 하는 분은 어디론가 간 분, 어디론가에서 온 분이라고 불리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라고 불리운다.
30a . 더구나 쑤부띠여,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들이 크낙한 십억 세계의 땅의 티끌 만큼의 이와같은 세계로 부터 어마어마한 힘으로 가능했던 것처럼 아주 작은 원자 크기의 집합이라고 불리우는 티끌들을 만들었다면 쑤부띠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원자의 집합은 많겠는가?
쑤부띠는 대답했다 ;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이시여,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원자의 집합은 매우 많겠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만약 `많은 아주 작은 원자의 집합'이 있다면 세존께서는 `많은 아주 작은 원자의 집합'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아주 작은 원자의 집합'이라고 말씀하신 것들은 여래께서 집합이 아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원자의 집합'이라고 불리웁니다.
30b. 또한 여래께서 크낙한 십억 세계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래께서 세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크낙한 십억 세계라고 불리웁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전일체에의 집착이 있는 것입니다. 여래께서 `전일체에의 집착'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래께서 집착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일체에의 집착'이라고 불리웁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전일체의 파악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희론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것은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닌것도 아니지만 어리석은 범부만이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
31a. 쑤부띠여,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누군가가 여래께서 자아라는 견해를 설하셨다고 말했다면 여래께서 중생이라는 견해, 생명이라는 견해, 사람이라는 견해를 설했다고 말했다면, 쑤부띠여, 그는 진실들을 말한 것이냐? 쑤부띠는 대답했다 ; 그렇지 않습니다. 선서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자아라는 견해'를 설하신 것은 여래께서 견해가 아닌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아설 견해'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31b.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쑤부띠여, 이와같이 실로 보살승을 시작한 자는 모든 법을 알고, 보고, 믿어야 한다. 또한 그는 법의 알음얼이나 법이 아닌 것의 알음얼도 머물지 않듯이 그렇게 알고 보고 믿어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쑤부띠여, 여래가 `법의 알음얼, 법의 알음얼'이라고 하는 이것은 쑤부띠야, 알음얼이 아니라고 여래가 말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법의 알음얼이라고 불리운다.
32a. 그리고 더구나 쑤부띠여, 보살마하살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세계를 칠보로서 채워서 이렇게 오신이, 거룩한 이, 올바로 깨달은 이에게 보시를 하는 것보다 훌륭한 아들이나 훌륭한 딸들이 지혜바라밀로서 법문 가운데 한 싯귀를 받아서 지니고 가르치고 이야기하고 숙달하여 남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헤아릴 수 없고 셀 수 없는 공덕의 쌓임이란 보물을 낳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설시해야 하겠느냐? 보기를 들어 다음과 같이 한다.
별들처럼, 어둠, 빛처럼
환상처럼, 이슬, 거품처럼
꿈처럼, 번개, 구름처럼
이처럼 지어진 것 보아야 하리.
그러므로 `그는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32b. 이와같이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존자 쑤부띠와 수행승, 수행녀, 평신도, 평신녀, 그리고 보살들과 [그 밖의] 신들, 인간, 아수라들과 간다르바들이 사는 세계 전체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를 [듣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