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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스 오스미 반도 사타곳을 기준으로 남남서 방향으로 60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야쿠시마 라 부르는 섬이 있습니다. 원형의 섬으로 둘레 길이는 132km입니다. 섬 중앙에 규스 고봉 미야노우라다케 산이 있는데 1800m 이상의 봉우리가 있고 산정상은 1936m입니다. 이 산을 일본 인들은 바다 위에 알프스라고 부르며 일본 명산 100대에 포함시킨 산입니다 이산을 접근하려면은 8겹의 숲을 하나씩 벗겨내듯 걸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여 팔 겹 산이라 현지인들은 부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산과 다른 것은 연중 강수량은 10,000mm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강수량이라면 숲이 깊고 거의 정글 수준으로 인간의 진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산인데 이 산과 관련하여 올바른 정보나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현지인의 도움마저 없이 단독으로 찾아 오른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지역민들에 의하면 야쿠시마 미아노 미아노루라다케 숲은 야마히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산이 그만큼 신비롭다는 이야기입니다. 산에 혼자 들어가면 아름답고 푸른 기모노를 입은 야마히메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합니다. 마주쳤을 때 웃지 않으면 혼을 빼앗긴다고 하는군요 깜짝 놀라서 굳은 표정을 지으면 혼을 빼앗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마히메를 만나면 일단 웃으라고 하는데 실제로 야마히메를 만난 사람은 웃을 수 없다는군요. 이런 전설의 산을 찾은 한국인 김성진은 대피소 성격의 산장을 0.4km 남긴 장소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SNS를 남기고 실종되었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출입통제소를 통과하여 숲으로 들어서면 통화가 불가능한 지역으로 변했다가 고도를 높이며 산장 부근에 다 달으면 통화는 불가능하지만 SNS만 가능한 지역이 되었다가 다시 산장에 도착하면 통화가 가능한 지역으로 바뀌는 곳입니다. 1월 24일 모방송국에서 뉴스. 시간에 다음과 같이 보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규스 남쪽에 있는 섬, 야쿠시마의 미야노우라다케를 등산하겠다고 나선 30대 한국인 남성 김 성진 씨가 실종됐습니다. 야쿠시마에는 눈이 많이 내려 24일부터 등산로 입구와 주변도로가 폐쇄됐고 야쿠시마 경찰도 수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부모들은 하루하루가 지옥의 시간으로 변합니다. 부친은 김 #규, 모친은 임 #이 이십니다. 두 사람은 좋은 인연으로 만나 혼인을 맺고 얻은 자식입니다. 자식을 낳을 때 아버지는 배를 타는 사람이었기에 먼 나라로 항해 중이었다 합니다. 잠시 귀국한 후 8개월 만에 부자는 상봉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다시 잠시 머물다 항해를 떠나 다시 이별을... 아들을 키우는 일은 엄마 몫이었답니다. 부성애는 선이 굵지만 모성애는 섬세한 감정을 온전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모성애란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자신의 저서에 모성애는 유전자가 이끌어내는 것이라 말하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유전자를 지키려고 하는 유전자의 명령에 의하여 일어나는 힘이라 표현하면서도 단지 자식을 유전자라 표현한 것일 뿐이므로 애초 자식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모성애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약 모성애가 없다면 아기의 생존율은 줄어들 것입니다. 우린 생존의 조건으로 자연과 신과 인간의 균형 있는 관계에서 정의를 내리고 찾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출산한 여인에게는 에스트로겐, 프로게스데론 호르몬이 균형을 이뤄야 아기에게 애착을 갖고 자식을 안을 때 토파민이 분비되고 동시에 옥시토신 호르몬 수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모성애가 활착 되고 이어서 수유를 통하여 모성애의 발로를 결정짓는 프로락틴 분비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증세와 더불어 엄마와 아기 사이의 애착이 양육과정에서 구체화되면서 모성애는 더욱더 섬세한 기저를 이루며 두 사람의 관계를 공고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아기 울음소리에 유독 민감한 엄마는 어느 날 갑 짜기 아들이 사라졌을 때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착성이 강하게 표현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를 못 만나게 될 때 그 상실감은 상당한 충격을 경험하게 되며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종이 알려진 후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적 고통과 더불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애타게 자식을 기다리는 부부의 사정을 모방송국에서 몇 개월을 함께하면 영상물로 제작하여 8월에 방영하였습니다. 어머니 와 아버지는 거의 필사적으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최선을 다하지만 끝내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합니다.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염주와 기도를 손과 입에서 떼지 못하고 틈만 나면 기도를 이어가면서 자식이 꼭 살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부는 서로서로 힘든 세월을 보낸다고 위로하며 이해하면서도 그런 모습을 서로 보고 있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부모들의 일상을 영상을 통해 따라가 보면 눈물겹습니다. 그리움이란 가곡으로 부모님 마음을 대신해 봅니다. 님을 아들로 바꿔서 듣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찌 실종 50일을 버티셨을까? 어머니는 허리를 연신 굴신하고 양손을 빌며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지속되면서 간절함이 쌓이더니 끝내 절규로 변해 가는 것을 차마 마음에 담아둘 수 없어 대신 눈가에 눈물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습니다. – 우리 아들 아들 엄마 아버지가 엄마, 아버지가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연신 기도를 드리던 여인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동하면서 기도에 빠져 들자 여인 곁으로 남편이 다가 가 한 손으로 어깨를 감싸주자 기도를 잠시 멈추더니 앞으로 쓰러질듯한 자세로 말을 꺼냅니다. – 그런데 오늘은 비가 오잖아요 – 하고 통곡을 합니다. 이 말을 듣은 남편이 비가 오는 것을 어쩔 것인데 할 수 없잖아요, 남편은 다시 여인에게 손을 잡으며 내일은 날이 좋아진다 하고 연신 위로하며. 그만하라고 다독거리지만 여인의 한탄은 계속 이어집니다. 비가 오는데 우리 아들은 비가 오는데 우리 아들은 비를 맞고 있는데 엄마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버지 엄마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아들 아! 아들 아! 우리 아들 아! 추워서 어찌하노
비가 오는 것을 걱정하며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는 아들이 실종되기 전에는 비가 오는 것을 무척 좋아했답니다. 그 이유는 커피 마시기 딱 좋은 분위기 때문이었는데... 아들 실종 후 지금은 정말 비가 오는 것이 싫어졌답니다. 비에 젖어 있을 아들이 연상되어 슬프기 때문이라는군요 어머니의 한 탄은 계속 이어집니다. 아기를 낳을 때 아버지가 없었답니다. 아기 아버지는 배 타고 멀리 가 있고 애기가 8개월쯤 돼서 귀국해서 처음 보았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진이 엄마는 이혼을 해서 아들과 둘이 산다고 소문이 냈답니다. 어쩌다 1년에 한 번 오고 한 달 있다가 가버리고 맨날 아들하고 둘이 있으니까 아들하고 돈독하게 사이좋게 지냈고 아들이 엄마를 끔찍이 생각하고 나 역시 아들 이름 부르는 것도 너무 아까워서 이름도 안 불렀답니다. 아내의 한탄을 듣고 있던 아버지도 말을 이어받습니다. 아들은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을 자주 집으로 데려와 같이 놀다 가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난다고 하며 옛날에는 실종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내가 닥쳐보니 너무 힘든 일이라고 한탄스러운 고백을 합니다.
염주알을 굴리며 옴 살바 못 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모든 죄를 참회하고 모든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기도문을 외우며 길을 걷는 엄마는 자식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 여기 앞에 길고양이 있지요 입양해서 키우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있었으면 참 예뻐하고 그럴 텐데 지금은 아들이 없으니까 우리 삼돌이가 싫어졌어요 이름이 삼돌이 삼돌이예요 아들이 이름을 무엇이라 지을까 하길래 내가 그랬 어요 삼돌이라고 지으라고 해서 아들이 삼돌이라 지었어요 하고 말을 끝낸 후 고양이가 내실로 들어오려 하자 이를 본 어머니는 삼돌이 들어오게 해 주세요 하지만 남편은 안된다고 단호합니다. 좀 들어오게 놔둬요 들어오고 싶다 하잖아요 한번 열어줘 봐요
아버지는 처연한 목소리로 이제 살아 있는 생명에게 정을 안 주고 싶더라고요 이미 있는 건 할 수 없지만 새로운 건 가까이하기 싫어졌습니다. 내 마음이 다칠까 봐 그렇습니다. 하자 부인은 옆에서 우리 아들 김성진이 돌아오게 해 주세요 삼돌이도 기도, 할머니도 기도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식당 개업한 지 30년 넘었어요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싶어서 아들아, 엄마 랑 식당 같이 하자 이작지만 이것도 가업이라고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이렇게 돼서 참 아쉽습니다. 아들 실종 이후 부부는 30여 년간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았습니다 남편은 오랜 시간을 하다 보니까 조금 연배가 있는 분들이 단골손님으로 많았는데 그분들 한데 참 미안해요 어떤 사람들은 우리 만나러 오고 싶어도 자기가 미안할 것도 없는데 얼굴 보기가 힘들어서 못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말하자 부인이 이야기를 거듭니다. 남편은 이젠 모든 걸 자기가 하는 것이 싫다 합니다. 이에 남편은 상실감이 커서 내 스스로 자꾸 위축됩니다 한다. 이 말을 PD가 받아 남편에게 묻는다. 위축된다는 것이 어떤 뜻입니까? 주위 사람들이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본다는 거지
실종된 아들에 대한 소식이 전혀 없자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야쿠시마 섬을 찾아갑니다. 야쿠시마에 도착한 아버지는 하늘에날아간 것 것도 아니고 땅에 묻힌 것도 아닐 덴데 사람들 손과 눈에 안 미치는 곳에 있으니 발견을 못하는 것이지 하며. 시라타니운스협곡 등산로 입구에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영상을 본 후 현지경찰을 만나 동안 수색과정을 듣게 됩니다. 실종 신고 후 3주간 수색을 하였고 가이드들에게 정보를 얻어서 산에 들어가거나 뭔가 단서가 있으면 그 부분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단서가 나타나면 수색해도 지금으로서는 등산로 이외에는 위험하니까 수색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수색을 안 하는데 단서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 물어봐도 경찰들도 답이 없는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경찰을 뒤로하고 아버지는 수색 경험이 많다는 산악인을 찾아갔습니다. 우선 그 지역 산악장비 대여점 대표 나카가와 쇼지로 대표를 만나 조언을 듣습니다. 장소가 확실하지 않으니 찾기가 어렵겠습니다. 사장님 경험으로도 찾기 어렵다는 거죠? 발견하기 힘듭니다. 이전에도 조난자들을 절반 정도는 못 찾았습니다. 길을 잃으면 숲으로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야쿠시마 섬은 숲이 깊어서 방향을 잃기 쉽습니다. 그러면 보통 계곡을 따라서 내려오는데 야쿠시마 섬 계곡은 매우 험해서 폭포나 큰 바위를 여러 번 만납니다. 대부분 거기서 추락하거나 크게 다쳐 못 움직이게 되고 마지막에는 계곡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 산악인의 이야기를 듣은 아버지는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이 깊어져 갔습니다.
참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삶이 무엇인가? 인생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왜 이리 슬퍼해야 하는가 자식은 나에게 무슨 존재인가? 누구나 살면서 이런 것은 안 겪어야 하는데. 불행은 예고 없이 오니 어쩔 수 없어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아버지는 이러한 생각 끝에 마냥 여기 있을 수 없으니까 직접 가 봐야겠다 무조건 가야지하고 아들을 직접 찾으러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산을 오르면서 아버지는 제일 궁금한 게 왜 이런 데를 왔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길도 제대로 없고 돌에 이끼도 많고 나무는 빽빽하 지 길도 눈에 띄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지, 꼭 숲 속을 걸어가는 기분이야 잘 못하면 엉뚱한 데로 가기 십상이고 잘못 가다 앞 길이 막히면 방향을 잃어버리기 딱 좋은 곳인데… 눈이 왔다고 봤을 때 길을 헤매기 십상이고 아예 길이 없어지겠는데... 미야노 우라 다케 4.0km 신 다카사카 산장 0.5km이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1월 24일 오후 4시 49분 아들은 이곳에서 지인들과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친구들의 핸드폰에 흔적이 남아 있어 친구들은 실종된 부모에게이 사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곳에 서서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젖습니다. 추운 곳에서 얼마나 고생하였을까? 의식이 없어질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탄하는 사이 동행한 PD가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등반이 쉽지 않으신 데 직접 올라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한참을 말을 못 하며 말을 아끼던. 아버지는 한참 후 담담하게 아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고 싶어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아버지는 2박 3일간 산에 올랐지만 끝내 아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현지인을 고용하여 수색을 하기 위하여 야쿠시마 가이드 회장 주만 신이치로를 만나 상의한 후 수색을 의뢰하고 기다렸지만 현지인들의 수색에도 아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에게 들려준 결론은 단서가 전혀 없고 아드님이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길을 헤매서 이번에 찾아보고 단서가 없으면 더 이상 수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야쿠시마 섬 전체를 찾는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라는 말을 듣게 된 아버지는 지금까지 해 주신 일에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믿을 곳은 가이드들뿐입니다.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찾을 때까지 수색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무리겠지요 하고 반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 소득 없이 다시 돌아온 아버지 마음은 늘 납 덩어리였습니다. 실종된 아들대신 작은 이모의 자식들이 아들을 대신하여 이모와 이모부에게 카네이션 꽃과 선물과 손편지를 보내옵니다. 이를 받아 본 두 사람은 기뻐했지만 아들생각은 더욱 더 짙아집니다. 어느 해인가 아들이 보내왔던 어버이날 자신의 심정을 적은 편지를 꺼내 읽으며 스스로 위로 받습니다.
이렇게 어버이날 맞아 변변한 선물하나 못 드리고 이렇게 글만 드리는 아들이지만 언제나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저 때문에 늦게 주무시고 저 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하시는데 지금은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는 길 외에는 없는 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학교 마치고 학원을 다녀온다고 피곤하다지만 하루 종일 일하시는 부모님보다 피곤하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직 철이 들지 않아 투정도 부리고 신경질도 내지만 고단하신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어린 것 같네요 제가 고단할 때 마다 제 주위에 항시 부모님이 계셨기에 제가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후에는 제가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날까지 힘들고 어렵지만 참고 버티면 언젠가 제가 가족들의 힘이 될 것이니 그 때가지 건강하시고 웃으며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아픈 곳 없으시며 언제나 건강하게 지내세요. 아들 김 성진 올림
며칠 후 핸드폰을 통해 일본에서 보낸 온 글을 읽은 아버지는 기쁜 마음에 그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줍니다. 오늘 수색하는 사람이 올라갔다고 연락이 왔네 5명이 올라 갔다고~~ 이 소식을 접한 아내는 많이 갔네 5명 갔으면… 제일 많이 갔네요 고맙게도.. 말을 하며 남편이 일본에 갔던 당시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20일 동안 야쿠시마에 있으면서 산에 못 올라갔 대요 그래서 내가 그랬 어요. 나라면 가다가 죽더라도 올라갔을 텐데 엄마 인데 아들이 있는데 왜 못 올라가요 올라가지~ 라고 부인이 말하자 남편이 부인을 바라보며 직접 한번 산에 가 볼래? 말하자 아내는 즉시 네 갈 겁니다. 진짜 가고 싶어요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는 그냥 거기서 있으면서 가이드 따라다니면서 같이 찾고 싶어요. 하고 강한 어조로 자신의 심정을 남편에게 전합니다. 남편도 지지 않고 가능한 이야기를 해야지 가이드고 뭐 고 찾지를 못하는데 가능성 있는 애기를 해야 수긍할 텐데 자꾸 억지를 부리니까, 우리가 독촉해야 할 문제가 아니고 사정해야 할 입장이니까 관심을 가져줘서 그렇게 수색하는데 자꾸 하라 그러면 우리 욕심이야 부탁을 자꾸 나 한데 하라고 그러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그럼 내가 자꾸 부탁하지 전화하고 그러지 한 번 더 수색을 잡아주세요 부탁하지 그건 내가 다 하고 있어요, 부탁을 수시로 하는데 수시로 해도 내가 한 번 더 하지만 모래밭에서 바늘 하나 찾는다고 생각해 봐라, 안 하면 마음이 안편하고 하면 혹시 눈에 띌 까봐 기대하고 그런 거지 난들 말 안 해서 그렇지 오죽하겠나 이 말을 듣고 아내는 그런데 나는 엄마다 보니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남편은 다시 말을 빠르게 이어갑니다. 옆에서 보는 아내는 자꾸 얼굴이 어두워지니까 보는 것 자체가 힘이 들어 같이 안 있을 수도 없고 같이 살면서 매일 보니까 마음이 너무 힘들어 하고 하소연하는 남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아내는 다시 말을 꺼냅니다.
나의 일기장 맨 앞에 메모해 놓는 것은 날씨, 통제, 개수색도 안 된다. 경찰이 안 움직인다. 사실 머리는 돌아가도 근데 내 마음이 나 자신도 싫어요 너무 싫고 싫어요 하고 푸념한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솔직함 심정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실종 후 처음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아들아,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자신이 어릴 적 놀던 곳에 앉아 이 노래를 부르며 아들 실종에 대하여 넋두리를 하던 어머니는 형제들과 함께 부모님 산소를 찾아 가 참배를 드리며 울부짖습니다. 아버지! 큰 딸 이렇게 애걸복걸한다 엄마가 얼마나 슬퍼하겠 노 아버지 엄마 한 번만 도와주이소 동생도 덩달아 언니가 지금까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고 하며 빌자 언니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 아들 온다고 했어요. 아들 우리 아들아! 엄마가 이렇게 기다립니다.
엄마는 내가 정신차리고 기운을 내고 기다려야 우리 아들 올 것이고 내가 사경을 헤매면 우리 아들은 마음이 더 아플 것이고 엄마는 강하다 강하고 모진데가 있어서 기다리려고 하면 힘을 내서 기다려야 죠 엄마, 아버지가 안 기다리면 누가 기다립니까? 엄마 마음은 자식이 꼭 돌아올 것이 믿고 매일 이렇게 기다리며 하루 또 하루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실종 165일 다시 부부는 식당을 다시 영업을 시작합니다. 단골 손님들이 이 소식을 듣고 많이 찾아와 주십니다. 엄마는 오늘도 내 상상이 아니고 우리 아들은 그냥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어딘가 있다가 불쑥 돌아옵니다. 절 때 상상이 아닙니다. 아버지도 현지인들에게 마음을 열어 놓고 아들의 흔적을 찾기 위하여 스스로 결심하고 결의를 다지지만 아직까지 현지에선 좋은 소식이 없어 애가 타 들어갑니다. 적 설기 때 산행은 무척 길을 잃기 쉽습니다. 특히 폭설은 길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갑니다. 모든 사물이 눈에 덥혀 길이 안보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왜곡된 판단을 일으키고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 밭에서 행동은 많은 체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발 아래 지형을 짐작할 수 없게 되어 실족 사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설 때에는 입산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지만 산행 중에 폭설을 만나게 되면 발빠르게 원점 회귀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 찾는 산은 붉은 천이나 밝은 색 천을 이용하여 리본을 만든 다음(이를 표식기라 말합니다) 번호를 적어 갖고 다니다 번호 순서대로 나무가지에 걸어 두며 나가다 되돌아올 때 그 표식 기 번호 순서대로 확인하며 역순으로 되돌아오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대로 모든 것이 수습되어 온전하게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매듭되어 다소 마음이 치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두 분의 기다리는 일들이 하루속히 매듭되어 최소한의 상처가 치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움이란 시로 저에 기도로 대신 하려합니다.
뉘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 하시는고 백천길 바다라도 닿이는 곳 있으리라, 아들그린 이 마음이야 그릴수룩 깊으이다 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있는양 알지마오, 가보면 멀고멀고 어디끝이 있으리요, 아들 그린 저 하늘같아 그릴수록 머오이다, 깊고 먼 그리움을 노래우에 얹노라니 정회는 끝이 없고 곡조는 짜르이다, 곡조는 짜를지라도 남아 울림 들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