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를 먼저 마음에 두라는 예수의 충고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역설적이다.
당신은 이 말씀에 대해 다음처럼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걱정하려면, 무언가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걱정하라.
가족이나 친구 혹은 내일 모임 같은 것들보다
더 큰 것에 대해 걱정하라.
하느님의 일을, 진리, 생명 그리고 빛 같은 것들에 대해 마음을 써라!”
그런데 이런 것들을 마음에 두자 곧 우리의 마음은 빙빙 돌아가기를 그친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들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현존하고 있는 존재와의 일치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하여
우리들 사이에 현존하고 있다.
그래서 걱정은 기도가 되고
우리가 걱정하면서 느끼는 무력감은
하느님의 영으로 강화되어 존재에 대한 깨우침이 일어난다.
참으로, 우리는 걱정으로 생명을 연장시키지 못하지만,
짧은 생의 주기의 울타리를 훨씬 벗어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로서 영원한 생명을 구하게 된다.
그런 깨달음이 우리 걱정에 종지부를 찍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긴장과 압력으로 짓눌려서 결코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하여 하느님의 포옹하는 사랑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돌리기로 노력한다면,
걱정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늘상 웃을 수 있으며
우리의 눈과 귀를 하느님 나라의 모습과 소리에 열고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