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폭발과 발해의 멸망 [횡설수설/정성희]
정성희 논설위원
입력 2015-04-03 03:00:00 수정 2015-04-03 16:48:11
지난 2000년간 가장 큰 화산 폭발이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이었다. 단 한 번의 분화로 한반도 전체를 5c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화산재를 쏟아냈다. 마그마의 양이 폼페이를 무너뜨린 베수비오 화산 폭발(서기 79년) 때의 50배나 됐다. 폭발 당시 25km 상공까지 화산재가 뿜어 올라갔고, 시멘트 비슷한 ‘화산이류(泥流)’가 돌진해 촌락을 덮쳤고, 반경 100km는 숯 검댕이 되었을 것이다.
▷ 발해는 926년 거란족에게 함락됨으로써 멸망했지만 백두산 폭발로 사라졌다는 이설(異說)도 있다. 문제는 백두산 분화의 정확한 시점을 모른다는 점. 그런데 지난달 23일 제주에서 열린 ‘한중 백두산 마그마 연구 워크숍’에서 홍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자원분석실장이 백두산 현지 탄화목(화산재에 불탄 나무 화석)을 분석해 분화 시점이 939년이라고 발표했다. 역사의 퍼즐 조각 하나가 맞춰진 것이다.
▷ 기록상 백두산 대폭발보다 발해 멸망이 먼저라고 하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다. 발해 멸망에 관한 기록이 담긴 ‘요사’는 926년에서 400년이 지나서 나온 승자의 기록이다. 일본 역사에는 발해가 930년대에도 사신을 계속 보내온 것으로 돼 있다. 거란의 태조 야율아보기는 발해를 정복한 후 바로 돌아오다 길에서 숨진다. 그는 왜 이 땅을 포기했을까. 934년 발해 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에 투항했다는 ‘고려사’ 기록은 어찌된 걸까.
▷ 이런 점들은 거란에 의한 도성 함락 후에도 발해가 일정 기간 존속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말 궁금한 것은 그런 대폭발이 있었는데도 왜 단 하나의 기록도 없느냐는 점이다. 백두산 폭발을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발해 사람들은 그것이 화산 폭발인 줄 모르고 하늘이 내린 벌(罰)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폭발이 국가와 문명을 붕괴시킬 정도로 컸다는 점이다. 백두산이 최근 수년간 화산 폭발 직전의 징후를 나타내 한국과 중국이 7월 공동탐사에 나선다. 발해를 멸망시켰던 화산재의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펌 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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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정말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1) <지난 2000년간 가장 큰 화산 폭발이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이었다.> 는 설명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며, 어떤 통계로 말하는 것인지 앞, 뒤 설명(說明) 없이, 무조건 <지난 2000년간 가장 큰 화산 폭발이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이었다.> 고 말한다. 무엇이 그 근거(根據)인가?
(2) <‘한중 백두산 마그마 연구 워크숍’에서 홍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자원분석실장이 백두산 현지 탄화목(화산재에 불탄 나무 화석)을 분석해 분화 시점이 939년이다>라고 하였는데, 화산재에 불탄 나무화석을 분석해 보니, 939년이란 정확한 년도까지 알아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일이 정말 가능(可能)한가? 아니면 발해(渤海)의 멸망(滅亡)시점(時點)을 미리 계산(計算)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 발해(渤海)가 반도 백두산(白頭山) 주변에, 그들의 중심부(中心部)가 있었다는 말과, 글란(契丹) 곧 요(遼)가 현 북방삼성(北方三省)지대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반도사관(半島史觀)과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설명일 뿐, 원전(原典)에서 말하는 내용(內容)과는 전혀 다르며, 식민지(植民地)치하(治下)에서, 일제(日帝)가, 불쌍한 반도조선(半島朝鮮) 백성(百姓)들을 위해 만들어준, 조선사(朝鮮史) 이야기책과 똑같은 내용(內容)이기 때문이다.
결국(結局) 백두산(白頭山) 폭발(爆發)과 발해(渤海)멸망(滅亡)이라는 두 가지 사건(事件)을, 하나로 만들려는 시도(試圖)가 아니었을까? 의심(疑心)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곧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을 고착화하려는 자(者)들이 멍석을 깔아놓고, 그 위에서 춤추는 자(者)들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3) <발해 사람들은 그것이 화산 폭발인 줄 모르고, 하늘이 내린 벌(罰)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는 이런 무책임(無責任)한 말은, 자신(自身)들의 주장(主張)을 위해, 수백만(數百萬) 또는 그 이상(以上)의, 발해(渤海)백성(百姓)들을 바보로 만드는, 한없이 어리석은 자들이다. 만약(萬若) 반도(半島) 북방(北方) 백두산(白頭山)에서 화산폭발이 있고, 발해(渤海)의 중심부(中心部)가 주변지역(周邊地域)에 있었다면, 왜 그것이 화산(火山)폭발(爆發)이란 것을 모르겠는가?
왜 해동성국(海東盛國)인가? 어느 바다의 동쪽에, 흥성(興盛)한 나라를 말하는 것인가? 북방삼성(北方三省)지대가 어떤 바다의 동쪽에 있는가? 넓고 넓은 동쪽의 땅에서 흥성한 나라가 발해(渤海)라고 한다면,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주장(主張)한 “바다 해(海)”의 뜻풀이는 전혀 다른 결과(結果)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반도(半島)서남(西南)지방에 있었다는 백제(百濟) 의자왕(義慈王)에게는, 해동(海東)증자(曾子)라고 불렀는가? 넓고 넓은 동(東)쪽 땅이, 반도(半島) 서남부(西南部) 손바닥 한 땅에 있었다는 백제(百濟)를 말함인가?
참 어이없는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한 번 꼬이게 만든 조선사(朝鮮史)는, 거짓말을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반복(反復)해 양산(量産)해 낼 수밖에 없는 운명(運命)이다.
발해(渤海)는, 황하(黃河)와 관련(關聯)이 있다. 반도(半島)와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일부와 동쪽 일만(一萬)리와 관계(關係)있는 나라였다는 사실(事實)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