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마을
해남 화산면 연정 마을은 화산면 소재지와 가깝게 있다.
마을 입구에는 화산중학교가 있고 좀 들어가면 유난히도 느티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이 보인다. 마을 옆 작은 산에는 유목나무와 팽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이 산속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진 곳이라고 말하는 이 마을 이장
박종근(76) 씨는 지금은 애들이 없어서 잔풀들만이 들어서 있단다. 이 산에는
사장터가 있는데 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루와 보름에 제를 지낸다.
이 제을 당산제라 불리며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처음에 농악으로 시작하여
축문을 올리고, 마을의 만사형통과 가축의 번성, 행운, 풍농을 기원하고 제답 곡수밭에서
농악을 치는 것으로 제를 마친다. 제를 주관하는 제관으로는 마을에서 깨끗하다고 인정되는
부부가 선정되며 이들이 제물도 장만한다. 그리고 축을 읽는 축관이 1명 따로 선정되어
함께 제를 진행한다. 제를 지내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제관 부부가 제답 400평을 경작하고
마을 뒤쪽에는 작은 연정산이 야트막하게 마을의 언덕이 되어 주고 있다.
바로 연정산 아래 서당이 있던 터였다고 전한다. 현재 마을 주민의 밭으로 경작하고 있어
그 터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정열 유혜비가 새겨진 글귀로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전체 분위기는 햇빛이 하루 내내 들어오고 마을 앞이
탁 트여 면 소재지가 뚜렷이 보인다. 멀리 있는 산과 가깝게 있는 산들이 곁겹히 늘려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연정마을에서 바라보는 가슴마다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야트막하게 둘러싸여 져 산들이 이곳 마을 사람들의 마음인양 넉넉한 인심을 보는 듯하다.
마을입구 화산중학교 앞에서 가위 소리가 50년 넘게 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51년째
이발관을 하고 있는 유광명(70) 씨는 19살부터 시작하여 줄곧 머리를 깎는 일만 하고
있다. 잠깐 군대생활 빼고는 이발관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유 씨는 지난 세월도 잊은
채 하루에 한 손님이라도 꾸준히 기다리고 있다. 처음 광주에서 이발 자격증을 따서
서울로 갈까 생각했는데 가난한 집안 살림과 당장 필요한 동생 학비 때문에 고향에서
이발소를 열었다고 한다. 이발관 유광명 씨의 이발 기구와 의자는 빛바랜 추억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거울 위에 걸려 있는 액자들이 긴 세월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특히 액자의 그림은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았던 잔잔한 강물에서 한가롭게 떠있는 배와
푸른 강물의 백조가 아직도 유유자적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중학교 검은 교복
까까머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할까? 이발관 주인은 이에 대해 살며시 미소 짓고 만다.
이발소와 학교는 한 마당을 두고 숱한 인연의 끈을 모르는 척 살아왔다가 갑작스러운
인터브에 예전에는 많은 학생과 사람들을 만났다. 만남과 헤어짐에는 끝도 없이 일어났다.
그때가 지금 생각하니 감격스럽다고 한다. 화산중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서 신입생 60명을
못 받을 때가 있었다. 그때 전교생이 1,200명이나 되었고 학생 수가 많아서
이발 수입도 좋아서 아들 셋을 대학에 보내고 딸도 공무원으로 들어가게 교육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학생 수가 60명 정도 되어서 학생들이 오고 간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단다.
이발소 한쪽에서 손때가 묻은 작은 판자때기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웠다. 어릴 때
어머니 따라 이발소에 오면 키가 작아서 의자 손받지에 판자를 걸쳐 앉아 이발했었다.
이때 어머니는 "우리 아들 뒷꼭지가 메줏덩어리처럼 이쁘다"고 이발소 아저씨에게 자랑하던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화산면 광명이발소를 막 들어설 때는 51년의 세월을 한순간에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유광명 씨의 기쁨도 슬픔도 손때 묻은 이발 소품들이 함축하고 있었다. 앞으로 건강해서
더 많은 사람을 기다리는 이발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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