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9일
본문 : 계 3:4-6
제목 : 흰옷, 생명책, 시인(是認)의 약속/구원의 절대 안전
중심 내용 :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 있어서 거의 죽은 것과 방불한 사데 교회를 향해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흰옷을 입게 될 것,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것, 그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을 약속해 주셨다.
명제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설교 목적 : 사데 교회를 향해 이기는 자에게 보장된 세 가지 약속 곧 흰옷 입음, 생명책에 기록, 그 이름을 하나님 앞에서 시인 등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신분으로 영생하는 생명을 얻었고 그 생명은 영원하고 영속적이며 절대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증시켜 준다(히 10:14, 롬 8:38-39).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이 보상과 대가가 아닌 본분과 도리의 발로인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전 12:13). 우리(나) 신앙의 정체성은 어떤가. 올바른 신앙관 정립이 요구된다(롬 10:2-3, 마 7:21-23).
1. 도입
주님께서는 일곱 교회들을 향해 한결 같이 이기는 자가 받을 종말론적인 영적 상급에 대해 약속해 주신다. 사데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적인 활동만 무성하고 말씀의 본질을 추구하는 데서 나와지는 계시 의존적인 진리성과 진정성을 상실함으로 사실상 죽은 교회나 방불했던 사데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첫사랑의 상기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심으로 이기는 자의 반열에 설 수 있음을 약속해 주신다. 주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세 가지, 곧 흰옷을 입게 될 것과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 그리고 그 이름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是認)할 것을 약속해 주신다.
2. 전개 : 이기는 자에게 보장된 세 가지 약속
(1)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사데 교회는 당시 현존했던 다른 교회에 비해 외부적인 핍박이나 이단적인 교훈의 악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진리를 사모하는 열정을 상실한 채, 자의적 숭배신앙을 적극 추구함으로 다양한 종교 활동(1절하)을 앞세워 스스로 자족하는 형식주의 신앙이 팽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의 생명이 말씀에 의존돼 있음을 고려할 때(마 28:19-20, 벧후 3:18, 롬 10:2-3), 사데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이기는 자’란 말씀의 본질을 회복시켜 이를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살아가는 계시 의존적인 신앙관을 염두에 둔 표현임에 틀림이 없다. 이들에게 흰옷을 입게 될 것을 약속해 주신다.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흰것’과 ‘새것’이란 표현은 계시록 전반에서 천상적인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을 담고 있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큰소리로 외치는 흰옷 입은 큰 무리“(계 7:9)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새 하늘과 새 땅“(계 21:1)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관점에서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게 될 것’이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가운데 말씀의 통치를 적극적으로 받아 누리는 구별된 순종의 삶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 이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승리한 교회의 모습을 통해 칭의의 완성에 이르게 될 것을 약속하시는 내용이다. 그 때에 이 땅에서 믿음으로 받은 현재의 예비적인 칭의의 상태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원리 속에서 절정의 의의 상태로 완성될 것이다.
(2) 이기는 자의 이름을 반드시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다. 생명책이 의미하는 상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돼 천국 백성의 자격으로 누리는 구원과 영생의 삶을 확실하게 보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빌 3:20, 눅 10:20). 아울러 둘째 사망 곧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가는 종말론적인 심판과 형벌로부터 제외되는 것을 가리킨다(계 20:15).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의미는 미래적인 영생의 삶이 보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적으로 이미 영생의 삶을 소유해 누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본문에서 ‘영생을 얻었다’는 표현은 현재 완료형의 시제로서 이미 영생을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성도들의 삶의 성격은 여기서부터 부활의 생명인 영생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갈 2:20)이란 표현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본문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성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겠다’는 것은 영생의 삶에 대한 영원한 안전과 보장을 확약하는 표현이다. 이런 이유로 생명책에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어떤 이유로도 중도에서 취소되거나 무효화 되거나 빼앗길 수 없다(롬 8:33, 38-39). 구원 여부는 창세 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으며(엡 1:4-6, 행 13:48),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효 또한 영원하고 영속적이며(히 10:12-18), 구원의 보증의 영이신 성령의 인침과 내주의 역사도 영원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엡 1:13, 고후 1:22, 요 14:16).
(3) 이기는 자의 이름을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겠다는 약속이다. 본문은 마 10:32의 반영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여기서 ‘이름을 시인하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돼 그에게 부속된 자임을 공적으로 확실하게 증거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과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자로서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며 거룩과 경건과 성결의 삶을 살았음을 확증해 준다. 결과적으로 이기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과 영생의 실질을 철저하게 보장받게 될 것이다. 참된 지역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시인에 이미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투하는 교회원의 신분으로 큰 위로와 힘과 능력이 아닐 수 없다(롬 8:34, 히 7:2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시 121:8). 이제 사데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메시지는 보혜사이신 성령님의 현재적 사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선언으로 확증된다(계 3:6).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님의 사역은 늘 말씀을 매개로 활동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다는 사실에 집중된다(요 14;16-17, 26, 16:13).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을 위해 성령의 조명이 필요한 이유다.
3. 결론
주께서는 자의적 숭배신앙의 발로로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 치우쳐 있어서 죽은 교회와 방불한 사데 교회를 향해 처음 사랑을 상기시켜 회개를 촉구하심으로 계시 의존적인 진리성과 진정성의 믿음을 회복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신다. 특별히 이기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게 되는 구속의 은혜 곧 칭의의 복을 흰옷을 입는 것으로 묘사하시면서 그 이름이 생명책에 반드시 기록될 것이며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신다. 이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의 구원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신분으로 인해 영원하며 영속적이고 절대 안전함에 대한 보증의 성격을 띤다. 우리가 마땅히 행할 바 본분과 도리의 성격을 띠고 있는 무익한 종(눅 17:10)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 우리가죄인 되었을 때에 성자 예수께서 우리의 구속과 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롬 4:25, 5:8). 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우리를 강권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방편이 아닌 목적적으로 섬기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 신앙의 정체성은 어떤가. 영적 암매와 혼돈의 시대에 올바른 신앙관 정립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롬 10:2-3, 마 7: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