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가출
1991년 겨울 친정어머니께서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혼자서 시어머님을 모시며 버거운 생활을 하던 때였다. 남편은 불 같은 성격이라 순간적으로 내가 말실수라도 하면 그것이 꼬리가 되어 쉽게 부부싸움으로 번지곤 했는데, 그 날도 나는 초저녁에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남편은 늘 힘들게 시어머님을 모시는 내게 미안해했고 나는 나대로 작은 일에도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데 몰라주나’ 싶어 서운한 마음에 기분이 상하곤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격지심에 작은 일에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때가 잦았다.
다음날 시어머님은 많이 우울해 보였다. 우리부부가 싸운 것을 아시는지 내게 전같지 않게 대했다.
그 날은 정상인 것처럼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걱정해 주시기도 했다. 그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오후에 잠깐 사이 시어머님이 집을 나가셨다. 급히 남편한테 연락하고 파출소에 시어머님이 입고 나간 옷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신고했다. 시누이 내외와 시동생 부부에게도 알려 사방팔방으로 찾아 나섰다.
동네는 물론 한강변, 공원 등을 샅샅이 살폈으나 찾을 수 없었다. 평소에 기차를 타고 금강산에 간다는 소리를 자주 했기에 서울역에 나가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수소문해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을지도 몰라 시내 병원의 응급실도 모두 알아보았다. 그러나 허사였다. 남편은 행려병자가 사고를 당하면 가게 되는 보라매병원 응급실과 영안실까지 다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는데 동네 세탁소 아저씨가 우리 집 대문을 급하게 두드렸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마침 일찍 출근하는데 기차선로 옆에 이 집 할머니 같은 분이 쓰러져 있는 걸 보았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길로 달려가 보니 시어머님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건널목의 선로 옆에 앉아서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손바닥으로 훑어내고 계셨다.
우리 동네에는 용산에서 수색까지 운행하는 기차가 통과하는 건널목이 있다. 옛날처럼 신호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어 이곳으로 열차가 지날 때는 ‘땡 땡’ 신호가 울리고, 역무원이 상주하며 신호를 관리한다. 주로 수색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는 화차였는데 가끔은 용산역에서 차선을 바꾸기 위해 후진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 건널목에서 시어머니는 머리에 상처를 입으신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어머님은 천천히 후진하는 화차에 올라타려다 바깥쪽으로 넘어지면서 선로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었다. 느리게 후진하는 기차였기에 그만했지 만약에 제대로 달리는 기차에 그렇게 부딪혔다면 시어머님의 시신도 찾지 못했을거라 했다.
그 길로 상처에 수건을 대고 지혈을 시키며 가까운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상처를 씻어내고 봉합을 했는데 머리를 무려 열세 바늘이나 꿰맸다. 눈 위에서부터 정수리 옆까지 찢어졌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않아 뇌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시어머님께 왜 그곳에 갔었느냐 물으니 금강산에 가는 기차를 타다가 미끄러지셨다고 했다. 하지만 왜 금강산에 가려고 했냐는 물음에는 그냥 속상해서라고 얼버무렸다. 그 전날 우리 부부가 다투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하신 게 분명했다. 나는 그런 일을 당하신 시어머님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우리 부부 때문에 일이 그 지경까지 발전되었다는 것에 자책감이 앞섰다.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
시어머님은 그 상처 때문에 얼마 동안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 다니던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기록을 모두 가져와 아예 이번 기회에 정신과 치료도 집에서 가까운 성모병원으로 옮겼다. 전문 정신병동이라 보호자는 면회시간만 입실이 허락되어 그나마 간병인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소지품도 아주 간단한 것만 허락되었는데 세면도구가 전부였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병원으로 달려가면 시어머님은 옆 침대의 환자와 물건을 가져갔다고 실랑이를 하곤 했다. 어느 날은 비누를, 어느 날은 칫솔을 가져갔다고 하는 바람에 옆 침대의 시어머님보다 훨씬 젊은 우울증 환자는 나를 붙잡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시어머님은 간단한 물리치료와 머리에 상처가 아물 때까지 상처를 소독하는 정도의 치료만 받았다. 정신과에서도 외과와 병행해서 회진을 했지만 이미 아는 병세라서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다. 안정제를 썼는지 낮에는 주로 주무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병원에 가니 시어머님은 침대 시트 밑에 두툼한 종이봉투를 움켜잡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며 반색했다. 내가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니 돈이라 했다. 그 종이봉투 속에는 만원권으로 상당량의 현찰이 들어 있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어느 교우에게 빌려줬던 돈을 전날 밤에 받아 밤새 침대 시트 밑에 놓고 불안해서 화장실도 못 갔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받고 밤새 얼마나 노심초사했을지 상상해보니 참 기가 막혔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에게 보호자한테 연락도 안하고 입원실로 현금을 갖다 주는 교우의 자질도 한심스럽고, 모든 것을 비밀로 하다보니 그런 경우를 맞는 시어머님도 한심스러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