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기 94년 6월 9일 화요공부방 - 정전 아홉 번째 시간
□ 제1 총서편
□ 제2장 교법의 총설
반갑습니다. 이 시간에 이렇게, 집에서 쉬시면 좋을 텐데 마음먹고
오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마 종교, 교법에 대해서 또는 미래사회의
종교인의 모습에 대해서 또 성자란 분은 어떤 분인가. 현재 각 종교의
특성, 앞으로 미래의 종교는 어떤가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박예성 교우님의 원고 받으셨죠? 어때요? 저보다 더 잘했습니다.
내가 오늘 할 것이 없어. 너무너무 잘해서, 박수 한 번 쳐주세요.
내 생각에는 원고 준비하는 시간이.. 아마.. 20분 발표했는데, 100시간
이상 준비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 속에 삽니다.
자 교법의 총설을 하면, 집에서 이것을 10번 20번 30번 이상 읽고
오셔야 되요. 그래서 아 이렇구나. 나 같으면 이것은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단어적 설명을 한다면 서로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본인이 먼저 충분히 예습을 해 와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시간이 훨씬 재미있어요..
예습을 안 해온 사람들의 특성이 뭐냐면.
첫째, 어렵게 느껴지고,
둘째, 재미가 덜합니다.
예습을 해온 사람은 훨씬 더 재미가 있을 것이고,
훨씬 더 쉬울 것입니다. 예습을 잘 해오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저번 주에는 개교의 동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개교는 어떻게 해서 된 것이죠? 대종사님이 1916년도에 영광에서
26세의 나이로 대원정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원불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원기 원년이 됩니다. 금년이 원기 94년 인데요.
지금은 대각하신 걸로 원불교가 이제 94년이 되었습니다. 94년 동안
원불교는 대종사님의 대각을 말미암아 제자들이 모이게 되고,
대종사님의 교법을 제정해서 회상이 구성된 것입니다. 회상..
대각 -> 교법 -> 회상 -> 중생제도
깨달음을 얻어서 교법을 만들게 되죠. 그리고 한 회상을 만들게 됩니다.
회상이라는 것은? 회상이란 말 앞에 저런 말이 쓰입니다.
영산회상
일원대도회상
일원회상
영산회상이다. 과거 서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취산이라고도 얘기를
합니다만, 영산회상이라고 합니다. 회상이란 말은 모든 모임 중에 가장
위가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런 뜻만이 아니라, 가장 위가 되는
모임으로써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 단체를 회상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종교단체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래서 원불교를
‘일원대도회상’이라고 합니다. ‘일원회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원주의, 일원상에 바탕 한 회상이다.
여러분들은 이 회상에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를 잘 모르시면 회상이란 말이 뭔 말인지 모르죠.
종교는 액세서리 같이 ‘내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그 생각은 종교와 자기 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성자가 나시지 않았고 이런 회상이나 종교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아비규환 입니다. 짐승의 세상, 전쟁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종교만 난무하면 가난해집니다. 그러나 도덕만 빠진 과학문명은 전쟁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해서 성자들은 깨달음을 얻어서
그 시대의 한 부분들을 맡으셨어요.
공자님은 중국을 맡으시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를 맡으시고,
아랍 쪽에는 예수님이 나오셔서 인심을 제도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맞게 민심을 봐서 법을 짜는 것이 성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지나버려 가지고, 한 지역만을 맡는 교법
가지고는 안되겠다. 또 옛날엔 민심이 어두웠다. 그러기 때문에, 장엄과
방편이 많이 필요했다. 의인화하고, 인격화하고, 때로는 신비화,
장엄화해서 대중들을 어떤 그런 거기에 맡는 방편을 쓰셨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툭 터져서 하나의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때는 세상이 하나로 통합 할 수 있는 그런 사상, 그런 교법,
그런 종교, 그런 삶의 지표가 나와야 했는데 그것을 위해 나오신 것이
대종사님이다... 정산 종사님께서는 대종사님을 이 세상의 주세불로
천명해주셨습니다. 주세불이다.
그래서 원불교는 ‘모든 성자들이 다 찾아온 것이 바로 원불교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처음 들은 사람들은 우스운 소리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모르면 우스울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모든 과거의 성자들이 여기에 다 모인 곳이 바로 원불교다...
원불교는 모든 종교를 통합했다. 왜? 일원상이라고 하는 어떤 종지에..
일원상이라고 하는 어떤 진리에 통합시켰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들으면 우스울 소리죠.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그것이 사실입니다.
대종사님은 새시대의 책임을 지고 나오신 분이고,
당신도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내가 여러 회상을 펼쳐왔지만’
그랬습니다. 당신이 인도에 어디에 펼쳤다. 그런 말입니다.
‘이번 내 놓은 회상이 가장 큰 회상이다. 전만무 후만무하고
앞으로 5만 년은 갈 것이다’ 라고 당신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깨달음을 얻으면 물론 과거의 종교와 어떤 것을
흡수해서 한 것이죠. 대종사님은 깨달음을 얻으시고 여러 종교의 경전을
열람하십니다. 깨달음을 얻을때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당신 혼자 어렸을 때부터 구도심을 내고 혼자 여러 가지 의심을 내서
수행한 결과에 약 20여 년간을 걸쳐서 수행한 결과, 젊은 나리에 대각을
하신 것입니다.
깨닫고 타 종교를 열람하던 중에,,
그 중에 꿈에 본 ‘금강경’을 불갑사에서 구해오시게 합니다.
그래서 그걸 보시고는 ‘아.. 내가 깨달은 것이 나만 깨달은 것이 아니라,
다 이미 먼저 깨달으셨구나’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기독교 경전도
보셨고 도교의 경전, 유교의 경전 다 보셨습니다. 이슬람교의 경전까지
다 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판단하시기에..
‘아하. 서가모니 부처님은 성인 중에도 성인이시구나.. 나는 내 연원을
내 뿌리를 서가모니 부처님께 대겠다’고 맥을 대버린 것입니다.
원불교는 유불선 3교를 통합 하면서도 그 중에 새불교다. 부처님을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모신 종교다. 왜그러느냐? 오늘 그 내용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원불교는 비로소 불교와의 관계. 또 앞으로 미래 사회의 교법 또는
종교의 특성에 대해서 밝혀주셨다. 다음주부터는 일원상의 진리에
대해서 공부하고,, 오늘은 교법의 아우트라인-윤곽-입니다.
전반적이 것에 대해서 하는데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불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교는 대도라고 해놓고, 불교가 각 종 각파로 분리되어 서가모니
부처님의 본의에서 벗어난 것을 비판하셨습니다.
두 번째, 제도에 대한 비판을 하셨습니다.
세 번째,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대안으로써 ‘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하는 것을 제시하셨다.
한 종교가 형성이 되려면 아까 이런 것들이
대각 à 교법 à 회상 à 중생제도
있어야 된다. 깨달음이 없이는 종교를 이룰 수가 없고, 교법이 없이는
종교가 되질 않습니다. 회상은 많은 신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중생제도에 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요.
‘원불교가 세를 확장하고 있다’고 이런 소리를 하고 있어요.
‘원불교는 돈이 많더라’ 이런 소리를 들으면 제가 참 가슴이 아파요.
원불교는 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모으기 위한
집단도 아닙니다.
원불교의 가치관 하나로 모인 집단입니다.
원불교의 실체는 없어요. 누구나 그 가치관에 동의하고 그 사상에
함께하면 그 원불교에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출가한 교무님만 주인이
아닙니다. 재가한 교도든 출가한 사람이든 그 가치에 동의하고 그 뜻,
정신에 함께하겠다고 하면 거기에서는 얼마든지 주인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무형의 정신을 함께한 집단이다. 그것을 함께하기 위해서
하다 보니까 교단이 형성되어서 제도가 형성되고 이런 건물도 필요하고
교육하기 위해서.. 훈련하기 위해서 이런 것이 필요한 것이지
뭐 개인 재산 늘려가지고 잘 살자는 그런 뜻 아닙니다.
이중에는 그런 분이 안 게시겠지만, 그런 분들을 만나실 것입니다.
정말로 어떤 하나의 집단으로 떼어놓고 바라보고 어떤 물질적
세계관으로 바라본 그런 것입니다. 만약 물질적 세계관인 사람들이
여기 와서 무슨 명예를 찾을 것이며 여기 와서 무슨 돈을 벌 것입니까?
여기 와서 무슨 편안함을 구하겠습니까? 여기는 그런데 아닙니다.
그런 것 있다면 저도 여기 안 삽니다. 여기는 바로 그런 사회적인 돈을
버는 데도 아니고 명예를 구하는 데도 아니고 그런 편안함을 추구하는
데도 결코 아닙니다.
원불교는 불법을 주체 삼았다. 그래서 원 불교라고 한다.
그럼 원이란 뜻이 무엇이냐?
圓 = 진리
원이란 진리를 말합니다.
형이상학이라고 얘기하는데, 우주만유의 실체, 우주만유의 본체,
우주만유의 실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로 말하면 하느님과 둘이 아니다. 똑같습니다. 그것을 내용적으로
풀어버리면 이것이.. 인과와 영생이다.
진리의 실체를 두 개로 쪼개면 인과와 영생이다. 그것을 깨닫고,,
뭣이 있어야 깨닫나?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불’이라는 것은 깨닫다는
뜻과 마음이라는 뜻, 그래서 ‘심즉불’이다...
또 ‘각’이라는 소리가 그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왜 불교를 넣었습니까? 원교라고 하지?’ 그러니까.
정산종사님이 원교 진리만 있으면 뭐하냐? 그 진리를 깨닫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래서 원불교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佛 = 깨달음, 마음
앞에 - 불교는 무상 대도라 - 그랬습니다.
사실은 불교라는 말 보다는 불법이 맞을 것입니다.
‘불법은 무상대도다’
‘무상’이란 말은 위가 없다는 말입니다. 무등등이다, 최상이다, 상이 없다.
최상을 넘어선 소리다. 광주의 무등산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무등등이란 말이 뭐냐? 이게 바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무상이란 진리를 말한다. 이 상이 있으면 하가 있다. 무상이라는 것은
상도 없고 하도 없다는 말이다. 절대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위와 아래
둘로 나눈 차별과 상대의 세계가 아니라, 이런 차별과 상대를 넘어선
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전체이고 하나인 그것을 무상이라고 한다.
대도란 말은?
대도를 반대로 말하면 소도. 작은 길이 있고 큰길이 있지 않겠냐...
작은길이 뭡니까? 불이나서 소방소에 신고를 했는데 길이 좁아서
소방차가 들어갈 수가 없네... 길이 좁으니까...리어카나 자전거로는
갈 수 있겠죠.
인도에 가면 길이 얼마나 좁은지 두 사람이 지나가도 부딪힙니다.
그럼 차가 갈 수 있겠어요? 여기서 대도라는 것은 모든 생령, 범부,
중생, 일체, 유,정 무정, 일체 생명이 다 갈 수 있는 길이다.
‘육도사생’이 전부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대도다.
원불교만 믿는 사람도 아니고, 돈 있는 사람, 잘 생긴 사람, 똑똑한 사람,
남자만, 여자만,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나 모두 다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바로 대도라 한다.
그래서 불교의 무상대도를 좀 전에 예성교우가 얘기 했듯이 서품 3장에
나온 말씀으로 설명이 되어있죠. 이것 참 중요합니다. 불교가 첫째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혔다. 성품의 원리라는 것은 바로 대소유무의 원리가
밝혀져 있다. 마음의 원리, 성품의 원리가 밝혀져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저번에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교당에 20년 이상 된 사람한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회를 볼 때, 사람들을 바라볼 때,
본인의 마음을 볼 때, 순자가 말한 성악설이 맞는 것 같습니까?
맹자가 말한 성선설이 맞는 것 같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성악설이 맞는 것 같소. 왜? 이 사회. 뉴스를 보세요.
사람들 관계를 보세요. 기독교에서 말한 이 죄인이란 말이 맞습니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이란 말이 맞습니다.
그럼 본래 그렇게 다 나쁜 놈인가. 이런 것을 원리를 밝혀놓으셨다.
나라는 존재는 원래 능선능악도 아니고 무선무악이다. 그런데 경계가
오니까 능선능악이더라. 여러분 마음을 보시면 알지. 그렇죠?
어떤 사람들이 저는 착한 것 같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도 경계에 따라서 패기도 합니다. 저도 실수할 때 많습니다.
그런데 다시 유무자리로 오면 선인이 악인으로 악인이 선인으로
바뀌더라. 이것이 우리 선악만 보더라도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대소유무의 성품의 원리라는 것은 우주만유의 원리가 똑같습니다.
우리 몸도 말이죠. 전체가 다 대입니다. 각각의 오장육부가 다 소입니다.
세포도 계속 변화하고, 우리 몸도 그대로 대소유무로 변화합니다.
대소유무는 성품의 원리라고 했지.. 대종사님이 밝혀놓으신 것이다.
두 번째는 생사대사의 해결. 생사를 불교에서는 뭐라고 하죠?
저번에 추기경 돌아가시니까 사람들이 선종했다고 하죠. 천당이다.
불교나 원불교는 뭐라고 하면 생사해탈이라고 합니다. 생사거래라고
합니다. 왔다 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올 것이다. 마치 춘하추동과 같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의 나무 또는 땅 속의 뿌리만 있는 것이 봄이 되면
어느새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듯이 우리 인간도 몸은 이미
없어졌지만 다시 새 생명으로 나오는 것과 같이 생사는 생사가 아니라
거래다. 그래서 그 거래공부를 할 것 같으면 바로 해탈이 된다.
노자가 자신의 부인이 죽을 때 꽹과리를 치면서 잘 갔다고 축하했답니다.
남들이 볼 땐 미친놈이죠. 생사나 육도윤회를 원불교에서 가장 잘
밝혀주었다. 그래서 천도재도 가장 잘 되어 있는 것입니다. 원불교가
많이 컸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에서 이런 천도의식을 같이 했습니다.
간단하게 약식으로 했지만…
셋째. 인과의 이치를 드러낸다. 사실은 기독교에서 다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잘 드러낸 것이 불교나 원불교다. 인과를 뭐라고 하죠?
‘여수다’ 라고 합니다. 줄 여자, 받을 수자. 주고 받는 것이다. 그래서
인과를 제대로 알면 아니할 수 없는 것이고, 주는 자가 받는 자고 받는
자가 주는 자가 되는 것이다. 가는 자가 오는 자가 될 것이고 오는 자가
가는 자가 될 것이다. 이것이 인과의 원리이다.
이것을 확실히 알면 삶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는 것이다. 처음에 원불교를 믿을 때 제일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이걸 겁니다.
저도 아버지와 많이 싸웠습니다. ‘인과? 세상 좋게 하려고 내놓으신
것이지..’ 제가 이러면서 아버지에게 달라 들었습니다만..
이 인과를 제일 쉬운 말하면 ‘세상에 공짜 없다’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러분 공짜 있어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가지도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느끼는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이것이 인과다.
이 생에 복 왕창 지어놓으면 내생에 받기 싫어도 받는 것이고, 이 생에
복은커녕 주위 사람에게 피해만 주고 이기적으로 사는 놈이 다음 생에
복 받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내생까지도 안 가고 이 생에서 주고
받는다고 하잖아요. 인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본인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네 번째.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수행의 길이다.
이 수행의 길이 뭐냐. 어떤 종교는 신앙 믿음만 있습니다. 참 희한하다.
기독교가 맨 먼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시대적으로 민심이
어두우니까 신앙적으로 흘렀구나 할 텐데. 불교는 먼저 나왔다.
불교는 수행길을 참 잘 밝혀놓았습니다.
여러분. 목사님 설교 들어보세요. 제가 교회를 다녔잖아요. 제가
카톨릭학교를 나왔잖아요. 설교를 들으면 90%가 기도하자는 것이다.
믿자는 것이다. 기도하면 위력이 나오고. 믿지 않으면 위력이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막 홍해가 갈라진 것도 갈비뼈로 여자가 나온 것도
아버지 새끼 없이 태어난 것도 다 믿자는 것.
이건 지금 시대와 안 맞는 것이다.
불교는 아주 수행길을 아주 잘 밝혀놓았다. 우리 마음의 속성. 마음의
내부에 잘 갊아져 있는 핵심. 우리의 마음은 바로 텅 비어있다. 그리고
훤하고 밝다. 묘하죠 우리 마음은 귀신같이 알잖아요. 그리고 그것은
바른데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죽을 때 다 후회하고 죽습니다. 사형수도
거의 다 후회하고 죽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결국은 정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습관과 욕심에 의해서 그르지만
결국 본래 마음은 정이다. 이것을 일찌감치 젊을 때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수행이다. 공을 갖게 해주는 것이 수양이고 원이 연구고 정이
취사다. 그리고 수양 - 정, 연구 - 혜, 취사 – 계 라고 한다.
이것이 마음의 원리이고 속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수행 길을 잘 밝혀놓았다.
애들은 신앙하라고 하면 잘 믿어요. 애들은 엄포를 놓거나 유인하면
되는데 나이 먹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웃어 버리잖아요. 이제는
종교가 간단하게 신앙으로만 신비적 장엄으로 겁줘서 될 시대가
아닙니다. 사실적으로 드러내 주어야 한다. 무엇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사실인지 그리고 본인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법문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필요한 것은 다 남는다. 하다못해 악법도..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왜 조폭이 남았느냐?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남게 되어있다. 이제는…
뭐가 필요한가? 종교가 필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불교는 무상대도라 그 진리와 방편이 호대하므로 여러 선지식이
이에 근원하여 각종 각파로 분립하고 포교문을 열어 많은 사람을
가르쳐 왔으며,
선지식은? 최소한 깨달음을 얻으셔서 스승이 될만한 분 제불조사를
이야기합니다. 선지식에 근원하여 각종각파로 분립했다. 불교의 파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불교신문을 보면 오늘도 하나 생기고 내일도
하나 생기고 각자 좀 잘났으면 만듭니다. 무슨종.. 마음의 원리에 바탕이
되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경험세계, 자기의 인연에 따라서 그 파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불교의 염불종, 선종이 있다.. 이것이 사실은 수양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것인가? 인데 주로 염불만 합니다. 자기가 염불해서
재미를 봤거든… 물론 염불을 하다 보면 깨달음에서 실행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교도 사실은 그 원리는 본래 하나이다.
교종의 경우 교종은 연구입니다. 어떻게 교리와 제도를 제대로 공부를
하면 부처님의 법을 빨리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율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취사입니다. 내가 어떻게 계행을 잘 지켜서
몸이 깨끗해지고, 마음도 깨끗해지고 안정되어서 깨달음의 지혜가 솟아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각종 각파로 분리되어 있지만 사실은 종교의 근본 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그렇게 나뉜 것이다.
<5대 성자의 근본정신> - 제불제성
첫 번째 부처님. 부처님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바로 대평등의 자리,
대각주의. 크게 깨달으면 된다는 것이다. 대평등의 자비를 내놓으신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근본정신이다.
두 번째, 노자의 정신은 대 해탈의 자연주의이다. 무위주의. 노자의
도덕경을 공부해보면 이게 원리가 잘 밝혀져 있다. 해탈의 자연주의다.
어떻게 보면 노자의 공부를 하면 무정부주의입니다. 정부도 지도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그래서 무위,
어떤 인위적이지 않는 자연스런 자연주의입니다. 도가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산 속으로 많이 갑니다. 인위적인 게 싫으니까. 다음 예수님은
대희생의 박애주의이다. 유화주의, 사랑입니다. 모성복귀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는 자기 자아에 복귀하고 예수님은 어머님 같은 모성에
복귀하고, 대상은 하느님입니다.
부처는 법신불이 대상이고 노자는 도가 대상이고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대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가 공자입니다. 대실천의 중도주의, 인의. 공자님은 무극,
태극을 내놓으시고 인을 내놓으신 것이다. 중도를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도 핍박을 받으셨고, 공자님도 핍박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상갓집의 개새끼보다 못하다는 소리도 듣고도 어떻게 하면 중생들에게
인을 내세워서 제도해볼까 하는 뜻을 가지시고 경도 편찬하셨다.
그럼 우리 대종사님은 대원만의 일원주의, 그래서 일원상을 내놓으셨다.
그리고 세계주의이다. 제가 이것을 왜 말씀 드리냐면 이 교법의
아우트라인. 교법의 기본을 잡는데 있어서 타종교와의 관계를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깨달으신 성자가 민심과 지역에 따라서 제도와
방편을 내놓으신 것이 바로 종교.
부처가.. 왜 평등일까요? 그때 당시 계급 차별이 얼마나 심했습니까?
그런 차별을 깨뜨리셨다. 성품의 원리가 바로 평등하다.
노자님은 그 억압받는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해탈을 하게할까?
예수님은 일체 사람들의 죄를 대속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을 하신 것이다.
한겨례 기자가 밥을 먹으면서 얘기하는데 ‘원불교는 희생자가 별로
없잖냐? 천주교는 희생자가 많다. 개신교도 희생자가 있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하려다가 꼭 참았다. 옛날에는 희생이 필요해요. 성자가 죽을 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도 사형 당했잖아요. 강증산 선생님,
해월 최시형 선생님 다 사형을 당했잖아요. 그때 당시 어두운 시대였기
때문에 튀면 다 죽었다.
원불교는 죽을 마음으로 안 죽고 열심히 하는 것이 원불교이다.
대종사님이 9인 제자들에게 사무여한 – 편집자주: 죽을지라도 남은 한이
없음.- 죽으라고 칼까지 내놓고 죽으라 했는데, 다시 살렸잖아요.
무엇을 살렸어요? 너희들 욕심은 다 죽었다. 과거의 너희는 죽었다.
거듭나라. 육신이 죽는 부활이 아닌 마음이 다시 새롭게 거듭나는
부활이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의 종교는 죽어서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을 마음으로 살아서 살리는 것이 진짜 살리는 것이다’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꾹 참았습니다.
원불교 출가위 조항에 보면 ‘모든 종교의 교리를 정통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성자들께서 어떤 종교적인 원리나 이치를
내놓으시고 어떤 뜻을 펼쳤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 진짜 공도자숭배는
내종교 네종교를 떠나서 그 분이 이 세상을 위해서 공덕을 끼친 것이
있다면 공도자로 받들어줘야 한다. 예수님도 우리가 공도자로
받들어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원불교의 정신이다. 왜? 많은 중생들을 위해서 당신이 목숨을
받쳐서 지금까지 우리 인류의 정신을 지도해 왔으니 엄청난
공도자입니다. 이것이 원불교의 정신입니다.
서로 융통을 보지 못한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대종사님이 ‘어떤 아저씨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을 했고, 곳곳마다
처를 얻었어요. 거기서 난 자식들이 자기 아버지가 각각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아버지가 한 양반이네. 앞으로 종교가 그와 같은 줄 알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산종사님이 제자에게 ‘우리의 본의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합니다.
과연 예수님이 내 종교라고 하면서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불신하면 지옥
간다고 했을까? 과연? 지나가는 똥개에게 물어봐도 답이 나올 것 같아.
내 생각에는… 과연 공자님이 지금 시대에 제사만 3년 상 지내면서
직업 팽개치고.. 그렇게 효도만 하라고 했겠는가? 과연?
노자님이 과연 이 사회를 내팽개치고 자연으로 가라고 했겠느냐?
그 정신을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 본의를 알지 못하고 어떤 형식만
따르다가 때로는 신비주의, 때로는 장엄주의, 때로는 형식주의로 빠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원불교에서 내놓으신 것이 UR이다. 유나이티드 릴리젼스 United
Religion. 나라를 통합한 유엔UN이 있듯이 종교를 통합한 유알UR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대산종사님이 계속 제시해 주시고, 지금 UN에
NGO 파트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우리 원불교 교무님이십니다.
종교 파트 실무책임자입니다. 이번에 김성곤의원이 세계종교통합 예산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원불교의 정신입니다. 또 한국의 6대 종교
협의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처음 제안 했고 서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또 삼소회가 있죠. 여자 수도자들의 모임이라고 할까요? 카톨릭의 수녀,
불교의 비구니, 원불교의 교무가 함께 원불교의 익산 성지로부터
시작해서 인도, 이스라엘까지 갖다 왔죠. 그것을 처음에 제안하신 분이
김지정 교무님입니다. 앞으로 종교가 어떻게 남녀가 평등하며, 종교가
소통할 것인가 생각하며 제안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고 한다. 수녀가 우리 원불교
교무님에게 고개 숙이면서 인사를 안 한다고 했단다. 진리가 볼 때는 다
똑같은 양반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원불교는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원불교는 개신교, 불교, 카톨릭,
이슬람교.. 이것을 싹 쓸어버리고 원불교가 승리한다. 이것이 아니라.
원불교가 들어가서 여러 성자의 박애주의, 인도주의 등등의 본래 목적과
본의를 그대로 살려 낼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본의는 도덕천하위일가
本意는 道德天下爲一家
정산종사님은 우리의 본의를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본의本意는 ‘도덕천하위일가 道德天下爲一家’ 라고 하셨다.
도덕으로 천하를 한집안 삼는다는 뜻이다. 도덕은 뭐냐? 도덕은 바로
진리다. 진리란 고금을 통해서 변하지 않는 것을 진리라고 한다.
신앙수행이 경전되고 동과 정이 아울리고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니고
일과 이치가 하나가 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시대와 나라를 떠나서
다 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종사님이 대종경은 각 종교의 특성이나 한국사회에 맞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전만큼은 어느 사회, 나라에서도 아무런 상관 없게
만드셨습니다. 정전은 어느 나라, 어떤 사람이 봐도 다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 정전입니다. 그래서 복과 혜의 원천수라고 했다. 복과
혜가 쏟아져 나오게 하는 것이 정전이다. 정전을 공부할 것 같으면 복과
혜의 원천수를.. 금강석의 뿌리를 발견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자는 것은 바로 도덕천하위일가.
도는 수행이고, 덕은 신앙입니다. 도는 공도리(空)를 알자는 것이고,
덕은 공도자(公)를 삼자는 것이다. 도는 지혜가 되고 덕은 복이 됩니다.
도(道) |
덕(德) |
수행 |
신앙 |
공(空) |
공(公) |
지혜 |
복 |
이치 |
일 |
종교 |
정치 |
동남풍 |
서북풍 |
종교가 아무리 겉모습이 좋아도 첫째, 도를 깨쳐야 합니다.
도를 깨쳐서 덕을 나투어야 합니다. 도를 깨쳐서 실행하는 것이 덕이
되어야 하고 그 덕이 다시 도로 승화 되어야 합니다. 서로 병행해야
합니다. 원불교는 봉사단체, 자선단체 아닙니다. 먼저 도를 깨쳐야
합니다. 그래서 봉사도 하고 자선도 하는 것입니다.
도는 이치요, 덕은 일이다, 도는 종교요, 덕은 정치다.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다 알아서 같이 하자는 것이다. 도를
동남풍이라고 했고, 덕을 서북풍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도를 알아서, 종교를 통해서 동남풍을 불게 해서 다 살려냅니다.
그러나 또 현실 속에서는 법률, 정치, 규제, 제도를 통해서 해내자는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전망품에 보면은 지금은 종교인들을 관공서나
정치계에서 멀리 한다. 그러나 앞으로 훈련 받은 종교인이 사회에서
쓸모가 많아진다. 그러면 종교가에서 인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는 썩은 죄인들이 모여 살고, 돈만 벌면 되고, 종교만
깨끗하고, 우리만 잘하고, 우리만 신앙 생활하는 이런 종교는 앞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종교는 사회에서 잘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환영 받게 되고 그것이 앞으로 진짜 종교의 모습입니다. 그것의
출발은 도를 깨침에 있다.
첫 번째로 중요한 도가 응용무념應用無念의 도입니다. 응용무념의 도를
깨쳐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도입니다. 세 번째가
무자력자보호의 도입니다. 네 번째가 정의를 세우는 도입니다. 이것이
사은의 기본입니다.
왜 사은의 은덕이 나타나느냐? 그것이 바로 이런 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천지는 응용무념, 부모는 무자력자 보호, 동포는 자리이타, 법률은
정의를 세우는 도를 실행하기 때문에 그 은덕으로써 응용무념의 도로써
우리가 살 수 있게 해주시고, 무자력자 보호의 도로써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자리이타의 도로써 서로 사농공상이 살 수
있도록 해주시고, 정의를 세우는 도로써 법률을 내놓아서.. 종교의 법률,
정치의 법률, 어떤 도덕 규범을 내놓아서..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닙니까?
알고 보면 우리가 종교의 도와 덕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도
벌률은의 조그만 부분밖에 안 된다. 그런데 신문에서는 종교기사는 다른
종교인들이 싫어한다고 빼버립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왜 우리가 종교가 다르면 전쟁을 해야 합니까? 십자군 전쟁뿐만이
아니라 종교 때문에 죽은 수 많은 생령들.. 그것을 예수님이
원했습니까? 부처님이 원했습니까? 그것을 공자, 노자가 원했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꺼리를 아직까지 우리가 전쟁을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이 주세불로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합활용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어디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그렇게 신비적으로 태어났겠어요? 초등학생에게 물어봐도 알
것을 아직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그 다음은 과거 불교의 제도에 대한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조선불교혁신론이다. 나중에 불교혁신론으로 바뀌었는데.. 원불교의
이름이 처음에는 저축조합이었습니다. 원불교란 이름이 아닌 ‘근검절약,
금주단연’ 이걸로 돈을 모아 조합원이 만들어져서 방언공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바뀌는 것이 불법연구회 기성조합이라는
것이었다.
맨 처음에는 ‘대명국 영성소 좌우통달 만물건판양생소 ‘ 였는데
저축조합으로, 불법연구회 기성조합이 되었다가 나중에 불법연구회가
되었습니다. 정전을 보면 불법연구회에서 만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불교라는 이름은 나중에 정산종사님께서 천명을 하신 것이다.
불법연구회 이름을 개명을 해서 천명한 것이다. 그럼 대종사님이 혼냈을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원불교의 교명은 이렇게 변천이
되었습니다.
원불교가 불교를 혁신한 내용이 여기에 간단하게 나와 있습니다.
조선불교혁신론이란 책이 원기 20년에 나옵니다. 변산에서
수양연구요론이란 책을 내시고 그 다음에 조선불교혁신론을 내십니다.
그 내용이 예성교우가 했던 내용입니다. 제가 원불교의 매력을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중간 단락은 제도의 혁신,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이 하나는 모방을 한다. 둘은 혁신을 한다, 셋은 창조를
한다. 그 세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혁신의
내용입니다.
첫째는 재가출가의 구분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불교를
좀 공부하고 싶다면 머리를 깎아야겠죠? 여기 화요공부방에서
공부하다가 화계사로 충가 해서 지금 통도사에 가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 분이 저번에 여기에 선복 입고 왔는데 대화가 안되어서 미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화에 익숙해지라고 했습니다. 불교의 문화와
역사는 찬란합니다. 반면에 거기에 묵은 제도는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불교 공부 해보세요? 그 어려운 한자. 나도 한자를 쓰지만
이건 쉬운 것입니다. 한번 금강경 공부해 보실래요? 천수경, 화엄경,
법화경 어떤 것을 해보실래요? 반야심경 해보실래요. 알겠어요?
재가 출가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공부와 사업의 성적만 따른다.
그 사람이 얼마나 깨쳤냐? 얼마나 법을 잘 나퉜냐? 사업을 잘 했는가?
이것만을 나눌 뿐이다. 그래서 원불교는 출가재가 구분 없이 대호법으로
다 똑 같은 위에 올라가잖아요. 재가 교도가 출가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원불교에나 있지.
공부와 사업을 어떻게 했느냐? 실적에 따라서 구분할 뿐이다.
왜 그러죠? 성품에 재가 출가가 어디 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두 번째는 교당의 위치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머리 좀 식히러 차 타고
멀리 어디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절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절에 잠깐
가서 선 좀 해야겠다. 갈 수 있어요? 못가잖아... 그래서 원불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자. 그 곳에 교당이 있어서 때때로 머리를
식힐 수 있고, 법을 공부할 수 있고, 수행을 할 수 있도록 가까운 데에
두자고 하는 것이 원불교의 혁신입니다.
동네마다 교당이 있게 한다. 세 가지로 말하면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
입니다. 이것에 맞게 하다 보니까 재가 출가 구분이 없게 하는 것이고,
교당의 위치를 생활 속에서 대중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시대에 맞게 해
놓은 것이다.
세 번째, 경전을 쉽게 했다. 일본에게 해방되기 전에 이것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지금 좀 어려운 것 같다. 일원상 진리를 다음 주에
공부하는데 언어가 한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갑니다.
정전이 쉽고 우리는 91쪽 밖에 안 된다. 100페이지도 안 된다.
네 번째는 출가인의 직업문제입니다. 놀고 먹고 사회에 도움이 안되고
군대도 안 갑니다. 남자교무님들은 군대 다 갔다가 옵니다. 저는
교당에서 하고 있지만, 약 파는 교무, 땅 파는 교무, 복지관에서 일하는
교무,, 날마다 죽은 사람 묻어주는 교무. 많이 있습니다.
원불교는 직업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은의 보은할 수 있도록
출가했다고 어영부영 수행만 하는 게 아니라 수행을 하면서 보은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불교의 정신이다.
제가 생각할 때 원불교에서 해야 할 사업이 있습니다. 첫째가 의료사업.
장묘사업. 복지자선사업. 교육사업. 이런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식품사업은 좀 갸우뚱 합니다.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보험 대리점이 원불교 대리점입니다. 익산에
있는.. 원불교가 중앙집권이잖아요? 각 교당차를 거기다 갖다 넣어요.
그래서 항상 1등입니다.
지금 휘경여고 선생님들이 여기 몇 명 왔는데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휘경여고 이사장이 추천서를 받아야 써주니까? 저한테 가짜로 와서
추천서 받았는데, 다 떨어졌습니다. 종교를 이용한 것이죠?
여기에 감리교에서 숙제 하러 왔다. 지적 호기심, 직업 관련해서 온
사람들은 결국 다 떠납니다. 여기는 교법을 공부하러 이곳에 와야
합니다. 내 삶의 지침, 가치관, 진리를 공부하러 와야 합니다.
구도적 열정으로 와야지 인연 따라 온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천도재를 한번 지내면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교무는 몸살 납니다. 몸살
난 만큼 감동합니다. 너무 고맙고 해서 법회를 나와 줍니다. 한 두세 달
나옵니다. 싸가지 없는 사람은 한 달 나오고, 좀 의리가 있는 사람은
두세 달 나옵니다.
그 두세 달 안에 교법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좋다고 생각하고
나오십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고마워서만 나온 사람은 삼 개월 이상
버틴 사람을 제가 못 봤습니다. 다 떠나갑니다.
도치 道治
덕치 德治
정치 政治
교법이 있어야 종교이고 가장 큰 핵심이 교법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도치라고 한다. 교법으로 가르친 교화야 한다. 그 다음이 덕치라고 한다.
봉사도 하고 따뜻하게 맞아주고 인정도 건네주고 밥도 사주고 이것이
덕치에요. 그런데 도가 빠진 덕은 참덕이 아니다. ‘한 갓 유순한 사람을
덕인이라고 하니 어찌 우습지 아니 하리요’ 대종사님의 표현입니다.
도를 깨달아서 교법을 공부하고 그 공부 속에서 덕이 나타나는 것이
참종교의 모습이다. 그 다음이 정치입니다. 이 사회에 규율과 제도를
통해서 이 세상이 제대로 되게 합니다.
다섯 번째 원불교의 특징은 결혼을 자유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의식 속에도 있습니다. ‘내 자식은 결혼해야 하고, 나는
결혼해야 하고, 내가 모시는 성직자는 결혼 안 했으면 좋겠다.’ 참
불량하죠? 성직자가 결혼 안하고 일하는 것이 참 소중합니다. 그렇게
누가 합니까?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박원진 출가자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그 동안 재가를 주장했는데.
재가를 주장한 마음이 이랬답니다. ‘출가를 하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하는데 재가를 하면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싶으면 안 일어나도 된다. 출가하면 놀러 가고 싶어도 구속이 많은데
재가는 가고 싶을 때 맘대로 갈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는 출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도 마찬가지 입니다. 결혼에 도가 있느냐? 미안하지만
대종사님 결혼 하셨고, 정산종사님 결혼하셨고, 대산종사님
결혼하셨습니다. 그 뒤로 지금 안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ㅋㅋㅋ
지금은 결혼 하고 안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배고파서
밥 먹는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대종사님은 이미 여기다 다
내놓으셨다. 재가 출가 구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출가자 결혼도 자유다.
앞으로의 종교의 모습은 그런 비범한, 보통사람과 차별화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을 잘 쓰고 도를 깨쳐서 덕을 잘 쓰는 것으로 차별화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예법은 형식보다는 사실불공이 되어야 한다. 대종사님은
예법을 다 혁신해서 ‘대재’라고 합니다. 공동생일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둘 다 하고 있죠?
제가 초반에 교무로 나와 가지고 생일을 새주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화가 안 되어서 생일은 새주라고 하고 내가 생일을 안 챙겨줍니다.
제 생일 아는 사람 아무도 없죠? 제 생일 말한 적이 없습니다.
공동생일... 저기 종가집 맏며느리는 제사 지내다가 판납니다.
사실불공 위주로써 다 하셨다. 제사, 명정, 생일, 천도재, 결혼식, 회갑...
이런 것도 본의를 잘 모르면 형식에 억매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돈 안 쓰는 걸로 원불교 제사 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얄팍한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형식을 넘어서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다음에 대도라는 것은 그런 제도에 누구나가 다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러므로 하고 대안을 제시하셨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이 바로
- 우리는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 제성의 심인인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
이것은 앞에서 다 공부했죠? 교리도 할 때 했습니다.
- 천지 • 부모 • 동포 • 법률의 사은과 수양 • 연구 • 취사의 삼학으로써
신앙과 수행의 강령을 정하였으며, 모든 종교의 교지도 이를 통합
활용하여 –
모든 종교의 통합체다. 일원상이다. 일원상이라는 것은 모든 종교의
통합체이다. 원불교의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진리의
통합체를 일원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인격화 된 예수님을 상징한 십자가, 부처님을 상징한 불상이 아니라
진리의 실상, 사진을 모신 것이 원불교이다.
- 모든 교지도 이를 통합 활용하여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이니라. -
정신을 통합하자는 것이다. 종교를 다 쓸어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을 통합 활용해서 광대무량한.. 재가 출가 구분이 없는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주는 이 일원상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한자가 많이 나오니 많이 읽으시고, 찾아보시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질문 있으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 질문 과 답변 ====================
Q_김명희: 제가 그 원불교를 믿으니까 주변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
하는 것이 ‘원불교는 불교의 종파인줄 알았다’라고 말을 많이 한다.
교무님 이야기를 들으면 불법의 주체 삼아서 만든 거잖아요. 굳이
새로운 종교를 만들 필요가 있었나? 불교의 종파를 만들어서 개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
것의 좋은 것만 뽑아서 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요?
A_교무님: 얼마든지 다른 시각이 있다. 그러나 원불교는 불법에 근간한
새불교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에 원불교가 한 종파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새 술은 새 푸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 묵은 관습을 헤쳐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해 놓으시니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 진리 그 핵심 사상은 같다. 그러나 제도
방편 등을 새 시대에 새롭게 새종교로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대종사님도 앞으로 불교가 세계의 주교가 된다고 했잖아요. 그것은
불법이 세계의 주교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지금 그런 현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만 유독 기독교가 난리법석입니다.
유럽 가면 성당이 텅텅 비었습니다. 거기의 성직자들이 결혼 주례하고
장례식 한다. 일본에서도 스님들이 묘 관리해서 직업 생활하면서 산다.
한국만 기독교가 들어와서 판을 치고 있는데 미국문화와 이승만이 큰
역할을 하셨죠.
우리는 유불선 삼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를 다 두루 통합 활용하자는
것이 본의다. 진짜 원불교는 원불교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원불교입니다. 만약 원불교가 원불교에 묶여 있으면 아니죠. 고기가
그물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제가 이런 걱정 안 해도 되겠죠? 제가 옛날에 이런 걱정을 했어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오늘 몇 명이나 오려나. 외롭게 쓸쓸하게 해야 하나
했는데, 제가 지켜보니까 전혀 상관이 없어요. 영화보고 연애하는
사람은 비가와도 전혀 상관없이 영화보고 연애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런 걱정하지 말자. 그런 걱정 안 해도 되죠?
/ 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타이핑: 김혜민
편 집: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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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마음공부방 ◆
940609_화공_09_제1총서편_(제2장 교법의 총설)
김정원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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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20 16:16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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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번주는 너무 늦었습니다. 많이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
정원 교우님~! 정말 감사합니다^^ 바쁘셨을 텐데...
순명부처님 정말 감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v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